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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이 울렸다... 난 세 번 울컥했다... 그날을 기록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24 05:19
  • 수정일
    2013/12/24 05: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3년 12월 22일 난 민주노총에 있었다

[체험기] 동네북이 울렸다... 난 세 번 울컥했다... 그날을 기록한다

13.12.23 20:34l최종 업데이트 13.12.23 20:34l
박성식(bullet1917)

 

 

보수집단의 황당한 종북타령이나 불법타령 따위는 나를 춤추게 한다. 그러나 진보를 지향하는 이들의 냉소와 비난에는 몸도 마음도 차갑게 굳는다. 물론 현대차의 비정규직 문제와 같이 대법 승소판결까지 받은 사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은 민주노총이 먼저 겸허히 돌아볼 일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관료집단이나 낡은 꼰대로 지목할 때면 안타깝다. 솔직히 야속하다. 아무튼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민주노총은 동네북, 딱 그 꼴이었다.

그 동네북이 2013년 12월 22일 힘차게 울렸다. 동네방네 퍼진 북소리를 듣고 지인들은 통쾌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잠들었던 투쟁의 영혼이 깨었다는 소리까지 한다.

그날 그 울림에 나는 세 번이나 울컥했다. 민주노총에서 7년을 일하는 동안 있었던 수많은 울림 가운데 특별했던 그날을 기록한다.

[첫 울컥] 와장창!... 유리현관이 내려앉자 비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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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유리문 앞에서 경찰 막아선 노조원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부수고 진입을 시도하자,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한 명이 깨진 유리문 앞에 서서 경찰의 진입을 막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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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없이 2013년 12월 22일은 민주노총에게 특별한 날이었고, 역사도 기억할 것이라 확신한다. 철도민영화를 막기 위해 22일 현재 13일째 파업을 이끌어가는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고, 이 기회에 민주노총까지 무력화시키려 한 경찰은 5000여 명에 가까운 병력을 투입해 민주노총 사무실에 난입했다.

민주노총 18년 역사 이래 처음이다. 다른 정권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박근혜 정권은 감행한 것이다. 철도파업 이후 2주 가량 쏟아지는 일과 매일 밤 늦게까지 거듭되는 회의에 지친 나머지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길, 난 바랐다.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설마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이 주요 일간신문사의 건물임을 아랑곳 않고 현관 유리문을 부숴버리고 진입하는 순간, 긴 하루가 될 것을 예감했다. '와장창!' 유리현관이 내려앉자 비명이 시작됐다. 서로의 몸을 엮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뜯어내는 경찰병력은, 마치 먹잇감의 살점을 서로 뜯어먹으려 달려드는 야수와 같았다.

공권력에 사지를 들려보면 안다. 나도 모를 분노와 절규가 터져 나오는 것을. 참담했다. 냉정히 상황을 파악해야 했지만, 18년 민주노총의 역사가 뜯겨나간다는 생각에 울컥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래도 민주노총이다. 노동자들은 굴비 엮듯 끌려 나오는 치욕은 용납하지 않았다.

현관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건 당연한 풍경이다. 경찰의 공무집행이 정당하지도 않았지만, 설령 정당하다고 친들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을 하면서 껌까지 씹어대는 경찰을 보고 있자니, 일말의 불편함도 못 느끼는 그들의 길들여진 직업의식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몇 사람을 끌어냈을까? 현장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또 하나의 유리현관이 박살나고 비명은 더 많이 더 크게 들렸다. 이제는 경찰과 기자들 사이에도 고성이 오가고, 더 생생한 생중계를 내보내기 위해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곳에서 카메라를 든 채 버티고 있는 카메라 기자들과 그 와중에 1보를 내보겠다고 노트북을 펴 든 펜 기자들까지. 그들은 그곳에서 또 하나의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번째 울컥] 어머니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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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만에 민주노총 투입된 공권력 22일 민주노총에 진입한 경찰병력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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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경향신문사의 1층 로비는 경찰에 의해 완전히 장악됐고, 잠시 소강상태가 흘렸다. 그제야 핸드폰 진동이 또렷이 느껴졌다. 집에 홀로 계신 팔순 넘은 나의 어머니가 자식이 일하는 민주노총이 짓밟힌다는 소식에 전화하셨다.

"성식이냐? 성식이냐?"
"네, 저예요."
"아이구. 아들 전화 받네. 몸 상한 데는 없냐?"
"아무 일 없어, 괜찮아."
"난리다 난리, 근로자들 끌려나오는데... 방송 보믄서 눈물 나드만... 니 목소리 들으니..."
"엄니, 울지 마아. 우린 괜찮다니깐..."

전화를 끊고도 어머니 생각에 한동안 먹먹해지고 말았다. 늙을수록 어머니란 사람들은 늘 자식들을 울리기 마련이지만, 서러운 날일수록 어머니란 이름은 자식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엄마" 하며 서럽게 울던 어린 시절이 남긴 깊은 감정일까?

아무튼 어머니란 그런 존재다. 부르기만 해도 목구멍에 걸리는 말이 어머니다. 단지 철도민영화를 반대했다고 무려 8000여 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직위해제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감히 입에 올릴 말이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이 들먹일 말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하루 전인 12월 18일 투표 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한분 한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기왕지사 큰일까지 벌인 마당에 솔직히 고백하길 바란다. "재벌을 위해 공공성을 헌신짝처럼 버릴 생각으로, 민주노총 한분 한분을 손보는 민영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이다.

[세번째 울컥] 12시간을 버티던 14층 민노총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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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에 휘날리는 깃발 경찰이 22일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에 병력을 투입했으나, 한 명도 체포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경찰들이 철수하자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노동자들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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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역사에 기록될 민주노총 경찰 난입 사건 이후, 나는 이제 독재라는 명명을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독재자의 딸이 아니다. 그녀가 바로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수배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병력 5000여 명을 몰고 와 전쟁을 치르듯 민주노총에 난입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건물이었기에 더욱 거리낌이 없었고, 법원도 수색영장 청구를 기각했지만 박근혜 정부에겐 그따윈 필요치 않았다.

그 폭력에 맞서 12시간을 버티며 14층 창밖 저 높은 곳에서 휘날리던 민주노총 깃발은 감동이고 눈물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진정 노동자 민중의 자부심이었다. 12시간의 격렬한 저항, 그 사건은 기막힌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이 천장까지 뜯어가며 수색했지만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채, 당연히 '있다'는 전제 하에 벌어진 대규모 작전은 '없다'는 반전으로 끝났다. 경찰은 국민적 조롱감이 됐다. 책임을 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늘(23일)은 민주노총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걷고 싶다. 뭐, 민주노총 조끼 때문에 눈치를 보진 않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의 편견이 신경 쓰이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단단해 질 것이고 더 당당해 질 것이다. 단 하루의 사건에 너무 몰입돼 흥분한 게 아니냐는 핀잔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그런 하루쯤은 허락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곤 다시 겸손하게 시작하자.

힘내라! 민주노총.

덧붙이는 글 | 박성식 기자는 민주노총사회공공성본부 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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