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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지막 표범 뱀가게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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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2014. 01. 02
조회수 8166 추천수 0
 

1962년 경남 합천서 잡힌 '마지막' 표범 이후 합천서 새끼 표범 또 포획

대구시 한약재로 뼈와 고기 모두 팔려, 일본 동물 작가 엔도 키미오 두번째 책

 

leo1.jpg» 한국표범의 기품있는 모습. 열대 표범보다 크고 털이 길다. 사진=이담  

 

한반도에 서식하던 호랑이와 표범은 구별 없이 그저 ‘범’이란 통칭으로 불렸다. 한국인의 의식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동물인 범은 “좋으면서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 우러러보았던” 특별한 동물이었다.
 

그러나 호랑이(또는 한국호랑이, 아무르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와 표범(또는 한국표범, 아무르표범, 극동표범)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로 손꼽힌다. 특히 한국표범은 한국호랑이보다 더욱 적은 수만 남아있어 시급한 보존대책이 절실하다.
 

한국호랑이와 한국표범을 보존하고 복원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역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호랑이와 표범의 발자취일 것이다.
 

그 일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은 아쉽게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일본의 야생동물 작가인 엔도 키미오(81)는 한국호랑이의 최후를 밝힌 책 <한국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엔도 키미오 지음·이은옥 옮김/한국학술정보/1만5천원)를 2009년 발간한 데 이어 최근 <한국의 마지막 표범>(엔도 키미오 지음, 이은옥·정유진 옮김/ 이담)을 냈다.(■ 관련 기사한국의 호랑이는 언제, 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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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지막 표범

엔도 키미오 지음/ 이은옥·정유진 옮김/ 이담

 

엔도가 한국표범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에 들어간 것은 1975년이었다.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이농 물결이 이어지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는 연이어 긴급조치를 발동하던 격변의 시기였다.
 

엔도는 공식적으로 마지막 표범이 1962년 경남 합천에서 잡혀 창경원으로 옮겨진 뒤 1974년 숨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창경원을 찾았다. 창경원의 사무 책임자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표범을 잡은 기록이요? 글쎄……. 없을걸요. 여긴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곳이라 이제 겨우 재건된 상태라서요. 자료는 죄다 불타 버렸지요. 그런데 당신, 동물학자나 도쿄 대학의 교수라도 됩니까? 아니라고요? 그럼 일본인이 대체 뭐 하러 표범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겁니까, 이런 때에.”(18쪽)

사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표범은 물론 호랑이도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1922년 마지막 호랑이가 경주 대덕산에서 잡혀 죽고 40년 만에 표범이 산 채로 잡혔는데도 별다른 보호조처는 없었다. 다른,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급했을 터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엔도의 가슴은 안타깝기만 했다. 

 

이 무렵의 일본은 열도 개조를 외치는 정치가에 의해 발이 닿는 곳마다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중화학공업의 발달로 농약의 활용이 확대되어 산과 바다, 강의 환경이 악화되고 따오기나 황새뿐만 아니라 송사리에서 반딧불이, 잠자리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것은 자연으로부터의 경고였으나 정권을 손에 쥐고 있는 자들은 자연 파괴에 대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도 선진국의 뒤를 이어 자연을 마구잡이식으로 개발하고 있지 않은가. 상황이 이렇게 되니 초조한 마음에 한국의 야생을 어서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 커져만 갔다." (26쪽)

 

그는 오랜 친구인 원병오 경희대 교수의 도움으로 합천군으로부터 마지막 표범이 잡힌 경과를 적은 공문을 입수할 수 있었다. 1962년 2월12일 경남 합천군 묘산면 산제리 가야마을에 사는 농부 황홍갑(64)씨가 노루를 잡으려 놓은 덫에 표범 한 마리가 걸려 이를 집에 데려왔다 창경원에 기증했으며, 문교부는 그에게 감사장과 함께 당시로서는 거액인 30만원을 수여했다는 내용이었다.
 

leo2.jpg» 마지막 한국표범이 잡혔던 합천 오도산의 1981년 모습. 정상에 레이더 기지가 있었다.

 

leo3.jpg» 정상 아래 큰 바위 부근에서 표범이 잡혔다.

