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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신입 철도노동자의 속내 “이 악물고 버텼는데 또 인턴 하라니...”

 

퇴직을 앞둔 그와 이제 막 입사한 그, 그들이 말하는 ‘성과연봉제’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6-10-10 08:31:14
수정 2016-10-10 09: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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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오는 27일 예정된 총파업을 결의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오는 27일 예정된 총파업을 결의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철밥통 지키기”, “불법파업”, “성과연봉제와 퇴출제는 별개”

정부여당이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노조에게 쏟아내고 있는 비판이다. 정부는 노조의 파업을 “정당성이 없다”고 비난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10일째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정부와 정치권에 성과연봉제 시행을 유보하고, 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2017년 3월까지 공공기관 개혁과 임금체계 개선방안을 마련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총파업 중심에는 2만7000여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있다.

철도노동자들은 왜 이토록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하는 것일까? 총파업에 나서게 된 그들의 속 얘기를 들어봤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김주형 기자

“기관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신입 기관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평생인턴제”

“상사 눈치만 보며 연월차는 쓰지 못하고, 다쳐도 산재신청을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기관사만 되면 바뀔 거라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온갖 일을 하면서 버티고 정규직이 됐더니 동료들끼리 경쟁을 하며 서로를 짓밟으라고 한다.”

7일 <민중의소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철도 부기관사 이모씨(30대)는 “성과연봉제는 노예연봉제·평생인턴제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올해 6월30일 입사한 3개월 차 신입 기관사다.

이씨는 구의역 사고의 김군과 똑같은 스크린도어 보수 작업, 최저임금을 받으며 물류하청 일 등을 하면서 기관사 시험을 4년간 준비해 기관사가 됐다. 올해 6월 부기관사로 한국철도공사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 3개월간의 인턴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만 하는 인턴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해야만 했다. 어렵게 경쟁을 뚫고 기관사가 됐지만, 이번에는 경쟁체제로 모는 성과연봉제가 노조의 동의도 없이 통과된 것이다.

그는 “인턴 동기들의 피눈물위에 살아남으니, 또다시 동료들과 그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경쟁을 하라고 강요한다”고 분노했다.

게다가 이번 신입채용 계획은 지난해 노사가 임금피크제 시행과 함께 합의한 내용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1310명을 올해 내로 채용하기로 해 놓고, 500여명만 채용한 상태다. 3개월 인턴과정을 고려하면 회사는 최소 9월경에는 하반기 채용을 시작했어야만 했다.

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2천300여개의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한 뒤 외려 청년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역시 “청년일자리 만드는 성과연봉제”로 포장하고 있다.

이씨는 “약속했던 신규채용은 절반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성과연봉제를 일자리 만들기로 치장하지만, 사실상 상대적 박탈감으로 불안에 떠는 청년들과 우리를 대립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과연봉제로 일하는 환경은 더욱 악화될 거고, 공기업을 시작으로 전 영역으로 확대 되리라 본다”며 “그런 점에서 철도사람들의 파업은 단순히 자기 밥그릇 지키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깃발을 앞세우고 성과연봉제 반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깃발을 앞세우고 성과연봉제 반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성과연봉제, 회사 내 인간관계 악화
노동조합 파괴로 노동자 권리 악화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회사다. 그런데 정부와 회사가 말하는 성과연봉제는 직원 간 관계와 분위기는 필요 없고, 열심히 일해서 수익만을 높이라는 말이다. 회사 내 인간관계는 파괴될 것이다”

1976년 12월에 철도청에 입사해 40년간 기관사 일을 해온 전성철씨(59)는 “회사 직원들끼리 함께 산에도 가고 공도 차는 등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옆에 동료가 곧 경쟁상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씨는 “지금도 매달 사내 시험을 보고, 1년에 두 번은 비교적 엄격한 평가를 하고 있다”며 “성과제가 도입되면 이런 평가·시험제도는 더욱 강화되고 동료 간에 분위기는 삭막하게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노동자의 권리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사가 합의한 객관적인 평가방식이 있더라도, 사용자의 주관이 개입돼 노조원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전씨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노동조합이 무력화 될 것”이라며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모든 행동이 통제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성과자 평가는 곧 퇴출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에 발표한 양대지침의 주요내용에는 ‘직무능력·성과 중심 인력운영 및 근로계약 해지절차’가 담겨 있다. 노조가 성과연봉제는 곧 퇴출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되는 이유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한 전북버스 노동자가 ‘성과주의 반대’ 수건을 펼쳐들고 있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한 전북버스 노동자가 ‘성과주의 반대’ 수건을 펼쳐들고 있다.ⓒ김주형 기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위한 것”

2005년 4월25일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운행 중이던 급행열차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한 뒤 선로변의 아파트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06명이 숨지고, 562명이 부상당했다. 이 참사는 전역에서 지체한 1분30초를 만회하려던 기관사가 과속으로 운전하면서 발생했다.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나친 경쟁사와의 경쟁, 실적 압박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후쿠지야마 사고는 공공부문 성과주의가 어떻게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실적 압박의 중압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의 노동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라고 강조했다.

이어 “철도를 비롯한 공공부문에 불어 닥친 ‘성과주의’라는 태풍은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인 ‘공공성’을 침해할 것”이라며 “이윤만을 위한 철도가 아닌, 국민의 철도가 되기 위한 파업임을 공감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철도 부기관사 이모씨는 “이미 철도는 117년의 노하우로 안전에 기반 한 최대한의 효율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여기에 더 무리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모두 시민의 피해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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