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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위기에 몰린 홍준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5/09 03:16
  • 수정일
    2015/05/09 03: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모래시계 뒤집혔나... '돈 전달자'에 정치생명 걸렸다

[인물탐구] 최대 위기에 몰린 홍준표

15.05.08 21:33l최종 업데이트 15.05.08 21:3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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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종영 소식을 다룬 <경향신문>의 1995년 2월 17일자 기사.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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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국회의원을 할 때도, 도지사를 할 때도 늘 '모래시계 검사'란 말이 따라붙는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래시계>는 지난 1995년 1~2월 SBS가 방영, 평균 50.8%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다.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시간대엔 서울 시내에 행인도 뚝 끊겨 '귀가시계'라는 별칭도 얻었다. 당시까지 SBS는 수도권에만 송출돼 방송을 보지 못한 이들이 많았고, 전국 송출이 이뤄진 1998년에 재방송되면서 또다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홍 지사의 수식어가 된 건 극중 등장인물 우석(배우 박상원)이 홍 지사를 모델로 각색된 인물이란 점 때문이다. 1995년 1월 1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극 중에서 우석은 비료 도둑 누명을 쓰고 경찰에서 억울한 고초를 겪은 아버지로부터 '너는 나중에 검사가 돼라'는 말을 듣고 검사의 길을 걷게 되는데 홍 검사도 마찬가지 이유로 검사가 된 것이다. 홍 검사가 고3이던 71년 12월 어느 날, 홍 검사의 아버지는 농협 창고에 보관 중이던 비료 3백 포대를 훔쳤다는 모함을 받고 파출소에 끌려갔다. 아버지는 이틀간 밤샘 조사를 받으며 온갖 시달림을 당한 끝에 간신히 누명을 벗고 풀려났다. 

그러나 이때 감수성 예민한 홍 검사가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그는 당시 이미 육사(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합격통지서를 받은 상태였으나 '법조인이 돼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당찬 다짐을 하고 고려대 법대로 진로를 바꿨다."

이는 연출을 맡은 고 김종학 PD와 작가 송지나씨도 각종 인터뷰에서 인정한 내용이다. 특히 <모래시계>의 후반부엔 슬롯머신사건을 수사한 홍준표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카지노-조직폭력배-정치인의 삼각구도는 홍 지사가 강력부 검사로 겪은 조직폭력배에 대한 경험과 슬롯머신사건 수사에서 나타난 도박업자-정치인의 연계를 하나로 엮어놨다.

극 중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실장으로 등장, 권력을 휘두르다 강우석 검사에 의해 법정에 서게 되는 강동환(배우 김병기)은 실제 안기부장 특보를 지낸 이력이 있는 '6공화국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과 유사점이 많다. 

극 중에선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부장검사가 수사자료를 빼돌리기도 하는데, 실제 슬롯머신사건에서는 이건개 당시 대전고등검찰청장이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정덕일 형제에게 수사정보를 흘리며 도피를 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준표 검사는 이건개 고검장도 구속했다. 

그러나 극 중 박태수(배우 최민수) - 윤혜린(배우 고현정) - 강우석 간의 삼각관계는 홍 지사와는 별 상관이 없다. 광주민주화운동 부분도 마찬가지다. 

홍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모래시계 검사'

<모래시계> 드라마 방영 전부터도 홍준표 검사는 '소신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1989년 서울 남부지청 특수부로 배치된 홍 검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인 전기환씨의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탈혐의를 수사, 전씨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이학봉 당시 민정당 의원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후 특수부에서 형사부로, 다시 광주지검 강력부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홍 검사는 1991년 국제PJ파의 두목 여운환과 그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해 김태촌 검거 이후 조직 폭력배 수사의 최대 성과를 올렸다. 또 조직 폭력배들의 건설공사 입찰 개입을 수사, 일신종합건설 등 광주·전남 지역 건설 회사 입찰 담당 임직원 17명을 구속했다. 

홍 검사가 서울지검에서 한창 슬롯머신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인 1993년 5월 20일 발행 <시사저널> 기사는 홍준표 검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한국판 피에트로 검사, 조폭 검사, 풍차에 돌진해 들어간 동키호테 검사, 통제 불능의 소신 검사, 이른바 인기 절정의 김영삼 대통령 사인을 두 장 받아야 그의 사인 한 장과 바꿀 수 있는 탤런트 검사….

