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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황-김 라인’ 뜰까?

 

 

김양건 당비서 급서, 대남총책 공백 오나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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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30  21: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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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통일전선부 부장이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해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북한은 이날 당과 공화국, 최고인민회의 공동명의로 부고를 내고, 김정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고 김양건 비서는 지난 8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함께 남측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이른바 ‘2+2 고위급 접촉’에 나서 ‘8.25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대남업무를 총괄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부재가 북한의 대외정책과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거리다.

갑작스런 대남 총책의 사망

   
▲ 김양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통일전선부 부장이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진은 지난 8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당시의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29일자 ‘김양건동지의 서거에 대한 부고’를 통해 “김양건 동지는 교통사고로 주체104(2015)년 12월 29일 6시 15분에 73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고 발표했다.

29일 오전 6시 15분이면 남측 시간으로 29일 오전 6시 45분으로 새벽 내지는 이른 아침 시간이다. 28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군 제3차 수산부문열성자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당 및 국가표창을 수여했지만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외에는 수행인물이 파악되지 않는다. 군 행사인 관계로 김양건 비서는 참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29일 중앙보고대회에서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보고를 했고, 김기남, 최태복, 당 비서 등이 참석해 만약 김양건 비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참석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만큼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김양건 비서가 북한 언론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17일 동평양대국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4주기 회고음악회인 것으로 통일부는 파악하고 있다. 당시 보도에 김 비서의 이름은 실리지 않았지만 영상에는 그가 참석한 모습이 포착된 것. 북측 공식보도에 이름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이달 1일 김 1위원장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방문에 동행한 것이다.

김양건 비서는 지난해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최룡해와 함께 전격 방남했고, 올해 8월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남북간 팽팽한 대치가 벌어진 상황에서 황병서와 함께 판문점에서 남측 김장수, 홍용표와 고위급 접촉을 통해 당국대화 추진 등을 담은 ‘8.25합의’를 전격 도출하는 등 최일선에서 대남사업을 총괄해왔다.

이외에도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시 조문특사단의 일행으로 김기남 당 비서 등과 함께 방남했고, 김대중 대통령 5주기인 지난해 8월에는 맹경일 아태위 부위원장을 대동하고 개성공단에서 조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후임자는 결정될까?

당장 대남비서 겸 통전부장의 급서는 대남정책 책임자의 부재를 뜻한다. 김양건 비서는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회담에 단독 배석했을 만큼 일찌감치 이 분야에 독보적인 역할을 구축해왔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임이 지난 8월 북측 보도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허담-윤기복-김용순-김양건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대남담당비서는 대남사업 분야에서 성장한 간부들이 아니라 주로 당 국제부와 내각 외교부(윤기복은 경제관료)에서 성장한 관료(당료)들이었다”며 “통일전선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랜 측근으로 활동했다고 하는 림동옥 제1부부장도 2003년 김용순 비서가 사망한 후 통전부장직을 승계하지 못하고, 3년이 지난 뒤에야 부장직만 승계했고, 후임 비서에는 김양건 국제부장이 임명됐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당분간 대남비서를 공석으로 두고 통일전선부에서 예를 들어 김기남 비서를 통해 김정은 제1비서에게 보고하는 방식을 점치기도 한다. 정 교수는 “신임 통전부장이나 비서에는 통전부 바깥의 인물이 기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일단 국방위원회 대외담당 참사가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라고 관측했다.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명단에는 직책 없이 ‘김영남, 황병서, 박봉주, 김기남, 최룡해, 최태복...’순으로 명기됐고, 특히 통일전선부 부부장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김완수, 원동연, 리종혁, 김진국, 박진식’이 마지막으로 명단에 올랐다. 김완수 6.15북측위 위원장과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 리종혁 아태위 부위원장은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고 김진국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사다. 박진식은 통일신보 주필을 거친 내각 참사로만 알려져 있다.

김완수(74) 위원장은 유엔대표를 비롯해 다양한 외교 경력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조국전선 의장 등 다양한 경륜을 쌓았고, 남측 언론에 한때 숙청설이 보도되기도 했던 원동연(68) 부부장은 아태위 부위원장을 겸직하며 남북회담 대표로 나서는 등 대남실무에 정통해 후임자로 남측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대남비서 자리는 권력 핵심이 맡을 수 밖에 없는 자리이므로 상당기간 공백으로 두거나 통전부 밖에서 비중있는 인사가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아직은 우세하고, 통전부장 역시 장의위원 명단에는 없더라도 더 실질적인 역할을 맡고 있거나 맡을 수 있는 인물이 발탁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조평통 서기국장에서 지난 10월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강지영이나 남북관계 현안을 챙기고 있는 맹경일 통전부 부부장이 통전부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남북관계, ‘황-김 라인’ 뜰까?

