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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미국 자본의 참여 막을 수 있나

[시론] KTX 민영화와 한미FTA

이해영 한신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25 오전 9:30:16

 

 

경찰의 '뻘짓'에도 철도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그 때문인지 철도노조의 '민영화 저지 파업'에 대한 지지가 탄력을 받는 느낌이다. 정부측과 노조, 시민사회 사이의 '민영화' 공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철도 민영화와 한미FTA와의 연관성 문제이다. 민영화, 아니 정확히 말해 사유화(privatization)의 주체는 자본일 수밖에 없고 이 때 자본의 국적에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특히 우리가 체결한 수많은 FTA 가운데 유독 한미FTA에만 철도시장과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는 까닭에 철도민영화와 미국의 철도자본의 진입 가능성 여부는 불가피하게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주제다. 한ㆍEU FTA에는 한미FTA와 비교할 만한 철도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시 도시철도 개방을 위한 WTO GPA(정부조달협정) 개정이 언급되었고, 국회 비준동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대통령이 비준해 버렸다. 요컨대 GPA 개정은 다분히 유럽의 철도자본을 의식한 조치라 할 만하다. 일단 여기서는 한미FTA 철도조항에만 논의를 한정키로 하겠다.

1. 한미FTA 협정문상 철도에 직접 관련된 조항은 부속서I (현행 유보)과 부속서 II (미래 유보)에 등장한다. 먼저 부속서II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분야 운송서비스 - 철도운송
관련의무 최혜국 대우 (제11.4조 및 제12.3조)
유보내용 국경간 서비스무역 및 투자

대한민국은 시행 중에 있거나 이 협정 발효일 후 서명되는 철도운송에 관한 양자간 또는 다자간 국제협정에 따라 국가들에 대하여 차등 대우를 부여하는 어떠한 조치도 채택하거나 유지할 권리를 유보한다
.

해석하자면 이런 말이다. 철도운송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한미FTA 협정문의 다수 의무 가운데 제11.4조와 제12.3조에 명시된 미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만은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 외 협정문 11장 투자, 12장 서비스장에 명시된 수많은 협정 의무는 당연히 준수해야 하며 위반시 투자자-정부 소송제(ISD)의 대상이 된다. 미래의 최혜국대우 의무를 우리가 유보함으로써 철도운송에 관한 한 향후 미국보다 예컨대 EU나 기타 제3국에 더 나은 대우를 해 줄 수 있다.

2. 그런데 문제는 부속서I 철도에 대한 현행 유보에 있다. 우선 협정문을 살펴 보자.

분야 운송서비스 - 철도운송 및 부수 서비스
관련의무 시장접근(제12.4조)
조치 철도사업법 제5조, 제6조 및 제12조(법률 제7303호, 2004.12.31)
한국철도공사법 제9조(법률 제7052호, 2003.12.31)
철도건설법 제8조(법률 제8251호, 2007.1.19)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조, 제20조, 제26조 및 제38조(법률 제8135호,
2006.12.30)
한국철도시설공단법 제7조(법률 제8257호, 2007.1.19)

유보 내용 국경간 서비스무역


한국철도공사만이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경제적 수요 심사에 따라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중앙 또는 지방정부나 한국철도시설공단만이 철도건설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고 정부소유 철도시설(고속철도 포함)을 유지 및 보수할 수 있다. 다만,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의 기준을 충족하는 법인은 철도건설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한미FTA 협정문상 예컨대 문제가 되고 있는 수서발 KTX 경부선구간만을 놓고 본다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노선 곧 수서-평택, 동대구-부산은 이미 개방된 상태다. 그리고 호남선구간은 평택-오송 사이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다 개방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 구간에 대해 미국 철도자본이 철도운송서비스의 시장 접근을 희망할 경우 이를 막을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아주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미국 자본이 원하기만 한다면 KTX경부선 구간중 수서-평택, 동대구-부산 구간은 이미 '민영화'되어 있다. 그리고 수서발 KTX 노선에서 2005년 7월 1일 이후 건설된 구간 중 극히 일부라도 미국의 시장접근을 추가적으로 제한하는 구간이 발생한다면 이는 '역진방지 메카니즘'이 적용되는 한미FTA 현행 유보의 규정에 따라 협정의무 위반 논란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포괄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금지하는 법안과 한미FTA는 상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개방된 구간에 대한 미국 민간자본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것으로 이는 자유화의 후퇴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정부가 2005년 7월 1일로 '현행 유보'한 개방요건을 더 '자유화'하는 방향, 예컨대 2004년 7월 1일식으로, 곧 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은 한국의 협정 의무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협정의무의 변경은 사실상의 법개정에 해당되므로 별도로 국회 심의를 거쳐야만 할 것이다. 아무튼 만에 하나 부산-동대구 구간에 KTX 여객운송서비스를 미국 철도회사가 제공한다면 이를 두고 '민영화'라는 말이 아닌 그 어떤 다른 말로 부를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 민영화냐 아니냐식의 논란도 문제의 대외적 차원을 함께 놓고 본다면 사실상 거의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3. 미국 자본의 입장에서 보건대 개방되지 않은 평택-동대구 구간을 제외하고, 개방된 위 구간만으로 사업성이 있는지 여부는 '그들만의' 경영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이다. 이 때 미국 자본이 국내 자본과 컨소시엄 등을 구성해서 KTX 전 구간을 대상으로 하거나 또는 평택-동대구 구간만을 대상으로 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미FTA 협정문 상으로 한국은 경부선만 놓고 본다면 평택-동대구 구간에 대한 시장 접근과, 한국철도시장에 대한 최혜국대우 미래유보를 제외한, 내국민대우, 이행의무 부과, 최소기준 대우, 수용 및 보상, 송금, 최고경영진 및 이사회등과 관련된 협정 의무를 준수해야만 하며 위반시 당연히 ISD대상이 된다. 만일 경부 고속철 시장에 접근을 희망하는 미국 철도자본이 있음에도 '주식회사 수서발 KTX'에만 특혜를 준다면 이는 차별대우로서 내국민대우 위반의 소지가 발생한다.

