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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1
    다시 불로그질!
    챈챈
  2. 2009/05/21
    김진숙 "이것도 나라인가"
    챈챈
  3. 2009/03/11
    아부지 5주기 제사
    챈챈
  4. 2009/01/20
    다들 용됐다 정말~
    챈챈
  5. 2009/01/05
    '등잔'과 함께 새해 맞이...(2)
    챈챈
  6. 2008/12/13
    '운명'과 '숙명'
    챈챈

다시 불로그질!

1년 넘게 묻어두었던,

심지어 로그인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버려진 불로그를

다시 살리기로 했다.

 

돌아보기 위함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행동行의 기록도 생각念의 정리도

없으니 마음이 게을러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믿었던 기억력마저

훅~

떨어지고 있다......

 

그게 진짜 이유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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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이것도 나라인가"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노동절에 쓴 글입니다.



이것도 나라인가


아이들에게 시험 안치는 권리를 알려줬다고 선생을 수십명씩 파면시키는 이것도 나라인가.

결국 시험 치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여중생 네명을 한꺼번에 농약을 마시게 하는 이것도 나라인가.
강남아이들은 서울대를 가고 노동자부모를 둔 아이들은 청년백수가 되는 이것도 나라인가.
살인범의 누명을 쓴 아들의 원한을 풀기위해 이십년을 매달려 겨우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법안을 만들었는데 그 법안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국회의원에게 항의했다고 칠십 노파를 구속시키는 이것도 나라인가.
인터넷에 글을 썼다고 무고한 사람을 구속시켜 만인에게 뽄때를 보여주는 이것도 나라인가.
아들과 애비가 구멍동서가 되어 어린 여배우를 죽음으로 몰고간 부자지간이 가장 강력한 언론인으로 행세하는 이것도 나라인가.
공정방송을 외치는 언론인을 쫓아내고 결혼을 사흘 앞둔 피디의 손목에 기어이 수갑을 채우고야 마는 이것도 나라인가.
대법원에서까지 복직판결이 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복직을 6년이나 외면했던 동료의 복직을 위해 엄동설한에 굴뚝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를 끝내 구속시키고 마는 이것도 나라인가.
살겠다고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을 하룻만에 불태워 죽인 이것도 나라인가.
힘센 놈 앞에서는 설설 기다가 만만한 사람들 앞에서나 법을 외치고
원칙을 나불거리는 이들이 정치인으로 불리고 판검사로 불리고 언론으로 불리는 이것도 나라인가.
860만으로도 모자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이것도 나라인가.


저것도 대통령인가.

제 나라 국민들은 째려보다가 미국에 가서야 만면에 화색이 돌고 파안대소를 하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감세정책을 펴겠다더니 지 세금을 지가 깎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그렇게 깎아낸 세금을 메꾸기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외국자본에 팔아먹겠다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언론과 친밀하게 지내겠다더니 지 친구들을 몽땅 언론사 사장으로 앉히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언론과 친구를 먹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보며 한없이 자책했다더니 물대포와 곤봉과 구속으로 뒷통수를 치는 저 소갈머리에 모발이식을 한 저것도 대통령인가.


이것도 삶인가.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은 불안이 일상이 된 이것도 삶인가.
살려고 올라갔던 망루에서 하룻만에 불타죽은 시신이 되어 숯덩어리처럼
나뒹구는 이것도 삶인가.
지난겨울 죽은 시신을 100일이 넘도록 장례도 못 치르는 이것도 삶인가.
애비를 잃은 아들이, 지아비를 잃은 지어미가, 시아버지를 잃은 며느리가 봄이 다가도록 상복을 벗지 못하는 이것도 삶인가.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깡패들에 의해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렇게 교복을 잃어버렸던 열아홉살 아들이 끝내는 애비를 잃어야 하는 이것도 삶인가.
철거현장에 연대투쟁하러 간다던 애비를 새벽에 깨웠던 그 아들이 내가 그날 안 깨웠으면 아버지는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이것도 삶인가.


