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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의혹,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돈’때문에 한센병력 위조? 일벌백계해야
 
임두만 | 2015-08-08 10:11: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요양병원은 흔히 영어로 convalescent hospital이라고 쓴다. 순전히 영어의 뜻으로만 보자면 ‘회복기 병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영어의 뜻이 어떻든 현재 우리나라 요양병원은 솔직히 말하면 현실적으로 현대판 고려장이다. 완치가 불가능한 환자들이 죽을 때까지 머물다가 가는 곳. 사실상 영어의 의미와는 정반대라는 것.

이런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의 입장은 어떨까? 기자가 만나 본 의사들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말기암 환자를 제외한 노인성 질병 환자가 ‘와상 상태’로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일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의 요양병원 입원에 대해 ‘회의적’시각을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도 확인했다. 즉 약물이나 의료기기의 힘으로 ‘생명’만을 연장시키는 것을 회의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런 환자들이 ‘돈벌이 수단'이란 점에 대한 회의… 인간의 존엄에 대한 회의…

그렇더라도 우리나라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 생명연장을 위해 대소변까지 누워서 해결해야 하는 노인들의 수가 전국적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을 것이라는 유추는 어렵지 않다. 이게 고령화 사회의 실상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국가도 개인도 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인식에 대한 불식의 방법도 마찬가지다.

현재 중풍, 파킨슨병 같은 노인성 질병으로 와상 상태가 되거나 알츠하이머 등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을 때 ‘돈’ 없는 서민은 환자도 보호자도 극한 상황에 도달한다. 이런 환자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가족은 몇 개월 동안 면회조차 없이 버려두는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목도하는 의사들은 무조건적 생명연장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고 말한다.

결국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은 돈이다. 그런데 돈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게 아니라 법과 제도 및 정책이 만들어 낸 좋은 예가 있다. 바로 국립소록도병원이다. 소록도 병원의 한센인들이 받는 대우를 일반 노인들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노인요양의 모범 답안일 수 있다.

▲소록도병원 본관 정경 © 임두만

국립소록도병원은 한센인 치료병원으로 1916년 5월 17일 설립되었다. 올해로 100년, 2016년 5월17일이면 딱 100돌이다. 하지만 지나간 100년 안에 담긴 소록도의 역사는 눈물과 한숨과 절망과 비탄과 고통과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다. 역사적 고증을 위해 남겨진 ‘감금실’의 감방,  ‘검시실’의 시신해부대와 강제 단종시술을 한 단종대, 부모와 자녀를 강제로 갈라놓고 한 달에 한 번 먼 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했던 수탄장… 인간으로서 인간임이 서글펐던 역사다.

▲부모와 격리시킨 자녀들을 한달에 한 번 대면하게 했던 수탄장(눈물과 탄식의 현장) 대면 면회는 언제나 아이들을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세웠다고 한다. © 임두만
▲일제 강점기 강제수용 된 한센인들의 피와 땀과 한숨과 고통이 만들어 낸 소록도 중앙공원 내 구라탑(나병은 낫는다=나병을 구한다)는 뜻을 담은 탑 이름이 구라탑이다. © 임두만

그뿐인가. 연못 한 가운데 예수 십자가상을 세워놓고 당시 한센인들의 고통을 기리는 벽돌공장터, 일본인의 채찍을 맞아가며 옮겨 심은 희귀종 나무숲이 우거지도록 조성한 중앙공원, 먼발치 산중턱에 세워진 ‘만령당(무연고 유골 안치실)’… 현재도 섬 안 곳곳에 눈을 돌리면 눈물과 한숨과 절망과 비탄과 고통과 죽음으로 점철된 역사는 가득하다.

그러나 100년의 세월은 이 섬을 천국으로 변화시켰다. 지금은 한센병이 발병하지 않으며 기존 환자의 치료도 끝난 상태이므로 한센병 후유질환 노인들의 요양병원을 겸하고 있는 이곳 국립소록도병원이야말로 맨 앞에 언급한 convalescent hospital(회복기 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센인 인권운동을 위해 오랜 시간 열정을 바쳤다. 한센인들이 일본정부와 강제격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할 때 여러 차례 일본현지를 방문, 한센인들과 함께 배상요구 시위에 참여했다.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조사와 심포지엄, 한센인 단체의 자체토론회와 집회, 한센인특별법 제정 국회 공청회와 법안심사소위, 곳곳마다 한센인 권리주장을 위한 장소는 함께하며 그들에게 힘을 보탰다. 이를 위해 전국을 돌며 한센인 정착마을 역사조사도 했다.

