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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경협시대-니들이 러시아를 알아?

 
이규정 2015. 01. 29
조회수 205 추천수 0
 

  2014년 7월3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주석으로는 처음으로 북·중 정상회담보다 먼저 한·중 정상회담을 열었다. 7월21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중국을 “줏대 없는 나라”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9월부터 북한은 노골적으로 친 러시아 행보를 내딛는다. 리수용 외무상, 최룡해 노동당 비서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러시아를 연달아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북·러 경제협력에 관해 깊은 논의를 하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미국은 북·미 탐색대화와 대북제제 카드를 동시에 쥔 채 행동에 나섰다. 7월5일 로버트 아인혼이 언론 기고문을 통해 북·미 탐색대화를 주문한 이후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차관보, 스티븐 보스워즈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대화파’들이 북·미 탐색대화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한편으로 미국은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상정을 주도하고 소니 해킹사건을 계기로 북한에 경제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남오세티아 공화국을 놓고 냉전에 버금가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이제 북한을 주시하고 있다. 미·러 관계는 고르바쵸프 전 소련 대통령이 최근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핵전쟁에 대해)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을 만큼 악화되고 있다. 당분간 한반도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러시아를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 통’으로 꼽히는 차윤호 경북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를 만나 한반도 정세와 러시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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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윤호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인 최초 러시아 연방 변호사다.

 

  -우선 최근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소니해킹 사건을 어떻게 봤나? 러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 소행이라는 확신이 없다”고 미국에 응수하고 있다.

  =사이버전쟁의 특성이 그렇다. 포탄이 떨어진 건 분명한데 누가 그랬는지 잡기 어렵다. 하지만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그렇게 나올 수는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1993년 모스크바 유학 시절 ‘최고 존엄’에 대한 북한사람들의 인식을 느낀 적이 있다. 
  모스크바 전철역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을 만난 적이 있다. 북한직원은 노동신문 수십 부를 들고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서 아는 채를 하니 그가 신문 한 부를 줬다. 1면에 김일성 주석과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함께 나온 큰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무심코 신문을 반으로 접어서 옆구리에 꼈다. 그랬더니 북한 관리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떻게 수령님 사진을 꾸길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성향을 생각하면 김정은 암살을 다룬 영화를 만든 제작사에 더한 짓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나 미국 의회까지 나서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하라고 압박하는 모양인데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사이버전쟁의 국제법 격인 ‘탈린 매뉴얼’과 맞지 않다. 사기업 공격에 국가차원으로 대응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카드로 경제제제가 있을 텐데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지 않는 대북 경제제제는 큰 성과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북한과 탐색대화를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경제제재 등으로 북한을 압박한다. 한편으로 북·러 관계는 큰 진전을 보이고 있는데. 

  =오바마 행정부는 몇 년 전부터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을 천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동, 유럽, 우크라이나, 러시아, IS(Islam State) 문제 등으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태다. 마음만 아시아에 있지 몸은 여기저기 있는 상태다. 반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기 들어서 ‘극동·바이칼 지역 사회경제 발전전략 2025’를 승인했다. 대규모 투자단지, 인프라 재건 등에 2025년까지 약 380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을 중심으로 아시아 패권을 유지하고 확장하려 한다. 
  김정은은 2014년12월17일을 보내며 김정일 사망 3주기를 넘겼다. 이른바 ‘3년 탈상’을 했으니 이제 자기 색깔을 분명히 내려 할 것이다. 대상이 러시아든 중국이든 북한은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무대에 진정한 데뷔를 하려고 계획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를 겨냥해 ‘용과 코끼리의 공존’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중국 역시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진출하려면 한반도를 잡아야한다. 미국은 소니해킹사건을 빌미로 한반도 긴장을 유지시켜 미국의 패권을 지키려 하는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아시아로의 복귀’가 실현될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에 러시아가 아시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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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진항 러시아가 장기임대 아래 투자한 제3부두 전경

 

 러시아는 아시아에서도 특히 극동아시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2012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열었다. 전략적으로 동진정책을 쓰고 있다는 증거다. 러시아에게 극동은 한마디로 ‘깜깜한 지역’이다. 러시아는 이곳에 약 24조원을 투입해 APEC회의를 준비하고 4~50만 인구를 55만 인구로 늘려 놨다. 도로, 공항 등 기반시설을 재정비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구증가는 러시아에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극동 쪽 러시아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러시아는 극동에서 APEC회의를 개최함으로써  동진정책을 밀고 가는 동시에 외자유치를 모색하려 했던 것이다. 외국정상들을 낙후한 극동으로 초대해 투자 좀 하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높은 유가 덕택에 러시아 경제는 호황기였다. 이 때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상위 3위에 들기도 했다. 지금도 높은 외환 보유고 때문에 경제위기를 그나마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유가가 반 토막 났다. 그러다보니 러시아 경제가 굉장히 어렵다. 달러 대비 루블 가치도 2배 가까이 떨어졌다. 2014년 초 1달러에 30~32 루블 하던 것이 지금은 60~68 루블까지 내려갔다. 러시아는 국가 예산의 60%가 에너지 자원이다. 유럽에서 판로는 뻔하고 정치적 불안감이 너무나 크다. 확장이 불가능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극동이다.

