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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의 손주 곧 탄생, 사자 '세실' 죽음 이후

'풍운아'의 손주 곧 탄생, 사자 '세실' 죽음 이후

남종영 2016. 02. 05
조회수 193 추천수 0
 

‘세실’ 마지막 연구자  브렌트 스타펠캄프 인터뷰 

올 3월 탄생 예정, 친구 '제리코'가 새끼와 어미 지켜줘
사자을 지켜야 아프리카 자연 보전, 사자 세계유산 지정 추진

 

Cecil_the_lion2.jpg» 사냥꾼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전 당당했던 수사자 세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사자 한 마리가 세상을 바꿀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7월1일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 백수의 왕 세실은 미국의 치과의사 사냥꾼 월터 파머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참수한 사자 머리를 여행가방에 넣어 챙겨 가는 서구 부호들의 ‘트로피(전리품) 사냥’에 전세계 여론은 경악했다. 제3세계 국가가 돈을 벌기 위해 제도적으로 트로피 사냥을 허용하고, 서구의 보전단체조차 야생보전을 위해 이를 받아들이는, 포스트식민지 시대 정치·경제 체제의 복잡한 이면(■ 관련 기사참수된 사자 ‘세실’, 마을을 위한 ‘처녀 제물’처럼 죽어갔다 )도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전세계가 사자 세실을 위해 촛불을 들었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요란한 논란에 비해 바뀐 건 많지 않다. 
 
지난해말 미국 정부는 중·서부 아프리카의 사자를 멸종위기종에 포함시켜 산 사자와 트로피의 반입 요건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짐바브웨 검찰은 사냥꾼 월터 파머에 대해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며 불기소했고 그를 인도한 사냥 가이드만 재판을 받고 있다.
 
또 하나의 관심은 사자 그 자체에 있었다. 사자의 생태적 특성상, 한 프라이드(사자의 한 무리)의 우두머리 수사자가 죽으면, 이웃 영역의 수사자가 치고 들어와 암사자들을 점령하고 새끼들을 죽여버린다. 
 
세실은 어미 3마리와 새끼 7마리로 구성된 프라이드의 우두머리였다. 세실의 자손은 영아살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황게국립공원에서 9년째 사자를 관찰하고 있는 브렌트 스타펠캄프(38) 연구원과 지난달 26일부터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고아’가 된 새끼들과 그 어미들의 소식을 들었다. 2008년부터 세실을 모니터링한 그는 사냥꾼을 제외하곤 가장 마지막으로 세실을 목격한 이다.

Brent lion tracking.jpg»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 소속으로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에서 사자를 관찰하고 있는 브렌트 스타펠캄프 연구원.

 
“잘 지낸다. 건강하다”
 
-사자 세실이 죽은 뒤, 남겨진 그의 무리를 봤나? 안전하게 잘 크고 있나?
 
“한 달에 한 번쯤 본다. 잘 지낸다. 건강하다. 지난번에는 무리 중 암사자 하나를 잡아 인공위성추적장치(GPS)가 달린 목걸이를 부착했다. ‘놉훌레’(Nobhuhle)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지피에스 목걸이 덕분에 실시간으로 세실 무리의 경로를 파악하게 되었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한다.”
 
-세실 무리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름은 있나?
 
“놉훌레가 우리가 이름을 붙인 유일한 사자다. 원래 세실 무리에는 어미 3마리와 새끼 7마리가 속해 있었다. 또한 제리코 프라이드와 연대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세실이 죽고 난 뒤, 세실 무리에서 새끼 한 마리가 사라졌다. 오래되지 않아 어미 한 마리가 또 사라졌고. 그들이 모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1월 그 어미 사자와 새끼가 돌아왔다! 너무 놀랐다. 바로 어제도 세실의 가족들 모두가 안전하게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지기도 하는가? 어디를 갔다온 걸까?
 
“무리에서 얼마간 사라지기도 하지만, 이처럼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것은 본 적이 없다. 우리도 놀랐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도 수수께끼다.”
 
모든 아프리카 동물이 그러하지만, 사자 무리는 특히 사냥에 취약하다. 사냥꾼들은 맨숭맨숭한 얼굴의 암컷보다 갈기를 휘날리며 카리스마를 뽐내는 수컷을 박제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게 수사자가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쓰러진다. 이웃 사자가 들어와 프라이드를 접수한다. 영아살해가 자행되고 이에 저항하는 어미가 다치거나 죽으면서 프라이드는 붕괴된다.
 
사실 지난해 7월 세실의 죽음 직후 두 사자의 ‘실종’도 이런 비극적 붕괴의 전조로 여겨졌다. 실제로 세실의 영토는 이웃 사자 부베지(Bubezi)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부베지는 세실 프라이드의 영토의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아빠를 잃은 새끼와 어미들은 행동반경을 좁혀야만 했다. 
 
