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의 불신임과 여론조사 열세를 무릅쓰고 연임을 강행하는 데에는 차가운 계산이 깔려 있다. 오는 8월 17일 전당대회에서 권리당원 표의 57%, 약 53만 표만 손에 쥐면 당대표 연임이 가능하다는 셈법이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두 배 가까이 밀려도, 권리당원만 틀어쥐면 이긴다는 구조다. 8월 전당대회 경선 룰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이 매직넘버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9박 10일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정 대표는 이날 공항 영접에 나가 대통령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그는 16일까지만 해도 영접에 가지 않을 뜻이었다. 비서실장이 부르면 가는데 아직 부르지 않았다는 취지로 불만을 흘리자, 청와대가 곧바로 불렀고 정 대표는 하루 만에 공항으로 향했다. 안 부르면 안 간다는 신호를 먼저 보낸 모양새다. 영접 대기 때부터 정 대표의 표정은 시종 굳어 있었다. 정 대표는 자신이 불출마하면 대통령의 당무 개입으로 비칠 수 있어 출마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까지 폈다. 정작 연임은 본인의 온전한 의지로 보기 어렵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 마지막 날 호남 유세를 마친 뒤 의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취지의 약한 말을 했다. 그런 그를 떠미는 쪽은 이른바 팀 김어준으로 불리는 배후 세력으로 지목된다. 이번 승부에서 지면 당대표 자리는 물론 정치 생명까지 끝날 수 있다. 의원총회 사진 속 정 대표의 표정이 유독 어두운 까닭이다.
1인 1표제가 지운 대의원 표
이번 전당대회는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가 처음 적용된다. 정 대표가 직접 만든 제도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까지는 권리당원 55%, 대의원 15%, 국민여론 30%로 표 비중이 나뉘었다. 당시 정 대표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66.5%를 얻고도 대의원 투표에서는 46%에 그쳐 박찬대 의원에게 밀렸다. 대의원 표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당대표가 된 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1대 1로 맞췄다. 전국 대의원을 다 합쳐도 만 명 안팎이라, 164만 권리당원 표에 묻혀 사실상 증발한다. 이렇게 되면 권리당원 70%, 일반 여론조사 30% 구도가 된다. 1인 1표제 자체는 당원 주권을 내건 명분 있는 제도다. 문제는 그 명분 뒤에서 대의원 표라는 변수가 통째로 사라진다는 데 있다.
7대 3이면 53만표, 5대 5면 진다
승부의 추는 이 70대 30 비율에 달려 있다. 지난해 8월 당대표 선거 기준으로 권리당원은 110만 명이었다. 권역별로 보면 호남이 33%, 약 36만 명으로 가장 많다. 경기·인천이 26%, 서울·강원·제주가 22%로 뒤를 잇는다. 충청과 영남은 각각 10%에 못 미친다. 권리당원 셋 중 하나가 호남에 몰려 있다. 수도권을 빼면 호남 표심이 당대표를 가르는 길목이다. 정 대표가 호남에 거듭 발걸음을 하며 표심을 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정 대표는 호남에서 66%, 경기·인천에서 68%, 서울·강원·제주에서 67%를 쓸어담았다. 다만 호남 투표율은 51%로 다른 지역보다 낮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호남에서도 정 대표가 김 총리에게 밀린다.
경선룰별 정청래 필요 권리당원 득표율 비교
막대 길이는 이기는 데 필요한 권리당원 득표율(매직넘버). 8·2 전대 실제 당심 66.48%보다 짧으면 승, 길면 패.
정청래 매직넘버(당원 70 · 여론 30 룰)57.1%· 약 53.6만 표(535,726표) 확보 시 승리 · 예상 유효투표 937,520표
가정: 권리당원 164만5061명(2025년 11월) · 투표율 56.99% · 여론조사 김민석 50 대 정청래 25(양자 환산 정청래 33.3 대 김민석 66.7). 단순 시뮬레이션으로 실제 후보군·자격 기준·투표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뮬레이션은 권리당원 164만 명, 투표율 56%, 그리고 정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에게 두 배로 밀린다는 전제로 돌렸다. 룰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렸다. 권리당원 70대 여론 30이면 정 대표는 권리당원의 57%, 약 53만 표로 당대표가 된다. 6대 4로 바뀌면 61%, 57만 표가 필요하다. 60%를 넘기는 일은 작년과 달리 만만치 않다. 5대 5까지 가면 66.7%, 62만 표를 얻어야 한다. 지난해 권리당원 득표율에 맞먹는 수치라 사실상 진다. 정 대표 측이 7대 3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5대 5를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민희 의원도 한 방송에서 같은 셈법을 내비쳤다. 1인 1표제는 못 바꾸니, 7대 3을 지키지 못하면 공정성 시비가 일 테고 그래서 결국 7대 3으로 갈 것이라는 취지였다. 팀 김어준 쪽도 1인 1표제와 7대 3 룰을 함께 사수하라고 강조한다.
