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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랩]06 안티성폭력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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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4/26
    화가난다,모르겠다,부끄럽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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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어머니 소원

간만에 어머니와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나들이는 이름만 나들이고, 그냥 옷 몇벌 사볼까하고 길을 나섰죠.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남들은 봄이라고 꽃무늬를 입고 돌아다니는데

전 아직도 겨울 골방에서 검은 옷 입고 웅크리는 곰새끼 같다며 질질질 끌려갔습니다.

 

체격이 큰 까닭에 보통 사람들이 입는 사이즈는 엄두도 못 내보고,

패션의 흐름이 한 눈에 보인다는 DDM. 그렇죠. 동대문.

싸돌아다니는데, 오늘은 지름신이 왕림하지 않으신 관계로

만원짜리 블라우스 하나 사선 집에 왔습니다.

 

 

우리 어머니 소원이 몇 가지 발견됐습니다.

지나가는 어여쁜 학생을 보자마자, "난 우리 딸이 저렇게 얄상하면 좋겠어"

그리고는 햄버거 가게로 데려가셨습니다.

소원 불가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길엔

신촌 길거리를 지나는 커플들을 지긋이 쳐다보시더니 한 마디.

"야, 너보다 어린애들도 손잡고 껴안고 다닌다"

하하하하

버스 안에서 크게 웃어주고는 므흣한 표정으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옷을 고르는 옷 가게 안에서는 이 옷 저 옷 입혀보시더니,

껄끄러운 얼굴로 다음에 오겠다하시고는 가게를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넌 뭘 입어도 그렇게 태가 안 나오냐?"

 

 

하하하하 어머니 어머니.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안드는 딸두셔서 어떡하시겠습니까요.

그냥 데리고 살아야지 ㅋㅋㅋ

 

에휴.

저번 저녁약속 안지키고 술마신다는 얘길듣고 하셨던 욕 만큼이나

충격적입니다요.

 

그래도 뭐, 즐거웠다 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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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험기간

요즘 애들가르치는 재미로 쏠쏠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시험 기간이 되니까 애들은 애들대로. 저는 저대로 신경이 곤두서 있습죠~

시험을 대비한다치고 무작정 고1을 맡아서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사교육 진흥에 발전하는 삶을 살다보니, 이게...장난이 아니군요.

 

사교육 진흥에 이바지하는 개같은 제 삶이야 각설.

최근 제 삶의 포커스를 "교육"에 맞추다보니, 이러저러한 학교의 얘기들이 아이들의 눈과 입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학교는 800원짜리 수업이니, 나머지는 학원가서 들어라.

 

 중세국어를 가르치는데, 아무래도 고전문법이다보니 가르치기도 학습하기도 힘이 드는 영역입니다. 

 나름 고민해서 쉽게 쉽게 재미있게 알려주려고 노력하지만,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애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제가 외계인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항상 어려운 건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고 하는 내용과

아이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의 수준을 조절하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 택한 방법은 학교에서 어떻게 배웠냐는 걸로, 모든 기준을 학교에 맞추고 있습죠.

 

  그런데 어느 날은 수업시간에 설명하다 애들 말이, 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학교 수업은 800원짜리 수업이니, 나머지는 학원가서 들어라"고요.

그리고는 질문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답니다.

넌 이것도 학원에서 못 듣고 뭐했냐고요.

 

질문거리를 잔뜩 싸가지고 와서 묻는 애들한테, 순간 그 말을 듣고는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뭐, 그 선생님께서야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거라고 스스로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시험때문에 불안에 떠는 아이들의 눈빛과 학교 선생님은 원래 그렇다는 체념의 말을 듣고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런건 수능에 나오지 않으니, 수업하지 않는다

 

 이런말은 사설 학원에서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아이들도 매우 수긍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느 학교에서는 국어교과서에 나온 현대문법을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치기도 어렵고 애들도 어려워하니 그렇겠습니다만, 수능에 잘 나오지 않으니 수업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문법문제가 나오더라도 한 두문제만 출제되니 알아서 찍으라고 했답니다.