가난한 자들이 꾸는 꿈은 죄가 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무슨 꿈을 꾸었던 걸까요.
맛난 걸 먹다가도 식구들이 생각나 싸들고 들어오곤 했다던 칠십이 넘은
노인은 도대체 얼마나 허황한 꿈을 꾸었던 걸까요.
평생 모은 재산으로 호프집 하나 차려 아들 며느리와 함께 꾸려가며
새벽에는 장보고 온종일을 가게를 쓸고 닦는 낙으로 살았다던 그 사람좋게 생긴 노인네는 얼마나 헛된 욕심을 품었길래 불에 타죽고 그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채 애비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던 걸까요.
칠십노인이 꿈꾸었던 나라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익숙한 일상의 지속. 그런 건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기억처럼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죽은 자와의 추억만큼 가혹한 것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실수가 씻을 수 없는 죄가 되기도 하고 못다한 말 한마디가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되돌릴 수 없을 때 세월은 잔인한 얼굴로 막다른 골목에서 우릴 빤히 쳐다보곤 합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 그땐 사무실이 중앙동에 있었습니다.
늦은 밤 사무실을 나와 길을 건너서 막차를 기다리다 보니 맞은편에 작업복을 입은 박위원장이 취한 채 비틀거리며 사무실을 향해 가는 게 보였습니다.
나를 만나러 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버스를 탔습니다.
무슨 얘긴지 내일 들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취한 사람 얘길 길게 듣는 거보다 맑은 정신으로 짧게 듣는 게 현명한 거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얘기를 끝내 못듣고 그는 구속되었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김주익 지회장이 전화를 걸어온 날도 그랬습니다.
내려온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밧데리도 아껴야 되는데 싶어서 전화를 그냥 끊었습니다.
그 얘기도 끝내 들을 수 없었습니다.
삶이 전쟁인 자들에겐 내일이 없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요.
그 전쟁에서 오늘 전사할 수도 있는 자들에겐 사랑한단 말도 힘내라는 말도 아끼면 한이 된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세월의 어느 구비 단 하루도 노동자를 위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10년 동안에도 누군가는 끌려갔고 비정규직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노동자들은 죽었습니다.
세월의 어느 구비 단 하루도 노동자를 위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나와 별개라 믿었던 그런 세상이 촛불을 켜니 보였을 뿐이고 촛불을
따라가다보니 그런 세상과 맞딱뜨렸을 뿐입니다.
촛불은 그런 것들을 외면하지 말자는 약속이었습니다.
촛불은 그렇게 세상을 바르게 보고 넓게 보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이명박을 선택한 게 우리들의 욕망이었음을 촛불은 일러줬고 그 욕망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보여준 게 용산참사였습니다.


여러분.
전국건설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저들을 한번 봐주십시오.
유난히 검은 저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봐주십시오.
우리가 전기세를 내면 당연히 전기가 들어온다는 믿음을 위해 전봇대
위에서 청춘을 보낸 자들의 얼굴입니다.
스윗치 하나만 켜면 밤도 낮처럼 환해지는 대명천지를 위해 감전사고로
사지가 절단되고 전봇대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가 된 친구를 가진
서러운 사람들입니다.
담배 피우다 세 번 적발되면 해고를 감수한다는 노예계약서를 쓴 저들의
하루 12시간의 노동에 의해 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21세기 문명을 생산해내는 저들이 일요일은 쉬고 싶다. 담배 피웠다고 짜르는 건 부당하다. 18세기 요구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합니다.
전기를 쓰고 누리는 게 권리라면 저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아마 조만간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이 멈추거나 연착되는 잠시의 불편을 용인하지 못한다면 지하철은
역무실도 없고 역무원도 없고 기관사도 없이 운행하는 죽음의 롤러코스터가 될 겁니다.
저들을 철밥통이라고 비난해온 결과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세상은 훨씬 잔인해졌습니다.
촛불이 좌파의 역모라고 굳게 믿어서 그런지 어쩐지 이제 좌측통행도 없앤다는군요.
좌우지간이나 좌변기같은 말들도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쥐새끼가 시계를 볼줄 알아서 밤에만 설치겠습니까.
어두우니까 설치는 거지요.
촛불로 어둠을 몰아냅시다.
웬만한 빛에는 내성도 생기고 훔쳐서 물고 간 돈도 많은 쥐라 물대포도
쏘고 고춧가루도 뿌린다니까 촛불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제 다시 여름입니다. 촛불 들기 딱입니다.
노동자의 모가지를 짜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본이 그동안 배터지게
먹은 걸 토해내는 투쟁을 조직합시다.
명박 아우~~~~~웃, 구조조정 분쇄, 비정규직 철폐, 청년 백수 청산을 위해 다시한번 힘차게 일어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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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5주기 제사

