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18
    미디어가 뭔데? 그걸로 뭐 할 건데?
    챈챈

미디어가 뭔데? 그걸로 뭐 할 건데?

미디어교육을 안한지 넘 오래되었는데... 주안미디어센터에서 미디어교육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이 들어왔다. 어떻게 뭉개고 버티려했지만, 역시 친분을 무기로 밀고 들어오는 원고 청탁은 거절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예전에 미디어교육하면서 했던 고민들을 꺼내어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긴 하였다.

 

4년 전 난곡의 공부방에서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만난 아이들이 벌써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이 흐름은 아이들의 성장으로 확실히 실감을 할 수 있는 듯 하다. 이제 요놈들 만나서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당~~ ^^

 

 

<주안영상미디어센터 CAMF 페이퍼 3호>

 

미디어가 뭔데? 그걸로 뭐 할 건데?

 

한 아이가 꼬깃꼬깃 종이를 건네준다. 덩치는 산만한데, 쑥스러워는 표정으로 쑥 내민 종이에는 오늘 미디어교육 수업에 대한 나름의 평가가 담겨 있다.
“으이구~ 요놈~ 글씨 좀 잘 써라~” 평상시처럼 싫지 않은 농담을 건네고, 작은 종이를 펼쳐본다. 순간 눈물이 핑 도는데, 애들이 볼까봐 얼른 고개를 돌린다. 초등학생처럼 연필로 꼭꼭 눌러쓴 글 속에 그간의 이 아이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직접 라디오 방송을 많들어 봤는데 정말 재밌었다. 라디오를 처음 녹화해봤는데 처음엔 재미가 없다가 녹화를 시작하고 불과 1분 후 재밌기 시작했다. 녹화를 할 때 문제가 조금 그랬는데 우리들이 다 극복하고 잘했다.... 미디어를 시작한 후 나는 항상 웃음을 달고 살게 됬다. 정말 나는 미디어를 사랑하게 됬다.』
이 친구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구타와 폭언을 한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공부방에 들어온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미디어교육 시간에도 "왜 이런 걸 해야 하냐"며 짜증내기 일쑤였다. 교육을 갈 때마다 이 아이의 얼굴 표정을 먼저 살피는 것이 1년 동안 버릇처럼 되었다. 그래서인지 너무나 평범하게 적어 내려간 그 글이 나에게는 그간의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감지하게 해준 소중한 편지 같았다.

 

미디어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어떻게 커리큘럼을 짜야하지, 적당한 교재는 있을까? 미디어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거창한 교육 목표도 세우고, 열심히 교육 자료도 참조하면서 교육안을 만들어 본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준비한 기획들이 막상 교육현장에서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갈 때가 많았다. 특히 가장 많이 낭패를 봤던 것은 "미디어에 대한 이해" 부분이다. 명색이 이름이 미디어교육이니, 미디어에 '대해' 교사가 '썰'을 좀 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교육 초반에 꼭 포함시키는 것이 바로 미디어 이해 수업이었다. 아이들의 경우엔, 교사인 내가 조금이라도 '이론적 설명'을 할라치면, 다들 딴 짓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다. "재미없어요"라며 대놓고 교사를 무안 주기도 한다. 어른들의 경우엔, 대부분 참고 듣는 편이지만, 왜 빨리 실습으로 안 들어가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교육방법이 잘못 되었나? 좀 더 재밌는 방법으로 미디어를 이해시켜볼까" 해서 미디어 카드도 만들고, 다양한 미디어 자료들을 가져와서 함께 토론도 해보고, 미디어 지도 그리기 등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 해보았다. 처음보다는 훨씬 반응들이 좋아지긴 했지만, 이제 다른 질문이 생겨났다. "이 수업의 목적은 뭐지? 미디어의 개념, 미디어의 종류, 미디어의 역사... 이런 것들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이해시키는 것일까?" 물론 미디어교육에서 미디어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 미디어를 통해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미 사람들은 '미디어'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자신의 삶 속에서 미디어와 관련된 많은 경험을 해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미디어는 우리 생활에 너무도 밀접하게 들어와 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미디어에 대한 경험을 얘기해 보게 하면, 수도 없이 많은 얘기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 얘기의 90% 이상은 라디오, TV 수신기를 사거나 핸드폰이나 사진기, 새로 나온 컴퓨터를 사는 것,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하는 등의 '소비'의 경험들이다. '왜 미디어는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이 되고 말았을까?', '왜 보통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거대 방송사, 신문사들만이 미디어 내용을 생산할까?' 미디어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이런 궁금증, 질문들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은 결코 '미디어' 자체에 대한 분석이나 이론, 지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건 미디어로 '소비'가 아닌 다른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즉 '소통'의 경험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미디어는 내가 직접 만들 수도 있고, 내 생각과 감정을 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꽤 매력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이, 공동체가 활기를 얻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말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나는 미디어에 대해 설명하는 수업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미디어에 대해 많은 지식들을 전달하려는 욕심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소통하고 나누는 경험들을 하는데 보냈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디어에 대해, 삶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교육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큰' 미디어를 '소비'하고 지낸다. 하지만 작은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다. 자신들의 '작은'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향한 '소통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는 것. 내 얘기만을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를 변화시킴으로써 함께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 꼬깃꼬깃 전해준 그 아이의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작은 '희망' 같은 것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