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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새누리 국민행복위 위원장

등록 : 2014.05.29 20:00수정 : 2014.05.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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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새누리 국민행복위 위원장


일본 20년간 경기 침체 이어져
독일은 2000년대에 위기 극복 
시대 따른 정부 정책이 낳은 차이

박 대통령 경제민주화 약속 지켜야 
기업 반대로 사회 변화 거부 땐 
한국도 일본처럼 낭떠러지행 

“한국경제가 현 상태로 가면 일본처럼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지금은 17년 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위기 상황이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74)은 “일본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기업들에 끌려다니다가 정부정책이 시대변화와 국민요구에 맞춰가는데 실패해 위기를 자초했다”며 일본과 닮은꼴인 한국의 앞날을 걱정했다.

 

김 전 위원장은 “반면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사회통합적 시스템을 바탕으로 정치권이 기업이 아닌 사회 전체의 뜻을 반영한 정책으로 개혁을 추진해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며 독일모델의 강점을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박근혜 대통령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경제민주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약속을 어긴) 새누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며 “대통령도 국민의 표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1일 독일로 왔는데, 방문 목적은?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며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나라들이다. 그런데 일본은 1990년 이후 거의 20년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통일부담을 극복하고 2008년 금융위기 충격에서도 가장 빨리 회복했다. 독일은 최근 실업률이 낮아지고, 국가부채비율이 줄면서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진 이유는?

 

“일본은 전후 미군정에 의해 재벌이 해체됐다. 하지만 1948년 중국 공산화 이후 미국이 일본을 주축으로 방어전략을 채택하면서, 일본 국내에는 신경을 안쓰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1950년대 이후 일본 재벌이 사실상 되살아나 자민당과 관료를 장악하고,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3권분립은 재계-관료-정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재계의 힘이 막강하다. 이후 일본 경제계는 사회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다. 1980년대 선진국들의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일본 수출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일본 경제계는 1986년 정부에 저금리정책을 요구했고, 그 여파로 부동산과 주식 투기 열풍이 불면서 땅값과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일본정부가 돈을 푸는 경기부양책(아베노믹스)을 쓰고 있지만 결코 오래갈 수 없다.”

 

-플라자합의로 독일 마르크화도 강세를 보였다. 독일은 1990년 통일에 따른 부담까지 지면서 1990년대 말에는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들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위기를 극복하고, 2008년 금융위기에서도 가장 빨리 회복했다. 비결이 무엇인가?

 

“독일모델의 핵심인 ‘사회적 시장경제’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강점은 효율이다. 이는 가격 메커니즘과 경쟁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질서(룰)를 확립해 사회적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부는 작지만 강해서 이익집단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아야한다. 이런 생각을 현실에 적용해서 제대로 운용한 게 독일이다.”

 

-독일경제가 성공한 바탕에는 정치권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정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독일은 아데나워 총리 이후 단일정당이 집권한 적이 없다. 독일 국민들은 특정 정당에 과반수 의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들은 연정을 통해 국민 대다수를 포용하는 정치를 꾸려갈 수 밖에 없다. 아데나워 총리는 정부를 끌어가는데 하나의 의견만 있으면 안되고, 다른 의견들을 융합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독일의 집권당이 바뀌어도 경제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이런 비결 때문이다.

 

-독일이 기득권 세력에 휘둘린 일본과 달리 시장흐름에 맞춰 경제정책을 변화해온 사례를 꼽는다면?

 

“사민당이 1990년대 경제위기 속에서 단행한 ‘어젠더 2010’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말 독일은 경제악화로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슈뢰더 총리는 당시 일부 좌파의 반대 속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 ‘어젠더 2010’을 단행해 변화를 추구했다. 그 뒤를 이은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도 이 정책을 계승했다. 독일이 이런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밑바탕에는 1951년 석탄철강산업에서 시작한 노사공동결정제가 있다. 1976년에는 이를 전 산업으로 확대했다. 노조가 경영 상태를 투명하게 아니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노사 관계가 한국처럼 대립적이지 않고 협력적이다. 결국 독일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정부정책이 시대변화에 맞춰 가느냐, 못가느냐이다.”

 

-한국이 현 상태로 가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이 있다고 보는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은 일본과 비슷하다. 한국이 1962년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정부주도 경제발전 과정을 밟은 것은 일본을 모방한 것이다. 경제가 짧은 기간에 압축성장하고, 재벌들이 정부의 자원배분을 통해 집중적으로 혜택을 받은 것도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했는데,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는 모두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경제적 약자 보호, 재벌개혁 등의) 경제민주화가 최대 화두로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처럼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외환위기 직전에도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튼튼해 괜찮다고 큰소리 치지 않았나.”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 내걸며 경제민주화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통령은 대선 출마선언과 대선후보 승락시 경제민주화를 맨 앞에 내걸었다. 본인 스스로 정직과 신뢰의 정치인임을 강조해왔다. 나는 박 대통령이 당선되면 시대적 요구를 수용해 25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쌓인 모순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약속을 어기고 과거 정부와 똑같은 모습 보여줌으로써 국민을 실망시켰다.”

 

-박 대통령이 약속을 안지킨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현실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은 관료들에게 경제를 맡겨, 과거 정권의 방식에서 못벗어났다. 관료들은 지금의 (잘못된) 구조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또 관료들은 기업들에 포섭되어 있다. 정치권도 비슷하다.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안하면, 여당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결국 새누당이 질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때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승리할 것으로 자신했는데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최근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에 원칙과 기본이 없다는 자성론과 함께 기존 성장주의 일변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게 절실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대통령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경제민주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안되면 독일처럼 우리사회가 조화와 통합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또는 질서 자본주의)를 수용해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살리되 정부가 기업에 끌려다니지 말고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회적 변화 요구와 국민의 표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기는 지키더라도,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합성어) 개혁론이 거세다.

 

“기업들은 정부에 로비하기 위해 퇴역관료를 영입한다. 장·차관 등을 지낸 사람은 다른 일을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무조건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은 직업윤리가 중요하다. 장·차관을 한 사람이 로펌에 들어가 (정부에 있는) 후배들에게 전화하는 일이 사라져야 한다. 또 대통령은 장·차관을 하다가 민간기업으로 간 사람을 재기용하면 안된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폈다. 독일의 통일경험에서 한국이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1950년대 에르하르트 독일 경제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통일을 하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을 받자 경제력을 최대한 축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나라도 통일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경제를 제대로 살려 통일 부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사회의 통합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양극화가 계속 심화되면 국민들이 북한 지원에 선듯 동의하겠는가?”

 

에센(독일)/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김종인 전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에 크게 기여했다. 2011년 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참여해 당 정강정책에 헌법의 경제민주화 정신을 담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핵심으로 한 선거공약을 만들었다. 1987년 헌법 119조2항(경제민주화 조항)이 신설될 때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저버리고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도운 것은 자리 때문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해야 양극화를 막고 나라가 바로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독일까지 와서 연구하는 것도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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