근 10년 이상의 시간을 이처럼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그리고 특별히 한센인 당사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인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센인에 대한 대우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갔다. 이는 물론 김대중 정부 이후 국가와 사회가 복지와 인권을 중시하는 세태가 된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앞에서 일한 사람들과 그들의 뒷받침한 사람들의 노고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제강점기 강제격리에 대한 일본배상을 시작으로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했던 차별금지와 복지사각지대 해소 등도 점차적으로 이뤄져 나갔다. 이윽고 국회에서 한센인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정부는 그동안 차별의 대명사였던 한센인들에게 ‘보상차원의 복지행정’을 실시했다. 한센인하면 떠오르는 섬 소록도는 좀 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특별예산이 지원되어 주거시설이 현대적으로 개선되었다. 입원환자 대우는 어느 국립병원이나 건강한 일반인들이 고액의 요양비를 부담하면서 누리는 혜택에 버금갈 최상의 노인요양 혜택을 받게 됐다.

현재 국내의 한센인(한센병력자) 수는 15,000여 명 남짓, 평균연령 75세. 국립소록도병원 평균 수용인원은 500명 안팎… 전체 한센인 수에 비해 소수지만 모든 비용이 무료인데다 요양대상 환자 대우가 최고급 요양병원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때문에 재가환자들은 이제 소록도를 ‘천형의 섬’이 아니라 ‘천국의 섬’으로 인식, 입원 희망자가 대기중인 현실이다.

입원환자 1인당 월 50만 5천 원, 이 돈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및 한센인특별법을 기준으로 생계능력이 없는 한센병력자 노인들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액수다. 하지만 국립소록도병원은 이 돈을 입원환자 개인들에게 개별적으로 지불하지 않는다. 입원환자의 의식주, 치료 및 임상관리, 간호 및 요양보호, 심지어 사망 후 화장에 드는 비용까지 병원 측이 책임지고 사용한다. 한마디로 입원 이후 모든 비용은 무료다. 개인부담이 단 1원도 없다.

그렇다면 환자 1인당 월 50만 5천 원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없다. 국립병원이므로 부족한 돈은 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지원된다. 특히 전국적 자원봉사자가 끊이지 않으므로 유급직원수를 늘리지 않을 수 있어 예산을 절감한다. 결국 법과 제도 정책, 민간이 함께하는 현장이 현재 국립소록도병원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노인요양의 좋은 예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여기까지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병원의 추문이 언론을 타고 있다.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추문이다. 이런 좋은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위장 한센인들이 생기고 있다는 의혹, 이 추문을 여러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소록도가 소속된 지역의 지역 언론 <고흥뉴스>로부터 시작되어, <서울의소리><프레스바이플> 등 인터넷 매체와 <신문고 뉴스>도 내부고발자와 병원 당국자의 취재를 통해 의혹을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는 일단 지금 언론들에 의해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너무 허무해서다. 또 사람이 ‘돈’이라는 ‘괴물’ 때문에 한때 ‘천형의 질병’이라며 차별했던 그 병의 병력자로 위장한다는 것은 서글프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센병은 부모·형제 자식은 물론 마을과 이웃과 직장에서까지 왕따를 당했다. 그래서 피하기 위해 스스로 골방이나 골짜기로 숨어들고, 급기야 인륜의 모든 인연을 끓을 만큼 두려워했던 병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멀쩡한 사람이 자신의 노후안락을 위해 ‘한센병력자’로 위장하는 현실… 그들 때문에 정작 평생을 질병으로 받는 육체적 고통과 차별로 받은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진짜 한센인들은 자리가 없어 입원할 수 없다는 현실… 이런 현실은 서글프다 못해 화가 난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 의혹들은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탁이다. 수사 중인 수사관은 이 사건이야말로 사명감을 가지고 사실과 허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우리는 불과 얼마 전 송파3모녀 사건을 목도했다. 생계수단이 막막한 3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도 집주인에게 밀린 공과금을 남긴 메모는 척박한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했다.

서울 관악구에는 ‘베이비박스’라는 미혼모 신생아 ‘유기장(?)'이 있다. 그러나 주변의 왕따를 이기고 자신이 직접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경제여건상 도저히 키울 수 없는 미혼모들에게 이 베이비박스는 ‘유기장’이 아니라 ‘요람’이다.

이 간단한 예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아직 복지 사각지대가 넘치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정부는 선별적 복지 운운하며 복지를 권력의 시혜쯤으로 인식하는 정책을 선호한다. 따라서 이런 집단이 계속 권력을 쥐고 있게 되면 빈곤과 질병으로 차별받는 소수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한센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럴수록 소록도병원 입원 희망자는 늘 것이고, 추후 ‘입원허가는 로또’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다면 이 사건은 사실 매우 적절한 시기에 터졌다. 그러므로 빨리 조사하여 위법을 한 자는 법에 따라 조치하고 국가가 배푸는 ‘시혜’는 해당 당사자인 한센후유환자들이 받아야 한다.

불법이 용납되면서 더 큰 비리가 자라게 되면 뽑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 기회에 소록도병원 감독기관이자 상위기관인 보건복지부는 수사기관의 수사보다 선제조치로 불법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 불법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병원 당국자들이 처벌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야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한센인 인권운동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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