5년이다. 벌써 5년이 흘렀다.

음... 5번의 제사 중에 1번을 빼고는 아빠를 보러 왔다.

시댁과 제사가 겹치는 게 항상 마음의 짐 같지만, 올해는 짝꿍도 못내려오게 되고 해서

광주 부모님이 여수로 가라고 배려를 해주셨다.

원래는 유성에 들러서 아빠 산소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일 때문에 결국 점심 때가 넘어서야 기차를 탔다.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시간 떼울 겸, 톨스토이의 단편선을 거금을 주고 샀다.

톨스토이 후기 작품들이 많아서기독교 색채가 짙기는 했지만, 삶을 살아갈 때의 윤리, 정의, 선...이런 가치들을 다시 돌이켜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나 도덕교과서 같은 내용이 나올 때는 '젠장' 이란 반응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중에 괜찮은 단편들도 있었는데... 자세한 건 나중에 적는 것으로 하고...

그렇게 지루함을 달래고.. 중간 중간 졸기도 하면서... 6시간 만에 여수에 도착했다. 아... 멀긴 멀다...


집, 고향은 잠시 머물기는 편안한 곳이다.

하지만, 원고를 2개나 써야 한다는 부담감... 으이구... 왜 쓴다고 해서...

다음 날 아빠 제사 준비가 좀 늦어졌다. 괜히 게으름이 났던 것이기도 하고....

엄마 노래교실 가 있는 동안 현정과 나는 방청소를 하고... 전을 부쳤다.

보통때보다 많이 늦어져서 걱정이었는데, 엄마의 빠른 솜씨로 후다닥 준비를 했다.

 

엄마는 항상 젯밥을 짓기 전에 제사상 밑에 둔 쌀을 살펴본다.

아빠가 여기에 오셨다는 걸 확인하는 '의식' 같다.

아무런 흔적없이 평평했던 쌀에 희미하지만, 작은 길들이 나 있다.

첫번째 제사 때는 내가 기억하기에도 굉장히 뚜렷한 표시들이 있었는데...

점점 그 흔적이 약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그 작은 흔적들을 살피며, 아빠가 오셨음에 안도하신다.

이번에도 빈손으로 온 철없는 큰딸한테 엄마는 다음에는 다른 것 말고, 꼭 쌀을 가져오라신다.

그렇게 해야 복을 받는다고...-_-;; 福...


첫 제사 때만큼 슬프지 않았다. 명절 때 차례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이날도 울었다.

왜 먼저 갔는지... 왜 이렇게 외롭게 하는지... 엄마는 아빠가 원망스럽다 한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까...

예전에 삼동이형이 10년이 지나도 엄마는 아빠 제사때만 되면 우신다는 얘기가 그저 남얘기 같았는데...

아마도 평생 엄마는 아부지제사를 그렇게 보내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엄마, 나, 동생들... 그리고 못난이(울 집 강아지)랑 조용히 제사를 모셨다.

