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법재판소(주심 이정미 재판관)는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및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해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소속인 의원들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며 해산을 선고했다. 헌재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를 바라보는 신문들의 논조는 극명하게 달랐다. 보수성향으로 평가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은 이를 ‘역사적 심판’ 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러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의 감격한 논조와 달리 방대한 분량의 지면 어디에서도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 결정의 명분과 정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종북 정당이라 해산했다는 동어 반복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사상과 정치적 결사의 자유는 물론이고 통합진보당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실질적인 위협을 끼쳤는지에 대한 설명도 검증도 부족하다.

동아일보는 이 날 ‘종북 통진당 해선 민주 헌법 수호 위한 역사적 심판이다’ 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해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인 민혁당 전력자인 그는 법치주의와 선거제도를 뒤엎는 부정 경선으로 선출돼 국회를 ‘혁명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고 썼다. 

이어 동아일보는 “통진당은 2011년 12월 창당 이후 북의 핵 개발과 인권 탄압에 철저히 눈감은 반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할 만큼 북한을 추종한 정당”이라며 “이념의 다양성은 지켜야 할 가치이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에게까지 관용을 베풀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국민과 유권자가 심판할 몫”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한 셈이다. 

의원직 상실에 대해서도 동아일보는 "의원직을 유지하게 하면 정당해산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의 대표성보다 헌법 수호 의지를 밝힌 헌재의 결정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국민의 선거권이 헌법기관에 의해 제한됐다는 점에서 충분한 설명과 신중한 처리 절차가 필요해보인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1면 기사
 
   
▲ 동아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당내 계파갈등과 구시대적 사고 등을 들어 이 같은 헌재의 판단이 결국 당연한 결과라는 식으로 전했다. 조선일보는 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들의 “진보진영이 자력으로 통진당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고 헌재에 부담을 떠넘긴 것 같아 부끄럽다”라는 말은 인용했다. 하지만 당내에 문제가 있는 것과 정당을 해산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나아가 새정치민주연합에게도 화살을 겨누는 시도도 보였다. 동아일보는 “지난 3년간 통진당이 우리 사회를 어지럽힌 데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맺어 국회 진출의 길을 열어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통진당의 종북성이 백일하에 드러난 최근에도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문재인 전 비대위원은 통진당 해산 반대 주장에 앞장섰다”고 썼다. 

반면 진보성향으로 여겨지는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이번 헌재 판결에 우려를 보였다. 한겨레는 20일자 지면 신문에서 ‘민주주의의 죽음, 헌재의 죽음’ 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1면 머리기사로 발행해 헌재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해당 사설에서 이번 헌재 판결을 두고 “1959년 이승만 정권 당시 진보당은 정부 부처의 등록취소로 해산됐지만 1958년의 대법원은 ‘진보당의 정강·정책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며 “적어도 이번처럼 정당의 주요 인사와 정당 자체를 억지로 동일시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는 것이다.

이어 한겨레는 “헌재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이들의 주장이 북한의 그것과 유사하므로 북한 동조가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판단’했다”며 "권위주의 시절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이 펴던 막무가내식 논리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실제 헌재는 진보당 당 강령 등에서는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을 찾지 못 했지만 '진정한 목적' 이나 '숨은 목적'을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 한겨레 1면 사설
 
   
▲ 경향신문 1면 기사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우리뿐 아니라 서구의 여러 정당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개념이다. ‘진보’라는 이름 앞에 무조건 종북 딱지를 붙인다면 대한민국에 멀쩡한 곳이 어디 있을까 싶다"며 " 굳이 정당해산이라는 충격요법이 아니라 형사 사법절차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의율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정당해산심판 청구 자체가 순수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알려질 당시는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이 정점에 달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치부가 드러난 시기였다는 것이다. 또 이번 헌재 발표 역시 청와대 비선 실세와 정윤회 등의 국정농단 의혹을 놓고 국민적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시점이다. 

중도성향으로 평가되는 한국일보도 이번 결정을 두고 "논거가 자의적이라고 볼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지나친 확대 해석" "가정한 근거한 논리 전개도 헌법재판소 답지 못 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셈" 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일보는 "헌법적 가치 수호라는 헌재 결정이 거꾸로 민주주의 가치의 침해와 훼손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신문들은 같은 해외사례를 두고도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독일공산당의 해산 사례를 두고 경향신문은 "사상이나 이념을 정면으로 문제삼은 것은 독일공산당 해산이 대표적 사례인데 이 결정을 지금까지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한 반면 동아일보는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냉전 체제에서는 국가 존립을 위협하고 헌법질서에 배치되는 정당을 용납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