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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깎아 밸류업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억지

세금 낮추면 탈세 줄어든다는 주장…총수일가 시세조종 인정한 꼴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05.30. ⓒ대통령실


정부·여당이 상속세 완화를 추진한다. 상속세를 깎아주면, 총수일가가 주가를 낮추려 하지 않아 주식시장이 개선될 거라고 한다. 총수일가의 인위적인 주가 개입을 인정한 셈이다. 세율 낮추면 탈세가 줄어든다는 얘기여서,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국민의힘은 31일 제22대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겠다는방침을 밝혔다. 당은 “정부와 추가 협의해, 상속세 개편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상속세 완화에 불을 지핀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소액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국민들께서 다 같이 인식하고 공유해야,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 나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7일 “(밸류업을 위한) 상속세와 관련해 몇 가지 안을 놓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세법개정안에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속세 완화를 통해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접근이다. 총수일가 입장에서 자녀에게 회사 주식을 물려줄 때 주가가 비싸면 상속세를 많이 내야 해, 주가가 낮을수록 유리하다. 상속세율이 높으면 주가를 떨어뜨리려는 유인이 커진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총수일가 상속세 부담이 기업 저평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상속세 완화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상속세는 상속개시일(사망일) 앞뒤로 각각 두 달간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매긴다.

왜곡된 진단으로 엉뚱한 대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저평가는 상속 이슈가 걸린 일부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96이다. PBR은 기업의 순자산 대비 시가총액 비율이다. 이 수치가 1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자산 가격보다 낮다는 의미로, 저평가 기업으로 본다. 코스피 종목 924개 중 절반이 넘는 536개가 PBR 1 미만이다.

은행은 대표적인 저평가 기업이다.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KB금융은 국민연금공단이 최대주주이고, 사모펀드가 2대 주주다. 우리금융지주는 최대주주는 우리사주조합이다.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가 약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총수없는 기업인 포스코홀딩스와 KT의 저평가도 상속세로 설명이 안 된다.

실제 총수일가가 주가 조작을 시도한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정부·여당은 탈세를 막기 위해 세율을 낮추자고 주장하는 꼴이다. 총수일가가 일감 몰아주기로 사익을 편취하고, 다수 계열사에 임원으로 이름을 올려 배당 수익을 누리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총수일가의 사유화는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증시 유입이 적고, 한국 투자자가 미국 증시로 몰리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주장은 총수일가가 시세조종을 위한 합법적, 불법적 행위를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전체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하는 등 방안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속세를 5천억원 내야 했는데 4천억원으로 줄었다고 총수일가가 위법·편법 행위를 그만두겠느냐”고 했다.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거론…“정부가 나서 기업이익 대변”

정부·여당은 상속세율 조정과 함께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를 거론한다. 현행법상 최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상속할 때는 주식의 시장가격에 20%를 가산해 세금을 매긴다. 실제 최대주주 보유 주식이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통상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가격과 물량을 미리 정해놓고 장 마감 후에 거래 상대에게 일괄로 넘긴다. 이때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는 이른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는다. 최대주주의 주식을 받은 주체는 주식뿐 아니라 최대주주라는 지위도 함께 넘겨받는다. 최대주주 주식에는 시장가치뿐 아니라 경영권도 포함돼 있으니, 그만큼 값을 더 쳐주는 것이다.

명칭은 ‘할증 과세’이지만, 실제 거래된 가격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총수일가에게만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는 성격은 아니다. 시장가격은 1천억원이지만 실제 거래에서는 1,200억원을 받을 수 있다면, 1,200억원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게 합리적이다.

오히려 할증 과세가 낮게 산정돼 있어 ‘할인 과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20% 훌쩍 넘어 70%에 육박한다는 조사가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4~2018년 지분 거래로 최대주주의 변동이 발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기존 최대주주는 시장가격보다 평균 49%~68%의 프리미엄을 받고 지분을 양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 진영의 상속세 완화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상속세 공제 규모와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세법개정안을 내놨으나, 부결된 바 있다. 상속세 완화는 재계 숙원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7일 보고서 내 “현행 제도에서는 기업 가치가 증가하는 것보다 상속세 납부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최대주주에게 더 높은 효용을 주기 때문에 밸류업을 할 이유가 적다”고 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최근 “상속세 부담이 매우 과중하다”며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를 주장했다.

우석진 교수는 “5~10년 주기로 상속세 개편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번에는 밸류업이라는 탈을 쓰고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나서 기업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와 상속세율 인하가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반대가 거세다. 민주당 임광현 원내부대표는 29일 논평에서 “최상목 부총리가 대재산가 상속세 감세 추진을 또다시 밝혔다”며 “제도 변화의 정책적 실효성과 사회 파급효과에 대한 정밀한 연구와 분석 없이 속도전으로 상속세 감세를 또다시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낮은 상속세는 결국 부의 대물림을 야기할 것”이라며 “세 부담 없는 부의 대물림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우리 사회를 계급사회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이튿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의 상속세 완화 움직임에 대해 “나라 곳간을 비워서 부자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윤석열 정부의 모순적인 조세 정책에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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