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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벼랑 끝'에 앉은 명진 스님

 
김제동, 전인권, 김미화 발길 이어져
[불교적폐청산] 명진 스님 단식 17일차, 급속히 건강 악화 ①

17.09.04 10:10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시연쪽지보내기

▲ 불교 적폐청산을 외치며, 명진 스님이 단식에 들어갔다. ⓒ 정대희

"단식? 난 요즘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빠. 난 살이 마르고 있지만, (조계종 총무원 청사를 가리키며) 저기에 앉아있는 자승 총무원장은 매일 같이 피가 바짝바짝 마를 겁니다. 하-하-하-. "

명진 스님(67. 봉은사 전 주지)이 '불교 적폐 청산'을 외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12일차 되던 날이었다. 지난달 29일 만난 스님은 체중이 7킬로그램 줄었단다. 곡기를 끊어서 얼굴은 거칠고 야위었지만, 유쾌-통쾌-상쾌한 말은 여전했다. 

단식 농성장 분위기도 그의 말투와 같았다. 엄숙하지 않았다. 가령, 농성 초기에는 천막 기둥에 이런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스님께서 단식 정진중입니다. 가급적 대화는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식 6일째 되던 날에 이걸 뗐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단식장 풍경] 무기한 단식농성장이 유쾌한 까닭
 
▲ 명진 스님이 단식농성장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9일에는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 전인권이 방문했으며,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와 공익제보자 최성조 박사도 찾아와 명진 스님의 두 손을 잡았다. ⓒ 정대희



매일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단다. 단식 천막 앞에 줄을 선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하루 동안에도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 가수 전인권씨가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명쫓사'(이명박에게 쫓겨난 사람들의 모임)는 이날 저녁 농성천막에서 긴급총회를 했다. 유명 스포츠 선수 등이 포함된 '힘빼자!' 모임도 왔다. 
 


스님뿐만 아니라 신부님과 수녀님, 원불교 교무, 목사님도 농성장을 찾았다. 봉은사 신도였던 강남 부자들이 자원봉사하고, 검사 딸, 대기업 임원 부인도 출근하다시피 했다. 용산참사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 쌍용차 해고자들은 수시로 찾아온다. 자유한국당 의원만 빼고 청와대 인사에서부터 여야 의원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썼다. 종교불문, 계층불문, 정파 불문 농성장이다.  

농성장 앞은 만남의 광장이었다. 농성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흘렀다. 이쯤 되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명진 스님의 말이 우스개로 들리지 않았다.
  
"원래 묵언정진하기로 했는데 백기완 선생님과 함세웅 신부님, 그리고 여든여덟 살의 재가 신도분이 제게 힘을 주시겠다고 오시는 데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연세가 드신 분 앞에서만 입을 열 수 없는 노릇이고. 말을 하는 게 제 팔자려니 하고 있어요."

'대화 자제' 안내문이 걸렸던 자리에 대신 들어선 건 김주대 시인이 직접 그려서 들고 온 시화였다. 
 
▲ 김주대 시인의 시화 ⓒ 정대희

'불'(佛)자의 내림 획을 절벽으로 묘사한 뒤 꼭대기에 명진 스님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전 항상 벼랑 끝에 앉아 있었어요. 세상을 살면서 편한 적이 없었죠. 그야말로 전투와 전투 속에 다져진 '욕'이거든요. 자승 원장에게도 욕을 해서 불편하게 했죠. 그런데 저 그림보다 인상적인 것은 글입니다."

김주대 시인이 그림에 써넣은 글은 다음과 같다. 

"목숨에도 백척간두가 있다. 한 스님이 벼랑 끝에 올라가 웃으면서 난간에 매달린 살찐 부처를 밀어내고 있다. 부처가 죽어야 부처가 사니까." 

'자승 OUT'. 살찐 부처를 연상시키는 피켓이 곳곳에 놓여있는 서울 조계사 앞 우정총국 마당. 그곳에서 단식하는 명진 스님에게 '요즘 자주 떠올리는 부처님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의를 따르다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낫다. 지혜롭지 못하면서 높은 평판을 얻는 것은 지혜가 있으면서 평판을 얻지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 욕망에서 얻어지는 쾌락보다는 욕망을 벗어나 자기를 단련하는 괴로움이 낫다.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게 낫다."(고닷따경) 

[단식 농성장의 하루] "묵언정진? 난 하루 종일 떠든다"
 
▲ 지난달 29일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가 단식농성중인 명진 스님을 찾았다. ⓒ 정대희

오전 5시. 단식농성 천막 안에서의 기상 시간이다. 근처 사무실에서 목욕하고 빨래한 뒤 6시에 다시 천막으로 돌아온다. 그는 "농성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데 꾀죄죄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게 죄송하다"면서 "말끔하게 면도한 청정 단식농성 문화를 선보이겠다"고 또 우스개를 했다. 그는 그 뒤 농성장 옆 우정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와 책을 펴거나 뉴스를 본다. 

