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뉴시스 |
북한 핵과 미사일 사태는 심각하다. 자칫 한반도에 전면전쟁이 발생해 민족 전멸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다. 이 사태는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엔, 유럽연합 등 많은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다양한 견해나 해법을 제시한다.
한반도 사태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줄을 잇는다. 자본주의 진영에서 생산되는 보도는 북한은 ‘악’, 북한과 대칭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선’이라는 2분법이라는 틀에 갇혀 있고 군사적인 해법을 앞세우면서 강대국의 위세를 과시하는 미국 논리를 크게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과 러시아 언론은 양비론적 입장이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앞세운다.
서구와 한국 언론 대부분은 북한의 언행에 대해서는 ‘도발’ ‘음모’, ‘저의’ ‘흉계’ ‘노림수’ 등 부정적인 낱말들로 평가한다. 그러나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나 국제기구 등의 언행은 ‘평화’ ‘안정’ ‘방어’ 등의 긍정적인 낱말들을 사용한다. 판박이처럼 매우 단순한 틀 속에 박힌 논리가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광범위하게 반복해서 유포된다. 특히 국내 보수언론의 경우 심각할 정도다. 단세포적 반응이라는 비판이 따르게 되는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북한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고 북에 대한 표현에서 ‘고무, 찬양, 동조’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포함되면 처벌받게 되어 있다. 보안법에 순치된 언론은 기계적으로 이 법의 허용 범위 안에서 보도하는 것에 익숙하다. 국내 보수, 진보 언론은 모두 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를 매일 접하면서 집단 세뇌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남측에서는, 북한 핵과 미사일 사태에 대해 북측의 도발과 그로 인한 위기 상황이라는 짜증 섞인 견해가 주를 이룬다. 현 상황의 뿌리는 냉전체제 속의 분단과 전쟁, 휴전 등으로 이어지는 긴 과정 속에 담겨 있다. 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원인 등에 대한 파악과 분석 등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미국이 절대 선이라거나 북한이 절대 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어렵다. 국가이기주의나 정권 욕구 등이 혼재해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그런 사회과학적 분석과 설명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가는 자칫 ‘고무 찬양 동조’ 등으로 낙인찍힐 위험이 크다.
남측에서는 고착화된 적대적 대북 언론보도 공식 속에서 미국은 특히 북한이라는 ‘악의 축’에 대적하는 가장 정의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나 전략은 남측 언론에 의해 거의 무비판적으로 소개되거나 암묵적 지지를 받는다. 그러면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미국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 하는 논리가 나오고 그런 것은 북을 돕거나 이롭게 한다는 식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즉 ‘반미=친북’이라는 식이다. 이런 단순 논리는 이른바 빨갱이 사냥이나 종북몰이에 흔히 동원되는 수법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안법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그것을 돕는 막강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측을 보안법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상태에서 한반도 사태를 객관적으로 평가,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남북문제 전문가들이나 언론은 이런 제약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자기 검열이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당국에 걸리지 않을까를 잘 알고 있고 항상 의식하는 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과 관련해 빈번하게 이뤄지는 한미관계 가운데 최근 언급되는 것은 한국의 미사일 거리 연장과 핵잠수함 건조 문제 등이다. 이들 군사적 현안은 반드시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도된다. 예를 들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해 공감하고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는 연합뉴스 기사가 그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지난 2012년 체결한 미사일 지침은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 탄두 중량은 500kg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향후 사거리와 중량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미사일 지침’이라는 한미간 합의에 의한 것인가 보다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한국도 주권국가인데 왜 자국 국방문제에 대해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그런 가장 중요하고 국제사회가 주시하는 의문을 크게 제기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미국이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다거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미국 무기가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배치되는 것은 군사주권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근본적 질문을 좀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다고 할까? 그런 체념 섞인 고정관념의 배후에는 역시 보안법이 존재한다.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기존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반미, 또는 용공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암묵적인 견해가 광범위하게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보안법과 친미라는 큰 틀에 갇힌 특수하면서도 기이한 공동체라 할만하다. 남북 대치라는 상황 때문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통제, 억압받는 현상이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자연스런 규제로 인한 부작용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하다.
현 한반도 사태는 사실 한민족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다. 그러니 다들 발 벗고 나서서 그 해법을 찾고 실천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보안법 때문이다. 눈 번히 뜨고 위기를 감지하지만 깊이 생각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니 국내에서 생산되는 보도나 전문자료에서 그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외국 언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한반도 사태의 현재와 그 미래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모습은 비참한 일이다. 언제까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면서 이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마치 남의 일 보듯 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질 일이다. 대외적으로 수치스럽고 그래서 화나고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세대라는 의무감 때문에 현 한반도 사태에 대한 관찰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진행되는 한반도 사태는 북한이 미국을 강력하게 압박하는 형국이다. 북한이 괌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이어 김정은 위원장의 유예 발언, 그리고 일본 상공을 통과한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어졌다. 북한이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는 괌 포위 발사의 전주곡이라고 설명하면서 긴장감은 더 고조되는 상황이다.
한반도 사태는, 한미가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조건을 걸어놓은 것에 대해 북한이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맞장을 뜨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사태는 북한이 하는 일은 도발이요, 도전이지만 미국과 한국이 하는 일은 평화를 지키는 것, 침략에 대한 방어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북한은 숨 쉬는 것조차도 비판의 대상이 될 만큼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라는 선전, 심리전이 집중 실시되고 있다.
한반도 사태에 대한 해법은 중국이 제시하는, 한미의 군사훈련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이라는 형식으로 제기되지만 한미 두 나라는 한미와 북한의 행위를 동일선상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외면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무릎을 꿇고 나오라는 주장만을 내놓는 형국이다. 현 사태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마치 점술가 같은 예언적 전망을 내놓지만 그것이 적중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관련 변수가 너무 많아서다.
세상은 삼라만상, 다인다과(多因多果)라 하듯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다각적인 포석이나 의미가 담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어 열심히 살피지 않으면 미궁에 빠지거나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해서 십인십색이라는 말도 나왔다. 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해서도 여러 견해와 가치 판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과학도 사회가 다양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고 인간의 사고방식도 다양하다는 점을 출발선으로 삼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여러 견해가 펼쳐지고 다양한 해법이 자유롭게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즉 북한이나 미국, 한국의 잘잘못에 대해 툭 터놓고 까발리면서 견해를 좁히는 방식은 어떤가 하는 것이다. 보안법에 익숙한 시각에서 보면 이는 혼란스럽고 위험하다는 견해도 나오겠지만 집단지성과 같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기존의 한미 동맹관계, 남북관계 등에 대해 여러 주장과 해법 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보안법은 1948년, 일제 강압 해방과 남북한 개별 정부 수립이라는 상황에 만든, 그래서 오늘날 국제적으로 많은 지탄과 비판을 받는 악법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런 보안법이 21세기에도 통용되고 있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지금 남한은 경제력 세계 12~13위,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 보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남한과 수교하고 G2가 되어 사드로 남한에 대한 보복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재무장을 향한 극우 보수화로 치달으면서 전쟁 범죄 부인,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미래의 한반도 침략을 예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남측 정부가 동북아 정세를 다각도로, 깊이 있게 대단히 치밀하게 살피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는 수교하면서 북한만은 안 된다며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할 한민족의 반쪽에 대한 상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일부 수구세력은 분단에 기생해오던 타성에 여전히 파묻혀 있고 얼치기, 사이비 진보는 보안법이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변화된 지구촌에 눈을 가리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고 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전,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 보안법은 철폐되어야 할 최악의 적폐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webmaster@minplus.or.kr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