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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10/12
    <요즘읽는 책> 안톤체호프 -6호 병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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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06.10.12

#1. 끄적끄적

 

오늘 블로그에 글을 많이 쓰는군.

뭐, 일상에 변동이 많은 것도 아닌 삶인 주제에 나불거리기는 잘한다. 내 특기.

 

동명이인.  뜨악

순간 내 이름이  네이버 검색 2위로 올라 깜짝 놀라다.

흔한 이름도 아니거늘.쩝.

황진이를 4위로 제치고 금방 10월 모의고사도 해치웠다. 푸하하하 1위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건 왜 일까. 그냥 어딘가에 드러난다는게 싫어서(익명성 너무 좋아!)

아...나도 이름 바꾸고 싶어진다. 삼순이처럼!

순간 이름을 지어주셨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지는건 또 뭔가. 쩝.

뜬금없지만, 생각이 나면, 또 써주는게   인.지.상.정 !  쳇

 

 

#2.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앞으로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죽음'이란 것과 직면해서 나온 눈물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보인 반응은? 놀라셨단다. 내가 울거라곤 생각을 못하셨다나.

 

그렇다. 난 할아버지와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던 거다.



할아버지는 늘 집에 계시는 걸 좋아했다. 취미는 바둑, 서예, 화단가꾸기. 뭐 이런거.

그래서 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 친구분들이 집으로 오셔서 바둑을 두곤 했다.

마치 우리 집이 기원같았는데, 난 그게 늘 싫었다.

왜냐면 그 만큼 우리 엄마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친구분들의 시중을 들어야했으니까.

일찍 시집 온  울 엄니는 고된 시집살이에도 홀시아버지를 모시며 군말없이 살던 착한 며느리였다.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확해지시는 할아버지의 배꼽시계에 맞춰

우리 엄니는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늘 정성스럽게 차려 상을 내 보냈다. (대단도하시지..)

 

 

지금이나 예전이나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결코 인자한 성품은 아니셨던 것 같다.

늘 다가가기 어렵고, 무서웠다. 커다란 안방에서 "얘야~"를 외치시면

뛰어갔던 어머니의 종종 걸음 수만큼 할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컸다.

생전에 살아계실 때엔 한번도 할아버지와 겸상을 했던 적이 없었다. 늘 어머니는 상을 두번

차려야했고, 난 어머니와 고모와 함께 두 번째 상에서 기름진 반찬을 구경하며 밥을 먹었다.

 

 

그러던 할아버지와 크게 틀어진 건 자장면 한 그릇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잠깐 어딘가로 외출하신 동안, 점심에 자장면을 시켜먹었는데, 세상에.

할아버지 당신 드실 것과 남동생 것 두 그릇만 시킨게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에 자장면이 비쌌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는데, 설령 그랬더라도

빈 그릇에 덜어라도 줬어야지...(으흑...비굴해.) 그런 것도 없이 난 손가락만 빨았다.

 

다행히 엄마가 곧 들어와서 손가락 빨다가 엄청 울면서 억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난 먹을거 가지고 차별하는 사람이 제일 싫더라.

그 순간에도 할아버지는 울음을 뚝 그치라고 나를 혼냈다. (정말 미워~)

어머니도 속상했는지 다음날인가 할아버지 외출하셨을 때 자장면을 시켜줬는데,

난 동생도 같이 먹는게 대단히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그 땐 어려서 할아버지보다 옆에서 좋아라 춘장을 빨던 동생이 더 얄미웠었는데,

엄마가 시켜 준 자장면을 먹을 때 동생에게 단무지는 절대 못 먹게 했던 기억도 난다.ㅋ

 

 

할아버지와 같이 산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고작 3년.

그 전에는 작은 할아버지와 약수터도 함께 다니고, 아양도 떨면서 재잘거리던 산소녀였는데

(하하..사당에서 살던 때...작은 할아버지도 집에 계시는 걸 좋아하셨지. 그런거보면 유전인가?

