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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에 그친 내란 특검 수사 발표, 수긍 어렵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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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계엄 당시 조희대 사법부 행위의 진상은?

구속 취소, 즉시항고 포기 책임 규명도 비껴가

행정부와 정치권만을 대상으로 한 추궁에 그쳐

결국 '성역은 존재' 메시지 남겨 국민에 허탈감

조은석 특별검사가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외환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5.12.15 [공동취재] 연합뉴스

12·3 불법계엄과 내란 사태를 규명하겠다며 출범한 내란 특검이 180일 수사의 종착지로 내놓은 결론은 국민에게 깊은 허탈감을 안겼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한 불기소 결정은 단순한 법률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법부가 헌정질서 붕괴의 위기 앞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회피한 선택이다. 특검의 이번 결정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원칙을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만들며, 사법 정의가 권력의 높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불길한 인상을 남겼다.

불법계엄 앞에서 사법부는 무엇을 했는가

불법계엄은 단순한 행정 착오나 정치적 오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헌법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군사력으로 제압하려 한 중대한 범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부의 역할은 명확하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력의 일탈을 견제하고, 위헌적 시도를 즉각 차단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엄 당일 사법부 수뇌부가 심야에 긴급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은, 사법부가 단순한 방관자였는지 아니면 사태의 한 축이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 회의의 성격과 논의 내용, 이후 내려진 사법적 판단들은 모두 불법계엄의 전개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는 개별 행위의 위법성만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가 그 순간 헌정질서 수호라는 본분을 다했는지에 대한 총체적 검증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특검은 ‘계엄 가담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 문제를 종결했다. 회의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그 판단이 이후 사법적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내려진 불기소는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다. 사법부가 헌법 위기 상황에서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움직였는지 밝히지 않는 한, 이 불기소는 공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귀연 판사(왼쪽)와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편집

심우정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2025.3.13. 연합뉴스

구속 취소와 즉시항고 포기,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은 불법계엄 수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꾼 분기점이었다. 그 결정은 법률 해석의 문제를 넘어, 내란 책임을 묻는 국가적 절차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판단과 그에 대한 사법부의 대응은, 결과적으로 최고 권력자에 대한 사법적 제동을 느슨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검은 이 판단 역시 형사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문제는 ‘위법성의 입증’만이 아니다. 불법계엄이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사법부의 판단이 어떤 효과를 낳았고 그 효과가 헌정질서 회복에 부합했는지를 묻는 것이 핵심이다. 사법 판단은 현실과 분리된 추상적 행위가 아니다. 특히 권력형 범죄 앞에서의 사법적 선택은 정치적·사회적 파급력을 동반한다.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 사건을 특검이 직접 결론 내리지 않고 경찰로 이첩한 결정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즉시항고 포기는 단순한 소극적 직무 행위가 아니라, 사법적 판단을 다시 다툴 수 있는 마지막 통로를 스스로 닫아버린 중대한 선택이었다. 그 책임을 특검이 아닌 다른 기관으로 넘긴 것은, 핵심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는 책임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행정적 조치이지, 진실 규명에 대한 적극적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검의 한계와 사법 정의의 과제

특검은 윤 전 대통령 추가 기소와 전직 국무총리, 장관, 대통령실 인사, 현직 정치인들에 대한 기소를 성과로 제시한다.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내란이라는 범죄의 구조적 성격을 고려할 때, 행정부와 정치권만을 대상으로 한 책임 추궁은 반쪽짜리 진상 규명에 그친다. 내란은 명령을 내린 자들만의 범죄가 아니라,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 제도와 침묵한 권력기관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책임 규명이 빠진 특검 수사는 결국 ‘성역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오랜 불신을 재확인시킬 위험이 크다.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그 판단의 근거와 한계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불기소는 과정의 설명보다 결과의 선언에 가까웠다.

사법의 권위는 처벌 회피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판단을 공개적으로 검증받고, 필요하다면 책임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번 특검 불기소 결정은 법률적으로는 종결일지 모르나, 역사적으로는 여전히 진행 중인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불법계엄과 내란의 진실을 끝까지 묻지 않는다면 그 공백은 다시 시민의 몫, 역사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법은 최후의 보루다. 그 보루가 흔들릴 때 민주주의는 가장 깊은 상처를 입는다. 특검의 이번 결정이 사법부와 국가 권력 전반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위기의 순간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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