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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선 불법, 학원에선 합법... '황소고시'로 본 법의 이중잣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12/25 09:19
  • 수정일
    2025/12/25 09: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주장] 선행학습도, 아동학대도 부모가 동의하면 학원에선 가능한가

  • 김재욱(lotusrus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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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한 학원가 밀집 지역 2017.4.24 ⓒ 연합뉴스

 

'황소 고시'라고 들어봤나? 지난 2월 KBS 추적 60분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편에 서울대생도 풀기 어려워하는 문제로 큰 논란이 되었던 시험이다. 이 시험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학원이 '생각하는 황소' 수학 학원(이하 황소 학원)이다.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지난 11월 330명 모집에 무려 1800명이 응시하여 부모들과 초등학생이 대치동 앞을 가득 메웠다는 그 학원. 심지어 황소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황소 고시를 대비해 주는 학원- 이른바 '송아지 학원'으로 불린다- 도 있다.

 

문제는 이 시험과 그 이후 이어지는 학원의 지도 방식이다. 만약 학교에서 이루어졌다면 선행학습 금지법 위반이거나, 아동학대 신고 대상이라는 점이다. 학교에서는 법으로 금지하는 일이 사교육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이 현실. 법과 정책이 만들어 낸 구조적 모순이다.

 

학교에만 적용되는 법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1조를 보면 "공교육을 담당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하여 교육관련 기관의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 목적을 달성하고 학생의 건강한 심신 발달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8조에서는 학교가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교육이나 평가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9조는 입학전형과 평가 과정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출제를 명확히 금지한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 대상은 '학교'에 한정한다. 학원이 초등 교육과정을 명백히 초과해 아이들을 선발하고 서열화(실제 황소 학원에서는 일품-실력-심화-경시반으로 수준별 구성을 하고 있다)해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실제 황소 학원 누리집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있는 '자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문답을 볼 수 있다.

 

Q. 생각하는 황소는 어떤 학원인가요?

A: 생각하는 황소는 교과 선행 심화 전문 수학학원입니다. 소위 말하는 사고력 수학 학원은 아닙니다.

출처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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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학원의 지도 방식은 공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을 더 좌절시킨다. 단계 평가 후 반을 배정 받아도 강급 기준에 걸리면 즉시 단계가 강등된다. 자습실에서 문제를 다 풀지 못하면 교실에서 나갈 수 없게 하거나, 다른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홀로 남아 끝까지 문제를 풀게 한다. 좋게 말하면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기르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동 학대의 일종이다(이와 관련 11월 6일 <한겨레>에 실린 학부모 인터뷰는 다음과 같다. "황소 수학은 문제를 다 풀 때까지 집에 안 보내주기 때문에 아이가 오래 공부할 수 있는 '엉덩이 힘'을 길러주는 게 장점").

 

공간을 제한하는 행위는 아동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반복적인 공개 압박과 비교, 수치심 유발은 정서적 학대 판단의 여지가 있다. 만약 이러한 행위가 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졌다면,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 대상이 되고, 아동 학대 조사와 (심하면)직위해제, 형사 절차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같은 행위가 학원에서 벌어지면 '부모의 동의'라는 말 한마디로 해결된다. 부모의 동의는 어디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사교육은 방임하고 공교육만 규제

 

부모의 동의는 생활지도를 가능하게 만들기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교사들은 모순과 좌절을 느낀다. 교사들에게는 아동을 보호하고 인권을 지킬 책임만 있지 정작 필요한 권한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황소학원의 생활 규정을 보면 그 좌절은 더욱 깊어진다. 황소학원의 생활규정 일부를 살펴보자.

 

일반 금지 행위

-학원 안에서의 모든 소란행위

-컵라면, 사탕, 껌, 과자류 반입(음료는 가능)

-지정된 방법 이외의 휴대전화 사용(무음모드, 통화는 로비에서 부모님께만)

 

절대 금지 행위

-미션, 과제, 시험과 관련한 부정행위

-폭력과 절도(언어폭력-욕설, 비방, 조롱, 따돌림 등, 물리적 폭력)

-시설물이나 비치물품을 고의로 훼손하는 행위

 

퇴원 규정

-일반 금지 행위는 벌점 5점(학부모 문자 통보, '살려주세요' 쿠폰으로 면책 가능)

-벌점 100점이면 퇴원(재입학 불가)

-절대금지행위 3회 적발시 퇴원(재입학 불가)

출처 입력

 

위 내용 모두 초등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 금지행위를 해도 상벌점을 줄 수 없고, 폭력행위를 해도퇴학시킬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저 금지행위를 하는 학생을 교사가 제지할 아무런 방법과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에서는 급식 먹으러 가는 줄을 세우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쳐도 되는지 고민하는 교사들이 있다. 눈 앞에서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때리는 학생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좌절하는 교사들이 있다.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에 따르면 교사가 할 수 있는 생활지도는 조언-상담-주의-훈육-훈계-보상이 전부다.)

 

그런데 같은 아이가 학원에서는 훨씬 더 강한 압박과 통제를 받고 있다. 교실에서는 불법인 일이, 학원에서는 부모의 묵인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어째서 교사만 아동학대 처벌의 최전선에서 하루하루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가. 왜 같은 행위여도 장소에 따라 아동이 받는 영향이 크게 달라지는가? 같은 행위도 주체에 따라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정말 옳은가? 정말 다른 잣대를 적용하려면 정규 과정을 거쳐 국가가 인정한 자격을 지닌 교사에게, 형사 처벌하지 않더라도 공무원 징계규정 적용 대상인 교사에게 더 큰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주는 게 맞지 않은가? 어째서 교사는 권한은 없으면서 책임만 무한으로 져야 하는가? 교실에서 하면 범죄가 되지만 학원에서 하면 합법이 되는 이 모순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이 문제는 단지 하나의 학원에서 비롯한 게 아니다. 황소학원과 황소고시는 모순과 좌절을 대표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 모든 모순은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며 학교만 규제하고, 정작 사교육이 실제로 행사하는 교육 권력에는 눈감아온 제도와 정책의 결과다. 이 모든 좌절은 교사에게 실현 불가능한 규정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정작 규정을 지키기 위한 아무런 권한도 주지 않은 법률의 결과다. 결국 이 모든 모순과 좌절 또한, 제도와 법률로만 풀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립니다.

 

#아동학대#선행학습#교사#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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