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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었다, 그게 투표해야 할 이유

 
[게릴라칼럼] 희미해지는 세월호 참사...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할 일
14.06.03 11:45l최종 업데이트 14.06.03 11:45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16년 동안 인간의 망각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에 따르면 인간은 10분 후부터 망각하기 시작하고, 1시간 뒤에는 50%, 하루 뒤에는 70%, 한 달 뒤에는 80%를 잊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다고 한들 인간의 기억력은 선천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망각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니체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으로써, 한 사람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하나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생각해보자. 태어난 뒤 겪은 모든 일들을 기억한다면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물론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우리는 온갖 슬픈 기억 역시 떠올릴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망각이 사회에 적용되는 경우다. 비록 사회는 인간이 모여 만들어지지만, 인간의 특성, 즉 망각이 사회에 그대로 투영된다면 이는 비극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에게 망각은 갱생의 시발점이지만, 사회에 있어 망각은 존립근거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의 기억을 망각한다면 그 사회가 어찌 연속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따라서 사회는 망각을 극복하기 위해 기록이라는 것을 한다. 활자와 영상, 조형물 등으로써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교육을 통해 그 공통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달시킨다. 기록이 곧 사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며, 우리는 그것의 재생산을 통해 시공간적으로 타인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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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막은 아이들 전쟁은 곧 공포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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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한국전쟁은 현재 한반도 냉전체제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서 국가가 직접 나서서 기록하는 집단기억이다. 남과 북은 공히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재생산 하며 체제를 공고히 한다. 저들이 얼마나 잔악무도하고, 얼마나 비열한지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역사적 계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열거한다. 

비록 양 체제는 공식적으로 같은 한민족임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조금 먼 미래를 위한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남한과 북조선은 전쟁을 통해 다른 국민들을 탄생시켰고,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끊임없이 빨갱이, 종북좌파를 운운하고 그에 혹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우리가 한국전쟁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집단기억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기록의 주체가 국가인 경우 공동체의 집단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인데 이는 근대국가가 국민들의 형식적인 동의에 의해 탄생되지만, 국민 모두를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는 종종 국민을 대상으로 만행을 저지른 뒤 이를 망각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보자. 그것은 국가가 어떻게 불리한 기억을 지우려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는 5·18을 제도화시킴으로써 위험성을 반감시키려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부르게 하고, 광주라는 공간을 지역감정으로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의 항쟁을 폄훼한다. 

결국 이런 경우, 국가에 맞서 집단기억을 기록하는 주체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국가가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기억을 망각시키거나 박제화하려 한다면, 개인이 나서서 이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그 사회가 건강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또 같은 비극을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국가는 영원하지 않지만 공동체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 아니던가.

망각의 강 앞에 선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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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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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같은 맥락으로 세월호를 생각해보자. 어느덧 참사가 일어난 지도 50일. 현재 세월호 참사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망각의 강을 건너느냐, 마느냐. 

사람들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다시 개인의 일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으며, 주말마다 모이던 촛불 역시 조금씩 그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언론이라도 세월호를 상기시키면 다행이건만, 그들의 관심사는 이미 곧 있을 6·4 지방선거와 그 뒤를 이을 2014년 월드컵에 가 있다. 

물론 JTBC의 손석희 <뉴스9> 앵커는 아직까지 뉴스의 첫머리를 진도로 시작하고, <고발뉴스>와 <뉴스타파> 등도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언론이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이 6·4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많은 유가족의 우려대로 세월호가 망각의 경계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현재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정부의 태도다. 처음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눈물 흘려가며 진상 파악과 대책 강구를 이야기하더니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 서서히 발을 빼고 있는 모양새다. 해경만 해체하면 모든 게 끝나는 듯, 정부가 사회의 기록은 방기한 채 개인의 망각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세월호 관련된 국정조사를 하자면서도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트집을 잡아 시간을 끄는 정부 여당과 구원파 유병언 회장을 잡겠다고 이야기만 할 뿐,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구체적이고 명확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결과는 발표하지 않는 검찰과 경찰. 그리고 사람들에게 망각의 주사를 투여하는 언론. 

결국 그들에겐 세월호 참사를 기록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말로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고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은 삼척동자도 모두 아는 사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만 잘 모면하면, 망각의 속도가 빠른 우리 국민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눈물은 어디까지나 선거에 필요한 옵션일 뿐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라

세월호에 대한 망각을 기다리는 국가. 문제는 그와 같은 국가에 맞서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고 며칠 후야 많은 이들이 같이 분노하고 기록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홀로 남아 세월호를 붙잡는다는 것은 피곤한 동시에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기억의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4·16 세월호 참사는 현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온갖 모순의 총체이며, 또한 우리의 감출 수 없는 민낯이기 때문이다. 모든 걸 돈의 가치로 환산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많은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국가의 이름으로 방치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 이를 또다시 잊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절망뿐이다. 

혹자들은 세월호를 몇 십 년 전 벌어졌던 서해 훼리호나 삼풍백화점과 같이 끔찍했던 참사 중의 하나로 기억하려 하지만 이는 진실의 일각일 뿐이다. 비록 사고의 형태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가 재난 앞에서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여느 재난들과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국가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전혀 보호하지 못한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국가의 본질을 물어야 한다. 평시에 300명이 물에 빠져도 우왕좌왕하는 국가가 과연 전쟁이 나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지 추궁해야 한다. 또 혹자들의 염려대로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국가가 국민들의 안위를 책임질 수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 

최근 문재인 의원은 세월호 사건을 5·18 광주와 비교함으로써 논쟁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비록 살인행위의 의도만큼은 다를지 몰라도, 국가의 본질을 물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국가가 하루빨리 그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공통분모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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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조사 촉구 촛불행진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차 범국민촛불행동'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신속한 수습과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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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계속해서 세월호 사건의 후폭풍을 잠재우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한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세월호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목격자가 되어 시대의 증언대에 서야 하며, 우리가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구성원들끼리 공유해야 한다. 끊임없이 기록해야 하며, 끊임없이 의문점을 던져야 하며 끝까지 파해쳐야 한다. 우리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그 자리에 변변찮은 추모비 대신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지켜만 보았는데, 이제는 그와 같은 만행을 막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행인 사실은 얼마 있지 않아 6·4 지방선거가 있다는 점이다. 모든 선거가 현재의 집권세력을 심판하는 성격을 지닌다는 면에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정부에게 물어야 하며, 그렇게 쌓인 분노를 투표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아직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다.

세월호를 둘러싼 기억의 전쟁. 우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4·16을 새로운 시대의 변곡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생때같은 청춘들을 먼저 보낸,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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