 

  한편으로는 예전의 국지적인 지식을 요구하기보다는 통합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수업으로 진행해나간다는 말일거라고 생각하려고 해봅니다. 음...여러가지 사고로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은 필요한거라구요. 

 

   그런데 여전히 문학작품엔 밑줄을 긋고 아이들은 시어의 의미를 깜지 열장을 써가며 외우고 있습니다. 김유정의 봄봄을 배우면서, 애들이 배우는건 장인과 점순이, 나의 관계를 전도된 성 역할, 해학성을 유발하는 요인, 역순행적 구성 이런 것들입니다. 

 

 전 지금까지 어느 선생님도 작가가 혹은 시인이 하나의 작품을 쓰기까지 얼마나 고민했고, 힘든 경험을 했었는지 말해주지도, 생각해 볼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얼마전에 윤동주의 시를 이해하고서야 얼마나 재미있는 걸 배우는지 알겠더군요. 아마 지금까지 제 선생님들은 이런 걸 의도했나봅니다. 스스로 터득하는 지혜 그리고 지금 제가 가르치는 애들에게도 마찬가지일까요??

 

전 그냥 핵심적인 내용 설명과 기출문제를 풀어보게 하고는 저번주가 김유정 고향에서 문학제가 있었다고 얘기해줬습니다.

점순이 콘테스트도 열리는데, 키가 작고 야무져야 하는데 전 신체조건에서 제외되버려 안타깝다구요. 그리고 여기서 누가 제일 점순이에 어울릴까? 물어보고는 시험이 끝나고 혹시 기회가 되면 같이 가보자고 말했습니다.

 

근데...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전교 1등 문제없지?

 

 

이제 고1이 된 녀석. 들어보니 자기와 다른 친구 둘만 불러놓고는 담임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중학교에서 전교 1등으로 들어온 녀석들이니, 이번에 전교 1등 문제없지 않겠냐구요?

 

아...선생이 학생에게 공부 열심히하라고 다독여 주는 말인데,

전 왜 부아가 자꾸 날까요?

아마, 전교 1등을 해보지 못했던 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라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애들에게 신경쓰면 많은 애들이 보일텐데,

어느 학생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생님들은 참 이상하다구요.

애들이 성적이 좋게 나오면 다들 자기가 잘 가르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게 웃긴답니다.

그건 자기들이 열심히 해서 그런건데 말이라구요.

 

 

한편으로는 이 싸가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끄러웠습니다.

이 애가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들어 준 선생이 없었다는 사실에서요.

하기사 선생 앞에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것도 요인이 작용하긴 하겠죠.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 선생님이 하고 싶고, 그래서 사범대에 가고 싶다고 말한 녀석이 있습니다.

저야 어쩌다보니 사범대에 와서 어떻하다보니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는데,

아직 고2인 녀석이 자신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방법까지 탐색하는 모습을 보고

제법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왜 선생님이 되고 싶냐고 묻는 제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곤

꿈을 짓누르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까닭이

반복되는 일상에 네시 반, 다섯시 반이면 칼 퇴근하는 생활이 자신의 스타일이 딱 맞기 때문이라더군요.

예전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매우 현실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그렇다면 쉬운 일이 아니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난 아직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쳐본 일이 없지만, 가르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하면서요.

 

 

요즘에 느끼는 거지만,

사람을 바라볼 때 가끔 상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땐 바로 애들의 눈을 쳐다볼 수 없을 때입니다.

사람한테 사기치지 말아야겠다고 하는 생각. 말 한마디도 참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못해서 부끄럽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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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난다,모르겠다,부끄럽다.

요즘 내가 잘 쓰는 표현은 세 가지.

화가 난다, 모르겠다, 부끄럽다.

 

 

내가 과도하게 감정표출을 시작한 건 얼마 전부터이다.

 

인생모드를 근 20년 넘게 이기모드로 살아왔다고 판단한 바,

이타모드로 급 변경하기로 마음 먹은 후부터,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화는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주변인과 주변 모습에 기인한 화이다.