그래도 작은 할아버지는 내가 참 좋아했다.) 할아버지와 살면서 억압된게 참 많았던 것 같다.

 하다못해 할아버지 친구분께서 용돈으로 주신 돈은 단돈 100원이라도 꼭 허락을 맡고 써야했으니까.

 

 

돌아가실 때에도 집에서 삼일장을 지내느라 어머니가 많이 고생하셨는데,

그 날 밤 꿈에서.   

생전 내겐 웃지도 않던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내 손목을 잡으며 같이 가자고 말하던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한다. 그 꿈속에서 기괴하게 웃는 할아버지의 배를 그동안 억눌린 만큼 있는 힘껏 발로 찼던 순간도.

이런 말은 그렇지만 사실 얼마나 속 시원했는지..

 

 

앗, 어쩌다가 얘기가 이렇게까지 왔네.

암튼 이런 기억을 갖게 해 주신 분이 내 이름도 지어주셨는데,

이런 사유로 이름 바꾸고 싶다고 동사무소에 쓰면, 불효막심한 년이 되는건가??

 

 

 

 

#3.

뭐, 십년도 넘게 예전에 돌아가신 분 생각해서 뭘 하겠어.

아직도 내 이름이 네이버 검색 1위려나?

어...벌써 내려갔네. 세상 정말 순식간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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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읽는 책> 안톤체호프 -6호 병동 중

 

 

사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정상적이고 당연한 겲말이라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으려 한단 말인가? 어떤 장사치나 관리가 5년이나 10년을 더 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학의 목적을 약으로 고통을 덜어주는데서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을 무엇때문에 줄이려고 하는가? 첫째, 흔히 말하듯이 고통은 사람을 완성으로 이끈다.

둘째, 인류가 정말로 알약과 물약으로 자신의 고통을 절감시킬 줄 알게 된다면, 그전까지 온갖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었고 나아가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종교와 철학을 아주 저버릴 것이다.

푸쉬킨은 죽음을 앞에 두고 무서운 고뇌에 휩싸였고, 가난한 하이네는 중풍때문에 몇 해 동안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안드레이 에미비치나 마트로냐 사비슈나와 같은 사람이 아프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들의 삶은 보잘것 없으며, 고통마저 없다면 아메바의 삶같이 전적으로 공허할 것이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단편선 - '6호 병동'중에서


<죽음에 대한 다른 시각. 고통, 불안, 죽음을 존재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특이해서 몇 자 적어놓는다.  06.10.12>

 

 

 

 

오늘 블로그에 글을 많이 쓰는군.

요즘 읽는 책이다. 예전에 이름만 들어서  알게 된 작가다.

"책 속에서 권총이 나온다면 그것은 반드시 발사되어야한다." 라나 뭐라나.

아마 내 기억으론 이광수 '무정'을 비판한 김동인의 비평글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 같다.

 

 

아직 절반정도 읽었는데, 솔직히 재미는 없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체가 꽤 맘에 든다.

후기에는 희곡을 많이 썼다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꼬옥 읽어봐야겠다.

 

자세한 독후감은 책을 다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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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리우스님의 [green] 에 관련된 글.

 

세 번이나 해봤는데, 그래도 또 블루가 나온다.

블루만 100%인건 너무 하잖아.

 

 

You scored as Blue. You are considered to be a very calm person who takes things one at a time and does not worry too much about the consequences. Whatever happens, happens, is your moto. You are the one people come to for advise on most topics, because you are filled with limitless knowledge. You can handle any situation.

Blue

100%

Purple

94%

Black

89%

White

78%

Orange

72%

Green

72%

Red

67%

Yellow

39%

Pink

17%

 

 

 


Which Colour Represent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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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군대 갔어요

 

 

오늘 하나있는 남동생이,  드디어 군대를 갔습니다.

