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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10번의 유엔 제재, 북한이 변하던가?"

 
[정세현의 정세토크] "6월 정상회담 때 이면합의 있었나?"
2017.09.14 08:21:10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열 번째 대북제재 결의안인 2375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당초 미국이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초안보다는 후퇴한 결과가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재 명단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원유를 막는 데도 실패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번 제재 결의안이 나온 이후 중국이 물밑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은 어차피 유엔 제재는 효과가 없지 않냐며, 제재 효과가 사실상 임계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면서 미국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의 정치 일정과 향후 열릴 다자회담을 보더라도 중국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화 테이블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음달 18일로 예정된 중국 공산당 19차 당 대회에 주목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동아시아 국제정치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고 싶을 것"이라는 게 정 장관의 예측이다. 

그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2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 것도 아마 이에 대한 준비차원일 것"이라며 "북미 간 접점을 만들어서 베이징에서 6자회담을 성사시키면 시진핑 2기 정부는 축포를 울리면서 출발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지난 9월 9일 정권 수립일에 아무런 군사적 행동도 하지 않고 지나간 것 역시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은 이런 그림을 그리면서 북한 측에 사고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 같다"고 관측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도 이번 일을 통해 북한에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느꼈을 것"이라며 "당분간 소강상태가 이어진 뒤 10월 중국 정치 일정 및 11월 APEC이 지나고 나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북핵 문제가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문제는 한국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들어가는 원유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미 1일(현지 시각)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제 조건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반대 입장을 알면서도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꺼낸, 기이한 외교 행태였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의) 핵실험 전에 푸틴 대통령이 이미 대화를 강조했는데 문 대통령에게 푸틴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라고 일러준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라며 "어떤 일이든 분석을 정확하게 해야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건데, 이건 문재인 정부 외교 안보 라인이 상황 판단에 완전히 실패한 셈이나 다름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국이 미북 양국의 접점을 찾으면서 대화를 조율하게 되면, 우리가 그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따라가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방향을 틀 준비를 해야 한다. 맥마스터 안보 보좌관과 전화만 하지 말고 실제 밑에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터뷰는 1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이 채택됐습니다. 당초 북한으로 들어가는 원유 공급이 차단될 거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결국 정유 제품 수입에 상한선을 두는 것으로 제재 수위가 정해졌는데요. 이번 제재가 실제 북한의 태도를 바꾸는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의 태도를 바꿀 정도의 내용이 담긴 제재는 아닌걸로 보입니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지 9일 만에 나왔는데, 이전 결의안 보다는 비교적 빨리 채택된 셈입니다. 그런데 빨리 채택되면 잘된 일인가요? 이걸 성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밥을 짓더라도 뜸이 들어야 잘 되는거지, 설익은 밥을 만들어 놓고 빨리 됐으니 좋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내용적인 측면을 보면 일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동생인 김여정이 제재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결국은 최종 결의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게 안보리 결의안에 들어갔다면 원유 차단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북한 반발이 더 컸을 겁니다. 

이건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입니다. 유류 수입 문제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북한의 정치문화적인 측면을 살펴봤을 때 최고 존엄을 건드릴 경우 가만히 있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북한은 모든 것에 우선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저항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결의안에서는 원유에 대한 추가적 제재는 없었습니다. 예년과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된 셈입니다. 그럼 이 부분은 아무런 제재 효과가 없는 것이고요. 정유제품 수입을 1년에 200만 배럴 이하로 제한했는데 이게 북한이 경제적인 타격을 받을 만큼 제재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북한은 2006년 이후 이번 결의안 2375호까지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해 지속적으로 제재를 받아왔습니다. 이번 결의안이 무려 10번째입니다. 북한이 이런 정도의 결의안을 예상하지 않고 일을 저질렀을까요? 북한식 표현대로 '내부 예비', 즉 정유 제품이 들어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최소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도록 예비 자원을 마련해뒀을 겁니다. 결국 이번 유엔의 제재 결의안도 솜방망이에 불과한 셈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미국의 초안이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조정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북한의 무력 시위 강도가 웬만큼 높지 않고서는 이보다 더 강도 높은 제재 결의안이 채택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해서 특정한 목표 지점에 떨어뜨리는 걸 보여주는 정도가 아닌 이상 더 강력한 제재 결의안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 유엔 안보리는 11일(현지 시각)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김정은이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김이 반영된 것일까요? 