 

왜 앞에서는 말하지 않을까? 그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일까?

왜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바꾸지 않을까? 왜 행동하지 않을까?

왜 침묵하는 것일까? 등등

 

머릿속에는 수 만가지 생각들이 부유하는데, 해결책이 나오지도 않고

자꾸 왜? 어떻게?라는 질문들만 떠오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술 마시고 꼬장도 부려보는데,

그 방법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므로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모르겠다는 표현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제법 논리적인 말로 상대를 설득하면 해결되는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생각들을 공유하고 풀어낼 수 있을까?

지리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럴려면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상대를 감화시킬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그게 화법의 원리라니까.

 

 

그걸 모르겠다. 아니, 못 하겠다.

이타모드로 급변경 한다고 해도, 난 아직 나를 드러낼 준비가 안됐다.

 

나를 까발리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행동은 짐짓 위선일 뿐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회피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내 모습 때문에

무지를 의식하고 알지 못하는 지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알고도 행동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는 부끄러움.

모두.

 

그래서 부끄럽다.

 

 

 

화가 나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고. 행동하지 못해서 부끄럽다.

그리고는 거짓웃음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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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아내가 결혼했다.

   

 

 

책 소개

남자와 결혼해 버린 발칙한 아내!

‘결혼’이라는 결정적 한 골을 희망한 남자와
2명의 골키퍼를 동시에 기용한 한 여자의 유쾌한 반칙 플레이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아내가 결혼했다』가 출간되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중(二重) 결혼을 하려는 아내와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심리를 역동적인 축구 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시켜 오늘날의 독점적 사랑과 결혼제도의 통념에 대해 발랄하게 문제 제기를 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의 결혼관을 거침없이 소설로 끌고 들어와 시종일관 밀고 나가며 일처다부의 상황을 수용하게 만드는 도발적인 서사를 만들어 감으로써 일부일처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솔직하고도 대담한 판타지를 전개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서사가 갖고 있는 “배수진 없는 무모한 탈주는 일부일처제나 절대적 사랑의 시효가 만료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소유욕과 독점적 연애, 배타적 결혼관이 우리의 행복을 억압하는 방식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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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책소개를 하는 것을 보면서 찾아 봄.

엊그제인가 선배 블로그의 글을 우연히 읽다가 생각한 내용이 떠올랐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선배의 대답은 기억이 안나고. ㅡ.ㅡa

 

내 대답은 '소유욕'

 

결혼제도이든 연애관계이든 사람과 사람사이의 알량한 소유욕과 힘의 관계가

작용해 여러가지 요인과 함께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내용들을 과연 이책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란 생각과 과연 재미있을까란 생각에 궁금해짐.

에이...서점에 가야 하는데, 요즘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당분간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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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서-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최영미

 

 

봄이다.

한참 만개한 꽃들을 보면서 좋다,좋다하면서 지나치다가 

문득 최영미의 시가 떠올랐다.

시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저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자연에 대한 시인의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같다는 생각이다.

 

꽃은 정말 순간에 피었다가도 금세 영락의 순간을 맞이하고 만다.

봄은 정말 한 순간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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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귀차니즘 쓰나미.

 

차라리 비나 왕창 와버려라.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며 모든 것들을 씻어버리게.

 

내 귀차니즘을 모두 쓸어버리고, 다시 삶을 살아야하는데.

 

 

 

지금은 울증 기간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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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프랑스 대중 시위와 파업 : 새로운 시대의 시작