원래는 지난 2월경에 갈 예정이었는데,  한참 군대 총기 사건이니 말도 많고

이 놈이 사고를 치기도 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입영 연기를 했었죠.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드디어 군대를 갔는데, 또 군대 갈 때가 되니,

북핵 문제가 대두되고 군대에 경계령이 내려졌다는 보도가 계속 되더군요. 훗 (고생좀하겠어)

 

제 동생과 전 우애깊은 남매애를 찾는 관계는 아닙니다. 흐음. 수 많은 일화를 다 말할 수는 없고...

군대 가기 전, 생명 보험을 들겠다고 난리를 치는 녀석.

어머니는 "그런 일이 생겨도 안되지만, 혹시 나쁜일이 생겨도 난 그 돈 못 받는다"라고 하시며

거절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 말 했죠.

"아냐, 꼭 보험 들어. 난 그 돈 쓸래"

물론!! 결국 생명보험을 들지 못했어요. 군대에 입대한다니까 보장이 많은 보험에선 거절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배웅하는 차 안에서 말해줬죠

"보험도 안 들었으니까, 몸 사려."

 

어렸을때에는 동생을 참 많이 좋아했어요. 뽀얀 피부에 바가지머리가 너무 귀여워서

동생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제 동생이예요^^"라고 하루종일 돌아다닌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놈이 하도 밖으로 싸돌아다녀서 피부가 검어질무렵

우린 서로 아는 체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부러 그런건 아니였는데 말이죠.

아마 서로 각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그런 사이가 된 것 같아요.

 

그런 그 녀석의 가식적인 모습을 기억하는건,

동생이 효자라고 주변 사람에게 거짓소문이 날 무렵이었습니다.

우연히도 작은 이모가 증인이 된 '붕어빵 사건'덕분이었죠.

제 동생이 중학생이었을 무렵, 집으로 오는 길에서 제 동생과 이모가 마주쳤죠.

그런데 이모의 말에 따르면, 교복 속 가슴 깊이 무엇을 품고 오더랍니다.

알고보니 어머니께 드릴 붕어빵이 식을까봐 가슴에 품고 뛰어가는 길이었다는 겁니다.(쳇, 말도 안돼!!)

그 말을 전해들은 우리 어머니야 감동에 감동의 트위스트를 추셨답니다.

하지만, 전 알고 있었죠. 붕어빵을 가슴 속에 품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효심이 아니라 추운 겨울,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때문이었음을. (따뜻하잖아!)

나중에 진짜 엄마한테 주려고 뛰어왔어?라고 물으니, 이 얍삽한 놈, 그저 웃기만 하더군요.

 



이런 동생이 군대를 가니, 우리 어머니. 입영 몇 주 전부터 눈물에 눈물을 흘리셨죠.

하지만, 나이도 스물 둘, 키도 190이나 되는 이 거구를 누가 쉽게 건드리겠습니까.

다만 걱정되는건 욱하는 성질과 뒤에 숨은 소심함의 결정체라는 점이나,

시류에 잘 편승하고 줄타기를 워낙 잘하는 놈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나이나 덩치에 관계없이 한없이 걱정되고 불안하고 그런가봅니다.

어머니는 의정부에서 아들 손을 꾸욱 잡고 눈물을 참고 또 참더니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들이 보고싶다"를 외치십니다.

손에는 '입영안내서'와 '은나노 <슈퍼> 깔창' 껍데기를 들고서 말입니다.

 

 

동생이 부대에 들어가기 전

제발 전경으로 배치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걱정해줬습니다.

키가 커서 확률이 높다는데, 아... 정말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누군가에게 동생이 맞는 장면보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에 기대서 누군가를 때리는 장면은

너무 끔찍해서요. 시키면 다 할 놈이라 더 걱정입니다.ㅠ.ㅠ

 

그리고 이런 말을 했어요.

군대 문화라는게 무시할 수 없을테니, 네가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중에라도

절대 네가 누군가를 때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아,혹시 파병 지원하라고 하면, 무조건!!! 잠자코 있으라고도 했군요.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잘 다녀올께"라는 동생의 말이 귓가에 닿을무렵,

이 녀석은 벌써 100m즈음 뛰어가고 있습니다. 한번도 뒤돌아보는 법이 없더라구요.

