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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수사, 청와대 뜻대로 조응천 겨냥할 듯

 
'박관천 배후' 지목하는 조선·동아, 검찰 수사 방향 주목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17일 ‘박지만 미행 사건’ 관련 보고서를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한 이후 18일 신문들은 이러한 의혹을 기정사실화 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박관천 경정이 박지만 EG회장 측에 굳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허구의 사실을 전한 의도가 무엇인지 문제가 된다. 결국 여론의 화살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18일자 1면에 박관천 경정이 ‘박지만 미행 사건 보고서’를 청와대 밖에서 작성해서 박지만 EG회장에 전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했다.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 씨 측의 미행 사실을 정밀한 확인도 없이 보고서로 만들어 마치 내사보고서인 것처럼 박지만 회장을 속이고 건넸다는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정윤회 씨의 사주를 받고 박지만 회장을 미행한 것으로 지목된 인사가 이와 같은 의혹을 극구 부인함에 따라 검찰은 박관천 경정이 허구의 사실을 작성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다.

   
▲ 동아일보 18일자 지면.

<동아일보>는 이날 6면에서 검찰 조사를 통해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박지만 미행 사건’ 보고서의 구체적 내용과 맥락을 전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구체적인 오토바이 종류까지 언급되고 있다. 박지만 회장은 이 보고서를 통해 정윤회 씨에 대한 의혹을 갖게 됐는데, 검찰 조사에 의하면 이 보고서는 ‘엉터리’에 가깝다. 결국 검찰의 수사는 박관천 경정이 왜 이런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는지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검찰은 박관천 경정이 직속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과 별도의 비선라인을 형성하고 보고서의 작성과 전달을 공모했는지를 수사한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건 박관천 경정의 입장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4면 하단에 박관천 경정이 검찰에 체포되기 직전 의미심장한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박관천 경정의 발언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은 “내 입은 지퍼다. 그렇기 때문에 조응천 전 비서관이 민감한 일들을 시켰지, 남자가 비밀을 못 지키면 안 되는데 점점 이게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대목이다. 결국 이는 조응천 전 비서관을 향한 어떤 ‘메시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세속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혼자는 안 죽는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역시 <동아일보>와 같은 방향으로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이날 8면은 박관천 경정을 둘러싼 논란의 종합판으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조선일보>는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박지만 미행 사건’ 보고서가 허구로 결론날 경우 ‘비선 실세’ 논란의 한복판에 박관천 경정이 있는 셈이 돼 파장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경정 계급의 청와대 행정관이 날조된 미행설을 대통령 동생에게 보고하고, 실체도 없는 ‘정윤회 문건’을 청와대 문서로 만들어 공식 라인을 통해 보고할 수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 의문에 스스로 답을 내리고 있는데 “검찰은 박 경정의 직속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고 있다. 검찰에 소환된 박 회장 비서 출신인 전씨도 이른바 ‘조응천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전날까지 조 전 비서관에 대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했지만, 이날은 조 전 비서관을 조사할 이유가 생겼다면서 종전과 다른 입장을 내놨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결국 <조선일보> 역시 조응천 전 비서관에 화살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 조선일보 18일자 지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조응천 전 비서관에 의혹이 집중될 경우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 역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 조응천 전 비서관은 청와대로부터 이 사건의 ‘주범’으로 찍혔고 <조선일보>가 ‘조응천 그룹’으로 지칭하고 있는 사람들은 청와대 역시 ‘7인모임’으로 특정한 바 있다. 이 ‘7인모임’에 박지만 전 회장의 측근인 EG 출신 전모씨가 포함돼있기 때문에 결국 박지만 회장으로서는 곤란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박지만 회장 측은 조응천 전 비서관과 자신의 관계를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8면에 박지만 회장 측이 “조응천 전 비서관이나 박관천 경정으로부터 청와대 문건이나 동향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미행설을 나에게 최초로 말한 사람이 조응천 전 비서관 또는 전모 전 EG과장(위의 전모씨)라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박지만 회장 측의 이러한 ‘거리두기’는 17일 다수 언론들의 보도에서도 “조응천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나를 케어해준 사람에 불과”라는 등의 발언으로 확인된다.

여기서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은 이틀 전까지만 해도 검찰은 ‘7인모임’의 존재를 부정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청와대가 문건 작성·유출의 배후로 지목한 ‘7인모임’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연합뉴스>는 “청와대는 박 경정의 직속상관이었던 조 전 비서관이 엉뚱한 내용의 경위서를 보내오자 조 전 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측근들이 ‘조작’했다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주장대로 조작이 있긴 있었지만 주체는 ‘7인회’가 아니라 최 경위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고도 전했다. 최 경위는 서울지방경찰청 정보2분실 소속으로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모양새만 보면 검찰이 최소한 문건 유출의 책임에서는 박관천 경정을 비껴가도록 수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문건 유출과 생산의 문제를 분리하더라도 검찰이 ‘7인모임’을 굳이 실체가 없는 것으로 규정했던 것 역시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검찰이 ‘7인모임’의 실체가 없다고 언론을 통해 밝히면서 청와대가 무리하게 특별감찰을 벌여 ‘7인모임’을 특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인 바 있다. 검찰이 청와대를 곤란하게 하면서까지 이렇게 한 이유는 결국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비서관을 건드리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할 수 있다.

결국 검찰의 이러한 수사 내용은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보수언론이 박관천 경정에 화력을 집중함으로써 조응천 전 비서관까지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17일 지면에서 검찰의 수사가 죽은 최 경위에게 책임을 다 떠넘긴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는 기사를 배치한데 이어, 18일에는 <사건에 휘말린 경찰 정보라인 거의 패닉>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지난 20일간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던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청와대 밖으로 유출하고 언론에 흘린 장본인이 모두 현직 경찰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경찰이 뒤숭숭하다”면서 “정보 분야를 넘어 경찰 전체의 신뢰도 추락이 불가피하다는 낭패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경찰 관계자의 “국정농단 청와대 문건으로 시작했지만 처리되는 사람은 모두 경찰이라 뒤숭숭한 분위기”라는 발언을 재차 인용했다. 결국 ‘경찰이 뒤집어 쓴다’는 분위기를 강조한 것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검찰과 경찰의 대립구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대립구도의 맥락에서 보면 검찰이 박관천 경정의 수사를 껄끄러워 한 정황도 유추가 가능하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2005년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장 검사를 역임했고 2006년에는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맡았던 검찰 출신이다. 결국 조응천 전 비서관을 사이에 두고 검찰 및 경찰과 청와대 사이에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이 사이에서 보수언론들은 청와대의 편을 들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언론환경이 이렇게 조성되면 제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 검찰이라도 조응천 전 비서관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검찰과 언론의 도움으로 사건은 애초 청와대가 원했던 그림으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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