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로 훗날 노나라 재상이 된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변했다.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고 국방력이 튼튼하면서 백성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잘하는 정치다.”
“어쩔 수 없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맨 먼저 무엇을 버릴까요.”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군대”라고 했다.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 먼저입니까.”
다시 자공이 묻자 공자는 “양식”이라고 답했다. 논어에 실린 내용이다. 양식이나 국방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는 가르침이다. 공자뿐만 아니라 신뢰가 통치의 기반이라는 것은 성현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가 아닌가? 박근혜대통령이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밝힌 공약이다. “저는 남북간의 불신과 대결, 불확실성의 악순환을 끊고 신뢰와 평화의 새로운 한반도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습니다. 국민적 공감대 위에 남북한의 신뢰, 국제사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된 남북관계를 모색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겠습니다.”
이런 박대통령의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설레었다. 이제 우리도 반세기 동안 동족간의 반목과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공존, 통일의 시대를 맞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임기 2년여를 남겨 놓고 현실에서 신뢰프로세스는 어떻게 됐을까? 박근혜대통령 취임 후 남북관계는 역대 어느 대통령 때보다 가장 심각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어렵게 만든 남북이산가족 상봉조차 성사될지 의문이다.
‘약속만 하고 제대로 한 게 없다’
지난 7월 1일 JTBC 손석희 아나운서가 9시뉴스를 진행하면서 꺼낸 클로징 맨트다. 오죽하면 뉴스 진행자의 입에서 이런 험담까지 들어야할까? 19대 총선을 불과 6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국회 의석수 48석을 아우르는 서울에서 선거를 완패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자 박근혜의원을 당대표로 추대하면서 당기와 당명까지 바꾸면서 새누리당의 개혁이 시작됐다.
당시 새누리당이 꺼낸 카드를 보면 우리 정치도 후진성을 벗고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채무불이행자 신용회복지원,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이런 약속을 듣고 있으면 왜 아 그렇겠는가? 그런데 이런 약속들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국민행복의 길을 열어갈 첫 번째 과제로, 저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정당한 기업 활동은 최대한 보장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지만,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두 번째 과제로, 저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전통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겠습니다… 수출 일변도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성장을 견인하는 쌍끌이 경제를 만들어 내수 중소기업을 키워나가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2012년 7월 10일, 새누리당 예비후보 박근혜)
이런 공약 역시 국민들이 열광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의 공약을 들을 때마다 이제 유럽 선진국처럼 다른 나라에 부끄럽지 않은 희망의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가슴 벅차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의 공약 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공약을 시행되기는커녕 하나같이 공약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배신감과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대통령의 공약 얼마나 지켜지고 있나?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후보로서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삼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어디 지역에서 살든, 어떤 계층에 속하던 간에, 억울한 일없이 정당하게 대우받도록… ‘차별도 없고 특혜도 없는 세상,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대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는 경제, 불공정거래가 발붙일 수 없는 경제, 좋은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성장시스템을 만들고, 위기와 갈등, 반칙과 불공정, 그리고 불확실성과 혼란의 악순환을 끊고 국민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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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늙은 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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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의 공약과 현실을 비교해 보면 분노가 치솟는다. 차라리 그런 공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기 격이다. 아니 노골적으로 의도된 공약(空約)으로 유권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저는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거짓말… 그가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면 소가 웃을 얘기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와 같은 공약은 이행이 아니라 거꾸로 가고 있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면서 철저하게 친재벌정책을 펴고 있다. 4대구조개혁이니 노동개혁을 보면 그렇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겠다며 ‘노동시장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미운살이 박힌 노동자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경제를 살린다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단다.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유치원수업시수까지 늘리고 시행도 하기 전의 교육과정을 또 바꾸겠단다. 나라사랑을 말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한자병행을 강행하겠다는 게 박근혜정부다. 그가 얼마나 사기에 가까운 정책으로 포장하는지는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게 왜 죄가 되는가? 취업을 해도 정규직은 하늘에 별 따기요, 그것조차 연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피크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와 철도 교육까지 민영화하겠다고 나서는 게 박근혜정부다. 청년실업자 100만 시대, 비정규직 800만, 1천만 노동자를 두고 임금피크제 도입, 업무부적격자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 통상임금기준 정비, 근로시간 유연성확대… 라는 정책이 어떻게 복지정책이며 경제민주화인가?
3포시대, 5포세대도 모자라 7포세대라는 청년들의 한탄의 소리가 SNS를 채우고 있겠는가? 이제 3포, 5포 7포세대 뿐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민 가고 싶다고 한다. 가계부채 1,000조 원을 두고 어떻게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 민영화, 교육민영화, 철도민영화를 추진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자본이 행복한 사회는 노동자도 행복할까? 박근혜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공약을 믿고 기다리는 국민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는 그의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 기다리면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오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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