경선룰별 정청래 예상 최종 득표율
정청래 당원 득표율을 8·2 전대 수준(66.48%)으로 가정 · 김민석과 양자 대결 · 최종 득표율 50%를 넘으면 승.
여론조사 비중이 커질수록 정청래 강점인 당원 기여가 줄어 5:5에서 최종 득표율이 50% 당선선 아래로 내려간다. 최종 = 당원 득표율(66.48%)×당원비중 + 여론조사(양자 33.3%)×여론비중. 가정: 권리당원 164만5061명(2025년 11월) · 투표율 56.99% · 여론조사 김민석 50 대 정청래 25. 단순 시뮬레이션.
석달 만에 53만 명, 그 표는 누구 것인가
정 대표가 자신하는 근거는 권리당원의 머릿수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 당시 111만 명이던 권리당원은 같은 해 11월 20일 164만 명으로 공식 집계됐다. 석달 반 만에 53만 명, 48%가 불었다. 대선이나 큰 정치 이슈가 있던 시기도 아니었다. 호남에서 당원이 급증했다는 지역 신문 보도가 잇따랐다. 전북 19만 명, 광주·전남 31만 명이라는 숫자가 돌았고, 한때 77만 유령당원이라는 말까지 번졌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77만 유령당원은 실체가 없다"고 해명했다. 호남에서 30만 명 넘는 입당 보도들이 합쳐지며 70만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평소 한 달 입당이 만 명 안팎인데, 지난해 6~8월 석달간 종이 입당과 온라인 입당을 합쳐 60만 명가량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2022년 대선 패배 직후에도 비슷한 증가가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해명으로 의혹은 가라앉기는커녕 더 커졌다. 평상시의 수십 배에 이르는 증가폭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다. 77만이든 60만이든, 비정상적으로 표가 불어났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이 표가 정 대표를 지지해 제 발로 모인 표인지, 누군가 조직적으로 끌어모은 표인지에 따라 전당대회의 향방이 갈린다.
2021년 이낙연 몰표 15만, 신천지 역선택
1인 1표제의 급소는 역선택이다. 이중당적이 허용되는 한, 다른 당 지지자나 종교 단체 신도가 민주당 권리당원이 되어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빈말이 아니다. 지난 2021년 9월 대선 경선의 마지막 서울 지역 3차 투표가 그 증거다. 직전 경기 지역까지 권리당원 투표에서 55%를 얻으며 과반을 굳히던 이재명 후보는, 마지막 3차 국민·일반당원 투표에서 7만4천 표에 그쳤다. 같은 투표에서 이낙연 후보에게는 15만 표가 쏟아졌다. 그 이전 어느 지역에서도 나오지 않던 몰표였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신천지가 움직였을 가능성이 의혹으로 따라붙는다. 당시 동원됐을 표가 그사이 권리당원으로 가입해 이번 전당대회에서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우려다. 신천지의 국민의힘 경선 개입은 지금 수사를 받고 있다. 같은 조직이 민주당 경선만 비껴갔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정황은 호남에서도 읽힌다. 이번 지방선거 전북도지사 선거에서 이낙연계 핵심으로 꼽히는 신원식 전 전북정무부지사가 이원택 후보 지지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원택 후보가 낙선했다면 정 대표의 연임 발판도 흔들렸을 자리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5월 28일 전주로 내려가 후보들을 밤 10시에 모아 이원택 지원을 독려했다. 이낙연계 새미래민주당의 전병헌 대표는 6월 들어 정 대표를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나섰다. 친청 진영으로서는 단 한 표라도 아쉬운 처지라, 호남에 근거를 둔 이들의 표심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국힘도 바라는 연임, 2018년의 정청래
정 대표의 연임을 국민의힘이 반긴다는 정황도 드러난다. JTBC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한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부대표는 국힘 입장에서 정 대표가 김 총리보다 낫다고 했다. 정 대표가 강성이라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을 유리하게 본다는 이유였다. 대화 상대로는 오히려 김 총리를 꼽았다. 외연 확장에 능한 상대보다 집토끼만 끌어안는 상대가 다루기 편하다는 속내다.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도 국민의힘과 조국혁신당 지지층이 정 대표를 더 선호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전체 적합도에서는 김 총리가 앞서고, 민주당 지지층에서 정 대표는 송영길 전 대표에게도 밀려 3위에 그쳤다.
정 대표는 요즘 이재명 대통령을 월드 클래스 지도자라 추켜세운다. 그런데, 지난 2018년 MBN '판도라'에서 그는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두고 "생각하기조차 싫다"고 했다. 압수수색을 당하던 그를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자 평가가 정반대로 뒤집혔다. 정작 정 대표는 대통령의 공소 취소를 겨눈 국정조사나 특검에는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여당 대표라면 마땅히 나설 사안에서 비켜서 있다. 8월 전당대회의 승부는 결국 경선 룰에서 갈린다. 7대 3이 지켜질지, 석달 새 늘어난 53만 표의 정체가 무엇일지.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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