어머니는 행여나 아들모습을 놓칠까 운동장을 빙 돌아서 아들이 있는 뒤쪽으로 뛰어갑니다.

저도 따라갔습니다.

 

처음으로 입대식이라는 걸 구경하면서 마음이 불편하더라구요.

대대장이란 사람이(누군지 얼굴도 안 보입디다) 인사라고 하는 말이

남자는 강인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조국의 부름을 받고 왔으니 환영한다나 뭐라나

짤막한 "사나이로 태어나서~"로 시작하는 군가를 들으면서

동생 또래 혹은 더 어린 애들이 눈물을 훔치며 자꾸 부모님을 찾는 모습이 눈에 보였거든요

제 동생은 의정부로 갔는데, 오늘 3000명이 입대를 한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렇게 입대를 한다니까, '군대'라는게 장난이 아니게 느껴지더군요.

군대라는 거, 국가라는 거. 제 동생이야 '신체 건강한 군필자'의 범주 내에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을 겪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미치고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근데...정말 사람이 빈 자리가 크다는 말이 조금씩 느껴지네요.

제 방 꼬진 컴퓨터가 망가지면 시스템 복원은 누가 해줄지...ㅠ.ㅠ

당장 냉장고에 있는 환타, 치킨, 고기, 과일, 우유, 아이스크림...이런 건 누가 먹을지.

당분간, 어머니 옆에 꼬옥 붙어 있어야겠어요.

마음이 허전하시다네요. 저도 약간은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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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모드 다시 돌입

 

 

 

 

또 시작.

현대인의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그리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우울모드.

이젠 술로 달래주는 것도 지치는 중.

 

어떻게 해야할까?

쏟아내기를 하고 싶은데 쏟아낼 그 무언가가 없다는게

참 슬픈일인 것 같다.

 

달려보는 거라고 끝없이 자기 최면을 걸면서도

늘 깨어나는 건 또 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일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나.

이렇게 무의미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자판을 두들두들 거리는 것도 나.

 

아무도 보고 싶지 않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무덤덤해지는 걸 때론 즐기고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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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읽고 싶은 만화

고양이가 돈 벌어오니, 아이고 좋아,  아즈마 가즈히로의 <알바고양이 유키뽕>

2004.06.11 20:04   
  

 
  길고 깊은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대공황 시대 미국인들은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터무니없는 영웅들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했지만, 지금 동아시아인들은 <신의 아들>이나 <멋진 남자 김태랑>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일조차 가당찮다고 여긴다. 내 신세 그저 이대로지. 뭘 더 나아지길 바라나? 차라리 처절하게 실업자와 백수 신세를 토로하는 자학 개그가 속편한 듯이 보인다. <행복한 백수> <오이카와 취업 일지> <룸펜 스타> <곰씨와 오리군>…. 마치 새로운 장르라도 만들어낼 기세로 ‘불경기 만화’ 혹은 ‘백수 만화’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게으르고 의지박약인 백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아닐까? 주인은 방구석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려도 똑똑한 고양이 한 마리가 부와 명예에 미모의 부인까지 얻어다준다. 각종 아르바이트 업무로 작업모 갈아 쓰기 바쁜 <알바 고양이 유키뽕>(북박스 펴냄)은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의 후손으로 보이는데, 주인을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났다.

유키뽕의 주인인 아케미는 정확한 직업도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이른바 프리터(free+arbeiter) 중에서도 꽤나 질 낮은 족속이다. 약간의 돈이라도 생길라치면 술값으로 날려버리고,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며칠씩 외박하는 건 예사이고, 남자와 잔다고 고양이 유키뽕을 노숙자 신세로 만들기도 한다. 주인이 하는 짓은 정말 대책없지만, 아니 그 무책임함으로 인해 더욱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듯, 유키뽕은 이삿짐 나르기에서부터 항해 측량 보조와 과외 교사에 이르기까지 아르바이트 전선의 모든 위치로 달려간다.

