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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서 이산가족 단체상봉 열려

"늙었구나, 한번 안아보자"눈물 속에서 이산가족 단체상봉 열려
조정훈 기자/금강산 공동취재단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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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0  1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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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이산가족이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을 가졌다. 한 가족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늙었구나. 한 번 안아보자"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오후 3시 금강산 호텔에서 단체상봉으로 시작, 오후 5시에 끝났다.

남측 가족 82명과 동반가족 58명은 북측 가족 178명을 만나 눈물바다를 이뤘다. 상봉장소에 먼저 도착한 북측 가족들은 초조한 눈빛으로 남측 가족들을 기다렸다.

금강산호텔 2층 계단으로 남측 가족들이 올라오자 60여년의 세월을 잊은 듯 서로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부등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능환 할아버지(93세)는 얼굴도 모르는 아들 정국 씨(64세)를 보자 "늙었다"고 말하며 울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긴 줄도 모른 채 1951년 1.4후퇴 때 남으로 내려왔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닮아있었다.

아버지는 "한 번 안아보자"며 북측의 아들을 얼싸안고 울었다. 말없이 한 동안 눈물만 흘렸다.

강능환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남측의 아들은 북측의 형을 보며 "제가 동생입니다. 형님, 정말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

손기호 할아버지(91세)는 60여년 만에 만난 북측의 딸 인복 씨(60세)를 눈 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했다. 1.4후퇴 때 북에 홀로 남겨졌던 딸은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 남측 최고령자인 김성윤 할머니가 북측의 여동생들을 만났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생각했어. 오빠 생각했다구" "제가 열차타고 꼭 다시 올게요"

북측의 여동생 장금순 씨(75세)와 남동생 화춘 씨(72세)를 만난 장춘 할아버지(82세), 장 할아버지의 아들 기웅 씨는 열차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30년째 기관사 일을 하고 있다는 기웅 씨의 말에 북측의 삼촌 화춘 씨는 "정말이냐. 내가 47년 6개월 동안 기관사를 했다"고 말했다.

금순 씨는 오빠의 손을 잡으며 "내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생각했어. 오빠 생각이 나가지고"라며 울먹였다.

이에 기웅 씨는 "제가 운전해서 올게요. 제가 기관사니까 열차타고 꼭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북측의 고모와 삼촌을 만난 기쁨을 나눴다.

 

   
▲ 이선향 할머니가 북측의 남동생을 만나 부등켜 안고 울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어머니는 형이 고무신 사주고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북측의 동생 리철호 씨(78세)는 남측에서 온 형 이명호 할아버지(81세)를 만나자 말없이 메모를 건넸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형을 위한 배려였다.

동생이 건넨 메모에는 "어머니는 형이 고무신을 사주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는 60여년 전 약속을 되새김질 했다.

메모를 조용히 읽어 내려가던 이명호 할아버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느냐"며 메모장에 가족들의 안부를 적었고, 동생 철호 씨가 돌아가신 부모의 사진을 건네자, "이 귀한 사진을 어떻게 가지고 왔구나"라며 감격스러워했다.

   
▲ 이선종 할아버지가 북측의 여동생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이만복 할머니(91세)는 64년여 만에 북측에 두고온 딸 리평옥 씨와 손자 리동빈 씨를 만났다. 64년만에 딸을 만난 이만복 할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함께 간 딸 이수연 씨가 언니 평옥 씨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언니 어떻게 살았느냐"고 울먹이는 남측의 동생의 손을 맞잡은 언니 리평옥 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금자 할머니(81세)는 북측에 두고 온 아들 박홍권 씨(65세)와 며느리 오춘택 씨(60세)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 이영실 할머니(오른쪽)가 북측의 딸 동명숙 씨를 만나 손을 잡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영정으로 만난 남측의 엄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보름 앞두고 별세한 서정숙 할머니를 대신해 딸 김용자 씨(68세)는 북측의 여동생 영실 씨를 만나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건넸다.

영정사진을 건네받은 영실 씨는 "엄마 사진"이라고 울먹이며 가슴에 꼭 껴안았다.

노부부의 64년만의 어색한 만남

이날 이산가족 상봉에는 64년 만에 만나는 노부부가 눈길을 끌었다.

김영환 할아버지(89세)는 남쪽에서 새 가정을 꾸렸지만, 북쪽에 두고 온 부인 김명옥 할머니(86세)와 아들 대성 씨(64세)를 만났다.

64년만에 만난 부부는 서로 데면데면한 채 대화없이 서로 앞만 바라보며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기자가 김영환 할아버지에게 "할머니 만나셔서 어떠시냐"고 묻자 "좋지요"라고 덤덤해 했다.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 오열하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전시.전후 납북자 만났지만..최남순 씨 "제 아버지 아니에요"

이날 상봉장에는 전시.전후 납북자 5명도 가족을 만났다.

한국전쟁 당시 경기도 화성에서 인민군으로 간 아버지 최홍식 씨의 아들 병관 씨(68세)는 부친이 북측에서 새 가정을 꾸린 이복동생 경희(53세), 병덕(62세)를 만났다.

최병관 씨는 동생들과 얼싸안고 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며 "오빠",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동생 병덕 씨는 북측의 가족사진을 소개했고, 병관 씨는 "그래도 이렇게 사셨으니까 외로움이 덜했을 것이다. 이런 가정을 꾸리지 못했으면 얼마나 외로웠겠느냐"고 달랬다.

수원33호 어부로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최영철 씨도 남측에서 온 형 최선득 씨를 만났다.

최영철 씨는 형을 만나자 부둥켜안으며 "40년 전 얼굴 그대로야. 건강한 거 보니 반갑다"며 "원수님(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덕에 만났다. 정녕 못만나는 줄 알았다. 민족단합해서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 최선득 씨는 "헤어질 때보다 살이 더 찐 것 같다. 남쪽 가족들은 가정도 화목하고 좋다. 먹고 살만하다"고 동생에게 안부를 전했다.

   
▲ 북측의 한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오대양호 어부로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박양수 씨는 남측에서 온 동생 양곤 씨를 만났다. 형제는 잠시 눈을 끔뻑이다가 얼싸안고 오열했다 서로 얼굴을 만져보고 뺨을 부비던 동생 양곤 씨는 형을 바라보며 울다가 "형님아"하고 42년만에 형을 불렀다.

박양수 씨는 동생에게 훈장증과 훈장을 보이며 "당의 배려를 받고 이렇게 잘 산다"면서 안심시켰다.

반면, 전시 납북자 최종석 씨의 딸 남순 씨(65세)는 북측의 이복동생이라고 알려진 이들을 만났지만 "우리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을 건네받은 최남순 씨는 한참을 들여다보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최 씨는 "아무리 봐도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 박운형 할아버지와 동행한 아들이 북측의 삼촌과 고모에게 큰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한편,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올라간 김섬경 할아버지(91세)는 구급차 방북협의가 안됐다는 이유로, 구급차 안에서 북측의 아들 진천 씨와 딸 춘순 씨를 만났다.

홍신자 할머니(84세)도 구급차 안에서 북측의 여동생 영옥 씨와 상봉했다.

단체상봉을 마친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후 7시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주최 만찬에 참석, 상봉을 이어갈 예정이다.

   
▲ 부등켜안은 남측의 오빠와 북측의 여동생.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민재각 할아버지가 북측의 며느리를 만났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손을 맞잡은 남북의 이산가족.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북측 가족들이 금강산 호텔 단체상봉 행사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북측 가족의 사진을 남측 가족이 보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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