지구상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들
그렉 오슬레이(Greg Oxley) www.lariposte.com
청년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새롭고 특히 심각한 공격이 프랑스에서 엄청난 항의와 투쟁사태를 낳고 있다. 다시 한번 수백만의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2차대전 당시의 비시정권 이래 가장 반동적 정부에 저항해서 스스로의 이해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3월 7일 마르세이유 시위

 www.maxist.com

현재의 시위 물결은 2005년 하반기에 200여 도시지역 변두리의 노동계급에서 불타오른 빈곤과 절망에 휩싸인 청년들의 대중소요에 이어 발생한 것이다. 그 당시 내무부장과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소요사태가 ‘조직된 범죄집단’의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즉각 그 자신의 정보기관에 의해 반박되었는데, 정보기관은 공식적으로 그 사건을 “사회적 인종적 차별의 축적”으로 인한 “자연발생적인 대중반란”이라고 정의했다. 시라크 대통령 역시 사회의 “깊은 불안”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시라크와 드빌팽 우파정부는 노동자, 특히 청년노동자의 권리와 생활조건을 더욱 공격하기 위해 방리유(도시외곽 빈민가)의 반란을 전형적으로 이율배반적이고 냉소적 방식으로 이용했다. 실업을 감소시키는 수단으로 제시된 새로운 법률이 26세 미만의 노동자들을 착취를 위한 원료로 전락시키고 완전히 사용자 마음대로 하게 하는 특수 노동계약을 도입한 것이다.

소위 ‘최초고용계약’(CPE)은 사용자들에게 2년 내에 노동자들을 어떠한 설명 없이도 즉각 해고할 권리를 준다. 이 계약에 붙여진 이름과는 달리 그것은 ‘최초 고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모든 청년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이 법률 하에서는 노동조건에 불만을 표시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사용자 눈 밖에 나면 - 심지어 아프기만 하더라도 - 그 자리에서 노동자는 간단히 해고될 수 있다. 사용자는 그 결정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법이 시행된다면 청년노동자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적용이 확장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지난 몇 년 동안의 많은 투쟁에 이어 나타난 이번 대응의 규모는 프랑스에서 노동자와 청년의 장대한 투쟁전통의 새로운 사례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프랑스가 ‘혁명의 어머니’라 불려온 것이 헛된 것은 아니다.

지난 한달 동안 프랑스 전역에 걸쳐 대중시위가 발생하였다. 노동자들의 압력과 불붙는 분노로 인해,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노조도 이 사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도록 강제되었다. 파리 코뮨 기념일이기도 한 3월 18일에는 15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파리에서는 35만 명의 노동자와 청년이 시위를 벌였다. 일자리를 지키고 사유화에 저항하는 매우 결사적이고 단호한 수많은 파업이 패배했던 마르세이유에서는 13만명이 행진했다.

이 행진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거대한 시위 규모에 비해 전통적인 노동자와 학생조직의 깃발이나 플랭카드가 매우 적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 활동가들의 집회가 아니었고 아직까지는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들이었다. 학생들은 민주적 총회 조직화를 통해 거대한 규모로 나아갔다. 총회에서는 행동의 진로를 결정했다. 적어도 65개 대학이 이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고등학생 역시 참여하고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이 운동은 313개 고등학교에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생 조직들에 따르면 실제 수치는 적어도 두 배 더 많다고 한다.

더욱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시위와 파업이 3월 28일로 계획되어 있다. 위기는 사회 모든 수준에서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발적인 행진과 시위가 나라 전체에서 매일 발생하고 있다. 대학 이사회들과 일련의 권위있는 기관들, 인사들이 CPE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정부가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월 20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22%만이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시위’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71%는 프랑스가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사회 위기’로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론조사들에서도 60%~75%의 국민들과 90% 이상의 청년들이 반(反)CPE 운동의 목표에 동의한다고 했다.

 http://www.libcom.org/blog/

3월 18일 파리 시위

 www.maxist.com

보통 성급한 선언과 제스처를 하지 않는 사회당 지도자들이 2007년 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그들이 승리하면 이 증오스러운 법률을 즉각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음 총선에서 좌파세력의 승리는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는 유권자들이 현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사회당 지도자들은 정부에 대한 반대를 순전히 의회와 선거로 돌리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운동을 통제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다.

