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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합의는 무효! 우리손으로 해방을”

1243회 수요집회, 제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로

10일 정오 서울 종로구 평화로 일본대사관 앞. 1243회를 맞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 수요집회는 제4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로 진행됐다. 서울뿐 아니라 경남 산청과 광주, 청주 등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지정된 폴리스라인이 예외적으로 확장됐고 집회시간을 늦춰야 했다. 참석자들이 손에 쥔 손바닥만 한 노란색 나비모양 부채는 작열하는 8월의 태양을 가리기엔 너무나 작아 보였다. 그러나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그늘이 돼주고자 빽빽이 모여 앉은 3000여명의 ‘사람의 그늘’은 결코 작지 않았다.

▲ 학생들이 "소녀들의 광복은 언제 올까요" 등의 문구를 담은 포스터를 손수 만들어 왔다.

“내가 위안부다.” 1991년 8월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이렇게 당신의 아픈 역사를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통해 여성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혔는지 김 할머니의 공개증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 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죄를 요구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매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지 올해로 25년째다. 그동안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이 요구해온 것은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이렇게 7가지다.

집회에서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발언을 하려고 김복동 할머니(89)가 2명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위에 올랐다. 마이크를 손에 쥔 김 할머니는 모진 세월보다도 강했다. 김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지난해 12월 “마음대로 타협한” 12.28한일합의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음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은 것임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는 “12.28한일합의는 무효이고, 화해치유재단을 박살내라”고 외치곤 “국민들이 만들어 준 (정의기억)재단이 있는데 왜 또 다른 재단이 필요하냐? ‘배상’이라고 말하기 전에는 푼돈 한 푼도 안 받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우리가 돈에 환장한 줄 아느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서슬 퍼렇게 울려 퍼졌다.

“소녀상은 평화의 상징… 꼴 보기 싫으면 대사관이 이사 가라”

또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과 연관 짓는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지금은 식민지가 아닌데 왜 우리 땅에 있는 소녀상을 건드리냐”며 “소녀상은 평화의 상징이다. 꼴 보기 싫으면 대사관이 이사 가라”고 호통을 쳤다.

김 할머니는 이날 집회에 모인 젊은 세대를 격려하기도 했다. “우리 나비 회원 여러분 힘내세요! 할매 아직 안 죽고 살아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엄강민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코끝이 시큰했다며 “할머니 아무쪼록 건강하셔야 한다”고 바랐다.

▲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발언을 위해 무대 위에 섰다.
▲ 폭염 속에서도 학생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발언을 귀담아 듣고 있다.

▲ 이혜령 수녀는 12.28한일합의가 무효인 이유를 설명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라고 입을 맞춘 12.28한일합의가 무효임을 거듭 외쳤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천주교전국행동(천주교전국행동) 이혜령 수녀는 △피해 할머니들의 동의가 없고 △국민들의 동의가 없었으며 △국제인권에 반하기에 12.28합의는 원천무효임을 강조했다.

“몰라서 사과 안하면 어리석고, 알고도 사죄 안 하면 부끄러운 것”

“이런 악행을 저지른 일본 정부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것은 유치원 때부터 배우는데 어떻게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어른들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 일본 정부가 몰라서 사죄를 안 한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알고도 사죄를 안 한다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초등학생 김시환 군의 발언이다.

▲ '손잡은 우리의 다짐' 시간에 초등학생 김시환군이 발표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물지 못한 상처와 연대하기 위해 폭염을 이겨내며 모인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초등학생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다양했다. 중·고등학교 동아리, 경기도 광주 주민, 여성민우회, 전국공무원노조, 한국노총, 종교단체 등 속한 단체도 가지각색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이찬진 군은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가 듣기 싫으면 제발 (이런 걸)보기라도 하라”며 지금도 ‘위안부’ 할머니들과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부를 규탄했다.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는 지난 2012년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한 날을 기리기 위해 지정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세계연대집회는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전 세계 10개국의 47개 도시에서 진행된다.

▲ "지울수록 번지리라."
▲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
▲ 폭염 속에 진행된 이날 집회 참석자 중에는 청소년과 대학생이 가장 많았다. 
▲ 달안초등학교, 꽃피는 학교, 평화나비, 희망나비의 '여는공연'.
▲ 산청 간디중학교 학생들의 공연.
▲ 이날 기림일 집회에 백기완 선생이 참석해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 젊은이도 견디기 힘든 땡볕 아래서 1시간 반 이상 진행된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김복동 할머니.
▲ 기림일 집회 마지막엔 모두가 함께 오자미를 던져 박 터뜨리기를 했다. '한일합의' 라고 적힌 박이 깨졌다.
▲ 화해치유재단이라 적힌 박이 깨지며 참여한 시민들이 환하게 웃는다.
▲ 한 어린이가 소녀상 곁으로 가 소녀상의 손을 잡아본다.

이명주 기자  ana.myungju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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