 
 
 갖가지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키뽕과 아케미는 끈끈한 애정으로 엮여져 있는데, 유키뽕의 후덕함은 아르바이트 업계 전체로 퍼져나간다. 자신은 비록 고양이라는 신체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다채로운 업무의 초보자로 일해 온 만큼 다른 초보 아르바이트생들을 격려하고 일을 도와주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하다. 걸쭉하고 질감 좋은 펜 선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여타의 개그 만화와 질적인 차이를 보여주는데, 유키뽕이 지닌 의외의 사회성에도 탄복하게 된다. 한국에서 돈 벌러 온 권투 선수를 통해 외국인 거주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제주도에 불시착해서 만난 노인을 통해 일본의 불법 한국 점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독자들이 직접 지어 보내는 ‘고양이 하이쿠’도 꽤나 즐거운 코너다. ‘꼬리를 밟았더니 오우 마이 캣’, ‘주인님 미행하니 충격적 추태’, ‘발바닥에 꿀을 찍어 덥석 물었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
 

 영원한 생명을 회쳐 드실까요, 다카하시 류미코의 <인어> 시리즈 박스세트 2004.09.24 20:04   
 

 
 
   서양의 흉포한 용과 동양의 성스러운 용이 다르듯, 유럽의 인어와 일본의 인어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라인 강이나 지중해에서 달 밝은 밤 초록색의 긴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는 매혹의 인어는 일본에 오면 날카로운 이빨에 흉측한 얼굴을 가진 괴물로 둔갑하게 된다. 그래도 닮은 점이 있다면 양쪽의 인어 모두 인간을 유혹해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인어가 아름다운 외모와 노래로 인간을 꼬인다면, 일본의 인어는 영생을 보장하는 자신의 고기로 인간을 꼬드긴다.  <란마 1/2> <견야차>의 다카하시 류미코가 안내하는 예상 밖의 공포세계는 인어 고기에 얽힌 단편 연작이다.

  <은하철도 999> <무한의 주인> <잭과 엘레나> 시리즈 등 걸작 만화 중에는 영생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질기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자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계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를 타고 가는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만 메말라가는 영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기계 인간들을 만나고, <무한의 주인>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는 육체를 얻은 만지는 수백명의 목을 자르면서 점점 무감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인어> 연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어릴 때 인어 고기를 먹고 영생을 얻은 꼬마는 어른의 몸으로 자라지 못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엄마를 얻어 이용한 뒤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어린 시절 인어 고기를 두고 다툰 자매는 흉측한 몰골로 평생 동굴 속에 숨어 지내거나 그를 감추어두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신세가 된다. 500년 전 인어 고기를 먹고 불로불사의 몸이 된 주인공 유우타는 오늘도 인어를 찾아 떠돌아다닌다. 이미 얻은 영원한 목숨에 또 다른 목숨을 더하려는 게 아니다. 부모도 연인도 잃고 길고 긴 세월 동안 홀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다시 인어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류미코는 독특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목숨에 얽힌 서늘한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그녀 최고의 장기인 왁자지껄한 유머를 없애고도 단단한 걸작들을 엮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인어> 연작은 <소년 선데이>에 부정기적으로 연재된 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최근 <인어의 숲> <인어의 상처> <야차의 눈동자>, 세권으로 구성된 박스세트(학산문화사 펴냄)로 출간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
 

 


 

나지막하게 미시적으로, 정송희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2004.07.16 20:04     
 


    우선 익숙하지 않음에 불편할 것이다. 인물들도 이상하고, 배경도 그렇고, 이야기는 무언가 답답한 것 같다. 시각적으로 낯설어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다. 톤도 없고, 때론 회색도 없이 흑과 백뿐이고, 명확한 직선도 없는 배경까지 모두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정송희의 만화는 무엇보다 작가 개인에 의해 그려진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만화의 원초적인 힘을 보유한 작품이다.