어느 누구한테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큰 아들이 돌아가신 것도 모르시고...

작은아빠들, 고모들은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게 아예 연락을 끊고 지내고..

외가 식구들도 올해는 조용하다.

엄마는 많이 서운한 눈치다.

난... 원래 그런 거라고 so cool~하게 생각한다.

기대하면 할수록 상처를 받는 건 우리니까...

 

제사가 끝나고 늦게 외할아버지가 오셨다.  엄마 걱정때문이었을 거다.

외할아버지의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운 엄마는 약속 있다며 나가셨다.

나는 밤새 원고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겨우 원고 하나를 끝내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할아버지와 함께 나와서 버스정류장에 모셔 드리고,

나는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해 여천 기차역으로 왔다.

가는 택시 안에는 외할아버지는 엄마한테 평생 엄마한테 잘해준 게 없다며 미안한 속내를 내비치신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외로웁겠냐며, 우리들이 잘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신다.

이런 얘기를 전해드리자 엄마는 평생 할아버지가 그런 얘기를 한 것은 처음이라며...

호랑이 같던 노인네... 이제 늙었나보다 하신다.

 

늙는다는 게 뭘까...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세월 가는 것, 늙는 것, 어떻게 살아야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기분이 우울해져버렸다.

 

올해 아부지 제사는 그렇게 끝났다.

마음을 다하지 못한 채, 치르는데 급급했다.

그렇게 무던히 세월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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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용됐다 정말~

 

대학원에서 만난 역문 사람들...

2003년, 2004년에 만났으니 벌써 5년 넘게 인연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

 

며칠 전 미국 유학 중인 종인이 들어왔을 때,

정말 오랜만에 많이들 모였지.

재개발로 곧 사라질 피맛골 골목에 고추장불고기를 연탄불에 구워주는 식당 쪽방에

끼어 앉아서 지난 얘기들도 하고, 요즘 어지러운 시국 얘기도 하고...

다리가 저려오는 걸 자세를 바꿔가면서 한참을 배꼽빠지게... 때로는 진지하게 얘기꽃을 피웠다.

 

그러던 이들이...

오래된 사진 한 장을 학재형이 메일로 쏴주었다.

아마도 엠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지하철 안에서였던 것 같다.

ㅎㅎ

 

 

학재 씀 ;

컴터 정리하다가 간만에 봤더니...

정말 가관이네. 정말 다들 용됐다...

저 장면이 이미 미래가 보이는 포스들 아니었나 싶어

 

성민이는 요 사진에 안보이길래 다른데서 모셔왔어

난 별일 없이 잘 다녀올께, 다들 잘 지내고 있어

성민이 오면 성민이랑 잘 놀아주고,

(3월초가 뱅기값이 싸면 ^^ 얼굴보자)

 

종인이도 잘 쉬고 힘든 유학생활 잘 견뎌내고

상길형은 형수님 맛난거 많이 해드리고 올해는 꼭 논문써요

영수도 언능 장학사업 마무리 하고, 아이도 보여주고

채은이도 신중하게 결정 잘 하시고

우성이는.... 집에좀 들어가고.

또 봅시다!

 

--------------

 

우성 씀 ;

 

ㅋㅋㅋㅋ

 

학재형 보안검색대는 무사히 '알몸으로' 통과한겨?

 

참 그리운 마음이고....

나혼 자 '비열하게' 쪼개고 있고

성민이형은.... 무슨 출마하는 사진이네.. ㅎㅎㅎ

 

시절이 수상할 수록

뜻 맞고 마음 맞는 사람들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는 모양입니다.

 

살아들 있습시다... 건강하게 말이죠...

 

----------------

 

채은 씀;

 

저작권자의 농간이다!!! 학재형만 제대로 안나왔군.. -_-;;
 
저게 도대체 언제적 사진이얌? ^^;;;
 
우성오빠는 완전 샤프한 걸... 저런 시절도 있었다니(느낌표 일곱개)
 
상길 옹은 여전하시고, 영수형은 때아닌 학구열에 불타고 계시고...
 