오전 8시 30분. '세상과 함께'라는 한의사 단체가 방문한다. 명진 스님이 이 단체의 초청으로 특강을 한 게 인연이 됐다. 이들은 체중과 체온, 혈압을 재고 기치료를 한다. 오후 8시 30분에도 방문한다. 지금까지는 모두 정상이란다. 그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어깨에 힘주지 않고 말 끝머리에 넣는 깨알 같은 '자뻑'에 폭소를 터트린다.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가 와서 자기 단식의 경험을 이야기해줬어요. 건강을 챙기라고 했는데요, 전 신기하게도 멀쩡해요. 배가 고프지도 않고 기운도 딸리지 않아요. 그간 제가 쌓은 도력이 이 정도라는 거지요. 하-하-하."  

오전 9시.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하루 종일 떠들어요. 점심, 저녁도 안 먹으니 공중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농성장을 찾아오는 이들이 남긴 방명록도 볼 만하다. 용산참사 유가족이 "스님 힘내세요. 늘 응원합니다"라고 적은 바로 밑에 세월호 유가족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끝까지 옆에 있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도 "힘내시라",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온 사람들은 "자승 쫓아내고 모기 퇴치, 박멸... 강건하소서"라고 적었다. 

"우리사회 양심의 거울이시고, 민주주의와 인권, 자주통일운동에 온 생애를 바친 명진스님의 정의로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중생이 앓으니 나도 앓습니다. 화광동진. 먼저 깨는 자는 그 빛을 감추고 세상의 먼지에 섞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천입니다. 스님! 힘 내십시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재동 화백은 명진 스님이 방문객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붓으로 그렸다. 이철수 판화가는 스님의 단식을 상징하는 선화를 그렸다. 어린 학생들은 예쁜 손 편지를 써왔다.    

오후 7시30분. 농성장 옆 작은 공간에서 촛불을 들고 매일 찾아오는 50~60명의 사람들과 촛불 법회를 한다. 많을 때는 100명도 넘는다. 이날은 용산참사 유가족들, 가수 전인권씨, 방송인 김미화씨, 이명박 정권 시절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 등이 마이크를 잡았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보신각 앞에서 길거리 법회를 연다.   

밤 11시30분. 취침시간이다. 먹은 게 없으니 양치질할 것도 없단다. 공중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얼마 전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 때 방문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천막 안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단다. 이런 날도 잦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제법 차다. 이날 밤 11시경에 다시 농성천막을 들렀다. 하루 종일 북적였던 곳에 어둠이 깔렸다. 7~8명의 사람들이 우정총국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을 샐 모양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세워준 천막 안에서 이부자리를 펴던 명진 스님이 활짝 웃었다. 천막 기둥 희미한 전등 아래 걸린 그림 속의 명진 스님도 따라 웃었다. 벼랑 끝에서.  
 
 "진실이 잠들면 요괴가 눈을 뜬다"
명진 스님 동조단식에 나선 효림 스님 
 
▲ 불교 적폐청산을 위해 명진 스님과 함께 동조 단식에 들어간 효림 스님 ⓒ 정대희

'초상지풍'(草上之風). 

효림 스님(64. 경원사 주지)이 써준 붓글씨다. 

"공자님 말씀 중에 따온 것인데요, 풀은 민초입니다. 불교 적폐청산의 바람이 그 위로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명진 스님 농성 천막 맞은편에서 동조단식을 한 지 5일차, 효림 스님은 "명진 스님은 오랜 도반이자 친구이고, 과거 불교개혁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동지"라고 말했다. 그는 "불교 적폐 세력들이 워낙 강고하게 성을 쌓고 구축했다"면서 "이번 단식을 통해 조계종을 비롯해 한국사회 적폐청산에 신호탄을 쏘아 올리겠다"고 말했다. 

조계종단의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명진 스님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조계종단의 생명은 청정승가를 구현하는 것인데, 각종 부패가 난무하고 있다"면서 "사찰의 공금을 횡령한 돈으로 도박하는 승려도 있고, 폭력행위와 은처(숨겨둔 처)가 확인돼도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적폐청산입니다. 지난 대선 때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을 지지한 건 적폐청산의 열망이었습니다. 정권교체가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산업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계와 학계, 정치권과 법원, 검찰 등 공직 사회에 쌓인 적폐가 심각합니다. 불교계가 적폐청산에 나서겠습니다." 

그는 "진실이 침묵하면 거짓세상이 되는데, 부처님은 '진실이 잠들면 요괴가 눈을 뜬다'(법구경)면서 '수행자는 진실을 위해서 바람처럼 신속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조계종단의 적폐에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적폐세력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던 지난 2일 오전, 16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명진 스님의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졌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조정래 작가 등이 급하게 찾아와서 간곡하게 단식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날 저녁 단식 9일차인 효림 스님은 탈진과 저혈당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후송됐다.  
 
▲ 명진스님이 불교 적폐청산을 외치며,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 단식 농성중이다. ⓒ 정대희

*추신 : 명진 스님의 단식 농성장이 '만남의 광장'이 된 까닭은 그동안 맺어온 수많은 인연 때문이다. 아래 기사를 클릭하시면 그 인연의 내용과 깊이를 알 수 있다. 

[명진 스님- 나를 찾는 길①]"성철스님과 맞장 뜨려고 백련암 올라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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