소박하지만 풍부한 그림으로 정송희는 삶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기록한다. 표제작인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의 경우 어린 시절 각각 다른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자와 가해자였던 남자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되돌아본다. <지나 사라지다>는 희생만을 강요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유년의 틈> 역시 어린 시절 상처받은 기억을 지닌 두 사람의 회상을 그린다. <누드모델>은 육체적 차이에 대한 타인의 폭력적인 발언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게 뭔지 몰랐어>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정송희의 작품들은 대부분 상처로 남은 기억을 되돌아보거나, 바로 지금 당하고 있는 상처를 이야기하는 데 주력한다. 과거의 기억이건, 현재의 상처건 바로 상처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정송희의 작품은 아주 친한 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는 것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고백한다. “난 이런 상처를 갖고 있어.” 


  정송희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류 만화 주인공들의 (판타지한 욕망으로 디자인된) 상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백은 내 친구의 고백처럼 받아들여진다. 충격적인 고백이 아니라 감싸 안아주고 싶은 고백이라는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깊은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쓰디쓴 삶의 뿌리를 내비치는 친구의 모습으로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그 손을 잡게 된다. 정송희 만화의 힘이다. 자연스럽게 상처를 내보이는 힘, 그리고 그 상처를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힘, 이 모든 힘의 원천은 인간의 내면에 깊이 내려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꾸준히 다양한 만화를 창작하고 있는 만화동인 ‘박카스’의 일원인 정송희는 1999년 월간만화잡지 <오즈>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도 대부분 그 결과물들이다. 기본적으로 드로잉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화 스타일이지만, 미묘하게 작품마다 그 스타일이 다르다. 예를 들어 <관계>와 <그게 뭔지 몰랐어>처럼 각각 다른 두 작화 스타일을 한권의 책에서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내 친구가 내미는 손을 잡아줄 용기가 있다면, 이 만화를 아주 천천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우리는 고양이로소이다  <묘한 고양이 쿠로> 스기사쿠 지음 I 시공사 펴냄

 

  개인적으로 2003년에 나온 동물만화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개와 고양이를 1인칭으로 두고 이야기를 펼쳐가는 만화는 적지 않지만, 그들의 삶을 이렇게 사실적이면서도 귀엽게 그리는 작품은 보기 어렵다.

   쿠로는 자신의 여동생 칭코와 함께 ‘수염’이라고 이름 지은 너절한 싱글 남자의 연립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오는 날 놀이터에 버려졌다가 이 남자에게 거두어졌지만, 그를 주인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집의 안과 밖을 오가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만화는 쿠로의 1인칭 일기처럼 그려지는데, 길거리 고양이 세계의 권력 다툼, 발정난 고양이들의 사랑 싸움, 교통사고로 죽은 새끼 고양이의 무덤 만들기와 같은 실제 고양이 세계의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펼쳐진다.

어쩌면 나스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유머와 귀여움를 좀더 담은 시점이라고도 여겨지는데, 쿠로의 친구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도 딱 고양이 발치에서 바라다본다. 못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지만 왕따에 가까운 소년, 커다란 몸집과 못생긴 얼굴로 실연의 상처를 입은 듯한 괴인 여자, 마른 몸에 신경질적으로 보이지만 고양이들을 챙겨주는 여우 여인. 정말 고양이가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이것 말고도...                      김혜린, <노래하는 돌>   

               

 

 

  

내가 엄마를 먹여살리는 이유, <타무라 유미의 만능캡슐>

 

 

 

김전일의 후계자는,바로 당신!<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죽은 자는 알고 있다,시미즈 레이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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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가면' 중에서

정세는 다양한 상황을 이루는 요소들 내지는 목록들의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 역사적 해법을 제시하는

그에따라 정치적 목표와 실천적 과제를 던져주는 모순적 체계이다.

