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자원봉사 가겠다고 하는 우리 내국인 포함한 선박들을 지금 나포하거나 폭침시키고 있다고 그러죠? ” 5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문제제기다. “이스라엘이 그 지역을 통제하고 관할권을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무차관 김진아의 대답이다. “그러니까 그게 불법이냐 합법이냐는 당연히 판단을 해야죠.” 안보실장 위성락이 대답한다. “네 그 부분은 좀 따져봐야 합니다. 왜냐면 시작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으로부터 촉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우리가 가자 지역은 입국 금지 지역이니 입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부의 방침이나 권고를 안 따른 것은 우리 내부 문제고 여하튼 우리 국민들을 국제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사유로 잡아간 거 맞잖아요.” “그것도 검토를 해봐야 되겠습니다.” “지금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한테 체포영장 발부돼 있죠?” “그 문제는 복잡한 문제라서 여기서 논의를 하는 것보다는 저희가 검토를 해서 따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너무 심해요. 너무 비인도적이고. 지금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기 국내로 들어오면 네타냐후를 체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우리도 판단을 해봅시다.”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 관리하고 말씨름하는 장면 같다. 외무차관이나 외무부 출신 실장이나 매한가지다. 우리 국민의 안위는 간데없고 오로지 이스라엘 두둔에 정신이 없다. 가지 말라 했는데도 어기고 갔다면 억류의 책임은 자기들이 져야 하거늘. 억류국민 석방을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사실이 탄로 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기에 바쁘다. 외부 영입 차관도 이제 외무부 ‘물’이 다 들었다. 더욱이 네타냐후 체포 문제에 있어 안보실장은 “여기서 논의”를 하는 대통령을 핀잔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외교는 언감생심이요 외무 행정마저도 엉망이다. 2025년 10월 우리 국민이 캄보디아에 납치·감금당했을 때 외무부의 대응은 이번 가자 억류 문제가 일회성의 사안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재외국민 보호는 외교의 가장 기초적인 책무다. 감금된 우리 국민이 대사관에 겨우 연락해 구출을 호소했지만 그에게 돌아간 대답은 “본인이 알아서 현지 경찰에 신고하라”는 상냥한 절차 안내뿐이었지 않았는가. 잠깐만 고민하면 길이 보일 일을 며칠 동안 고민해 안 되는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고야 마는 조직이 지금의 외무부다. 국민에게는 국가가 아니라 벽이다.

문제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위성락과 같은 사람들이 일구어 온 조직의 정신이다. 그도 그 앞의 선배들한테 배운 처세의 ‘비결’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공은 내세우고 책임은 걷어차며,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나의 영달만을 추구하면서, 한 꺼풀도 안 되는 알량한 지식과 경험을 한껏 부풀리는 것도 모자라, 기회만 있으면 거짓보고를 일삼아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뺀질이’ 근성이다. 게다가 우리 외교란 결국 ‘숭미’ 두 글자임을 일찌감치 깨달아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겨왔으니 무얼 더 기대할 수 있으리오.

외무부는 능동적인 국가전략의 기관이 아니다. 정부수립과 함께 출범한 외무부는 태생부터 미국의 앞잡이였다. 그러니 지난 80년 동안 외무부란 한미관계 관리부서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국의 강요를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동맹을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 위의 전제로 모셔온 것이 외무부다. 이승만 정부 이래 누적된 숭미와 의존의 습관은 정권을 바꾸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베트남 파병에서 용산기지 이전, 방위비 분담금, 팩트시트의 조율에 이르기까지 한국 외교의 많은 순간은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국민이 캄보디아에 감금되어 있든 말든, 가자로 가는 길에 이스라엘에 억류가 되었든 말든, 그건 우리 외교문제가 아니라 당사자가 스스로 풀어야 할 개인사가 되고 만다. 그걸 지적하는 대통령 앞에 외무 관리들은 이스라엘의 논리를 가져다 펼쳐놓기 바쁘고, 이스라엘 총리의 체포 문제란 감히 공개적으로 논의해서는 안 될 불경스러운 주제인 냥 손사래를 치면서 심지어 대통령을 면박하려는 태도까지 보인다. 뼛속까지 숭미와 굴종에 절은 자가 보이는 본능적인 몸짓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신개조 없이 한국외교는 없다.

 

한국 외교의 근본적인 문제는 외무부 ‘뺀질이’들이 우리를 ‘카드’가 없는 나라로 여기고 외무행정에만 골몰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주권국이 아니다. 그러니 나라의 전략을 고민하는 외교는 없고 오로지 미국의 지시에 맹종하는 ‘유사 외교행위’만이 판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외무부는 문서를 정리하고 위험한 민원을 당사자에게나 떠넘기고 마는 것이다. 이런 조직에 어떻게 국가의 전략을 맡길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외무부’적 체질을 완전히 해체하고 진짜 외교부를 새로 세우는 일이다. 외교부라는 간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외무부의 개혁은 이런 인식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검찰개혁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한 구조를 바꾸려 한다면, 외무부 개혁은 정신개조와 조직개편으로 국가전략 역량을 만들어야 한다. 고위직 순혈주의와 귀족의식은 철두철미하게 깨버려야 한다. 국장급 이상의 자리에는 외부 전문가를 들이고, 해외 공관장도 경력관리용 보직이 아니라 국익의 전초기지로 재편해야 한다. 북미국 중심의 고착된 시야를 흔들기 위해 지역·기능 간 교차배치를 확대하고, 감사 기능을 강화해 책임 없는 보고와 보신주의를 끊어야 한다. ‘뺀질이’는 척결해야 한다.

2026년 호르무즈 위기는 외교의 범위가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원유와 나프타, 헬륨과 핵심광물, 해운과 조선, 반도체 공급망은 더 이상 산업부나 국방부만의 일이 아니다. 중동산 원유 비중이 여전히 절대적이고, 나프타 수입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현실에서 에너지안보는 곧 안보외교다. 에너지안보와 경제안보를 외교의 중심업무로 올리지 못하면 한국은 위기 때마다 황당한 가격표를 받아들게 된다. 진짜 외교부는 회담장 안의 문장만 이 아니라 바닷길, 공장, 항만, 금융시장, 전쟁 가능성까지 한꺼번에 읽는 조직이어야 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한국은 외교를 행정으로 관리하는 나라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외교로 국익을 창출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외무부를 외교부로 다시 세운다는 말은 간판 교체가 아니다. 자존을 세우고, 현실을 읽고, 조직을 갈아엎고, 사람을 바꾸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위성락과 같은 인물이 미국을 등에 업고 우리 외교를 미국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하려는 모습을 그 동안 충분히 봐왔다면, 이제는 그를 잘라냄으로써 그를 사주해 온 미국에 자주외교의 신호탄을 쏘아야 한다. 외교는 굴종도 허세도 아니다. 불리한 형세 속에서도 다음 수를 찾아내는 국가의 지성이다. 지금 한국은 외무부가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게임을 할 줄 아는 외교부를 필요로 한다.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