사회의 긴장도와 현재 진행 중인 투쟁의 신랄함을 생각하면 사태는 1968년과 유사한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한 전환을 위한 모든 요소들이 현재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물러서지 않으면 운동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어떤 사건도 사태를 더욱 급격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다. 1986-1988년 시라크 정부 하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 당시에 한 젊은이가 경찰폭력에 의해 사망했는데 이는 파리에서 백만 명 이상을 거리로 불러내었다. 현재의 조건에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훨씬 커다란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에 대한 오랜 세월 동안의 반복된 공격이 있었고 5백만~7백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http://www.libcom.org/blog/

정부는 공황상태이다. 지금 물러선다면 심각한 패배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빌팽은 전임자인 장-피에르 라파랭이 불신임된 지 9개월 만에 모든 신임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라파랭은 5월 29일 유럽연합 헌법 국민투표에서의 패배로 물러났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현재 상황에서 CPE를 계속 옹호하는 것은 반대운동에 기름을 붓는 것이고 혁명적 위기를 자극하는 위험상황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정치와 전쟁에서 무엇을 하든지 실수가 되는 상황이 있다”고 말했듯이, 드빌팽은 딱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의 교착상태와 계급간의 심대한 간극은 프랑스에서 점증하는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의 또 다른 징후이다. 이는 경제 불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 프랑스 정부의 누적적자는 1조 1천억 유로에 달한다! 그리고 삶의 질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고용, 임금, 노동조건, 주거, 연금, 사회안전망, 의료, 교육, 사회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전 사회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무한히 지속될 수는 없다. 2003년 연금 수호를 위한 대중시위, 최근 몇 년간의 장기적이고 격렬한 파업, 친자본주의적인 유럽헌법 거부, 지난 해의 빈민가 봉기, 그리고 현재의 운동은 지전이 발생하기 전의 첫 번째 진동과도 같은 틀림없는 징후들이며 프랑스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징후들이다.

이는 혁명적인 시대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필연성은 나날의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위에서는 출구가 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노동자와 청년들이 난관을 거쳐, 전진하고 좌절을 겪으면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의 경험의 힘 위에서 그들이 마침내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결정할 때 지구상의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번역] -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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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 24

#1. 생활모드 변경하기

 

가끔 빠져드는 염세모드.

난 왜 재미있지 못할까라는 자조적인 물음과 함께 되새겨보는데,

그건 삶에 대한 욕심이 간혹 들다가도 현실의 무게에 부딪히고 실패했던 경험에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되돌이켜보면 내 삶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이렇다할만한 실패의 경험도 많지 않은 편인데...

난 어쩌다 염세모드에 자주 빠지는 조울증 환자가 되어버렸을까?

 

 

태어난 성격자체가 그래서라는건 말도 안되고,

환경? 음...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일분동안 지난 내 환경을 되돌이켜 봤을때,

뭐, 그리 밝지는 않지만 그렇지도 어두웠던 과거도 아닌

약간은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삶이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이렇게 믿어야한다. 이제 이십대인데, 두배는 더 살아줘야지 ㅠ.ㅠ)

언제 갈지 모르는 삶이지만 치열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대기모드, 염세모드에서

"조낸 달리는거야" 혹은 "인생 뭐 있어, 가는거야" 모드로 변경해보기로 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해도 즐거워지는건 대략 난감한 나의 성격.

나도 날 이해하기 참 힘들다.

 

 

 

#2.

생각만해도 즐거운 앞으로의 생활.

사실 변한 것도 없고, 변할 것도 없는 무료한 인생인데,

즐겁지는 않은데 즐거워질거라고 최면을 걸고 있다.

 

즐거워져라, 즐거워져라, 즐거워져라, 즐거워진다. 즐거워진다. 즐거워진다.

 

즐-

 

 

 

#3.

즐거운 일상.

 

최근 생활고로 인해 사교육에 몸담고,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요즘.

얼마전부터 최초 계약과 다르게 고1을 한반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냥 별 생각없이 시작한 수업이라, 수업을 들어가도 그닥 즐겁지도 싫지도 않은 생활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저께였다.

 

김구의 <나의 소원>이라는 교과서 글을 가지고 설명할 무렵

김구 선생도 지독히도 좌익세력이 싫었던 모양이다.

좌익의 계급주의 사상이나 프롤레타리아의 사상에 대해 일시적이느니의 언급을 하면서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까지 표현해놨다.

