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AI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주류 학계가 AI를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원할 구원자로 칭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개혁적 성향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조차 AI의 발전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그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집중하며 기술 진보를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 최소한의 노동만으로도 풍요로운 사회가 올 것이라는 낙관, 적절한 제도적 제어만 뒤따른다면 기술이 온전히 인간을 위해 복무할 것이라는 믿음은 과연 타당한가.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현실은, 이미 허상으로 판명 난 '상품'이라는 우상이 또다시 형상만 바꾸어 우리를 현혹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 '상품'은 종교적 원죄를 씻어내는 사명이라는 신성한 탈을 쓰고 노동을 정당화했다. 이후에는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와 예언자의 말씀이니라!"(『자본』 1권 제 7편 중)라는 외침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 증식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둔갑시켜 끝없는 무한 경쟁을 조장했다. 자본주의가 지리적 팽창을 원했을 때 상품은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제국주의적 침략을 구원의 이름으로 포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이 우상의 본질이 흔들릴 무렵, 상품은 '기술과 풍요'라는 새로운 환상을 빚어내어 스스로를 연명했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AI 혁명 역시, 상품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최신형의 우상일 뿐이다. 상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AI와 기술 진보는 결코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AI는 죽어가는 자본주의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줄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인간과 자연은 또다시 상품이라는 우상에 철저히 종속되고 동일화되는 억압을 견뎌야 한다.
AI의 진보와 제도의 보완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원할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가치비판(Wertkritik)의 시선으로 볼 때, 상품 사회의 진짜 모순은 '빈곤과 굶주림이 만연한 사회' 그 자체가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빈곤과 굶주림마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사회', 즉 모든 것이 교환 가치로 치환되는 체제의 구조적 폭력에 있다.
AI 기술은 물리적인 빈곤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인류는 이미 극단적인 빈곤의 문제는 상당 부분 극복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상품이라는 우상을 부정하지 못하는 한, 제아무리 경이로운 AI 기술이라도 결국 인간과 자연을 상품 사회로 영원히 예속시키는 정교한 통제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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