4. WTO GATS(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제16조와 한미FTA 제12.4조 곧 두 종류의 '시장접근' 조항을 비교해 볼 때 결정적 차이는 GATS 제16조 2항 바호 즉 "외국인 지분소유의 최대 비율 한도 또는 개인별 투자 또는 외국인 투자 합계의 총액 한도에 의한 외국자본 참여에 대한 제한"이 한미FTA 제12.4조에서는 삭제되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한미FTA에서 미국자본의 지분투자 등 자본참여는 시장접근에 대한 현행 유보에서 아예 삭제되어 있기 때문에 철도시장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등 방법으로 미국 자본의 투자를 막을 방법은 협정문 상으로는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5. 한미FTA 철도 부속서의 두 번째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경제적 수요심사에 따라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이 조항을 설치한 취지는 이렇다. 미국인이 경제적 수요심사(ENT: Economic Need Test)를 거쳐 사업면허를 취득하기만 하면 예컨대 동대구-부산 구간에 KTX 법인을 설립 여객운송을 포함한 철도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2001년 한국은 경제수요심사를 거쳐 면허를 취득하면 누구든지 한국에서 철도화물 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양허안을 WTO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므로 한미FTA 철도부속서의 이 조항은 2001년 WTO 철도 양허안을 화물에서 여객운송까지 확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에 근거해 얼마 전까지도 국토부측은 경제수요 심사를 통해 미국 자본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 그리고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수요심사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한 말에 불과하다.

먼저 이 개념이 등장하는 한미FTA 협정문 제12.4조를 보자.

제 12.4 조
시장접근

어떠한 당사국도 지역적 소구분에 기초하거나 자국의 전 영역에 기초하여 다음의 조치를 채택하거나 유지할 수 없다.

