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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방송 사유화, 충격적인 '유사보도 몰이'

 

[편집국에서] 수십년 보도했다면, 법을 고칠 일

이승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03 오전 8:07:52

 

 

 

 

 

어떤 언론이 우파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 '종북 언론'이라는 보수세력의 '종북몰이'를 피해가기 어렵다. 하도 몰아대니까 비판적인 보도를 했는데, "종북 아니냐"는 시비를 안 걸리면 섭섭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그 언론의 보도 자체를 '유사보도'라고 몰아가면 어떨까? 용어도 고약하다. '유사'라는 딱지는 기존체제에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편파성'을 띠고 있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그리고 좌파, 우파 정권이 교체돼도 어떤 정권에서도 문제 삼지 않았던 방송사에 대해 "유사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규정한다면 해당 방송사뿐 아니라 언론계 전체가 반발할 일이다. 아니, 이런 '유사보도'에 놀아난 시청자도 모욕적으로 느낄 일일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새해 직전인 지난달 30일 '전문편성방송사업자의 유사 보도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인즉,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이나 전문채널은 시사보도를 할 자격이 없는데, 시사보도까지 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는 것이고, 이런 보도들을 "유사보도 프로그램"이라고 규정했다.

 

▲ 방송통신위원회가 수십년간 보도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방송사들에 대해 '"유사보도를 하고 있다"는 낙인을 찍었다. ⓒ연합뉴스


지방선거 앞두고 갑자기 '유사보도' 낙인

방통위는 특히 "이들 방송사들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부문의 갈등 상황을 보도, 논평하면서 여론, 특히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이미 상당히 많은 애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CBS의 <김현정의 뉴스쇼>와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불교방송의 <박경수의 아침저널>, 그리고 시민방송채널 RTV를 통해 제공되고 있는 <뉴스타파>, <GO발뉴스> 등이 포함됐다.

방통위가 '유사보도'라고 규정한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 50조는 종합편성이 가능한 방송과 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보도전문채널이 아니면, 보도 프로그램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적으로 CBS나 불교방송, 평화방송은 종교방송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발표 시점이다. 민주화 이후 90년대 전후로 이들 방송이 보도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도록 허용하거나, 문제를 삼지 않았는데, 왜 새 정부 들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이들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들을 '유사보도'로 규정하는 발표를 했느냐는 의문이다.

방통위 스스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에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CBS의 '역사적 사실'이 갖는 무게

그러다보니 언론계에서는 방통위의 발표를 박근혜 정부의 방송정책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송 길들이기'로 노골적으로 향하고 있는 정황으로 해석하고 있다.

CBS 노조는 즉각 성명을 내고 방통위의 발표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CBS 노조는 '유사보도'라는 표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정당성 논란에 휩싸인 '유사 정권'이 감히 누구를 '유사보도' 운운하며 평가하는가"라고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그런데 CBS 노조가 이렇게 반발할 만한 '역사적인 논거'는 충분하다. CBS는 1954년 국내 최초의 민간방송으로 출범했고, 종합편성이 가능한 방송사였다. 그런데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1980년 전두환 씨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보도기능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시사보도를 할 수 있도록 허용이 됐다. 불교방송과 평화방송 같은 경우도 1990년 방송국 허가를 받은 이후 25년째 보도기능을 수행해 왔다.

방통위가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당국이 강력하게 진압에 나서듯 방통위가 "계속 불법 보도를 일삼는다면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는 식의 입장은 보인 것은 아니다. 방송법상 불법 보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업자에는 최고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으며, 위반이 반복될 경우 전문채널의 경우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해당 방송사들이 스스로 방송 법규를 지켜달라고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한 현행법과 그동안 해당 방송사들이 시사보도를 해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어긋난 점이 있기에 법적 정비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통상 '역사적 사실'이 부정할 만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법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법적 미비 사항'헤 해당한다. 그래서 법을 정비한다면, '역사적 사실'에 법을 맞추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러나 방통위가 "법적 정비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사고 있다. 뭔가 이 과정에서 방송사와 어떤 딜을 하려는 게 아니냐, 선거와 관련해서 함부로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게 아니냐는 등의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언론노조 "방송 사유화·신군부 흉내내기"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방통위가 '유사보도'라는 문제를 꺼낸 배경에 대해 아예 "2014년 지방선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노조는 "현 정권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방송을 사유화하려고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면서 "신군부처럼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이다 보니 이제 와서 신군부 흉내 내기라고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한국PD연합회도 2일 방통위의 '유사보도 실태조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언론의 비판 기능 저해하는 방통위는 각성하라"고 비판했다. PD연합회는 "방통위는 '법과 현실의 불일치를 개선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속내가 언론의 비판적인 기능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면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방통위의 폭력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PD연합회는 이번 유사보도 실태조사가 특정 방송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PD연합회는 "만일 방통위가 진심으로 '현재까지 사실상 보도를 허용해온 역사성과 법제도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이번 실태조사의 목적이라면 해당 방송프로그램을 불법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미비한 법적 지위를 찾아주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PD연합회는 방통위의 이번 조치에 대해 "노골적으로 방송 길들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언론의 비판기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면서 "마치 정권에 입맛에 맞는 방송을 하지 않으려면 방송을 그만두라는 식의 폭력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나아가 PD연합회 역시 "이번 '유사보도 실태조사'와 향후 제도개선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보를 통제하고, 정권에 우호적인 방송만을 만들어가겠다는 야욕에 대해 당당하게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의 규정 개악 논란

박근혜 정부는 이미 방송 심의 자체를 '이중잣대'로 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최근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면 징계 쪽으로 심의하고, 정권이 원하는 방향의 내용이면 문제를 삼지 않으려거나 가급적 징계수위를 낮추는 식으로 심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요즘 공중파보다 더 공정한 시사보도를 하고 있다는 JTBC의 <뉴스 9>이 중징계를 받은 사건이다.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 사건과 관련해 통합진보당 측의 입장만 내보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다. JTBC 방송에서 전반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많이 보도했고, 특정 코너에서 통합진보당 측의 얘기를 들은 것은 오히려 전반적인 보도에서 균형을 맞춘 것이라는 방송사 측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거꾸로 어떤 방송이 정부의 입장만 반영한 프로그램을 방송했을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다른 입장들도 다른 프로를 통해 반영된 만큼 문제될 게 없다"며 징계를 하지 않았다. '이중잣대'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심지어 방통위는 심의 규정 개정안에 '민족의 존엄성' 조항을 신설하려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방송은 일반적으로 인식된 역사적 사실 또는 위인을 객관적 근거 없이 왜곡·조롱·희화화하여 폄훼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제25조 2항 '민족의 존엄성')는 것이다. 이 조항은 "방송은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내용을 방송해선 안 된다"(제29조 2항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조항과 함께 신설될 경우 '정치적 심의'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야당 추천 방통심의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방송 심의의 주체인 국가가 특정 내용과 관점을 억제하기 위해 심의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제 정권에 밉보인 방송사는 심의대상이 되는 보도는커녕, 보도 자체를 못하게 되는 것일까?

 
 
 

 

     

/이승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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