 

루이 알뛰세르, '마키아벨리의 가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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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o - Life For Rent

 

 

Dido - Life For Rent

 

I haven't really ever found a place that I call home
I never stick around quite long enough to make it
I apologize that once again I'm not in love
But it's not as if I mind
that your heart ain't exactly breaking

It's just a thought, only a thought

But if my life is for rent and I don't lean to buy
Well I deserve nothing more than I get
Cos nothing I have is truly mine

I've always thought
that I would love to live by the sea
To travel the world alone
and live my life more simply
I have no idea what's happened to that dream
Cos there's really nothing left here to stop me

It's just a thought, only a thought

But if my life is for rent and I don't lean to buy
Well I deserve nothing more than I get
Cos nothing I have is truly mine

While my heart is a shield and I won't let it down
While I am so afraid to fail so I won't even try
Well how can I say I'm alive

If my life is for rent...

 

텔레비젼 광고를 무심코 보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찾아봤더니, 역시,dido였다.

옛날에 Thank you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뭔 여자가 집이 헐리는데 계속 땡큐를 외치나 했었는데 그 여자가 이 여자였던 것.ㅋ

음색이 독특한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마지막 가사가 맘에 와 닿아서 계속 듣는 중.

"실패가 두렵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

대략 이런건가? 모르겠다.ㅋㅋ

흐음...암튼 이런 단순한 가사가 좋다.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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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    영화관에 냅다 달려갔다.

왕의 남자가 천만을 돌파할 무렵 그 대열에 왠지 합류하고 싶었던  이후로 오랜만에 찾은 극장가.

흥행 신기록이라는 '괴물'에만은 끼지 말자고 다짐한 나.

친구에게 요즘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예고편만 봐도 안습!! 인 이 영화는 세상에... 개봉 이틀이나 남아 있었다.

(영화는 원래 보고 싶을 때 봐야지, 기다렸다보면 개박살이다._._ )

 

그래서 요즘 재미있다는 입담이 돈다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낙찰.

결과는? 영화보고나서 영운이(김승우) 개 10 새X가 절로 나왔다.

감독의 의도야 어땠든 상관없이. 나 그리고 안습이 절정에 이른 내 친구는 멋대로 영화를 해석했다.

 

"씨X, 세상 남자 다 똑같애~"

 

연애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 (니들은 안그럴것 같냐? 진짜 연애하기 싫어진다,)

연애를 하고 싶던 사람에게도 요추(요거 추천의 줄임말이다)

이유는? 연애하고 싶은 생각 싹 가신다 효과 즉빵이다.

 

그리고,

감독은 여자들이 궁금해 하는 남자들의 심리라고 밝혔는데,

아니, 이건 남자들이 봐야하는 거다.




영화 줄거리는 대충 그렇고 그런 연애이야기. 룸살롱 아가씨와 갈비집 아들의 로맨스다.

물론 김승우가 옛날에 김정은과 함께 출연한 '불어라 봄바람'류의 로맨틱 코메디는 아니다.

 

이들의 사랑은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난다. 아니 끝난 것도 아니다.

이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게 그려진 이유는?

 요동네 영화들이 뻔하듯이 술집여자라는 이유로 결혼에 골인할 수 없다.

이 남자는 홀어머니 밑에서 갈비집에 붙어사는,  경제력이 있는 위치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자에게는 요조숙녀에 돈도 많고 나이 어린 약혼녀가 있다.

 

이들의 연애는 연아(장진영)의 농담섞인 진담으로 시작된다.

"나 아저씨 꼬시러 왔어~"(갠적으론 이 장면에서 장진영이 제일 예뻤다.)

분명 보통 사람들이 연애를 시작할 때

이것저것 재보고 떠보는 과정을 생략한 아주 가볍고 다른 연애의 시작이다.

그런데 실은 당차고 쿨한 것 같은 연아의 모습에서,

그런 것 같은 것일 뿐 온전히 그렇지 못한 사랑을 발견한다.

 

"첩년도 좋고, 세컨드도 좋으니까, 그년이랑 결혼해도, 나 버리면 안돼"

 

 

 

이 영화에서 김승우는 한 세 번 정도 눈물을 보인다. 하아~ 남자에 대해 반감이 강해져서 그런가.