 

당시 가야산 줄기에 있는 이 마을은 접근도 쉽지 않았고 통역을 거치거나 일본말을 배운 노인과만 소통을 할 수 있었던 엔도는 고생 끝에 표범을 잡은 사람들과 만나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듣는다. 
 

강철 줄로 만든 올가미에 ‘다행히’ 발이 아닌 허리가 걸린 새끼 표범을 마을 사람들이 드럼통으로 만든 임시 우리에 가두고 먹이를 주어 잠시 기르다 창경원에 기증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표범을 붙잡는 과정에서 발톱에 할퀴어 손바닥에 심한 부상을 입은 주민도 만난다. 우리나라의 어떤 언론인도 기초적이지만 이런 취재를 한 기록을 볼 수가 없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leo6.jpg» 오도산에서 잡혀 창경원에 전시된 한국표범. 12년 뒤 폐사했다.

 

그는 또 서울대학교 서고의 조선총독부 기록을 뒤져 일제 강점기 동안인 1919~1942년 사이  표범 624마리가 호랑이 97마리와 함께 ‘해로운 짐승 구제’ 명목으로 포획되었음을 알아낸다. 그는 일제가 한반도의 호랑이와 표범에 마지막 치명타를 가한 사실을 두고두고 미안해 하며 사죄한다.
 

leo4.jpg» 오도산에서 표범을 잡은 황홍갑씨.

 

leo5_황홍수.jpg» 생포한 표범 새끼를 우리에 넣는 과정에서 손바닥에 큰 부상을 입었다고 증언하는 황홍수씨.  

 

엔도는 한국 민화의 선각자인 조자용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공식적인 ‘마지막 표범’ 이후에 잡힌 표범 취재에 나선다. <동아일보> 1963년 3월26일치에 실린 “열 두살짜리 표범을 포획…벗 잃은 엽견, 필사의 설욕전, 합천 가야면 비끼니 산서”란 다소 선정적인 제목이 달린 기사가 단서였다.
 

이 기사는 이 지역 대전리에 사는 주민 황수룡(38)씨가 전날 잃어버린 자신의 사냥개를 찾아나선 길에 길이 1m, 꼬리 길이 70㎝인 12살짜리 표범을 잡았고, 대구시장에서 8만원에 팔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같은 가야산 줄기에서 표범이 잡힌 지 1년 남짓 뒤에 다른 표범이 잡힌 것이었다.
 

leo7.jpg» 표범 새끼가 잡힌 비끼니 산(뒤편 큰 산).

 

엔도는 대성리 황씨를 만나 진돗개를 데리고 새끼 표범을 잡은 증언을 확보했다. 진돗개 한 마리를 잃고 찾아 나선 길에, 전날 개를 잡아먹고 포만감에 빠져 있던 새끼 표범을 개가 몰고 사람이 돌로 쳐 잡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처음 삵을 잡을 줄 알았지만 나중에 귀한 범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대처인 대구로 이를 팔러 나갔던 것이다.

 

leo8.jpg» 진돗개와 함께 새끼 표범을 돌로 잡은 주민 네 명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조자용 에밀레 미술관 관장도 이 표범 소식을 듣고 대구로 향했다. 그의 증언은 이렇게 소개돼 있다.

 

신문을 본 조 관장은 매우 놀라, 즉시 표범을 사기 위해 급히 대구시로 향했고 신문기자로부터 아시아 총포상에 팔린 것을 확인했지만 표범은 뱀 가게에 다시 팔린 상태였다. 뱀 가게는 대구의 달성 근처에 위치한 한약재상이었는데, 찾아가 보니 표범은 지하실의 큰 도마 위에 놓여 있었다. 시퍼런 어금니가 달린 얼굴을 손님들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아름다운 모피째로 검붉은 고기가 팔기 좋게 무참히 잘려 있었다. 손님이 쇄도하는 바람에 고기도 뼈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모피는 이미 판매가 예약되어 있었다."(167쪽)

 

표범_동아_1963_3_26.jpg» 비끼니 산에서 표범을 잡았다는 <동아일보> 1963년 3월26일치 기사.  

