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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그늘진 땅에 내리는 복음, 예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전위”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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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24 16: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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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성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지만, 그의 탄생은 ‘죽음이 그늘진 자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성탄을 크리스마스 캐럴만으로 기억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수에 대한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항상 죽음과 더불어 오기에 빛날 수 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구태여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천사들과 하늘의 군대가 노래한 연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의 태생 자체가 심상치 않은 까닭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전 4년 헤로데 대왕이 사망할 무렵에 태어났다. 폭압적이던 헤로데 대왕이 사망하자, 이스라엘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에서 유다라는 반역자가 “세포리스에서 왕실의 무기고를 부수어 열고 동료들을 무장시킨 뒤 권력욕을 품은 다른 자들을 공격했다”고 적었다. 그러자 시리아 총독 바루스는 4개 군단 가운데 3개 군단을 동원해 폭동을 진압했다.

폭동의 진원지인 갈릴래아에 진격한 바루스의 군단은 세포리스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예수는 이 세포리스에서 평평한 계곡을 가로지르고 언덕을 넘어 6.5킬로미터, 걸어서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나자렛에서 성장했다. 과연 예수가 유년기를 지낸 나자렛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짐승의 거처에서 태어난 아기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한상봉 기자

 

<유대전쟁사>에서 기원후 67~86년 시리아 군단이 유대인들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기록이 남아 있다. 세포리스에서 요르단강 건너에 있던 게라사에서 루키 안니우스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1,000명의 젊은이를 살육하고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로로 잡았으며, 그들의 재산을 병사들이 약탈하도록 허락했다. 그러고 난 뒤에 집을 불사르고 주변 마을로 진격했다. 신체가 온전한 자들은 도주했고, 약한 자들은 죽었으며, 그들이 남겨둔 것들은 불태워졌다.”

존 도미니크 크로산이 쓴 <하느님과 제국>(포이에마, 2010)에서는 “예수가 태어날 무렵 나자렛에서 제대로 숨지 못한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은 모두 살해되거나 성폭행을 당하고 노예가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전한다. 크로산은 어머니 마리아가 성장기에 있던 예수를 데리고 나자렛 산마루에 가서 세포리스를 가리키며 ‘로마인이 진격해 온 날’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예수가 기원전 4년에 떼죽음 당한 그 사람들처럼 ‘대역죄’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성탄이 그저 기쁜 날일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복음서에서는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고 정결례를 거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 시메온이 아기를 안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시메온의 말은 아기에 대한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했다. 생명은 그렇게 죽음과 더불어 다가온다.

 

   
▲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를 오늘도 출산한다. ⓒ한상봉 기자

 

꼭 1년 전,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대하듯이 박근혜 후보 또는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한국 천주교회의 대부분 장상들은 내심 ‘정권교체’를 염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후보자 정책질의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분명히 문재인 후보의 정책이 ‘가톨릭 사회교리’에 잘 들어맞았고, 박근혜 후보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음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의미 있는 짧은 멘트를 날렸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민들의 노고에 힘입어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었습니다. 밤낮으로 땀 흘려 일한 근로자들, 민주주의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여 주시고, 분열과 반목 속에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날 예수살이공동체의 박기호 신부는 “아직 성탄도 아닌데 성금요일 아침을 맞은 텅 빈 마음”이라고 말했다. 22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운남 씨가 목숨을 끊었고, 이날 제주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회 김성환 신부는 “신앙인들만이라도 희망의 불씨를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불을 지펴 갈수 있는 ‘사순절 같은 대림절’을 보내자”고 말했다.

특별히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기자간담회에 남긴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대주교는 박근혜 당선자에게 “앞으로 국정운영에 있어서 48%가 넘는 반대의 목소리를 기억해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원칙과 신뢰의 약속을 반드시 실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울러 서민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지역 균형발전과 인재의 고른 기용을 위한 배려를 부탁했다. 또한 “군사력을 통해서는 통일이 불가능하며, 비록 북한 사회의 종교자유와 인권문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런 전제 없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드러난 것은 ‘민주주의의 파탄’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이미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불법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정부 · 여당은 이 사실을 축소 · 은폐하는 데, ‘종북몰이’를 통해 공안정국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다. 대선 과정의 불법을 따지면 ‘대선 불복’이라고 엄포를 놓고, 민주화의 성과였던 전교조 등 민주노조는 대화 상대로 취급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사무실의 공권력 난입은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적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생략한 채 시민사회로 진격해 들어갔다. 강정과 밀양과 쌍용, 용산참사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죽음의 그늘이 진 대한민국 골짜기에 가엾은 이들의 애곡 소리가 낭자하다. 48%의 목소리가 억압받았던 1년이었다. 정부 각료와 요직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대한민국은 ‘민간으로 위장한 군사정권’의 지배하에 있는 듯하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
그러나 어둠속에서야 빛이 분별되듯이 희망이 자라나고 있다. 성탄절이 지리한 밤의 정점에서 낮이 점차 길어지는 동지(冬至)이듯이, 한국 교회와 시민사회가 새로운 빛을 얻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국정원 개혁을 부르짖다가 ‘정권 퇴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정선거로 인한 당선은 무효이니, 책임지고 대통령이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어둠의 깊은 자락에서 솟아올랐다.

 

교황을 만나고 돌아온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손에는 <복음의 기쁨>이 들려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두고 대한문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그는 “<복음의 기쁨> 182항에는 ‘우리 사목자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가 요구하는 모든 자리에서 발언할 권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83항에는 ‘그 누구도 우리 성직자들에게 사회생활과 국가생활은 접어놓고 마음의 평화만을 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전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수천 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평신도들 역시 각성의 대오를 꾸렸다. 40년 전 “유신헌법 무효”를 선언하며 양심선언에 나섰던 지학순 주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전위(前衞)”라고 말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이든 평신도 단체인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이든, “세상이 잠들어 있을 때 홀로 깨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나설 수 있다면, 희망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2013년 성탄은 다급하게 아기 예수를 부르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전갈을 현실로 뒤바꾸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호출하고 있다. 아기 예수를 휘감은 포대기처럼, 예수가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전하신 복음을 옹호하고, 사악한 군대의 진격에 대비하라고 외치는 파수꾼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절망을 접어야 한다. 이제 희망을 출산할 품을 마련하기로 하자, 오늘 이 거룩한 밤에.


한상봉(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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