난 김승우의 눈물을 보면서 악어의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먹이를 잡기 전 거짓 눈물을 흘린다는

그 악어 말이다. 영운이 극 중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늘 상대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건 연아가 사랑을 하면서 흘렸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그런 영운의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연아는 한 마디한다.

"넌 나한테 뭐니?"

 

그건 너에게 있어 내가 어떤 의미냐고 묻는 질문과는 다른 성격이었다.

이미 뭐라고 규정할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존재의 상태. 자조적이면서도 슬펐다.

 

 

 

 

여자와 남자는 연애를 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한다.

난 사실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친구의 말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남자도 생각이 많은 동물이란다.

다만 생각하는 범주가 여자와 다를 뿐이라고.

 

영화를 보면서 여자와 남자의 연애관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그건 약혼녀와 결혼을 하고 첫날 밤 영운이 연아에게 몰래 건 전화.

연아가 하는 말.

"니가 그 년이랑 섹스하는 건 화가 안나는데, 침대에 누워서 다정하게 얘기하는 걸 상상하면 불이나.

그러니까 얘기는 하지말고 섹스만 하라고"

 

그 전화가 걸려오기 전 연아의 상상 장면이 나온다.

흰 드레스를 입고 멋진 차를 타고 영운과 어디론가 달려가는 상상.

잡으면 부러질 듯한 목을 해 가지고선 하늘거리는 흰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며,

연아는 가볍지 않은 결혼을 상상하며 바람을, 자유를 느껴보는 거다.

 물론 상상은 현실에서 영운의 전화로 깨졌지만.  생각해보면 쿨한 듯 그려지는 연아는 실은 로맨티스트인 것 같다.

 

 

 

뭐, 솔직히 이 영화로 건질게 많지는 않다.

특히 김승우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파탄 지경에 이르게 한 장진영을 개 패듯이 마구 패는데, 그리고 나서 자신의 부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18 자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자 적어두는 이유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경우로 환치 시켜보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연애 일면을 찾아낸다.

정말 제대로 된 남자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에서,

과장된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기도 한 남자들의 모습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집어낸다.

같이 본 친구와 난 연애를 하고 있지 않고, 또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까닭에 비슷한 결론을 집었다.

 

세상 남자 다 똑같구나.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애가 김승우가 나쁜 놈이라는 말을 하길래,

뒤 돌아서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라고 말하려다 말았는데.ㅋ

왠지 남자들의 항변도 듣고 싶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보라고 권해보는 중이다.

아, 그리고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도.

그와 그녀는, 그녀와 그는 어떤 시각으로 연애를 하고 있냐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묻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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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풍화작용- 전혜린

시간의 풍화작용

 

 

결별은 쉬운 일, 그러나 그 다음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사고(思考)는 항상 사실적인 힘임을 믿고 있다.
끊겠다는 의지가 끊는 행위와 같은 것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
한 미소나 한 눈동자, 한 목소리를 기억의 표면에서 말살해 버리는 것은
많은 국가와 시간의 풍화작용의 도움이 필요하다.
잊겠다는 의식만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관념이 긍정한 행위를 우리의 감성이 받아들이기에는 또 하나의 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듯이 완전한 자유의지는 아닌 것 같다.

- 1964년 1월  20일 -

 

 

 

 


암흑의 장막이 하늘을 덮고 비가 그칠 새 없이 창문을 두들긴다.
벽난로의 불은 꺼지고 말았다.
독서에 피곤해진 눈을 쉬게 하려고 책상 앞에 하염없이 앉았노라니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절절한 고독감뿐.
이웃 방에서 도란도란 들려 오는 독일어도 나의 쓸쓸한 심정을 한층 북돋을 뿐이다.
마치 두더쥐가 땅속의 온기(溫器)를 탐내듯,
인간은 한 줌의 친절함과 인정(人情)의 필요를 느끼는 생물이었던가.
모든 것이 나에게 무관심하구나, 하는 생각은 아무래도 견디기 어려운 서러움이다.

따스함을, 이해를, 건강을 갖고 싶다.

살고 싶은 의욕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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