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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부의 '관재'다

[안종주의 건강사회] 실종자 가족 막아서는 '불통'이 위기 소통인가?

안종주 건강디자이너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4.23 07:39:15

 

 

 

 

 

 

 

소통의 힘은 매우 강하다. 설혹 대형 사고가 터졌더라도 소통만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인명 피해를 제로로 만들 수 있다. 제로는 꼭 아니더라도 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고 싶은 것은 필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심정일 것이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을 정도로 슬픔과 비통에 빠진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살아도 산 것처럼 느끼지 못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만약 이들이  공상 과학 영화에서처럼 과거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승무원들과 관제센터 간의 말이 서로 잘 통하지 않는 불통, 승무원들과 승객과의 불통, 관제센터와 해경 등 재난 구조 기관과의 불통을 바로잡고 싶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의 재난 대응 무능과 불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민낯으로 드러냈다.
 
배가 완전히 침몰한 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한 지금의 현실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로 치닫게 하고 있다. 그 분노는 단지 유족과 실종자 가족, 친지, 친구, 가까운 이웃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과 일면식도 없고 옷깃 한 번 스친 인연조차 없는 대다수 국민의 가슴 깊숙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이제 그 분노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활화산의 용암이 되어 뜨거운 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정보기관과 보수 언론의 노력도 때론 은밀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좋은 사고는 없다. 모든 사고는 나쁘다. 하지만 사고 가운데에도 더 나쁜 사고가 있다. 예방할 수 있는데도 예방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는 분명 더 나쁜 사고다. 대량 인명 피해라는 위기가 발생했음에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그 피해가 눈 덮인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가 되었거나, 위기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됐다면 이는 최악의 사고다. 
 
박근혜 정부 세월호 참사는 최악의 인재(人災)요 관재(官災)
 
세월호 참사가 바로 최악의 사고다. 세월호 참사는 누가 뭐래도 분명 인재(人災)요 관재(官災)다. 여기에 더해 사고 발생 뒤 구조와 사태 수습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위기소통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내팽개쳤다고 하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사고 피해를 당한 부모가 또 한 번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지난 19일 진도 실내체육관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지난 19일 진도 실내체육관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참사 또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필자는 이 두 가지 이름이 이번 사건을 가장 적절하게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는 해운사와 승객보다 먼저 탈출하는 등 승무원들의 어처구니없는 위기 대응 행동에 일차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사고 뒤 효과적으로 구조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의 재난 구조·대응 체계에도 그 못지않은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해경청장이나 해양수산부·안전행정부 장관 또는 총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총체적인 책임은 사실상 대통령에게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대통령이 아니라면 몰라도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은 분명 대통령에게 있고, 분명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싫든 좋든, 정부와 대통령은 결코 별개의 조직이 아니라 하나가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 정부는 엉망이라는 지적이나 분석을 하는 언론은 언론임을 포기한 것이다. 혹세무민하는 언론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 당국자와 책임자들이 보인 모습은 한마디로 위기(위험) 소통의 에이비시(ABC)를 무시한 언행으로 가득하다. 위험 소통, 즉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황금규칙(골든 룰)으로 몇 가지가 꼽힌다. 미국의 유명한 위험 소통 전도사인 피터 샌드만(Peter Sandman)은 ① 비밀을 지키려고 하지 마라-공중에게 위험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정직하라. ② 공중의 관심사를 귀담아들어라-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③ 권력을 나누어라 ④ 신뢰보다는 책임을 지향하라, 도전받을 것에 대해 준비하라. ⑤ 실수를 인정하라 - 더 잘하겠다 약속하라. 약속을 지켜라 ⑥ 존경심을 갖고 적대자를 대하라(설혹 그들이 존경할만하지 않더라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환경청도 이와 비슷한 위험 소통 원칙을 내놓고 있다.
 
