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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쓰고 있는 성주 ‘사드반대 투쟁’


[현장취재]‘사드배치’ 발표 한 달여… ‘투쟁’이 ‘일상’이 된 성주군민들
▲ 8.15광복절에 성주군에선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군민들 '815인 삭발식'이 진행됐다.

“어디 간다꼬? 이거 달고 가야지. 좋은 거이니끼네.”

성주군청으로 가는 길, 낯선 남자에게 파란 나비리본을 스스럼없이 달아준다. “나도 쫌 이따가 가게 문 닫고 가 볼끼라.” 카톡방 ‘1318+’에서 아이디 ‘주형맘’이 달아주었다. 가슴에 리본하나 달았을 뿐인데 취재 온 기자가 아니라, 성주군민들 집회에 함께하러 온 ‘외부인’ 같은 묘한 이 기분은 뭘까. 군민들은 이렇게 성주를 찾는 모든 이를 사드반대 투쟁에 참가시키고 있었다.

▲ 성주 '유림'에서 5명과 여성 신청자 9명이 삭발을 한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삭발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머라 카노? 삭발 이기 머라꼬. 삭발 아이라 내 목이라도 내놀끼다.” 사드반대 ‘815인 삭발식’에 참여한 홍영옥(64) 주민은 걱정이 돼 건넨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어떤 결심으로 이 싸움에 임해 있는지 모르는 게 어이없단 표정이었다. 기자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난 15일 성주읍 ‘성밖공원’에선 815인 삭발식이 진행됐다. 그런데 이날 실제 삭발을 한 성주군민은 모두 908명. 8.15광복절에 맞추기 위해 815명으로 제한했지만 접수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그보다 100명 가까이 더 신청한 것. 여성도 5명으로 한정했는데 11명이 접수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니라’ 효경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을 외우던 유림(儒林) 회원들도 5명이 접수했다. 908명의 삭발식은 예상과 달리 겨우 30여분 만에 끝났다. 대구경북 미용사협회 소속 70여명의 미용사가 자원봉사를 와준 덕이다.

‘단일장소 최다인원 동시 삭발’에도 도전한 이날 삭발식엔 한국기록원에서 공식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 한국기록원에서 전국 동시 최다인원 삭발을 기록하기 위해 성주를 찾았다.

성주군민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린 투쟁, 하지만… 

815인 삭발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을까? “그냥. 8월엔 뭘 해볼까 하다가… 머리나 깎아 볼까? 815명이. 8.15광복절 때. 이렇게 하게 됐어요” 뭔가 특별한 기획 배경이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빗나갔다. 파란나비 리본 때도 그랬다. 누군가 ‘사드가 들어오면 우리모두 죽게 되니 검은 리본을 달자’고 제안했고, ‘검은색은 좀 그러니,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리본을 달자’는 참신한 수정 제안에 바로 삼삼오오 모여 리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장례식도 그랬다. “내일 새누리당 지도부들 온다는데 우리 장례나 확 치라뿌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룻만에 장례는 준비됐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래서 성주군민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린 투쟁. ‘위대하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런 집체행위를 기자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왜 하필 광복절에 이런 항의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는지가 궁금했다. “너무 닮지 않았어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광복절에 미국의 압력으로 설치되는 사드를 반대하고 있잖아요. 광복이 저절로 온 게 아니잖아요. 우리도 사드를 배치한 미군의 폭정에서 벗어나려면 싸워야죠. 목숨 걸고. 광복절은 우리 민족의 생명과 안전을 되찾은 날이죠? 이런 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사드반대 투쟁을 하니 얼마나 뜻깊어요. 그렇죠?” 역시 ‘우문’에 ‘현답’이였다. 지난달 23일 청계광장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성주군민들이 선거 때마다 1번만 찍어 죄송하다’고 말한 전영미 성주투쟁위 부위원장의 대답이었다.

▲ 사드 반대를 새긴 독특한 삭발을 한 주민도 있었다. [사진출처 성주투쟁위원회]

성주군이 생긴 이래 최다인원, 8천여 명이 모인 이날 삭발식에선 “성주가 대한민국이다”는 구호가 높이 울려 퍼졌다. “한번 결정된 성주에서 사드배치를 철회시키면, 대한민국 그 어디에 사드를 설치하겠어요? 그래서 5만 성주군민이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사드를 반드시 막아낼 겁니다!” 앰프를 진동하는 사회자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 땅에서 ‘난민’이 된 우리 일상을 찾아주십시오”

“7.21상경투쟁, 평화나비리본, 새누리당 장례식, 10만 백악관 청원, 815인 삭발”을 성주투쟁 5대 사건으로 꼽은 이재동 성주투쟁위 집행위원장은 승리를 확신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승리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외부세력’ 논란이 있을 때 (성주군민이)직접 상경해 우리 스스로 외부세력이 돼 논란을 잠재웠다. ‘님비’로 몰릴 때도 성주배치가 아니라 한국배치를 반대한다는 뜻으로 평화나비리본을 달았다. 새누리당의 오만함은 장례식으로 응징했다. 무엇보다 사드는 미국과 주한미군의 전쟁무기임을 알리기 위해 백악관에 청원서를 전달하는 뜻깊은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오늘 광복절 815인 삭발식으로 5만 성주의 결심이 5천만 대한민국의 평화의 날개가 됐다.”

“성주군민들의 일상을 찾아주십시오. 지난달 13일 날벼락처럼 성주 사드배치가 발표되고 한 달. 우리 성주 군민들은 일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름 한철 마을 주민들끼리 관광버스를 타고 나들이 한번 가는 즐거움을 잃어 버렸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 데리고 계곡으로 물놀이 가는 기회도 놓쳐 버렸습니다. 올림픽 경기도 눈에 안 들어오고, 저녁 먹고 촛불문화제에 가는 게 새로운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참외농사를 짓던 평화로운 고장 성주는 전쟁터가 되었고, 성주군민은 내 땅에서 난민이 돼버렸습니다.” 삭발을 한 어느 성주군민이 대통령께 띄운 호소문의 일부이다.

일상을 잃어버린 성주군민들. 한국민을 ‘대표’해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한 달 넘게 벌이고 있는 이들의 호소를 먼저 귀담아 들어야 할 사람은 전국의 이웃사촌들 아닐까. 

성주=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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