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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를 남북 화해 전령사로, 연백평야에 복원할만

 
조홍섭 2015. 09. 15
조회수 609 추천수 0
 

충남 예산 복원 황새 8마리 적응 순항 중…일본 도요오카 방사 수컷도 '환영' 방문

연백평야는 한반도 최대 번식지, 황새 복원으로 동아시아 평화와 지속가능 발전 기대

 

05392061_R_0.jpg» 9월3일 방사된 황새가 충남 예산황새공원 하늘을 날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황새가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다 줄까. 사진=예산 / 김진수 기자


충남 예산에서 방사한 황새 8마리가 자연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절반인 네 마리는 전북 남원과 완주, 경기도 화성, 충남 안면도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성공 여부는 농약에 중독되지 않고 번식을 하는 1년쯤 뒤에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다행이다.

 

이번 황새 복원은 이 땅에서 황새의 번식이 중단된 지 44년 만의 일이다. 1971년 사라진줄 알았던 황새가 충북 음성에서 알을 품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사흘 만에 사냥꾼의 총질로 수컷이 죽었다. 품던 알마저 도난당한 암컷은 이후 해마다 무정란을 낳다 농약에 중독돼 쓰러져 서울대공원에 옮겨진 뒤 1994년 노환으로 숨졌다.

 

말콤 쿨터.jpg» 1971년 밀렵꾼에게 짝을 잃은 뒤 1983년 농약중독으로 쓰러지기까지 해마다 무정란을 낳던 음성 '과부 황새'가 둥지를 지키고 있다. 사진=칼뫀 쿨터 

우리의 황새 복원에는 일본도 관심이 많다. 3일 황새를 풀어놓는 자리에는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의 나카가이 무네하루 시장이 참여했고, <아사히>와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이 행사를 취재했다.

 

일본에서 마지막 황새가 도요오카에서 죽은 해도 한국과 같은 1971년이었다. 이후 수십년 동안 인공증식과 서식지 복원 노력 끝에 2005년 황새 5마리를 성공적으로 자연방사했다. 1996년부터 일본 등의 도움을 받아 황새 복원에 나선 한국교원대의 박시룡 교수도 황새복원센터 대표로 일본의 복원 현장을 지켜봤다.

 

05391727_R_0.jpg» 황새 야생방사 행사가 열린 3일 오후 충남 예산군 예산황새공원에서 위성항법장치(GPS)가 달린 황새가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날 행사를 통해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연구센터에서 복원된 황새 중 성조 6마리와 올해 태어난 어린 새 2마리 등 총 8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자리엔 일본의 황새 복원 관계자와 언론인도 참가했다. 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국과 일본은 황새 복원에 관한 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실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황새에게 한국과 일본의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산의 방사를 축하라도 하듯 7일 울산 태화강 하구에는 도요오카에서 지난해 4월 방사한 어린 수컷이 출현했다. 지난해부터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화포천에 나타나 장기간 머물러 도연 스님이 ‘봉순이’란 이름을 붙여준 2년생 암컷도 도요오카 방사 황새 2세이다.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일본산 황새는 현재 3마리인데, 이번에 예산에서 방사한 황새 가운데도 겨울 동안 일본에 가는 개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05199348_R_0.jpg» 일본 도요오카시에서 복원해 방사한 황세 2세인 봉순이가 하동의 한 하천 하구에서 뱀장어를 사냥하고 있다. 사진=도연 스님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황새는 서로 섞이면서 무리를 유지했다. 황새는 북방계 새이다. 번식지인 러시아 아무르·우수리강 유역과 중국 동북부가 기원지이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벼 재배가 시작되면서 논습지를 새로운 번식지 삼아 확산됐을 것으로 본다.

 

한반도와 일본의 번식지는 독자적으로 유전다양성을 유지하기에는 규모가 작아 서로 교류하면서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동아시아 황새 번식집단을 형성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번식한 황새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서 짝을 이뤘고, 거기서 태어난 새끼 일부는 또 한국으로 왔다.

