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론 아제모을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가 던지는 경고는 그래서 더 무겁다. 두 경제학자는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저절로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낙관론을 비판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기술적 진보는 자동으로 분배되지 않았다. 어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사용되고, 그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며, 변화의 비용을 누가 떠안는가는 결국 권력과 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하고 안전망이 빈약할 때 기술혁신은 다수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소수의 이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성장과 혁신이 공동의 번영으로 이어지려면 국가는 그 과실의 분배 구조를 적극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기술 변화가 빠를수록, 시장의 파괴력이 클수록, 국가의 사회정책은 더 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이 바로 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정부는 AI와 첨단산업, 생산성 혁신과 산업구조 개편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 변화가 커질수록 전면에 나와야 하는 것은 복지와 안전망이다.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은 일부에게는 기회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해고·전직·소득 감소·경력 단절·노동의 불안정화를 뜻할 수 있다.
이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실직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소득 보전 체계,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재교육과 전직 지원, 의료와 돌봄의 공백을 메울 공공 체계, 주거비 부담을 낮출 제도를 함께 내놓는 것이다. 이런 장치 없이 기술 혁신만 앞세우는 정부는 강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약한 사람에게는 더 빠른 불안을 제공할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고용유연성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회안전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제 인식 자체는 옳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가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가지려면, 해고와 전직의 위험이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직장을 잃는 순간 집세와 대출 상환, 교육비와 의료비, 돌봄 부담이 한꺼번에 짓누르는 사회에서 유연화는 개혁이 아니라 공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아직 적당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했다.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단시간 노동자·특수고용 노동자의 상당수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중장년층 전직 지원은 약하고, 상병으로 일하지 못할 때 버틸 소득 보장 체계도 충분하지 않다.
국가가 먼저 "일자리를 잃어도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를 증명한 뒤에야 유연화는 사회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유연화의 필요성은 말하면서도, 그것을 감당할 사회적 기반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이재명 정부의 가장 큰 정책적 취약점이 있다. 복지국가의 상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복지의 청사진을 주도해야 할 사회수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선순위서 밀린 복지… 국정 중심으로 끌어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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