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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모든 것을 바친 대상은

 
[손석춘 칼럼] 규제 완화로 국민 행복 이루겠다는 비과학적 망상
 
입력 : 2014-12-09  08:58:46   노출 : 2014.12.09  09:22:50
손석춘 언론인 | 2020gil@hanmail.net   
 

“언젠가 세상을 떠날 텐데 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모든 것을 바치자.”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여당 지도부, 당 소속 예산결산특별위원들과 점심 먹으며 한 말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완구가 ‘각하’로 부르며 인사말을 한 바로 그 자리다. 

‘각하’의 말 가운데 언론이 가장 주목한 대목은 이른바 ‘찌라시’다. ‘비선 실세 논란’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도를 넘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조차 대통령이 ‘찌라시’라고 규정한 문건을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해 “청와대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됐고 ‘공공기록물’로 등록된 문서”임을 사설로 환기시켰겠는가.

물론, 검찰은 지금까지 ‘관행’으로 볼 때 그 문건을 찌라시로 ‘증명’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문제는 심각하다. 청와대의 ‘공공기록물로 등록된 문서’가, 더구나 2년 넘게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으로 재직했던 경찰의 ‘정예’가 청와대에 재직하며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문서가 ‘증권가 소문’이었다는 뜻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제7차 세계정책회의(WPC) 개막식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의 진실이 죄다 드러나기엔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2년차다. 딱히 그래서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나눈 대화 가운데 내가 가장 곱새긴 대목은 들머리에 소개한 말이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텐데”에 이어 “모든 것을 바치자”는 마무리 발언에서 대통령 아닌 ‘인간 박근혜’가 다가오기도 한다.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는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고 그 외에는 다 번뇌”라며 “지금까지 그 하나로 살아왔고 앞으로 (세상을) 마치는 날까지 그 일로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감성적 발언에 ‘각하’를 모시는 여당 지도부는 감읍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니다. 지금 대통령이 모든 것을 바치는 대상은 국가적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인간 박근혜가 진정으로 ‘국민 행복’ 외에는 모두 ‘번뇌’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으로서 방향을 잘못잡고 국정에 매진할 때,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기에 문제는 심각하다.

나는 “우리 경제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에 동의한다. 이 나라 골골샅샅에서 비정규직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 청년실업자들이 무장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해법을 엉뚱하게 ‘규제 완화’에서 찾고 있다. 이미 2014년 3월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라고 부르댄 대통령은 11월25일 국무회의에선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서 처리”하라며 “규제 길로틴”을 외쳤다. 

요컨대 대통령은 규제 완화가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불러오면서 경제성장을 이끌고 그것이 국민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신봉’하고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출마할 때부터 내세운 ‘줄푸세’의 논리를 여태 ‘사수’하는 셈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불러온다는 논리는 이미 이명박 정부 5년을 통해 허구임이 드러났다. ‘국민 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정부는 ‘부자 감세’를 비롯해 규제 완화를 통해 낙수효과를 내세웠다. 그러나 ‘국민 성공’ 공약은 실패로 끝났다. 부익부빈익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집권 5년 내내 성장한 것은 소수 대기업뿐이다.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그 성과가 중소기업으로 다시 서민으로 흘러넘친다는 ‘낙수효과’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서민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하도급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대학생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정책이 중요하고 바로 그것이 2012년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라는 국가적 의제로 부각되었다. 박근혜 후보까지 대선 내내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경제 민주화’를 모르쇠하고 ‘줄푸세’로 돌진해왔다. 이미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는데도 그렇다. 한국은 2014년 ‘세계은행 기업 환경 평가’에서 세계 189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 정부는 자신들의 ‘규제개혁 노력’ 때문으로 자찬했다. 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온 한국 경제에서 서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못했다. 

   

▲ 손석춘 언론인

 

 

규제 완화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 국민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단순논리는 현실과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신문과 방송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인간 박근혜가 “언젠가 세상을 떠날” 비장한 어법으로 “모든 것을 바쳐” 그 규제 완화에 나서는 데 있다. 

하여, 간곡하게 경고한다. 듣그럽겠지만 제발 ‘쇠귀’가 아니길 바란다. 규제 완화로 국민 행복을 이루겠다는 비과학적 망상은 접기 바란다. 빠를수록 좋다. 대선에서 국민에게 공약한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시늉이라도 하라. 인간 박근혜가 모든 것을 바칠 대상은 규제 완화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다. 그게 다름아닌 당신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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