(참고로 이 글은 연설문이다.)

 

당시 시대배경을 위해 이승만 정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대해 설명하던 중,

한 학생이 조용히 말햿다.

 

지땡 학생:  이승만, SM사장 아니야?

 

난 이런 일은 유머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SM사장 존재를 아는 것도 용하다는 생각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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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망종 예고편

[스크랩]프랑스 : 고용유연화에 저항하는 노학연대투쟁

프랑스 : 고용유연화에 저항하는 노학연대투쟁

 

[기고]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선 전국 전선 구축
원영수(노동자의힘) 
2005년 11월 프랑스 사회를 강타했던 파리 교외 폭동에 이어, 전국적인 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하고 있다. 3월 10일밤 소르본대학을 점거중인 200여 명의 시위대가 프랑스 경찰에 의해 강제퇴거 당하면서, 1968년 혁명의 부활을 알리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국내외 언론 역시 이번 투쟁에 주목하지만, 여전히 피상적 보도에 머물고 있다.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
프랑스식 고용유연화: 최초고용계약제(CPE)

이번 투쟁을 촉발한 것은 지난 1월 16일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도입한 최초고용계약제(Contrat Premiere Embauche)였다. 명목상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이번 조치는 2005년 20인이하 사업장에서 2년 이내의 범위에서 자유로운 해고를 허용하도록 도입한 고용계약제를 20인 이상으로 확대한 것이었다. 또한 빌팽 정부는 57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기간확정 노동계약제(CDD)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실업률은 유럽연합 가운데 상당히 높은 편으로, 2006년 1월 현재 9.6%였다. 그런데 25~49세의 실업률은 8.7%인 반면, 15~25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무려 22.8%에 이르고 있다. 또한 지난 교외 폭동의 중심지였던 빈민지역의 실업률은 40%에 이른다.

이런 심각한 청년실업에 대한 우파 정부의 대응은 자본측에 유리한 고용유연화였다. 해고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2년 이내에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함으로써 청년층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논리였고, 이런 고용유연화는 20인 이하 사업장에서 25세 이하의 청년층, 더 나아가 57세 이상의 고령노동자 층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동유연화 반대투쟁의 폭발

1월 빌팽 정부의 CPE 도입 발표 이후, 직접적 피해 대상이 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투쟁이 촉발되기 시작했다. 2월 7일 1차 투쟁에 전국적으로 약 40만 명이 참여하는 대중투쟁을 통해 CPE반대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프랑스의 학제상 2월 방학기간 중에도 투쟁의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더욱 확산되었다.

3월 7일 전국 160개 도시에서 100만 명이 참여하는 2차 전국투쟁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가두투쟁을 넘어, 40여 개 대학에서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시위대는 프랑스 68혁명의 진원지였던 낭테르 대학과 소르본 대학을 점거했다. 그러자 3월 10일밤 프랑스 경찰은 소르본 대학에 진입하여 점거농성자들을 강제 해산하였다.

이런 정부의 탄압에 맞서 3월 14일 소르본대학 강제해산 조치에 항의하는 투쟁이 벌어졌고, 3월 16일에는 학생 대오를 중심으로 전국투쟁의 날이 조직되었다. 더불어 국제반전행동의 날인 3월 18일에도 전국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이번 투쟁에는 일차적으로 전국학생연합(UNEF)이 전국적 투쟁을 주도하고 있으며, 3월 16일 현재 전체 80여 개 대학 가운데 68개 대학이 동맹휴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더불어 학생투쟁은 노동조합투쟁과 결합한 노학연대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주요 노총들이 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계의 좌파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은 3월 30일 전국파업 및 집회투쟁을 결정하였지만, 학생들은 일정이 너무 멀어 투쟁의 동력을 상실할 우려를 표명하면서, 3월 23일 24시간 파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회당계 중도파 노총인 민주노조연맹(CFDT)은 이번 투쟁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서 빈축을 사고 있다.

