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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자금'으로 전락한 13조 원...농협의 해묵은 악습에 충격

농협은 200만 농민의 조직이나 실상은 '임직원만의 리그'라는 비판이 높습니다. 농식품부 감사 결과 도덕적 해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감사 보고서를 토대로 농협의 민낯을 5회에 걸쳐 꼼꼼히 들여다보고 개혁 방향을 제시합니다.

▲위기의 농협중앙회지난 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중앙회와 농협재단 특별감사에서 비위 의혹과 인사·조직 운영 난맥상, 내부 통제 장치 미작동 등 65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두 건에 대한 법령 위반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농협중앙회가 지역 농·축협의 경영 안정을 위해 지원하는 '무이자 무보증 자금'(상호금융 특별회계 자금). 그 규모만 한 해 13조 2000억 원(2024년 기준)에 달한다.

이 자금은 농협이 사업 이익과 조합원들의 출자로 불려 놓은 농민들의 소중한 자산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 조합의 균형 발전과 사업 활성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위해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 돈이다.

하지만 정부 감사 결과, 이 '눈먼 돈'이 중앙회장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로비 자금'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사조합'이면 더 준다?

최근 공개된 농림축산식품부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자금 배분의 형평성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2024년 지원된 무이자 자금의 증가액을 분석해 보았다. 일반 조합은 평균 8억 7000만 원 증액(전년 대비 7.6% 증가)된 반면, 이사 조합은 평균 37억 8000만 원이 증액돼 전년 대비 26.3%나 늘어났다.

중앙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사' 소속 조합들이 일반 조합보다 무려 4.3배나 많은 자금을 더 챙긴 것이다. 자금 배분의 기준이 '농민의 필요'가 아닌 '회장과의 거리'에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돈이 '내 편'에게만 주로 흐르는 현실은 나머지 자금들조차 과연 농민에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무이자 자금을 이용한 '줄 세우기'는 농협의 해묵은 악습이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그 심각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지난 2011년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둔 2010년 당시, 8조 원 규모의 조합 지원금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 조합에 집중적으로 배정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선거권이 있는 대의원 조합 217곳의 평균 지원금은 56억 4900만 원이었던 반면, 일반 조합 759곳은 35억 8200만 원으로 약 58%의 격차를 보였다. 대의원 조합 가운데 조합장이 중앙회나 22개 자회사 임원 등의 보직을 맡은 곳은 지원금이 65억 9600만 원에 이르기도 했다. 사실상의 '사전 선거운동'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다.

지난 2023년 국정감사에서도 농협중앙회가 '농협법 개정안(회장 연임제)' 처리를 위해 국회와 조합장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무이자 자금을 '당근책'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무이자 자금'이 통치 자금 된 원인

▲농협중앙회의 공금 낭비 의혹, 농협중앙회장 사과 기자회견농협중앙회의 공금 낭비 의혹과 관련,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정민

무이자 자금이 로비 자금으로 변질된 원인을 보면 농협중앙회의 난맥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선 '깜깜이 배분 구조'다. 무이자 자금의 지원 기준과 산출 근거 대신 중앙회장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보니, 조합장들은 자금을 더 받기 위해 중앙회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음은 중앙회장의 막강한 인사·예산권이다. 농협중앙회장은 13조 원의 무이자 자금 배분권뿐만 아니라, 지역 조합을 감사하는 조합감사위원장 임명권 등 제왕적 권한을 쥐고 있다. 자금과 인사, 감사권을 모두 쥐고 있어 지역 조합장들을 줄세우기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자금 배분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오히려 수혜자가 되는 모순된 구조도 한몫했다. 이번 감사에서 드러났듯 이사 조합에 자금이 쏠리는 현상은 이사회가 중앙회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 공동체'로 결탁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이번 감사를 계기로 무이자 자금 배분 기준 등 중앙회 운영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가칭)농협개혁 추진단'을 구성해 개혁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하지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손보겠다'던 정부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늦었지만 지난 달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농협법개정안에는 농협중앙회에 '회원조합지원자금(무이자자금) 조성·운용계획 매년 수립'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회는 감사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경영 자율성 침해'를 이유로 이 조항 신설에 반발해왔다. 중앙회의 강한 반발은 역설적으로 이 자금이 그동안 조직 내부에서 강력한 권력의 도구였음을 말해준다.

#농협중앙회#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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