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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권력 파헤치기 3부작의 검찰편 <펀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1/15 09:11
  • 수정일
    2015/01/15 09: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명박·박근혜 실체
이거 정말 흥미로운데?

[게릴라칼럼] 한국의 권력 파헤치기 3부작의 검찰편 <펀치>

15.01.14 18:13l최종 업데이트 15.01.14 19:35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아귀' 같은 검찰 수뇌부의 이전투구를 처절하게 까발리는 SBS 월화드라마 <펀치>. 이 작품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확실하다. 비서실장은 있는데 대통령은 없다. 현존하는 한국 드라마 작가 중 현실을 바로 반영하는데 선수 중 선수랄 수 있는 박경수 작가의 스타일에 비춰 본다면, 김기춘 비서실장은 등장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없는 꼴이다. 그런데, 진짜 없다. 

13일 방송된 9회가 특히 그랬다. 극 중 현 검찰총장인 이태준(조재현 분)과 법무부장관 윤지숙(최명길 분)은 청와대에 자주 들러 비서실장에게 현안을 보고했다.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특검 실시를 요청하고 물러나는 청와대의 복도엔 한국 전직대통령들의 초상화(혹은 사진)가 걸려 있다. 이승만·박정희는 물론 전임 이명박 대통령까지. 당연히, 거기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 

재밌지 않은가. 전직 대통령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캐릭터에게는 모두 (9회가 지난 현재까지도) 현실과 같은 직책이 자막으로 부여되며 확실히 각인된다. '반부패부'란 대검찰청 부서 역시 마찬가지다. 캐릭터는 허구이되 에피소드나 내적 환경은 현실을 가능한 최대한으로 반영하기. 박 작가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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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펀치>의 한 장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나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대통령의 자리는 공석이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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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자리에서 검찰과 법무부 관련 현안들을 지시하는 장면이 매번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야말로 '왕실장' 혹은 '기춘대원군'이라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드러난) 행태를 드라마 속에서 재현하는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리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낙마시킨 소문의 출처가 청와대란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것을 돌이켜보면,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과 독대하지 않는 대통령이야말로 박경수 작가가 현실을 반영하는 극치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펀치>가 지시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분신들 

헌데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박경수 작가는 간헐적이지만 끊임없이 전직 대통령을 소환한다. 단 한 명으로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펀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어른거린다. 일단, 주인공이자 악역인 이태준과 그 주변부 인물은 이명박의 분신들이라 해도 거리낄 게 없어 보인다. 

일단, 물욕과 개인주의, 가족주의의 화신인 이태준의 형 이태섭(이기영 분)은 전 세진자동차의 대표이자 오션캐피탈의 대표였다. 여기선 '분신'이란 말을 잊으면 안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전 이상득 의원을 직접 연상하는 건 무리지만, 이태준이 '못난' 형 이태섭을 이끌어줬다는 설정은 검찰이 재벌을 수호하는 금권의 시녀 역할을 자임해왔다는 직설적인 비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태준, 아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바타가 등장한다. 이태섭과 주종관계로 얽혀 있었던 오션캐피탈 김상민 회장(정동환 분)이 그다. 박경수 작가는 그에게서 '현대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하다 못 해 이명박 대통령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까지 덧씌우는 기지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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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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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주인공들과의 거래를 마무리한 김상민 회장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플래카드 앞에서 강연을 한다. 맞다. 현대가 고 정주영 회장의 그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말이다. 이 강연 동영상은 주인공 박정환(김래원 분)이 부패한 검찰 수뇌부에 맞서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다. 동영상…. 여기서 단어 하나가 연상된다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광운대 'BBK 동영상' 말이다.   

박경수 3부작, 한국사회의 권력을 해부하다 

박경수 작가는 이미 미니시리즈 데뷔작 <추적자>를 통해 대선을 둘러싼 재벌과 정치권의 결탁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을 움직이는 재벌가 사위이자 대선 후보인 강동운(김상중 분)과 그에 맞서는 소시민 '형사' 아버지 백홍석(손현주 분)의 분투를 무려 투표 독려와 연결시키며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후 그가 쓴 <황금의 제국>은 (용산참사를 연상시키는) 재개발 투쟁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대신해 재벌가에 투신해 '괴물'이 되어가는 장태주(고수 분)를 통해 "가족까지 팔아 치우는 재벌가는 어떻게 한국사회를 움직이며 자멸해 가는가"에 대한 무시무시한 보고서였다.

'한국 권력 해부' 3부작의 마무리는 검찰이다. 박경수 작가가 겨냥하는 건 결국 정의로운 검찰이나 부패한 검찰 따위의 일차원 적인 묘사가 아니다. '검찰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직업 묘사에도 관심이 없다. <펀치>는 단도직입적으로 검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 그 권력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정밀 보고서'와도 같다. 

