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씨는 사회로 복귀했지만 국가의 사찰은 집요하게 계속됐다.
"두 사람이 나를 감시하느라 계속 쫓아다녔어. 이사 가면 제일 먼저 전화 오는 것도 걔네야. '너네 왜 자꾸 이러냐'고 하면 '이번엔 비행기 조종술 가르치는 거다' '정보사 기간병으로 해주겠다'며 다시 나를 데려가려는 거야. 근데 내가 (북파공작원으로) 한 번 갔다 왔는데 또 가겠어? 그래서 도망 다니고 막 그랬어."
당시 정부는 특수임무수행자 1만 3000여 명을 양성했으며 그중 7800여 명이 실종·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마저도 추정치다. 수많은 북파공작원이 생포되고, 죽고, 행방불명됐다. 김씨는 용케 살아남았지만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성질나면 자기도 모르게 "살기 도는 세모눈으로 난폭하게 변해 버린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대한민국은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감춰. 정보사에 가니까 나보고 '이런 부대가 어디 있냐' 그러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귀싸대기를 때려버렸지. '야 이 새끼야. 나는 생존자야 생존자, 임무 갔다 온 사람이야. 그런데도 (부대가) 없다고?' 나한테까지 그러는데 유족들한텐 얼마나 그러겠어."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고 김씨도 30여 년 만에 보상을 받았지만, 특수임무수행자·유족동지회에 따르면 지금도 '법 테두리 안'에서 제외된 이들이 많다. 여전히 집계되지 않거나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북파공작원 출신과 유족들. "국가가 은폐한 이 어마어마한 숫자"를 두고 김씨 옆에 있던 하태준 회장이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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