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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왜 '사법살인'을?…손녀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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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권종근 편

사법 사상 암흑의 날을 만든 유신의 판사

권지윤 작가 겸 정당인 지난해 책에 담아

권 판사가 도장을 찍었던 긴급조치 문법

군홧발로 국회 침탈한 그 밤과 너무 닮아

"나의 할아버지가 사법 살인을 했단 말인가"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쳐 읽는다. 권종근(權宗根, 1933~2011) 항목에서 예상치 못한 문장 하나가 눈을 잡아끌었다. 그의 손녀가 책을 냈다는 것이다. 제목은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권윤지 작가 겸 정당인이 지난해 펴낸 이 책은 고등학교 역사를 공부하며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가 "검은 바탕에 박힌 할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유신판사들의 사법살인을 고발하는 대자보 형식의 게시물. 나란히 배치된 낯선 얼굴들 중 하나가 자신의 할아버지였다. 손녀는 자애로웠던 할아버지의 과거를 처음 접한 순간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국사 과목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였다.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던 중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가 검은 바탕에 박힌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대자보 형식의 게시물이었다. 그 게시물에는 할아버지의 얼굴과 함께 낯선 인물들의 사진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그 게시물은 유신 판사들의 사법 살인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인 인혁당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검은 액자 아래 나열되어 있었다. 존재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기호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의 머릿속은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의 의문은 하나뿐이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사법살인을 했단 말인가?” (권윤지 2025, 86~87)

영국에서 이 장면을 읽으며 한참 멈춰 있었다. 역사는 교과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손녀의 컴퓨터 화면에 뜨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역사는 개인의 이야기가 된다.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권윤지 - 교보문고

1933년 경기도 연천 출생, 상고 출신의 역전

권종근은 1933년 6월 25일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덕수상업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1957년 1월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법대 졸업도 전에 사법고시를 통과했다. 8회 동기는 전례 없이 108명의 대규모 합격자를 배출했는데, 이회창, 한승헌 등이 같은 기수다. 그런데 이 기수에서 반헌법행위자로 선정된 사람이 권종근을 포함해 서동해권, 안경상, 정기승, 정치근 등 무려 5명이다. 한 기수에서 다섯 명이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지, 사람이 시대를 선택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숫자다.

 

권종근(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

 

2012년 9월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권종근이 사형선고를 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 송상진씨 부인 김진생씨, 고 김용원씨 부인 유승옥씨, 고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씨가 울부짖고 있다. ⓒ권우성 2012.9.12

세계사 속의 동류, '착한 판사'들이 나쁜 판결을 내리는 방법

영국에서 권종근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역사적 인물이 떠오른다. 나치독일의 인민재판소 판사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평범한 법률가였다. 괴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이 내린 판결은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독일 역사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불렀다. 거대한 악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것이다.

소련의 법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스탈린(1878~1953) 치하에서 대숙청 재판을 진행한 판사들은 개인적으로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좋은 이웃이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이미 결론이 정해진 재판에 법률적 외양을 입혔다. 권종근도 그랬다. 손녀의 책에 따르면 그는 "유신 공안 통치의 실무자였던 김기춘(1939~ )이 선별해서 가져다 준 자료만을 토대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 판사가 아니라 결론을 읽어주는 사람으로 기능한 것이다.

 

한나 아렌트(Getty Images)

1974년, 사법사상 암흑의 날

권종근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역사에서 절대 지워질 수 없는 장면이 있다. 1974년 7월 11일 비상보통군법회의 제2심판부다. 권종근은 이 심판부의 심판관으로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 도예종, 서도원, 우홍선, 이수병, 김용원, 송상진, 하재완 등 7명에게 사형을, 전창일 등 8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8명이 처형됐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한 조작극이었다고 밝혔다. 200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32년이 걸렸다.

