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러스트벨트 소도시인 찰로이에 위치한 제일연합감리교회. 이 교회는 아이티 이민자들에게 영어·운전 교육, 산모 지원, 중고 의류 나눔, 법률 지원 등을 제공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찰로이 | 정유진 특파원
예배 도중 돌아가며 각자의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이 되자 아이티 교인인 아크나피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 말했다. “아내와 저는 같은 베이커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얼마 전 아내의 공장 출입카드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어요. 아내를 포함해 수십명의 아이티 노동자들이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해고된 겁니다. 제 출입카드는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지만, 저도 언제 해고될지 모릅니다.”
공장이 이들을 해고한 방식은 매우 무례했다. 다만 공장이 이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장 가동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면, 2월3일 TPS가 종료되기 전 미리 새 인력을 충원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아크나피는 TPS가 종료된 후 어떻게 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막막하기만 하다”고 답했다. 그는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당시 아이티 대통령이 한밤중 자택에서 갱단에 암살된 후 나라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TPS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보스턴을 거쳐 찰로이에 정착한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안정적인 미래를 꿈꿔보게 됐다고 했다. 공장에서 일하고, 교회에선 통역 봉사를 했다. 아껴 쓰고 남은 돈은 아이티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아이티인은 개도, 고양이도 먹지 않습니다. 그런 말은 사실이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TPS가 종료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이티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극도로 두렵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그렇게 암살될 수 있는 나라라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아이티의 상황은 매일매일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아이티인이 지금도 목숨을 걸고 세계 곳곳으로 피난처를 찾아 떠나고 있어요.”
찰로이를 떠난 이민자 중 고국으로 돌아간 라이베리아인과 나이지리아인은 있어도, 아이티로 돌아간 아이티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오드 목사는 말했다. 일부는 캐나다로 재이주를 했고, 일부는 뉴욕 같은 피난처 도시로 떠났다.
가족같이 지내온 아이티인들이 한명 두명 떠나갈 때마다 오드 목사와 교회 사모인 메리는 “내 몸이 찢겨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울컥한 표정으로 말했다. 랜디 목사는 “이곳을 떠난 사람 중엔 내가 세례를 해 준 두 세 명의 아기들이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내 이름을 따서 붙여준 아이티 부부도 있다”고 말했다. 메리도 “분만실에 들어가기 무섭다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서 출산 과정 전부를 함께 한 젊은 부부도 기억난다”며 “그들은 모두 우리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오드 목사는 “이 도시는 벨기에 이민자에 의해 세워진 도시고, 나도 아일랜드 이민자의 자손”이라면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다 떠나면, 이 도시 경제는 어떻게 되살리겠단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생각에 이 도시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난장판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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