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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침략' 비판했던 박 대통령 '총리 문창극' 어떻게 설명할 건가?

 
[주장]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언급... '자기부정' 인사의 절정
14.06.14 19:52l최종 업데이트 14.06.14 19:52l

 

 

기억을 잠시 더듬어 지난 3·1절 기념식으로 가본다. 기념사를 한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22차례 박수를 받았다. 기념사가 11분 동안 진행됐으니 30초당 1번씩 박수세례를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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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뜻도 모르고 분연히 일어난...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조국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선조들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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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 대통령은 95년 전 목숨을 걸고 3·1 운동에 나섰던 선조들의 용기에 대해 경의를 표했고, 아베 총리를 위시한 일본의 역사 부정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과오 인정 못 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다'고까지 못 박았다. 

1년 넘게 한일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던 때였다. 아베 일본 총리는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을 만나길 희망했지만, 박 대통령은 단호했다. 과거 침략사에 대해 인정, 반성할 것과 각성을 촉구했지만, 아베가 수용하지 않자 만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0여 일이 지났다. 한일관계가 답답하게 진행되던 때에 아베 총리에게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한국의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문창극이란 인물이 지명된 것이다. 그는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 사과 불필요'를 주장했다. 한국 제1야당 대표는 '아베 수첩' 인사라고 평가할 정도로 놀라운 인사였다. 

한국 내 논란이 커지면서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문창극 한 사람의 돌출발언이 집권세력의 '공론'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로 변한 것이다. 그의 강연 동영상을 함께 본 한국 집권당 수뇌부는 "문창극 후보자를 이해할 수 있다", "문 후보자의 강의 내용이 본받을 만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을 갖고 '문 후보자의 대일관이 한국 집권세력의 의견인가'라고 묻는다면 새누리당 지도부가 뭐라고 답하려고 하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그의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그동안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며 단호하게 일본을 압박한 박근혜 대통령이 정반대로 해석되는 주장을 펴는 인물을 정권 2인자로 공식 지명하고, 논란이 야기됐음을 확인하고도 임명을 강행하려는 것이다. 문창극이 국무총리로 임명된다면 한국의 총리가 과거 발언을 전면 부정하든지, 박 대통령이 대일 외교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총리'를 약속한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에게, 아니면 그를 추천한 그 누군가에게 무슨 빚을 졌기에 한 나라의 외교정책까지 송두리째 바꾸면서까지 총리를 시키려 하는가. 

'하나님의 뜻'도 모른 채... 

95년 전 오늘,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의 독립과 주권을 되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나라의 주권을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다는 신념과 애국심은 온 국민들을 일어나게 했습니다…(중략) 그 위대한 3·1정신은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으로 면면히 계승되면서 번영과 기적의 대한민국 역사를 이룩한 원천이 되었습니다. 
– 2014년 3·1절 대통령 기념사 중

3·1 운동은 민족의 울분이 일순간에 폭발한 대사건이었다. 총칼로 진압하는 일제에 맞서 목숨을 걸고 국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시위운동에 참가한 인원은 202만 명,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1만 5966명, 검거자는 5770명에 달했다. 

박 대통령이 '그 위대한 3·1정신'으로 언급했듯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무수히 많은 선조들이 총칼에 목숨을 잃었다. 후손인 우리들은 그 날, 그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3·1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가정별로 국기도 게양하고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지난 '3·1절'에 국기를 게양했는가. 2011년 6월 15일 온누리 교회에서 특강을 한 문 후보자는 '36년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 발언에 따르면 '신의 뜻'에 반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는 강연장에서 "(하나님이)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전체 맥락은 그런 얘기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치유는커녕 위안부 할머니 가슴에 대못 박은 문 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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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치유를 언급하고 있는 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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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잘못을 돌아보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고,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중략) 특히, 한평생을 한 맺힌 억울함과 비통함 속에 살아오신, 이제 쉰다섯 분밖에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당연히 치유 받아야 합니다. 
– 2014년 3·1절 대통령 기념사 중  

지난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가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처음으로 증언하면서 그 실상이 드러났다.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눈 감기 전에 한을 풀어주세요"라고 나서자 다른 할머니들도 용기를 내고 함께 하기 시작했다. 지난 1993년 정부에 집계된 위안부 피해자는 234명. 

그리고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에 '수요시위'가 열렸다. 할머니들이 일본에 요구하는 7가지 사항은 1. 범죄 인정 2. 진상 규명 3. 국회 결의 사죄 4. 법적 배상 5. 역사 교과서 기록 6.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7. 전범자 처벌 등이다. 이에 일본은 20년 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박 대통령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는 치유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부분이 80세가 넘은 할머니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싶었다. 그로부터 100여 일이 지난 시점에 문창극이라는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 문 후보자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위안부에 대한 일관된 생각을 전했다. 

문 후보자는 지난해 서울대 강의 도중에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일본 사과를 받아들일 정도로 나약하지 않은 국가가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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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문제는 보상문제일 뿐?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 요구하지 말고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한 2005년 3월 7일 <문창극칼럼> '나라 위신을 지켜라' 중
ⓒ 중앙일보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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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다. 지난 2005년 3월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 '나라 위신을 지켜라'에서는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중략) 보상문제만 해도 억울한 점이 비록 남아 있더라도 살 만해진 우리가 위안부 징용자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 이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다"라고 주장했다. 

20년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생 한 맺힌 삶을 거리로 이끈 할머니들의 '목적'을 '보상문제'로 일순간 격하 시켰다. 그의 위안부 발언이 전해졌을 때 고령의 할머니들이 격노한 것은 당연했다. 

문 후보자 측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위안부 발언'과 관련해 "일본 측의 형식적이고 말뿐인 사과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더욱 중요하다는 취지의 개인적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명에 대한 추가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문 후보자가 피력했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란 표현은 도대체 어느 칼럼, 어느 강연에 등장하는가. 

논란이 계속되자 준비단은 13일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다. 자료에는 "문 후보자가 그간 한일 간 외교교섭 상황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한 상황에서 개인 의견을 말한 것일 뿐 앞으로 총리로 인준된다면 우리 정부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할머니들이 문 후보자 발언으로 받았을 충격은 매우 컸을 것이다. 저런 말을 한 사람이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지켜줄 총리 후보자라니… 그런데 그를 지명한 사람이 얼마 전 위안부 할머니들의 치유를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이와 같은 기막힌 논리 모순적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가. 

대통령이 신중하게 선택한 총리 후보자... 맞나?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 다른 한 사람은 대한민국 총리 후보자 문창극이다. 행정부 수반인 박 대통령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문창극을 국민에게 소개했다. 

언론 검증 과정에서 문 후보자는 총리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과 역사관, 대북관이 공개됐다. 후보자를 직접 선택한 대통령이라면 임명을 취소한 후, 그를 인사 추천하고 검증한 핵심인물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향후 대통령 보좌조직이 긴장감을 유지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야권을 비롯해 시민사회와 학계 그리고 종교계까지 총망라해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금 이 순간 문 후보자를 지지하는 세력은 새누리당의 다수의 국회의원과 청와대 그리고 일본 극우세력과 <산케이신문>을 포함한 일본의 보수언론들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집권 1년 반 동안 박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주목 받았다. 이 상황에서 박 대통령 3·1절 기념사와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을 편 문 후보자가 임명된다면 이 임명은 '자기부정 인사'의 절정으로 기록될 듯싶다.
태그:문창극, 하나님의 뜻, 위안부 , 박근혜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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