요즈음 언론이 묘사한, 조직 폭력과 그 비호 세력과의 한판 싸움을 벌이는 한 평검사의 모습이다. 어쩌면 건국 이래 한 검사가 이처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인기가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를 구상하는 데에 모티브가 됐고, <모래시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그에게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타이틀이 붙었고 이는 홍 지사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됐다. 

이후 홍 지사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오직 정의만 추구하는 가난한 검사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1995년 10월 검사직을 관둔 홍 지사는 1996년 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하면서 '모래시계 홍준표'라는 제목의 만화 선거공보를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 지사는 1999년 3월 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을 확정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그러다가 2001년 10월 서울 동대문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고, DJ 정권의 권력형 비리 사건 '이용호 게이트'가 터져 있는 상황에서 부패 척결에 앞장선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당선됐다. 이후 4선 의원까지 지내는 동안 홍 지사는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되기도 했고, 대표직에서 밀려난 뒤에도 경남도지사에 당선되는 등 정치적 부침을 거듭했다. 그 동안에도 모래시계 검사라는 말은 언제나 홍 지사의 이름 앞에 있었다.

하지만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1억 원을 주고 받았다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직전 쪽지와 인터뷰로 인해 검찰의 수사대상이 됐고 8일 소환조사를 받는, 정치인생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돈 전달자와 목격자의 증언으로 박철언 주장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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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의 질문 뿌리치는 홍준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날 홍 지사는 "이런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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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지사는 성 회장의 돈을 받지 않았다고, 앙심을 품고 죽은 사람이 남긴 말을 믿을 수 있느냐고 항변해왔다. 하지만 결정적 증인, 성 회장의 돈을 전달했다는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진술이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홍 지사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 부분은 홍 지사를 모래시계 검사로 만든 1993년 슬롯머신사건 때와 매우 흡사하다. 박철언 당시 의원을 구속시켜 처벌받게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증언도 바로 '돈 전달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5월 3일 오후에 자진 출석하겠다던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를 같은 날 새벽 기습 체포한 홍준표 검사는 조세포탈혐의로 정씨를 구속했다. 구속 7일 만에 정씨의 입에서 '박철언에 5억 원을 주고 1990년 특별 세무사찰을 막았다'는 진술을 받았다. 하지만 물증이 없었다. 

돈 전달자는 정씨의 동생인 정덕일씨였다. 또, 그 사이에는 박 전 의원과 가까운 독신 여성 홍성애씨가 있었다. 검찰에 불려간 홍씨는 박 전 의원과의 관계를 부인했지만, 결국 '정덕일이 돈이 든 가방을 박철언에 주는 걸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홍 검사는 위헌결정을 받아 지금은 없어진 제도인 '공판 전 증인신문' 제도를 활용해 홍씨의 진술을 증거로 남겨놨다. 

이제 문제는 행방이 오리무중인 정덕일씨였다. 이건개 고검장의 2~3개월 숨어있으란 말에 서울과 경기지역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전전했던 정덕일씨는 구속된 형 정덕진씨의 설득으로 자수, 체포됐다. 홍 검사는 결국 돈을 준 사람과 전달한 사람, 또 전달 과정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 모두를 확보했다. 박철언 의원이 끝까지 '정덕일을 알고 지냈지만 돈을 받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홍 검사의 손을 들어줬다. 

역사는 반복된다... 모래시계 뒤집혔나? 

모래시계는 위쪽 모래가 다 떨어지면 멈추지만 다시 뒤집으면 똑같은 형태로 작동한다.  드라마 연출자와 제작자는 '과거의 일들이 형태만 조금씩 바꿔 반복된다'는 뜻으로 드라마에 이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모래시계가 뒤집힌 것인가? 수사와 향후 있을 지도 모를 재판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돈 전달자의 증언 덕에 세상에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떨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이번엔 자신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이의 진술 때문에 검사 출신이란 자부심도, 정치적인 자산도 모조리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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