하지만 겁먹은 가족의 옆에는 옛 친구 ‘제리코’가 있었다. 세실이 살아 있을 적, 제리코는 세실의 연대 대상이었다. 각자 자신의 프라이드를 거느리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고 이 영토를 지배해왔다.
 
-제리코가 다른 수컷의 침입을 막아준 건가?
 
“그렇다. 제리코가 세실 무리를 보호했다고 보면 된다. 세실의 가족은 지금 제리코의 지배영역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놉훌레에게 인식표를 부착한 뒤에도 제리코는 항상 세실 가족에서 500m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세실 프라이드의 암사자들은 새끼들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숙련된 엄마들이다. 아직도 공격당한 적이 없다.”
 
사자 사회에서는 인수합병과 합종연횡의 정치학이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세실은 산전수전을 겪은 ‘풍운아’였다. 원래 세실은 국립공원 동쪽 ‘백스판스’(Backspans)에서 세력을 키웠으나, 다른 프라이드의 공격을 받아 변방으로 쫓겨났다. 
 
세실은 거기서 다시 자신의 프라이드를 착실히 성장시켰다. 암사자와 새끼들이 한때 20마리에 이르렀으나, 다시 수컷 둘의 공격을 받아 쫓겨났다. 그때 만난 사자가 제리코였다. 세실과 제리코는 연대해 각각의 프라이드를 성장시켰다. 그러던 중 사냥꾼의 총탄에 세실이 숨졌고, 고아가 된 새끼와 암사자들 그리고 제리코 프라이드만 남은 것이었다.
 
사라졌다 돌아온 ‘산다’
 

stock-photo-grandchiildren-in-the-making-130339645.jpg» 지난해 11월27일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에서 수사자 ‘산다’가 한 암사자와 교미를 하고 있다. 산다는 지난해 7월 미국인 사냥꾼에 의해 죽은 사자 ‘세실’의 새끼다.


-세실의 새끼 중 하나가 교미하는 장면이 포착됐다며?
 
“산다(Xanda)라고 불리는 다섯 살 수사자다. 지금의 세실 가족은 아니고, 세실이 백스판스에 있었을 적 교미해 얻은 수컷이다. 산다는 세 살 때 백스판스 프라이드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 뒤로 우리 연구팀은 이 새끼 사자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커서 돌아와 백스판스 암컷 세 마리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종의 근친번식이다. 대부분 피하긴 하지만, 야생사자는 작은 수준의 근친번식 정도는 유전적 결함 없이 잘 버틴다.”
 
-사자 모니터링은 어떻게 하나?
 
“매일 아침 눈 뜨고 처음 하는 게 휴대전화에 뜨는 사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많은 시간을 트럭에서 사자를 관찰하면서 지낸다. 어떤 걸 먹고,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하는지 지켜본다. 이런 행동은 모두 기록되어 장기 생태조사의 자료로 활용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지피에스 목걸이를 다는 일이다. 마취제를 사자 몸에 명중시켜야 달 수 있는데, 나는 운 좋게도 여기서만 88마리에 성공했다.”
 
-사자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나?
 
“국립공원 경계 밖으로 나가면 긴장한다. 만약 소떼 등 가축이 있는 곳이면, 근처 직원에게 메시지를 띄우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소떼를 격리시키는 한편 때에 따라서는 사드럼과 부부젤라(아프리카 나팔)를 이용해 사자를 안전한 곳으로 유인한다. 다른 사자들의 문제도 없는지 확인한다. 이때 기회가 되면 사자에게 지피에스 목걸이를 부착한다. 나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실의 죽음 이후 짐바브웨는 무엇이 변했나?
 
“크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사냥산업을 어떻게든 교통정리 해야 한다는 자각이 확산된 건 분명하다. 사냥 가이드 시오 브롱코스트의 재판이 진행중이다.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세실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잘될 거다. 황게국립공원은 세 곳의 ‘카방고 잠베지(KAZA) 트랜스프런티어 야생보전구역’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사자와 함께한 역사가 있고 사자를 보전하는 문화가 있다. 국제사회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니, 사자 사냥이 사라질 거라고 느낀다.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사자 서식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연간 13억달러가 필요하다. 사자 사냥에 의존하지 않고 야생을 보전하려면, 탄소상쇄 프로그램이나 사파리 관광 등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아프리카 국가들은 사자사냥 쿼터를 판 돈으로 공원 관리와 지역개발에 투자한다.) 사자를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자는 생태·경제·문화적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종이다. 사자를 보전하는 것은 그들의 서식지와 사냥감, 즉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다. 이 전략이야말로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경로 중 하나라고 믿는다.”
 
