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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뺌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들이 ‘자백’해야 할 의혹들

 

두 사람이 입을 열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비선실세 국정농단’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6-10-27 19:05:55
수정 2016-10-27 19: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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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청와대 측근 비리 의혹 비판과 백남기 농민 부검 반대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든 무소속 김종훈·윤종오 의원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청와대 측근 비리 의혹 비판과 백남기 농민 부검 반대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든 무소속 김종훈·윤종오 의원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정의철 기자
 
 

"난무하는 비방"(9월 22일 박근혜 대통령)
"말도 안 되는 일방적인 의혹 제기"(10월 20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10월 21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동안 줄곧 제기돼온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하지만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씨가 실제로 대통령의 기밀 문건을 받아보고 국정에 개입해온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두 사람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박 대통령과 최씨는 직접 나서 파문을 일으킨 데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제대로 해명된 것은 여전히 없다. 두 사람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의혹을 부인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다. 사실상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검찰은 '늑장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여야 합의로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박 대통령과 최씨가 핵심인 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과 최씨가 결단을 하고 '자백'을 해야 풀릴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의 기밀자료 유출, 박근혜 대통령 책임 하에 이뤄졌나

이른바 '대통령 보고자료'가 최씨에게 유출된 것은 박 대통령과 최씨가 각각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인한 사실이다.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이들 자료가 어떤 경로로 청와대 밖으로 무단 유출됐느냐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에 대해서만 최씨에게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문건을 어떻게 전달하고 최씨의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한 경위는 전혀 해명하지 않았다.

그동안 언론보도 등을 통해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최씨에게 전달된 문건 내용은 국정 전반에 대한 것이었다. JTBC 뉴스룸이 입수한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에는 박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과 발언문을 포함한 200여 개의 파일이 들어있었다. 심지어 외교·안보·통일 관련 기밀 문건도 포함됐다. 최씨가 일부 문건을 수정하면,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또 최씨는 강남 모처에서 각계 전문가와 함께 이른바 '비선모임'을 꾸려 출력된 대통령 보고자료를 받아 보며 거의 매일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청와대 시스템상 청와대의 조직적인 개입이 없으면 이러한 대통령 문건의 유출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책임 하에 문건이 최씨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건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역할이다. 이중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이 박 대통령과 최씨의 '국정농단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을 정계입문 초기부터 18년간 보좌해왔다.

정 비서관이 개입한 정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에 저장돼 있는 청와대 주요 문건 4건의 작성자 아이디 '나렐로(narelo)'는 정 비서관의 아이디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씨의 비선모임에 '매일 밤 30cm 두께의 청와대 자료를 들고 가 일일보고'를 한 사람으로 정 비서관이 지목되고 있다. 정 비서관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문제의 태블릿 PC의 명의는 김한수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대표였던 '마레이컴퍼니'로 돼있는 것으로 확인돼, 청와대의 조직적인 개입마저 의심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씨는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쓸 줄도 모른다. 제 것이 아니다"라며 국정개입 의혹을 부인했고, 정 비서관에 대해서도 "저는 정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만난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에 대한 연설문 유출 의혹과 관련해 입장 발표 후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에 대한 연설문 유출 의혹과 관련해 입장 발표 후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뉴시스

최순실은 국정 어디까지 개입했나

최씨가 국정에 어디까지 개입했는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최씨의 '국정농단' 수준은 언론을 통해 확인된 것만 봐도 상당하다. 최씨는 단순히 박 대통령의 연설문과 홍보물에만 손을 댄 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국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이 전부일지, 아니면 '빙산의 일각'일지는 당사자 외에 아직 아무도 모른다. 청와대의 공식적인 업무가 아닌 비선으로 진행됐던 터라, 수사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씨가 단순히 대통령의 문건을 수정하는 수준에 머물렀는지, 아니면 국정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할 만큼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최씨가 청와대를 비롯한 공직자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기밀 자료가 최씨를 넘어서까지 유출됐을 가능성이다. 최씨 뿐만 아니라 차은택 광고감독 등 여러 명이 비선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최씨가 미리 받아 본 문건에는 외교·안보·통일 등 대내외적으로 민감하고 중대한 내용도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를 두고도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일단 두 사람은 오랜 인연으로 절친한 사이임은 분명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최씨에 대해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저를 도와준 인연"이라고 소개했고, 최씨 역시 "대통령을 오래 봐 왔다"고 밝혔다. 최씨는 과거 박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하지만 최씨는 공인이 아닌 사인일 뿐더러, 국정운영에 조언을 해줄 만큼 전문적인 식견조차 갖추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그를 신뢰하고 대통령 취임 후에도 계속해서 도움을 받아왔다. 단순히 절친한 사이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낮의 대통령은 박근혜, 밤의 대통령은 최순실", "공사 구분 못하느냐"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 나아가 재벌들로부터 수백억원의 출연금을 받아 설립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운용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서도 두 사람의 관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권력형 비리'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재단은 설립된 지 1년도 채 안 된 문화·체육 관련 민간재단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각종 국책사업을 도맡아 특혜 의혹에 휩싸였다. 정부가 뒤를 봐준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재벌이 두 재단에 거액의 돈을 출연한 것이 정권 차원의 압박에 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27일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모 재벌 회장을 만나 두 재단 사업계획서를 보여주며 협조를 요청했다고 폭로해 박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핵심 관련자로 지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수사를 자청해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27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수사하라고 공개 선언하라. 대통령 수사 없이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 성역 없는 수사를 받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또 "최씨가 귀국해 수사 받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사건은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과 최순실 일파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 권력을 사유화해 국기를 파괴한 사건, 즉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며 "대통령은 이 사태의 철저한 해결을 위해 스스로 특검 수사를 자처하는 것이 역사와 국민 앞에 최소한의 예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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