이뿐이 아니었다. 권종근이 재판장 또는 심판관으로 사형을 선고한 사람이 모두 10명이다. 재일한국인 사업가 최철교, 김달남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8·15 저격사건의 문세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들 가운데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철교는 2019년 재심에서, 유정식은 2022년 재심에서 각각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돌려받은 것은 이름뿐이었다.

 

권종근은 이 심판부의 심판관으로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 도예종, 서도원, 우홍선, 이수병, 김용원, 송상진, 하재완 등 7명에게 사형을, 전창일 등 8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4장 이재문과 여정남 ⑨ 민청학련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 < 안영민의 「아버지, 안재구」 < 연재 < 특집연재 < 기사본문 - 통일뉴스)

긴급조치의 도장 찍는 기계

권종근이 비상군법회의 심판관 또는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로 관여한 긴급조치 1호, 4호, 9호 위반사건은 모두 14건으로 확인됐다. 그 판결 목록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연세대 의대생들이 강의실에서 "긴급조치 철회"를 주장했다가 징역 7~10년을 받았다. 자기 집에서 이웃에게 "박 정권이 망한다"고 말한 무직자가 징역 12년을 받았다. 편지를 써서 동아일보 정문에 전해달라고 한 4·19혁명 부상자가 징역 1년을 받았다. 헌법을 비판한 것이 죄가 됐고, 권종근은 그 죄에 도장을 찍었다.

긴급조치 피해자 중에는 이해찬(1952~2026), 유홍준(1949~ ), 제정구(1944~1999), 강창일(1954~ ), 백영서(1953~ ) 등도 있었다. 이들은 각각 징역 15년에서 10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이해찬.(Former PM Lee Hae-chan dies during Vietnam trip - The Korea Times)

김지하의 기피신청,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당황했다"

1975년 5월, 시인 김지하(1941~2022)가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라는 내용의 옥중수기 「고행 1974」를 발표했다가 반공법위반으로 다시 기소됐다. 담당재판부는 권종근이었다. 사형까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변호인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법관 기피신청을 계획했고, 김지하가 법정에서 구두로 기피신청을 냈다. 홍성우 변호사는 "재판장 권종근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당황해했다"고 회고했다. 그날 재판은 무산됐다. 기피신청은 결국 기각됐지만, 그 하루가 김지하의 목숨을 살렸을지도 모른다.

 

김지하(나무위키)

승진 탈락 그리고 변호사, 유신의 판사가 변호인이 됐다

1979년 5월, 권종근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승진에서 탈락하고 청주지법 부장판사로 발령이 나자 사표를 냈다. 그토록 유신정권에 충성했건만 고법 부장판사 승진은 되지 않았다. 독재권력은 신하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1980년 김대중(1924~2009) 내란음모 조작사건에서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됐다. 6년 전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판결을 내린 사람이, 이번에는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변호인이 된 것이다. 변론에서 그는 놀랍게도 신군부의 논리를 그대로 채용해 "순진한 학생들을 악이용한 일부 몰지각한 기성정치인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게 피고인을 위한 변론일까? 판사 시절에도, 변호사 시절에도, 그는 권력이 원하는 논리 쪽에 서 있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을 받는 이문영, 문익환, 김대중. ⓒ 사단법인 통일의 집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권종근 항목을 읽으며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것은 그의 손녀 이야기였다.

"나의 할아버지가 사법살인을 했단 말인가?"

이 질문을 한 세대 아래의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물었다는 것. 그것이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3년 영국의 역사가 니콜 리퍼는 나치에 부역한 프랑스 관리의 손녀로서 가족의 역사를 추적한 책을 썼다. 그 책의 핵심은 "내 할아버지가 한 일을 직시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였다. 개인의 성찰이 사회의 반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권종근을 떠올렸다. 그가 도장을 찍었던 긴급조치의 문법이, 군홧발로 국회를 짓밟으려 하던 그 밤의 문법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손녀가 물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사법살인을 했단 말인가?"

역사는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는 이것을 막았단 말인가?"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권종근의 이름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손녀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직시하며 책을 썼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손녀도, 우리도 함께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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