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는 수도권의 촘촘한 송·변전 인프라를 장점으로 꼽으며 신재생에너지는 불안정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작 수도권의 전력 수요가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외면합니다. 발전소를 새로 짓거나 전국에 송전선을 설치해 전기를 끌어오지 않는다면 전기가 없어 반도체 팹을 운영하지 못할 상황이라는 사실을 애써 감추는 겁니다.
반면 호남은 국내 최고의 태양광·해상풍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 등으로 안정성을 보완하는 것이 전국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여기에 RE100은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정보기술(IT) 고객사의 필수 요구사항입니다. 이걸 맞추지 못한다면 2030년 이후에는 반도체를 만들고도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해외 사업장은 이미 RE100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진행하다가는 두 기업이 RE100을 핑계로 국내 투자는 멈추고 해외 사업장 확장을 선택하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2 용수 공급] 한강에 목매는 것이야말로 '리스크'
<매일경제>는 용수 공급 문제를 두 번째 이유로 꼽았습니다. "반도체 팹에서 전력만큼이나 중요한 건 용수 공급인데 한강은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시설 운영에 유리한 부분이 많다"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용수 문제가 더 이상 용인에 팹을 짓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특정 수자원(한강)에 국가 핵심 산업의 명운을 거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가뭄이나 만약의 안보 위기 시 북한발 수계 차단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용수 공급원 다변화는 리스크 관리의 기본입니다.
반면에 호남권은 주암댐, 섬진강댐 등 대규모 수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광주·전남은 이미 반도체 특화단지를 위해 용수 공급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새만금도 광활한 부지를 바탕으로 대규모 담수화 시설이나 하수 재처리 시스템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3 우수 인력] '남방 한계선'이라는 오만한 프레임
세 번째 이유로 "우수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들면서, "반도체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취업 남방 한계선이 '화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이미 널리 퍼져 있다"라고 소개합니다. '취업 남방 한계선이 화성'이라는 말은 수도권 중심주의가 만든 허상이며 아주 오만한 발언입니다.
호남에 짓는 반도체 팹에서 일할 우수 인력을 왜 서울에서 뽑을 생각을 할까요? 호남에 팹을 지으면 거기서 일할 인력을 호남에서 선발하면 됩니다. 이미 광주과학기술원(GIST), 전남대, 전북대 등 지역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 중입니다. 여기에 지방에 들어서는 기업을 위해 파격적인 주택 공급, 교육 환경 조성,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면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호남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인구 600만 명의 도시국가입니다. 이 중 건설 노동자와 가사도우미 등 외국인 상주 인원을 제외하면 실제 인구는 400만 명이 채 안 됩니다. 이런 나라에 반도체 팹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만 6개나 되고, 운영 중인 팹 수는 16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고급 인력을 구하지 못해 팹 운영을 못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호남에 들어선 기업이 호남에서 인재를 찾는다면 그 수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물론 호남 밖의 지역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찾아 호남으로 찾아들 겁니다.
[#4 투자 타이밍] 용인은 '희망 고문', 호남은 '급행열차'
<매일경제>는 계획 변경 시 '타이밍을 놓친다'라고 겁박합니다. 그러나 두 곳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중 실제 공사가 시작된 곳은 SK하이닉스의 1공장뿐입니다. 삼성전자의 국가산단은 이제 겨우 토지 보상 단계입니다. 건설이 시작된 SK하이닉스 1공장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호남의 RE100 산단에 조성하자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매일경제>는 이럴 경우 실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빠른 진행이 가능합니다.
수도권 특유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인프라 구축 비용을 고려하면 용인은 앞으로도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용인 일반산단의 SK하이닉스 1공장은 2019년에 계획이 발표된 후 실제 공사가 시작될 때까지 6년이나 걸렸습니다. 오히려 국공유지가 확보된 호남에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추진하는 것이 K-반도체를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5 생태계와 물류] 디지털 시대에 장벽이 아닌 '거리'
<매일경제>는 비수도권 반도체 팹 건설이 국가 반도체 경쟁력을 추락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높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수도권에 구축된 생태계 효과가 꽤 크다"라는 겁니다. 반도체 회사들이 다 모여 있어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가까이에 있는 팹리스 기업과 반도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효율적인 역할 분담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미국에 있는 팹리스 회사가 대만에 있는 파운드리 회사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고, 말레이시아에 있는 패키징 회사가 최종 조립해서 반도체를 만드는 시대에 아직도 반도체 회사들이 가까이 모여 있어야 협력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한 지역에 모든 국가 자산이 몰려 있는 것은 지진, 전쟁, 테러 등 재난 상황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대만(TSMC)이 팹을 분산 배치하고 미국이 지역별 클러스터를 따로 만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매일경제>는 인천공항과 가까워서 생기는 물류 경쟁력도 수도권이 가진 장점이라고 합니다. 호남에도 공항이 있고 항구도 있습니다. 무안국제공항을 반도체 전용 물류 허브로 육성하고 광양항의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교통 체증에 갇힌 수도권보다 훨씬 압도적인 물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가 주장하는 '자해'의 주체는 틀렸습니다. 진짜 자해 행위는 전력이 없고, 물이 부족하며, RE100 달성조차 불가능한 수도권에 국가의 미래를 올인하는 것입니다. 글로벌 고객사들이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RE100을 충족하지 못하는 반도체는 수출길이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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