 

stork.jpg» 황새의 과거 분포지(왼쪽)와 현재 분포지. 그림=한국교원대학교 황생태연구원

 

러시아와 중국에서 주기적으로 날아오는 황새도 한국에 ‘새 피’를 공급했다. 이번 복원은 솥단지의 다리 셋 가운데 부러졌던 2개째 다리를 바로 세우는 셈이다.
 

전국에 약 50쌍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황새가 치명타를 맞은 것은 한국전쟁 때였다. 눈에 잘 띄고 날개를 펴면 2m에 이르는 큰 새는 쉬운 표적이었다.

 

둥지를 틀 큰 나무도 사라졌다. 새끼와 알을 훔치는 일이 널리 퍼졌지만 누구도 희귀한 새인지 몰랐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들 때였다지만 멸종될 때까지 공식 조사도 없었다.

 

stork2.jpg» 한반도 황새의 절멸과 복원 과정. 그림=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

 

전쟁 이후 광범한 농약 사용과 습지 감소가 결정적으로 황새를 내몰았다. 이렇게 남한과 북한에서 1970년대 황새가 사라졌고, 한반도로부터 새로운 황새의 공급이 끊긴 일본에서도 황새의 명맥이 끊어졌다.

 

이번에 황새 복원을 주도한 박시룡 황새생태연구원장의 꿈은 황해도 연백평야에 황새를 복원하는 것이다. 박 교수와 동료 연구원이 쓴 책 <황새, 자연에 날다>를 보면, 연백평야는 과거 한반도 황새의 절반 이상이 번식하던 곳이다.

 

연백평야.jpg» 북한 황해남도의 예성강 유역에 위치한 연백평야. 그림=구글지도

 

개성과 해주 사이에 있는 연백평야는 호남, 재령에 이어 한반도에서 세번째로 넓은 평야인데다 비옥한 범람원이어서 생물자원이 풍부하다.

 

황새는 물고기, 개구리, 우렁이, 곤충뿐 아니라 들쥐와 뱀까지 잡아먹는 상위 포식자다. 먹는 양도 많아 어미는 하루에 미꾸리 400g, 왕성하게 자라는 새끼는 1㎏까지 먹어댄다. 황새가 살아가려면 너른 논과 둠벙, 자연하천이 있어 생산성이 높고 생태계가 살아 있어야 한다.
 

경기도 여주와 이천 등 남한에서 그런 서식지는 거의 다 공장터나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연백평야는 아직 지형 변화가 덜하다. 박 교수는 연백평야에 생태농업단지를 조성해 남한에 유기농식품을 공급하는 제2의 개성공단으로 키울 것을 제안한다.

 

이곳에 황새를 복원하면 30㎞ 떨어진 비무장지대 습지와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임진강 습지에서 먹이를 먹고, 가을이면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남한에 내려와 겨울을 날 것이다.

 

안변평야.jpg» 두루미의 월동지인 북한 강원도 안변평야의 모습. 기근과 함께 두루미들이 철원으로 대거 이동했다. 사진=아치볼드 박사

 

안변프로젝트.jpg» 국제협력사업인 안변프로젝트의 하나로 모형 두루미를 들판에 설치해 두루미의 도래를 유도하려는 시도도 펼쳤다. 사진=아치볼드 박사
 

황새를 매개로 남·북한이 상생하고 평화를 이룩하자는 이런 발상은 처음이 아니다. 한국전쟁 때 자취를 감춘 두루미를 비무장지대에서 확인해 보전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2008년부터 국제협력 사업인 ‘안변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철원에서 80㎞ 떨어진 강원도 안변에 유기농업단지를 만들어 두루미와 주민의 삶을 지키자는 사업이다. 기근으로 들판에 남은 낙곡마저 모두 줍자 ‘탈북 두루미’가 대거 나타났던 것이다. 주로 미국인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국제협력 사업도 한국의 참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 도요오카시는 황새를 살리면 마을도 살아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황새가 사는 생태계에서 나는 유기농 쌀뿐 아니라 황새가 행운과 자식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더해진 덕분이다.

 

이미 ‘황새의 춤’이란 상표의 유기농 쌀을 생산하고 있는 예산이 바라는 것도 이것이다.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나아가, 남북 화해와 협력, 동북아 평화와 공존의 씨앗을 황새가 물어올지 모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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