  -극동아시아에서의 러시아는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가? 러시아가 극동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시도한 조치도 궁금하다.

  =지난해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푸틴은 4천억 달러 천연가스 계약을 따냈다. 이 천연가스는 러시아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으로 간다. 중국은 국제시세보다 좀 싸게 가스를 공급받게 됐다. 이로써 러시아 경제에 숨통이 트였고 중국과 러시아는 확실한 밀월관계를 만들어 놨다. 
  그 다음으로 러시아는 새로운 판매처를 모색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한국 더 나아가서는 동남아시아까지 러시아 자원의 잠재적 고객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려 한다. 20년 전부터 러시아는 한·러 경제협력에 큰 기대를 걸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형제국가인 북한을 재껴 놓고 경제협력을 위해 한국과 수교한 역사가 있다. 당시 한국도 수많은 양해각서(M.O.U)를 남발하고 러시아에 기대를 줬다. 
  하지만 그렇게 1991년부터 10년이 지난 2001년, 러시아에서 한·러 경제교류협력에 낮은 점수를 준 것이다.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해 푸틴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북한의 경제적 가치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러 경제협력 중 나진항이 긍정적인 모델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극동아시아 지도를 한번 보자. 중국이 동해로 가는 길목을 러시아가 꽉 막고 있다. 중국은 동해로 나가려면 북한이나 러시아를 통해야 한다. 러시아는 이 점을 강력한 무기로 삼는다. 나진항에는 1~3번 항구가 있다. 1~2번 항구는 북한이 쓰고 3번 항구는 러시아가 임대받았다. 3번 항구의 물류사업에서 북·러 경제협력 모델이 나왔다. 
 러시아는 자기 자본으로 러시아와 압록강 하류의 하산 사이에 54km 철도를 깔았다. 시베리아에서 나진으로 가는 길을 낸 것이다. 러시아 유연탄 4만 톤이 북한 내 항구를 통해 포항제철로 이동했다. 유연탄은 화력발전소, 제철소에 필수적인 자원이다. 이것은 남북·러 삼각무역 모델이다. 
 러시아는 새로운 판매처가 생겨서 좋고, 북한은 항구 이용료를 받아서 좋다. 톤당 8 달러 정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남한은 에너지수급 다원화 전략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 ‘윈-윈’을 뛰어넘은 ‘윈-윈-윈’ 전략이다. 그리고 이 모델은 개성공단보다 더 확실한 안전장치를 갖고 있 다. 러시아가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때문에 북한이 ‘항구 폐쇄’ 같은 카드를 쓰기도 부담스럽고 만의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도 ‘공급자 원칙’이라는 게 있다. 러시아의 책임성이 크다. 
  그런데 이 북·러 경제협력에 남한이 끼어든건 편법이다. ‘5.24 조치’ 때문에 북한에 직접투자를 못한다. 한국은 북·러 합작회사의 러시아 지분의 절반을 매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가 갖고 있는 70% 지분의 절반을 매입하는 방안이다. 제2의 나진항구 같은 걸 꾸준히 만들어 북한을 자본주의 체제에 더 자주 노출시켜야 한다. 러시아는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 3기 들어서 ‘극동개발부’를 신설했다. 기업인들도 나서야 하고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할 것이다.

  -북·러 경제협력의 진전이 남·북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북·러 경제협력이 가속화되고 이것이 북·러 군사협력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북한은 남·북 대화나 북·미 대화를 당장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늘 그래왔듯이 북한은 새로운 정권을 기다릴 것이다. 비록 남·북 정상이 최근 정상회담 의사를 주고받았으나, 이와 무관하게 남·북 관계 역시 쉽사리 경색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을 강하게 몰아붙이면 북한은 러시아에 더 붙어버릴 것이다. 
  다만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선다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2월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 수위를 조정한다든지, 북·러 경협에 적극 참여해서 남·북 별도의 대화채널을 갖는 등 방법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규정 디펜스 21+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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