산다의 새끼가 태어난다면 세실의 손주가 되는 셈이다. 사자의 임신기간이 넉달이니 3월말께다. 세실의 죽음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웠고 그래서 미래가 과거보다 나아진다면 세실의 자손들은 평화롭게 번성할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죽음의 도미노' 부르는 사자 사회의 특성

수사자 한 마리 쏘면 30마리가 총알 맞는다

 

Cecil and Jericho.jpg» 제리코(위)와 세실(아래)는 연대하며 각각의 프라이드를 다스렸다. 지난해 7월 세실이 사냥꾼의 총탄에 맞아 죽은 뒤, 제리코는 세실의 새끼와 어미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자 세실은 지난해 7월 미국인 치과의사 사냥꾼 월터 팔머에 의해 참수되어 죽었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서구의 대부호들이 벌이는 트로피(전리품) 사냥에 대해 세계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세실의 무리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세실이 암사자 3마리와 새끼 7마리를 두고 죽었다. ‘죽음의 도미노’가 이들에게 덮칠 수 있었다.
  
사자가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는 서식지 감소 말고도 트로피 사냥에 의한 죽음의 도미노 현상이 있다. 사자 멸종의 도미노 현상이란 무엇일까? 우선은 사자 사회의 생태적 특성을 알아보자.
 
사자는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 중 하나다. 북극곰이 단독자로 바다얼음을 유랑하고, 범고래는 강한 결속력을 갖는 가족 생활을 하듯이, 사자도 특유의 사회집단을 형성한다. 
 
사자는 전형적인 ‘일부다처제’ 사회다. 알파 수컷인 수사자 한 마리가 암사자들(어미들) 그리고 새끼들을 거느리는 구조다. 보통 5~6마리에서 10마리가 한 무리를 이루는데, 많을 때는 30마리에 이른다. 이러한 사자 한 무리를 ‘프라이드’라고 부른다.  
  
수사자가 프라이드의 모든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데 크게 공헌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냥을 암사자가 진행하고 수사자는 기껏해야 주변을 경계하거나 무리를 보호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백수의 왕’이라지만 사냥은 쉽지 않다. 성공률은 기껏해야 20~25%다. 암사자들이 열심히 노력해 사냥감을 얻어오면 수사자는 가서 공짜 점심을 즐긴다. 
 
수사자는 갈기가 멋지긴 하지만 사냥에 적합한 몸이 아니다. 덩치가 크고 노출이 잘 되어 암사자만큼 순발력 있게 움직이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수사자는 암사자에 기생해 산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사자는 다른 프라이드나 떠도는 수컷으로부터 자신의 무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암사자는 자식들의 먹이를 챙기는 ‘내무부 장관’, 수사자는 외침으로부터 프라이드를 방어하는 ‘국방부 장관’ 정도 된다.
 
사자 무리는 각각의 지배 영역이 있고 무리 사이 쟁투를 통해 우두머리가 바뀐다. 외부의 수사자가 프라이드의 우두머리를 공격해 쓰러뜨리면, 그 프라이드는 새로운 수사자가 지배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프라이드를 인수한 수사자가 구 지배자가 낳은 새끼들을 죽이는 ‘영아살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암사자들은 저항하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면서 혼란이 발생한다. 암사자들도 부상을 입거나 죽는다. 죽음의 도미노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 사회에선 무조건 공격하고 점령하는 폭압의 정치만 구사되는 게 아니다. 수사자는 국방부 장관뿐만 아니라 ‘외무부 장관’이 되기도 한다. 피의 혈투와 영아살해, 정권 전복만 있으면 사자 사회는 고달플 것이다. 그건 효율적인 외교전략이 아니다. 
 
그래서 프라이드는 간혹 서로 연대하기도 한다. 사자 세실이 허망하게 죽은 뒤, 그의 어미들과 새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Cecil_the_lion_at_Hwange_National_Park_(4516560206).jpg» 한때 20마리에 이르는 사자로 프라이드를 구축했던 세실의 당당한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세실은 ‘풍운아’였다. 한때 20마리에 이르는 프라이드를 구축하기도 했으나 번번이 다른 수컷의 공격을 받고 자신의 왕국에서 내쫓겼다. 
 
2014년 제리코를 만나면서 세실은 다른 전략을 취한다. 즉, 제리코와 연대하며 자신의 프라이드를 구축한 것이다. 세실과 제리코는 비슷한 영역을 활보하고 다니면서도 상대방의 가족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세실이 허망하게 죽고, 연구자들은 제리코가 세실의 새끼들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했다. 제리코는 세실 프라이드를 공격적으로 점령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영아살해는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리코가 옆에 있음으로 해서, 세실 프라이드는 바깥 영역의 수컷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았다. 제리코가 ‘호위무사’가 된 것이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연구원은 인터뷰에서 “제리코는 세실의 어미들과 새끼들에서 500미터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며 “사실상 제리코가 세실 프라이드를 보호해준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사냥꾼이 수사자 한 마리를 쏘아 죽이면, 사자 30마리를 죽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프라이드의 수사자가 교체되면서 일어나는 피의 살육전이 사자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는 얘기다. 사자 세실은 인간의 총탄에 쓰러졌지만, 옛 동료 제리코의 ‘우정’은 죽음의 도미노를 막았다. 그게 인간의 우정과 같은 것인지 우리로선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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