정세현 : 김정은이 국제적인 제재 대상이 되면 북한의 반발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한 중국이 움직인 결과라고 봅니다. 대신 정유 제품 수입 상한선을 만들고 LNG 등은 원천 수입 금지하면서 미국의 체면은 세워주는 식으로 협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실속은 별로 없는 거죠.  

중국은 이렇게 하면서 물밑에서 대화 쪽으로 물꼬를 트려는 시도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은 어차피 유엔 제재는 효과가 없지 않냐며, 제재 효과가 사실상 임계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면서 미국을 설득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미국을 직접 공격해서 사상자가 나온다면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자기들이나 러시아나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제재 결의안에 합의해줄 수 없고, 그렇다면 대화로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를 내세울 겁니다. 

특히 중국의 정치 일정과 향후 열릴 다자회담을 보더라도 중국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화 테이블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중국은 다음달 18일 19차 당대회를 엽니다. 이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2기 행정부가 출범하죠. 이후에는 11월 5일 베트남 다낭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있습니다. 

중국은 공산당 대회에서 방향을 정한 뒤 시진핑 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동아시아 국제정치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고 싶을 겁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2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 것도 아마 이에 대한 준비 차원일 겁니다. 북미 간 접점을 만들어서 베이징에서 6자회담을 성사시키면 시진핑 2기 정부는 축포를 울리면서 출발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실제 중국 외교부는 양측이 이번 만남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이런 그림을 그리면서 북한 측에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에 사고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양제츠의 방미를 앞두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 사고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 결의안에는 찬성하지만 김정은을 제재하는 건 어떻게든 빼주겠다면서 군사적 행동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을 수 있죠. 중국이 이렇게까지 나오면 북한도 거기다 대고 대책 없이 사고 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도 이번 일을 통해 북한에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느꼈을 겁니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하자니 중국이 반발하니까 그마저도 쉽지 않구요. 결국 제재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당분간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10월에 중국 정치 일정 및 11월 APEC이 지나고 나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북핵 문제가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맥마스터랑 전화만 하지말고!  

프레시안 : 제재 이후 중국이 주도하는 대화로 갈 가능성이 높다면, 우리도 방향을 바꿀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중국이 미북 양국의 접점을 찾으면서 대화를 조율하게 되면, 우리가 그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방향을 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맥마스터 안보 보좌관과 전화만 하지 말고 실제 밑에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면밀히 체크해야 합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미에 맞게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사실 우리가 미북 대화의 시급성이나 불가피성을 주장했어야 합니다. 지금 한반도 위기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트럼프의 두서 없고 오락가락하는 험한 말이 북한으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게 하면서 자기 방어 차원에서 무력 시위를 하게 되는 양태를 키우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이게 고조되면서 8월 위기설까지 나오게 됐는데요. 

8월은 조용히 지나갔지만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자기들을 압박할지 모른다, 조금만 가만히 있으면 그 때를 노려서 트럼프가 자기들을 칠지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사전 견제 차원에서 미국에 겁을 주려고 미사일과 핵 실험을 강행하고 있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북핵 문제가 해결 기미도 보이지 않고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취하면 그 불똥이 결국 우리에게 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종용해야 하는 겁니다. 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가기만 하는 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원유 차단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고요. 정상외교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아닌가요?  

정세현 : 문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 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서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안보리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면서 이번 결의안에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 모임)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 회원국 언론에 '브릭스 : 전략적 파트너십의 새로운 지평을 향해'라는 기고문을 보내면서 북핵과 미사일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제조건 없는 대화라고 강조했습니다. 

핵실험 전에 푸틴 대통령이 이미 대화를 강조했는데 문 대통령에게 푸틴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라고 일러준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요? 어떤 일이든 분석을 정확하게 해야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건데, 이건 문재인 정부 외교 안보 라인이 상황 판단에 완전히 실패한 셈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도 전에 푸틴이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이미 이야기했으면 원유 차단과 같은 제재는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는 겁니다. 만약 청와대 국가안보실이나 외교부가 이 정도도 몰랐다면 정말 문제 있는 겁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어제(12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한러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가 사무관급의 외교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사무관급이라고 해도 돌아가는 상황을 한 번만 분석해보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 지난 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청와대


전술핵,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왜 이야기하나 

프레시안 : 그런데 야당도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전술핵 재배치를 해야 한다, 핵 무기를 가져야 한다 등등 비현실적인 대책만 내놓고 있습니다. 