위험 소통 원칙 깡그리 무시한 정부의 세월호 참사 대응
 
이들 원칙으로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이루어진 정부의 재난 대응 소통 방식을 살펴보자. 먼저 공중에게 위험 정보, 즉 재난 정보를 제공한 것을 한 번 보자. 위험 정보를 신속하게 또 정확하게 제공했는가? 이런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과 국민, 유가족 등이 무척이나 알고 싶어 했던 세월호와 진도관제센터와의 교신 내용은 사건 발생 4일이 지나서야 공개했다. 교신 내용은 사건 발생 첫날에 공개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야 했었다. 늑장도 이런 늑장은 없다. 누가 이런 정부를 신뢰하겠는가.
 
구조는 신속성이 생명이지만, 재난 정보는 신속성과 정확성이 충돌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는 당연히 정확성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 해결 과정에서 정부는 정확성은 내팽개치고 신속성에 매달려 탑승자 수와 실종자 수, 구조자 수를 발표했다. 이는 시도 때도 없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울린, 그래서 분노를 폭발하게 만든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시로 오보를 낸 언론사도 국민에게 불신을 받게 했다.
 
위험 소통의 원칙은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탑승객, 실종자, 구조자의 숫자를 놓고 사건 발생 나흘이 되도록 매일, 때론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발표를 번복하는 소동을 벌였다. 정말 한심해도 이렇게 한심한 정부는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구조된 사람을 실종자로, 실종자를 구조된 사람으로 둔갑시킨 것이나 주검의 신원이 뒤바뀐 것 등 일일이 말하기에도 입이 따가울 정도로 많은 실수가 되풀이됐다.
 
정부가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던 세월호의 사고 해역에서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 발표를 불과 이틀 만에 사실과 다르다고 정정한 것도 문제다. 사고의 원인은 분초를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 분초를 다투어야 할 대상은 실종자 구조와 구조된 사람이 받은 정신적 충격 어루만지기다. 사고의 원인 파악과 발표는 냉철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중의 관심사를 귀담아들어라'와 '권력을 나누어라'는 원칙도 이번 사건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공중 또는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 가족들의 관심은 실종자 구조였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표를 사건 발생 첫날부터 재난대책본부 주요 회의에 참석시켜 요구사항이나 의견 등을 듣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정부와 피해자가 서로 적대적이거나 대립 관계가 아니라 사건을 슬기롭게 함께 풀어가는 동반자라는 의식을 갖도록 만들어야 했었다.
 
소통의 원칙 가운데 마지막의 '존경심을 갖고 적대자를 대하라(설혹 그들이 존경할 만하지 않더라도)'라는 부분도 이번 사건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것을 경찰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가로막았다. 이들이 대통령과 총리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강한 항의를 했다고 해서 서울시장에 나선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아들은 이들을 '미개한 국민'으로 묘사했고, 일부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의원들은 이들을 폄훼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존경심은커녕 '거지발싸개'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러고서 위기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 실종자 가족 10여 명이 21일 진도 팽목항에서 해경 경비정을 타고 구조 현장을 참관했다. 가족들은 정부 발표와 실제 현장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손문상)

▲ 실종자 가족 10여 명이 21일 진도 팽목항에서 해경 경비정을 타고 구조 현장을 참관했다. 가족들은 정부 발표와 실제 현장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손문상)

 
불통을 불통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 증폭 사회 
 
이번 참사는 그동안 야당과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불통 정부라는 낙인이 찍힌 박근혜 정부에 더 이상 빠져나오기 힘든 불통의 굴레를 덧씌운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도 많은 잘못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재난 전문가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난 전문가가 없어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 구조하지 못한 것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돈에 눈먼 사회, 눈먼 시계공이 된 정치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가 계속되는 한, 사고가 발생해도 근본은 치유하지 않고 착한 규제도 '암 덩어리요, 쳐부술 원수'라고 생각하는 한, 입에 담고 싶지는 않지만,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지만 대형 참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불통이 가져다주는 재앙의 규모가 얼마나 클 수 있는가를 한 눈으로 보여주었다. 피부뿐만 아니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반대로 소통의 힘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 은밀함을 지니고 있지만, 상상 이상으로 위대하다는 사실도 함께 일깨워주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부든, 위기 상황에서든, 대형 사고에서든, 소통이 먼저다. 소통 사회는 건강 사회이며 불통 사회는 위험 사회이다. 불통을 불통이라고 지적하기를 꺼리는 사회는 위험 증폭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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