재벌(가 형)과 결탁한 검찰총장은 어디까지 부패할 수 있는가. 개인(아들)의 (병역)비리를 감추기 위해 법무부장관은 어떻게 힘을 쓸 수 있는가. 이를 위해 검찰(권력)은 언론과 정치권을 어떻게 쥐고 흔드는가. 그렇다면, 우리(와 박경수 작가)는 그 검찰이 어떠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가. 

박경수 작가는 결국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 가는 (니체적) 인간들에게 관심이 많다. 아니, 한국사회의 상층부로 올라간 이들은 대개 그러거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황금의 제국>의 장태주가 대표적이고, <펀치>의 윤지숙 장관도 그러하다. 이미 태생부터 재벌가 태생이거나 권력을 쥔 이들은 이미 괴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나쁜 판본 박정환 검사가 가리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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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법무부 장관이 지나는 복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직 대통령들의 얼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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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는 괴물이 되어가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서야 정신을 차린 박정환이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딸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는 <추적자>의 백홍석이나 재벌가에 들어가 또 하나의 괴물이 되어가는 <황금의 제국>의 장태주와 또 다르다. 

그의 활약상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나쁜 판본에 가깝다. 박정환은 7년간 '이태준의 개'로 살았기에 그들의 검은 거래나 힘없는 자들을 약탈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를 그 길로 빠지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하얀 괴물이자 진보주의자로 비치는)윤지숙 장관이었다. 결국 자신이 스스로 '암덩어리'와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은 뒤에서야 괴물과 맞서는 박정환의 '뇌종양'은 박경수 작가가 그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경고이자 선한 바람과도 같다.  

요즘 (한국영화에서 현 사회의 시대정신이라는 듯 자주 등장시키는) "나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은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박경수 작가는 검찰 선서를 가슴에 깊게 새긴 정의파 신하경 검사(김아중 분)를 등장시키는 건 <추적자> 때로 충분했다고 보는 것 같다. 한국 정치판과 같은, 차악과 차악의 대결은 '이태준 vs. 박정환'에 이어 윤지숙 장관의 뒤늦은 참전으로 점입가경과 같은 형국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삼파전은 이미 <황금의 제국>에서 손현주, 이요원, 고수가 불꽃 튀는 연기로 체험한 바 있다. 박경수 작가는 여기에 괴물이 되기를 아예 거부한 신하경 검사를 내세우면서 <펀치>를 훨씬 더 풍성하고 숨 쉴 여유가 있는 드라마로 만들어 가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두 나쁜 놈의 극한의 대결을 그리는 건 무리가 있을 테니.    

<대부>를 경유해 한국사회 권력자들에게 날리는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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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수 작가의 주인공들. <추적자>의 손현주, <황금의 제국>의 고수, <펀치>의 김래원.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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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현실반영 3부작'을 레퍼런스와 비교해 보는 일은 매우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는 동시에 그 자체로 유의미한 해석을 안겨 준다. 바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3부작 <대부> 말이다. <대부>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마피아가 되어가는 과정을 비장하게 그리며 미국의 역사가 폭력으로 얼룩진 이민자의 역사라는 알레고리였다. 그 중심엔 물론 가족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심지어 <추적자>의 메인 테마는 <대부>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다). 

<대부>의 자장을 흡수한 박경수 작가가 그 가족주의의 처절한 생존과 몰락, 그리고 폭력을 한국식으로 변환한 것이 바로 재벌가다. 아마도 '재벌이 깡패(마피아)다'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을 듯한데, <펀치>에서 그 가족주의에서 비롯된 권력의 폭력은 이태준으로 대변되고 있다.  

자, 그러니까 두 편 모두 박근형이 연기한 <추적자>의 서회장이나 <황금의 제국>의 최동성 회장의 그 재벌가 총수의 금권이 정치권에 이어 검찰에까지 힘을 미친 것이 <펀치>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아마도 박경수 작가의 다음 소재는 언론이 아닐까).  

9회 마지막 장면에서 박정환은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시네. 총장님, 저 감옥에서 죽겠습니다"라는 명대사를 날렸다. 이태준과 함께 지옥에 떨어지겠다는 선포였다. 그 이태준 검찰총장(과 그의 주변 인물들)은 앞서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CEO에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을 아른거리게 만든다. <펀치>는 박경수 작가가 그 괴물과도 같은 한국사회의 권력자들에게 날리고픈 통렬한 복수의 한방과 같아 보인다. 강렬한 두 글자 제목 '펀치'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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