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동기

2006/05/05 02:45

여기서 과동기는 물론 대학 동창이다. 대학에만 과가 있으니까. 그 친구 나보다 1살 어렸지만(내가 재수를 했으므로) 나보다 어른스러웠다. 항상 나보다 한 발 앞섰다고 생각한다. 운동도, 사랑도, 경제적 형편이나 생활능력 등등, 심지어 더 가난하게 지낼수 있는 능력까지. 그래서일까, 나보다 먼저 결혼하게 되었단다. 아니 여기서 나보다 먼저는 중요하지 않다. 이건 전적으로 나를 중심에 두었을 때 그렇단 말이다. 그런 그는 우여곡절 끝에, 그러나 예정된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와서 취직시험 준비를 좀 하다가 연합통신인가 하는 언론사에 들어갔다.

 

95년 늦가을에 역사적인 민주노총이 출범했을 때, 그 전야제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했는데, 우리, 그러니까 이 친구와 나, 그리고 지금 뭐하는지 모르는 한 여자 동기랑 보러갔다가 같이 돌아 오는 길에 신촌에서 신림동까지 한번 걸어가보자고 아마도 내가 제안해서 그렇게 했던 적이 있다. 여의도를 지나 신대방으로 해서 오면 좀 빠를텐데, 불행히 우리 셋은 모두 지방 출신이어서 길을 잘 몰랐고, 그래서 우리가 신림동에서 신촌 나갈때 애용하던 버스 142번(당시엔 버스번호가 이랬지)이 다니는 길을 따라 오기로 했는데, 그 길은 신촌에서 광화문까지 갔다가 서울역을 지나서 용산으로 노량진으로 이렇게 오는 길이었다. 한마디로 서울의 4분의 1을 돈 것이다. 새벽 1시쯤에 출발했는데 노량진 근처에 오니까 해가 뜨고 환경미화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 버스 정류장을 지날 무렵 이 친구가 거기 서있던 아주머니 한 분에게 버스비를 구걸했다. 실상 우리는 돈이 한 푼도 없었던 것이었다. 선량한 아주머니께서 미소를 띠고 토큰 3개를 주셨고, 우린 그걸로 버스를 타고 신림동으로 왔다. 여자 동기가 대견스럽게 말했다. "역시! 이 생활력."

 

나는 나중에 이 친구를 많이 배신했다. 그렇게 11년이 지나갔다. 지금은 2006년. 31살인 그가 결혼을 하고, 32살의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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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5 02:45 2006/05/05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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