정세현 :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자꾸 거론하고 있습니다. 1991년 미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나갔을 때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목을 가져왔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항에 명시한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의 금지'는 북한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적용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북한이 핵을 가졌으니까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북한은 재래식 전력에서 열세를 보이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핵과 미사일로 자금을 투입한 겁니다. 그래서 자기들은 이제 나름대로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남한에 전술핵이 들어오면 자기들은 다시 열세가 됐다고 판단,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겁니다. 

일각에서는 전술핵을 방어용이라고 하는데, 아니 세상에 방어용‧공격용 무기가 따로 있습니까? 무기가 공격용인지, 방어용인지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전술핵을 '방어용'으로 가져다 놓는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공격용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은 핵 능력을 더 증강시킬 것이고 그러면 우리도 전술핵을 더 가져다 놓아야 합니다. 한반도에 핵 경쟁이 시작되는 셈이죠.  

게다가 전술핵을 우리가 가져다 놓는다고 해도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은 미국 대통령입니다. 일부에서는 나토(NATO) 식으로 전술핵을 운용하면 된다고 하는데 나토도 나토 미군 기지에 전술핵을 가져다 놓은 것일 뿐이지, 실제 운용은 미국이 하는 겁니다. 

기술적으로 봐도 전술핵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은 2시간이면 핵무기를 싣고 한반도로 출동할 수 있는 전략 폭격기에 스텔스도 보유하고 있는데 전술핵을 배치할까요? 

프레시안 :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은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세현 : 매케인 의원에게 한국의 어떤 사람들이 전술핵 재배치를 원한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부의 입장을 마치 한국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인식한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에 그런 여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론을 한국의 국방부 장관이 미국에서 이야기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장관이 "전술핵 재배치를 원하는 한국 내 여론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군다나 그 여론이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건데 그걸 문재인 정부의 장관이 이야기했다고 하면 도대체 국정 철학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프레시안 : 국방장관은 전술핵 재배치를 이야기하고 외교부 장관과 청와대는 그런 논의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외교 안보 정책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조선 시대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의정부 대신 비변사를 설치했습니다. 이게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입니다. 국가에 위기 상황이 터지면 비변사에서 현직 관료들뿐만 아니라 전직 관료들도 같이 만나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물론 현재 국가안보실장이 대사도 지냈고 국방부 장관은 4성장군 출신이니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지금과 유사한 외교적인 난관이 있었을 때 일선에 없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교 난맥을 풀기 힘들다면 경험이 풍부한 전임자들에게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실 6월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만 해도, 시기적으로 9월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는 중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6월에 급하게 해버렸죠. 여기서부터 뭔가 스텝이 꼬인 것 같습니다. 당시 회담이 겉으로는 매끄럽게 끝났는데 이후에 한미 FTA 문제가 튀어 나오고 사드가 급속하게 배치되는 것을 보고 이 때 무엇인가 미국과 다른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미국에도 'NO'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문 대통령에 대한 의심이 많았죠. 미국은 이걸 구실로 삼아 정말 그렇게 할 거냐고 한국에 겁박을 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나 한미 FTA 등을 밀어붙이려 했을 수 있습니다. 일단 정상회담은 조용히 지나가고 나중에 미국이 하라는 대로 따라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수 있죠.  

만약 참모들이 이렇게 움직였다면 대통령은 공약을 못지키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의 공약을 숙지하고 국정철학을 뒷받침해야 하는 참모들이 도리어 대통령으로 하여금 거짓말하는 사람 또는 공약을 깨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6차까지 핵실험을 하고 ICBM 완성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결국 한반도 문제 주도권이 남한이 아니라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남북관계가 살아있을 때는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서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우리가 미북 정상회담을 주선하기도 했죠. 그래서 북한 조명록이 워싱턴에 가고 올브라이트가 평양에 오고 그랬죠.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이 주도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합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모두 남북관계가 그나마 잘 유지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지금은 보수 정권 9년을 지나오면서 남북관계가 사실상 끊어졌습니다. 남북관계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원만했다면 북한이 지금과 같이 막가파 식으로 미국에 멱살잡이를 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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