후하하.. 성민오빠의 저 포스는 뭐지?
성민오빠의 어깨의 올린 손은 누굴까??? ㅋㅋㅋ
곧 만나면 물어봐야징~~
 
여튼 다시 엠티가고 싶다~~
 
학재형 미국 잘 다녀오고~ 춥고 외로운 종인이한테 연락도 하고~ ^^
 
돌아오면 놀 계획 잡아보자궁~~
 
아... 사주 좀 보려했더니,,, 프로그램에 lock이 걸려있나봐. 설치가 잘 안되더라고...
 
담에 한국오면 학재도령 철학관에 찾아가도록 하지~~
 

-----------------

 

성민 씀;

 

ㅋㅋㅋㅋㅋㅋ

작품들이다 정말.

옛날에 왜 클릭하면 귀신튀어나오는 사진 있었잖아.

그거 이후로 사진 눌러서 깜짝 놀라보기는 처음이다ㅋㅋ

 

양쪽에서 좋다고 '쪼개고 있는' 두 놈은 아주...ㅋㅋㅋㅋㅋㅋ좋냐.

 

상길이형 저 '잠바' 참 죽도록 입고 다녔는데 ㅋㅋ

 

영수는 저때 과회장(뭐라고 불렀었지?)이었지 아마. ㅋㅋ생각난다.

 

채은아 두껍고 굵은 저 손 보면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니? 만나면 갈쳐줄게. 쫌만 기둘려.

 

종인아, 가서 밥 잘 먹고 잘 지내라.

학재도 너한테 고백했다며. 애쓴다 니가.

 

학재야, 니가 종인이끗발 잘라놓은 바람에 나만 알 됐다. 좋게 책임져라.

그나저나 오바마 취임식 다음날 공항에서 너를 들여보내줄지 의문이다 난...진짜로...

 

우성아....좋냐...

 

성재형 보고 싶소.

 

도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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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과 함께 새해 맞이...

매년 반복되는 새해맞이...

뭐 특별한 게 있다고 연말 연초에는 유난을 떨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날짜가 바뀌는 것일 뿐, 달력이 넘어가는 것일 뿐,

그 마저도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오늘 다음 내일일 뿐인데...

 

올해는 새해 인사도 그냥 넘겼다.

안부를 묻기에는 아직 작년의 여진이 그대로 새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MB악법, 언론노조 파업... 그보다 더한 빈곤과 폭력이 지구 구석 구석을 상처내고 있는데...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조차 차마 건낼 수 없는 처참한 상황들이

마음을 더욱 무겁고 쓰리게 한다.

 

그러던 중...

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새해 인사 메일에 씌여진 시 한편이

그래도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법구경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등잔

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타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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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숙명'

 

어느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자기는 점을 잘 믿지는 않지만,

한 점쟁이 만큼은 신뢰가 가더라는 얘기의 서두는 이랬다.

 

아이를 낳기 전에 점을 보러 갔는데...

그 점쟁이 曰,

 

"운명과 숙명을 구별할 수 있는가?"

 

글쎄... 약간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구별하지... ?

이런 생각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데...

 

점쟁이 曰,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서, 피할 수 있지만...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라서, 자신의 의지대로 피할 수 없는 것"

 

........ 

 

 

이렇게 명쾌한 정의가 있을 수 있을까....

'개념 정의'는 이래야 하는 것이구나... 하며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그 점쟁이 이름은 "왕꽃도령"  ^^;

 

왕꽃도령의 조언으로 둘째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던 선배 부부...

 

그래... 어쩌면 fortune teller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숙명과 운명의 이야기들을 구분지어서 우리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조언자가 아닐까...

 

상계동 근처에 산다는데,

신년에 찾아가고 싶은 충동이 요즘 부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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