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경 위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행동은 더 선명해진다. 이스라엘은 입으로는 레바논 국가와 헤즈볼라를 구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폭격은 그 구분을 처음부터 존중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4월 8일 공습은 베이루트, 베카 계곡, 남부 레바논을 한꺼번에 때렸다. 수도 베이루트 도심 한 복판까지 사전 경보 없이 폭격했다는 점에서 표적만 찍어 제거하는 정밀 응징이라는 말은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위선적인 것은 그다음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향한 공격은 곧바로 문명과 인류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전 세계를 향해 피해자의 언어를 독점하려 든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행동할 때는 더 약하고, 더 분열돼 있고, 더 쉽게 짓밟을 수 있는 이웃을 먼저 골라 때린다. 힘이 센 적과는 미국을 끌어들여 계산하고, 당장 되갚기 어려운 약한 공간에는 폭탄을 쏟아붓는다.
그래서 지금 레바논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레바논 사회 전체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다. 조직 하나를 겨눈다고 하면서 도시를 무너뜨리고, 주민을 쫓아내고, 병원과 도로와 일상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자위가 아니라 집단적 응징에 가깝다.
이쯤 되면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영원한 피해자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더 만만한 약자를 향해서는 가장 가혹한 가해자가 되는 국가처럼 보인다. 말로는 안보를 외치지만,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압도적 힘으로 약한 사회를 짓눌러 굴복시키려는 전쟁의 습성이다. 레바논은 지금 그 위선과 폭력의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의 노란 리본을 달았다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일 수 없다고 답했다. 그 문장은 지금 레바논을 보며 다시 떠오른다. 장례식장으로 돌아온 가족 위에 폭탄이 떨어지고, 아이가 죽고, 병원과 주거지가 무너지는 장면 앞에서 중립을 말하는 것은 사실상 가해의 편에 서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보편적 인권의 차원에서 이스라엘의 행태를 비판하자,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를 강하게 규탄했고, 한국 외교부는 대통령 발언의 취지를 오해한 대응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문제는 이 반응이 단순한 외교적 과민함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들은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피해의 언어를 호출하면서도, 정작 더 약한 이웃에게 가하는 집단적 응징은 방어라고 우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 이스라엘 정권의 심각한 인지 부조화와 논리적 파탄이 드러난다.
이스라엘 국민의 주권은 존중받아야 하고, 유대인의 역사적 고통과 존엄 역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와 존엄을 방패로 삼아 민간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국제법을 짓밟는 현 이스라엘 정권은 더 이상 문명과 인권의 언어 뒤에 숨을 수 없다. 그것은 인류 보편의 이름으로 고립되고, 제어되고, 끝내 심판 받아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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