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든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부모에 의한 자녀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4월 30일에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생후 8개월인 영아를 때려 숨지게 한 30대 친모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친모는 4월 10일 시흥시 자택에서 아들의 머리를 TV 리모컨으로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범행 이후에 병원을 방문했지만, 의료진이 두개골 골절 등 심각한 손상을 이유로 입원을 권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귀가했다. 이후 친모는 13일에 아이가 의식을 잃자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아이는 다음 날 숨졌다.(CJB청주방송, 2026년 4월 30일)
부모를 잘못 만났다?
한국에서는 부모에 의한 자녀학대 사건, 심지어 자녀살해 사건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부모를 잘못 만났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해버리곤 한다. 한마디로 이런 끔찍한 사건의 원인을 부모라는 개인에게서 찾아 그 개인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것이다. 물론 개별적인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에서 멈추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을 가로막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부모 자격을 상실한 부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부모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자녀 양육은 결코 부모만의 책임이 아니었다. 대가족 체제에서는 조부모, 친척 등 다양한 어른들이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실수하거나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존재했다. 따라서 부모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아이는 다양한 어른들을 통해 건전한 가치와 규범을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대가족이 해체된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은 마을 공동체나 직장 공동체 등이 그 역할을 일부 대신했다. 이웃과 주변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아이의 삶에 개입했고, 최소한의 사회적 감시와 보호가 작동했다. 부모의 영향력이 커지기는 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공동체는 거의 사라졌고, 한국인들은 핵가족으로 고립되었다. 이때부터 자녀 양육은 철저히 개별적인 부모의 책임이 되었으며, 외부의 개입이나 견제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부모의 경제력이나 인격 수준, 정신건강 상태 등이 곧바로 아이의 삶 전체를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런 구조에서도 부모가 건강하고 안정적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부모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정신적으로 취약할 경우 상황은 급격히 악화된다. 외부에서 이를 보완하거나 개입할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모의 문제가 그대로 아이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극단적으로는 아이의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다.
왜 문제 있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는가?
이제 한국 사회는 부모답지 않은 부모를 비판하거나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다음과 같은 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왜 이러한 ‘문제 있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는가?”
문제 있는 부모의 증가 추세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이나 책임감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오늘날의 한국은 극단적인 개인 간 경쟁 사회다. 생존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개인 간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이기거나 살아남아야 하고, 사회적 존중을 얻기 위해서는 치열한 개인 간 서열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반인간적인 사회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상실하여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불편함이나 고통을 넘어 급속한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진다.(이 주제에 대해서는 <풍요중독사회>, <가짜 정의 권하는 사회> 등의 저서 참고)
오늘날의 한국에서 정신건강이 악화된 개인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 부모의 문제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달된다. 양육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인내심과 안정감, 공감 능력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무너진 부모들은 이런 능력을 가지기가 어렵고 그런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그 결과 부모의 스트레스와 분노 등은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에게로 향하게 된다.
정신건강이 악화된 부모가 자녀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지면 자녀의 정신건강은 부모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자녀들이 자라나서 부모가 되면 자녀 양육의 질은 더 낮아질 것이다. 즉 사회가 병들면 부모가 병들고, 병든 부모가 자녀를 더 병들게 하고, 그 자녀들이 어른이 되면 사회는 더 병들어 부모와 자녀들을 더 병들게 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세대를 거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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