가. 다음에 대한 제한을 부과하는 것

1) 수량쿼터, 독점, 배타적 서비스 공급자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인지에 관계없이, 서비스 공급자의 수
2) 수량쿼터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로, 서비스 거래 또는 자산의 총액
3) 쿼터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로, 지정된 숫자단위로 표시된 서비스 영업의 총 수 또는 서비스의 총 산출량, 또는
4) 수량쿼터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로 특정 서비스 분야에 고용될 수 있거나 서비스 공급자가 고용할 수 있으며, 특정 서비스의 공급에 필요하고 직접 관련되는, 자연인의 총 수, 또는 서비스 공급자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법적 실체 또는 합작투자를 제한하거나 요구하는 것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미FTA 제12.4조는 WTO GATS 제 16조 시장접근 조항에서 외국자본참여 제한을 삭제한 것이다. 일종의 WTO 플러스 조항인 셈이다. 아무튼 GATS 제16조에 처음 등장한 경제적 수요 심사는 WTO 회원국이 취할 수 있는 4가지 유형의 시장접근 제한 조치로서 (1) '서비스공급자의 수', (2) '서비스거래 또는 자산의 총액', (3)'서비스 영업의 총 수 또는 서비스의 총 산출량', (4) '자연인의 총 수'를 말한다. 회원국은 시장접근에 관련된 이 4가지 유형의 조치를 수량을 적시하거나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의 형태로' 양허안에 해당 분야(sector)를 명시하고 등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 수요 심사는 엄밀히 규정된 개념이 아니었다. 그래서 2001년 3월 22일 GATS 서비스무역위원회가 채택한 <특정 양허의 스케줄에 대한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the Scheduling of Specific Commitments under the GATS)>에 따르면 경제적 수요 심사는 위에 열거한 "4가지 유형의 양적 제한으로 구성되며", 이 양적 제한 조치는 "서비스 공급의 질 또는 서비스 공급자의 능력 (즉 기술 표준 또는 공급자의 자격)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경제적 수요 심사 형태의 조치들은 GATS 제6조 4항에 명시된 서비스 공급자의 자격요건, 기술표준 그리고 면허요건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FTA, 특히 한미FTA는 경제적 수요 심사등을 통한 4가지 유형의 양적 제한을 금지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12.4조 시장접근 조항에 대해 철도부문은 현행 유보를 했기 때문에, 경제적 수요 심사에 따른 국토부장관의 면허를 취득해야 2005년 7월 1일 이후 노선에 철도사업을 경영할 수 있다고 명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수요 심사를 통한 4가지 양적 규제가운데 여기서 의미가 있는 것은 '서비스 공급자의 수'다. 쉽게 말해 미국인 사업자가 국토부장관에게 철도운송서비스업 운영을 위한 면허를 신청했을 때, 국토부장관이 경제적 수요 심사를 통해 '서비스 공급자의 수'를 '주식회사 수서발 KTX'로만 즉 단수로 제한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수서발 KTX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우선 2005년 7월 1일 건설 노선에 대해서는 협정문상으로도 전혀 가능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는 수서발 KTX의 설립 취지가 코레일의 독점이 적자 방만경영을 불러 왔으므로 이를 '복수의' 사업자가 참여하는 '경쟁체제'를 구축해 바로 잡겠다는 정부의 주장과도 정면배치되는 것이다. 독점을 통해 독점의 폐해를 바로 잡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경제적 수요심사를 통해 서비스 공급자의 수를 단수로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심지어 경제부총리는 주식회사 수서발 KTX를 '준정부기관'으로 만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준정부기관은 공기업인 코레일보다 더 강력한 형태의 공공기관이다. 말하자면 코레일이라는 공기업을 놓고 '114년 독점의 폐해'을 운운하면서 그보다 더한 슈퍼 공기업을 또 만들겠다는 황당하기조차 한 주장이다.)

6. 한미FTA와 '주식회사 수서발 KTX'를 비롯한 한국의 철도시장과는 두가지 형태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지분 투자이며 두 번째는 법인 설립이다.

(1) 수서발 KTX는 코레일이 41%,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이 59% 지분을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기금은 시장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내도록 규정되어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지분을 매각하게끔 있다. 이 때 정부측은 이 지분을 오직 공공부문만 인수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인데, 과연 그런 공적 기금이 존재하는 것인지, 또 민간자본의 참여를 원천배제하는 '주식회사'나 그런 기업공개가 가능한 것인지는 전적으로 의문이다. 만일 현행법상 그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어떤 형태로든 민간자본의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할 때, 만에 하나 미국자본의 투자를 막는다면 이는 명백한 내국민대우 위반이 된다.

(2) 그런데 사실상 정부의 지배 하에 있게 될 '주식회사 수서발 KTX' 에 설사 그것이 단 1달러라 하더라도 미국자본의 지분투자가 포함된다면 국토부장관이 말하는 것처럼 '민간 매각 시 면허 취소' 등의 조치는 이행의무부과 (PR: performance requirements)에 해당되어 한미FTA 협정위반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3) 미국자본에 의한 여객, 화물 운송서비스를 위한 법인 설립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도 정부는 '민간 매각시 면허 취소'를 포함 그 어떤 종류의 이행의무도 부과할 수 없다. 철도사업법 제5조(면허 등)에 따르면 "① 철도사업을 경영하려는 자는 국토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국토교통부장관은 철도사업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부담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철도사업법 제5조 1항의 "필요한 부담" 조항을 국내자본이 아닌 미국자본에 적용할 수는 없다. 철도사업에 투자할 미국자본은 한국의 철도사업법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한미FTA협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필요한 부담'은 '이행의무 부과'에 해당 협정 위반이 된다. 미국자본에 요구되는 면허요건은 협정문상 경제적 수요 심사 외에는 없다.

7.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정부가 그나마 내놓은 방안 그 최신 버전으로서 '민간매각시 면허 취소', '준정부기관화' 등은 사실 '국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미 훨씬 넘어서 있는 한미FTA는 정부의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부정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다. 사실 현 단계에서 가장 확실한 해법은 철도 민영화를 법률로 금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미FTA의 역진방지 조항과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미FTA 역진방지 메카니즘을 놓고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해 왔던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우리는 이 조항으로 인해 정부의 공공정책공간이 현저히 위협, 축소되는 바로 그 현장을 철도민영화에서 보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그 실효성과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국내용' 헛대책을 남발하기보다, 수서발 KTX설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뻘짓'이 끝나고 퇴각하는 경찰지휘관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이 포착되었다 한다. "어떻게 된 거야? 뭐?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어쨌거나 더 큰 '뻘 짓'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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