* 주요 투쟁일지
- 2월 7일 : 전국행동의 날 - 40만 동원, 주요 노총 + 대학생 및 고등학생
- 3월 7일 : 100백만명 160개 도시에서 가두시위, CPE 철회요구, 주요 노총, 학생, 공산당 및 좌파, 사회당 가세, 40여개 대학 점거농성 돌입
- 3월 10-11일 밤 : 프랑스 경찰 소르본 대학 침입 및 농성자 철거
- 3월 14일 : 소르본 강제퇴거 항의 투쟁
- 3월 16일 : 학생행동의 날
- 3월 18일 : 국제반전행동과 결합된 노동조합 투쟁

역사적 배경 - 최근 프랑스의 주요투쟁과 대중투쟁의 역동성

최초고용제에 반대하는 노학연대투쟁의 대중적 폭발은 현시기 유럽에서 프랑스의 민중운동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프랑스 학생운동의 경우 역사적으로 1968년 5월혁명의 주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986년과 1994년 학생투쟁으로 정부의 후퇴를 강제한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1994년의 경우 CPE와 유사한 입법시도에 반정부투쟁을 통해 우파정부를 좌절시켰고, 이 투쟁은 1995년 연금개악반대 공공부문 파업투쟁("불만의 겨울")의 전조가 되는 투쟁이었다.

그리고 1995년 알랭쥐페 정부의 연금개악 기도를 좌절시킨 대중투쟁 이후, 2002년 극우 르펜 반대투쟁과 2003년의 제2차 연금개악 저지 및 민영화 저지 투쟁, 2005년 신자유주의적 유럽헌법 저지투쟁 등 주요 대중투쟁의 경험적 축적의 역사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번 CPE반대투쟁이 폭발한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 민중·사회운동은 우파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선 전국적 전선을 구축하는 성과를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도의 틀에 갇힌 공산당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선회했던 사회당마저 반신자유주적 전선으로 복귀시키는 대중적 강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의 대중적 확산은 정치적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사회당 좌파와 공산당, 트로츠키주의 좌파 등 정치적 좌파와 노학연대를 주축으로 한 좌파적 사회운동의 전투적 결합은 프랑스 사회와 정치의 지형의 근본적 변화와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성명서] 150만 시위대의 목소리 : 총리, 최초고용계약제(CPE) 철회하라
빌팽 총리, 최초고용계약제를 철회하라!

다시, CPE반대투쟁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CPE 철회를 원하다는 점을 총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150만명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쳤다.

수많은 행진대오가 1만명, 아니 10만명을 넘었고, 파리에 35만명, 마르세이유에 13만명, 보르도 7만명, 툴루즈 5만명, 낭트 4만5천명, 렌과 릴 3만5천명, 카앵과 리모주에 2만명 등이 참여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160건 이상의 행진이 벌어진 이날은 총리가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반CPE투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CPE 철회를 요구하는 거리의 목소리와 여론이 전하는 메시지에 계속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주에는 더욱 확대되는 새로운 운동에 직면할 것이다. 3월 18일은 투쟁의 절정이기는커녕, 단지 새로운 동원투쟁의 발판일 뿐이다.

현재 67개대학이 CPE에 반대하는 동맹휴업에 들어 있다. 프랑스 전국학생연합은 전국의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 투쟁을 지속하고 동맹파업운동을 확장시킬 것을 요청한다. 더불어 CPE의 전면철회를 쟁취하기 위하여 노동자들과 나란히 투쟁에 나설 것을 요청한다.

2003년 3월 18일
프랑스 전국학생연합(UNEF)



[기고] 학생운동이 정부를 수세에 몰아넣다
머레이 스미스(혁명공산주의자동맹) 
지난 4년간 프랑스의 우익 정부는 총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했다. 2003년 연금 체계 개혁의 사례처럼 종종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는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을 강제했고, 이는 대체로 전통적인 노동자 조직이 전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에 반대할 태세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힘겨운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가 제안한 ‘최초고용계약법(CPE)’은 26세 이하 청년들을 ‘신규고용자일 경우’ 최초 2년 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고용안정을 과거지사로 돌리고 고용주에게 해고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노동법을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목표의 일환이다.