   
▲ 지난 8월 남북 고위급 접촉 한 당사자인 김양건 비서가 급서함으로써 남북 고위급 접촉은 '2+2'에서 '황병서-김관진' 라인만 남게 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 정권기관들의 공동부고는 “김양건동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충직한 혁명전사이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가장 가까운 전우, 견실한 혁명동지”라고 3대에 걸친 충성을 평가하고,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가장 가까운 전우, 견실한 혁명동지’라는 최상의 칭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김 1위원장이 장의위원장을 맡은 것이 그에 대한 사후 평가의 기준으로 볼 수 있다.

부고는 또한 “김양건동지는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부장, 비서의 중책을 지니고 우리 당의 자주적인 조국통일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면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온갖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였다”고 기렸다. ‘수령님들의 조국통일유훈’과 ‘당의 자주적 조국통일정책’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

이는 향후 후임 대남비서와 통전부장의 자격조건이자 통전부의 나아갈 지침인 셈이다. 특히 김양건 비서가 마지막으로 이룬 ‘8.25합의’는 통전부가 실현시켜야 할 당면과업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8.25합의에서 군사적 대치상태 종식이라는 당면 문제 해결과 함께 △서울 또는 평양에서 당국자 회담을 개최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11~12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차관급 당국회담은 성과없이 사실상 결렬된 상태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토론에서 일단 차관급 당국회담의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연말연시가 지난 뒤 다시 차관급 회담을 가동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꾸준히 ‘2+2 고위급’ 수준으로 회담의 격을 높여 실질적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양건 비서가 급서함에 따라 이제는 ‘황병서-김관진 라인’이 유일한 고위급 접촉점으로 남게 됐다. 따라서 향후 차관급 당국회담이 지지부진할 경우 이제는 ‘황-김 라인’이 ‘황금라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일각에서는 김관진 실장이 현 정부의 외교안보 '원톱'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전언도 있는 실정이었다.

정상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일 정권에 이어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까지 계속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해온 김양건 당중앙위원회 대남 비서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남북대화의 장기 중단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특히 제1차 차관급 남북당국회담이 결렬된 가운데 김 비서가 사망해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강석주의 와병으로 김양건 비서가 사실상 국제비서 역할까지 최근에 수행했기 때문에 북한의 대중 관계 개선도 지연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짚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대남 라인 인사가 일단락됐고, 내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담길 대외 메시지는 이미 정리가 끝났을 것으로 추정돼 대남, 대외정책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한 상황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지난 10월 10일 당창건 60주년 기념행사에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 방북을 계기로 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북한 모란봉악단이 공연 직전에 북한으로 철수한 것은 당분간 북중관계를 멈칫거리게 할 수는 있지만 관계개선의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북측 부고에 “김양건동지는 위대한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위업에 무한히 충실하였다”고 기록한 점은 그의 죽음을 순직으로 내부평가한 것으로 읽히며, 이는 그가 주도한 대남,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룡해 등장과 북한 내부의 권력구도

   
▲ 김양건 비서 국가장의위원회에는 지난해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전격 방남한 황병서 총정치국장(가운데)과 최룡해 당 비서(오른쪽)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특히 '혁명화 교육'설이 돌았던 최룡해 비서는 다섯 번째로 호명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역시 장의위원 최룡해 당 비서다. 최룡해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박봉주 내각 총리, 김기남 노동당 비서에 이어 다섯 번째로 호명됐다.

군 총정치국장 시절보다는 뒤로 밀린 순서지만 정치적 비중을 잃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위치다. 더구나 최근 혁명화교육을 위해 하방됐다는 설이 나돈데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정통한 소식통은 “최룡해는 숙청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성장 실장은 “최룡해가 지방 협동농장으로 추방되어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북 소식통에 의하면 최룡해는 계속 평양에 있었다”며 “김정은의 청년중시정책에 반대하다가 해임된 것이 아니라 제7차 당대회 개최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표명했다가 해임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 결렬과 모란봉악단의 중국 공연 취소 등 대외정책을 둘러싼 북한 내부의 강온대립을 김양건 비서의 교통사고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확인된 사실은 없다.

지난 10월 대남라인 인사 등 김양건 비서의 영향력 강화 과정에서의 충돌로 보는 또다른 관측도 있다. 특히 한 민간 소식통은 “최근 김양건 비서가 김정은 1위원장의 측근으로 자리잡으면서 인사권에서도 칼을 휘두르는 등 영향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반발을 샀을 수도 있다”며 “단순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보도는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공식보도한 교통사고에 비중을 두면서, 한명 한명 비서들의 성향이나 내부 영향력 보다는 역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중이 대남, 대외정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다만, “남북관계의 틀이 원만하게 가동되는 국면에서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남북대화가 막혀 있고, 접점을 찾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그의 공백이 클 수밖에 없다”며 “김 비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이 더 커진 느낌”이라는 정창현 교수의 우려는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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