 

표범은 이미 거의 마지막 잔존 개체가 살아남은 상태였지만 이를 보호하겠다는 개념 자체가 당국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전혀 없었다. 그저 횡재를 안겨줄 주인 없는 들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의 신문기자를 들춰 보면 엔도가 합천군 가야면에서 취재한 마지막 표범이 잡힌 이후에도 표범이 계속 잡히고 있다.  여덟 달 뒤인 1963년 11월13일 <동아일보>는 앞서 어린 표범이 사로잡혀 창경원으로 옮겨진 합천군 묘산면 산제리 가야마을에서 또 다시 11월10일 김칠리(51)씨가 길이 2m, 무게 15관(56㎏에 해당)짜리 암표범을 이번에도 오도산 중턱에서 철사 올가미로 잡았다고 보도했다.

 

사진과 함께 실린 이 기사의 어른 표범은 10시간 넘게 몸부림을 치다 죽었다는 것이다. 이 암표범은 창경원 새끼의 엄마 표범이었을지도 모른다.
 

표범_동아_1963_11_13.jpg» 사로잡혀 창경원으로 옮겨진 새끼 표범인 잡힌 오도산에서 1년 9개월 뒤 잡힌 어미 암표범에 관한 <동아일보> 1963년 11월13일치 기사.

 

엔도가 주민과 면담했을 때도 표범을 한 마리 더 잡겠다는 증언을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주민들은 뒤늦게 잡힌 이 표범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추가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1970년 3월6일치 <경향신문>에도 표범 기사가 실렸다. 경남 함안에서 18살로 추정되는 길이 160㎝의 커다란 수컷 표범을 포수가 총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다른 기사처럼 이 기사에도 이 표범의 시가가 70만원이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바다에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고 부르고 판매가를 적어넣는 요즘의 기사를 후세에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표범_경향_1970_3_6.jpg» 1970년 경남 함안에서 커다란 수표범이 잡혔다는 <경향신문> 1970년 3월6일치 기사.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기록이 있는 마지막 야생 표범이다.

 

엔도는 두 번째 표범 취재를 마치고 조 관장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가 토로한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나라에는 왜 표범이나 호랑이를 소중히 여기는 학자와 작가가 없는 거야! 어째서 일본 사람이 찾으러 다니는 거냐고!”(190)


이 책과 앞서 ‘최후의 호랑이’ 책은 모두 ㈔한국범보전기금이 기획했다. 이항 이 단체 대표(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 책에 덧붙인 기획후기에서 조 관장의 한탄에 이렇게 대답한다.

 

이 두 권의 책을 기획하고 출판함으로, 한반도에서 사라져간 호랑이와 표범을 위한 진혼곡의 서곡 부분이 겨우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부분은 관심가진 한국인 연구자에 의해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들의 슬픈 역사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에 의해 수집되고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지
 만, 사실 야생의 동물들에게 무슨 국적이 있고 국경이 있으랴." (202쪽)
 

이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한국표범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널리 분포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극동러시아 연해주 남서 끄트머리 서식지에 있는 50마리 정도가 고작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접경지역이면서 두만강 하류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도 접해 있는 이 지역을 러시아 정부는 2012년 ‘표범의 땅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경기도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620㎢의 제법 넓은 지역이다. 
 

leopard.jpg»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의 한국표범. 사진=세계보전협회(WCS)

 

이 교수는 이 국립공원이 한국표범 보전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과 맞닿아 있어 장차 북한으로 서식지 확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 표범들이 비록 지금 러시아 땅에 살고 있지만, 그 혈통은 “한국표범”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살았던 호랑이와 러시아의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가208 한국의 마지막 표범 같은 혈통인 것처럼, 아무르표범과 한국표범은 같은 혈통이며 같은 아종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들이 지금은 한반도에서 살 곳을 잃어 러시아, 중국, 북한의 접경 지역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한국인이 잊지 않고 관심을 갖고 돌보아 주어야 할 동물들이다. (209~210쪽)

 

아직도 표범 또는 그 흔적을 보았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더 그럴듯한 가능성이 있다. 강원도 북부와 비무장지대 인근 민통선 일대가 주목의 대상이다. 이곳에 표범이 서식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 표범의 먹이가 풍부하고 지정학적 여건으로 보아 러시아의 아무르표범을 재도입할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한국표범을 되찾게 된다. 이항 교수의 말처럼 “어쩌면 한 세대 안에 한국표범을 다시 보게 될 날이 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에 살아남은 한국표범이 언젠가 한반도로 되돌아올 날을 꿈꾸는 것은 적어도 허황된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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