동시에 이는 특히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청년 노동자들을 겨냥한 조치다. 처음에는 완만했지만 점점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분수령은 지난 10여 년간 최대 규모로 조직된 학생 운동이다.

주요 노조와 대학, 고등학생 조직이 2월 7일 최초의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프랑스식 표현으로 ‘조용한 성공’이었는데, 40만을 상회하는 시위대가 프랑스 전역의 도심에 운집했다.

2월 한 달이 일부 고등학교와 대학이 문을 닫는 프랑스의 방학기였음에도 불구하고, 3월 내내 학생운동은 더욱 깊고 넓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이 이 사안을 파악하기 시작하면서 운동은 [단순] 시위와 항의를 넘어 [학교] 점거로 확대, 이동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전국 84개 대학 중 50여 개 이상의 대학이 학생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점거됐다. 3번째로 큰 규모의 낭테르 대학은 “안전상의 이유”로 휴교에 돌입했다.

100만의 인파가 160개 도심에 운집한 가운데 열린 3월 7일 2차 대규모 행동의 날은 1차 행동의 날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됐다. 시위대들은 노조원들과 다수의 청년, 학생과 노동자로 구성됐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많은 청년들은 정부가 시끄럽고 호전적인 프랑스 경제인연합(MEDEF)과 공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처럼 경제인연합의 지방 사무소는 종종 학생 시위대의 표적이 되었다.

모든 좌파 정당 - 공산당과 극좌파는 물론 사회당까지 - 들이 학생운동을 지지하며 CPE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선거 기간 이외에 매우 특이하게도 CPE 철회를 요구하고 시위를 지지하는 사회당 포스터들을 벽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운동이 강력하다는 징후다.

정부는 물러서지 않으려 하고 있고 학생들에 대해 주저 없이 전투경찰을 동원했다. 3월 10일과 11일 밤에 그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소르본 대학을 급습했고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을 몰아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 일부가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소르본이 상징했던 1968년 5월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주에는 더욱 많은 학생들이 조직화를 하고 있고 3월 14일에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소르본에서 행진을 했다.

정부와의 힘겨루기는 현재 잘 되고 있고 사태의 흐름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대학과 고등학교 학생 조직들은 3월 16일 행동의 날을 호소했고 노동자들에게 지지 파업을 요청하고 있다. 토요일인 3월 18일은 노조들이 호소한 행동의 날이다. 여기에는 노조연맹 가운데 가장 우파인 프랑스노동자민주동맹(CFDT)이 포함되어 있는데, CFDT는 더 이상의 파업행동을 거부하려 한다.

프랑스 최대 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은 3월 30일에 파업과 시위를 더 진행하기로 발표했는데, 이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다. 3월 11일 푸아티에에서 열린 CGT 전국조직위 회의에서는 3월 23일 일일 파업을 조직하고 파리에서 전국 집회를 개최할 것을 소속 노조들에게 요구했다.

정부는 이제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1986년과 1994년 두 번에 걸쳐 학생들은 정부로 하여금 법안을 포기하도록 몰아세웠다. 1994년의 관련 법안은 CPE와 매우 유사한 조치였다. 의견 분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라크 정권의 전직 외무부장관이었던 에르브 드 샤레트와 같은 소수의 우파 정치인들만 CPE가 철회되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더 많은 이들이 정부 입장을 지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7개 대학총장들은 현재 CPE 철회를 요구한 상태다.

향후 2-3주가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노동계가 23일 파업에 대한 학생들의 호소에 화답한다면 운동의 역동성은 다시금 강화될 것이다. 많은 것이 CGT에 달려 있다. 2003년에 총파업 호소를 CGT가 거부함으로써 정부가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LCR과 그 청년학생조직인 JCR은 이 운동에 깊숙이 관계하고 있고 전국적 파업과 시위 호소를 지지하고 있다. LCR도 CPE 철회를 위해 모든 좌파세력이 단결해서 회합을 갖자고 제안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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