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06/11/11 | 2 ARTICLE FOUND

  1. 2006/11/11 <<만들어진 고대>>_by 이성시
  2. 2006/11/11 고상한, 너무나도 고상한...


<<만들어진 고대: 근대 국민 국가의 동아시아 이야기>>,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삼인, 2001

 

베네딕트 앤더슨 이후로 이런 담론들은 비판적인 역사학의 주류가 된 듯하다. 다시 말해서, 근대 국민국가에 의한 역사 '창조'라는 주제들이다. 여기서는 앤더슨의 '민족'에 대해, 동아시아의 '고대사'가 창조의 대상이 된다. 별로 새로울 건 없지만, 사례를 들어서 치밀하게 분석해 내고 있다. 가령, 한일간 고대사 해석의 차이를 낳는 결증적 사료일 광개토대왕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어서 와서 조공을 바쳤는데, 倭가 辛卯년에 바다를 건너왔다. ...□...백제와 ...□□...新羅... 격파하여 신하로 삼았다.)

 

단파 라디오 방송의 지직거리는 멘트처럼 툭툭 끊긴 이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 바 "임라일본부"설이 성립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건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 당시 광개토대왕비를 설립한 목적 자체가 오늘날 근대 국민국가들의 상호 경쟁체제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있었다는 것이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왕릉을 둘러싼 여러 제도가 소멸함과 동시에 비문의 독자를 잃은 비석은 원래의 기능을 멈추었다. 그로부터 약 1,200년 후 비문은 새로운 독자를 얻게 되었다. 즉 근대 일본인은 비문을 베낀 묵본을 입수하면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앞서 재빨리 자기의 문화적 컨텍스트에 끌어들여 비문을 해독하고 거기에서 근대와 아주 비슷한 국제 정세를 읽어 내었다. 그 위에 인쇄물로 만들어 낸 비문은 새로운 형태의 텍스트로서 광범위한 독자를 획득하게 되었다. 어느새 비문의 '왜'는 아무런 의문 없이 일본으로 읽혀져 고구려의 텍스트는 근대 일본의 텍스트로 커다란 전환을 하게 되었다.> p.77

 

사실 이제는 진부해져버린 주제이긴 한데, 실증적 치밀함과 논리의 기발함 사이의 간극을 연결짓는 글쓰기의 기교가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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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1 22:05 2006/11/11 22:05

어두컴컴한 실내에 흐르는 은은한 음악. 그것은 수천만원짜리 오디오 시스템과 그것을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는 조르바 같은 주인장이 빚어낸 리얼 오디오일 수도 있었으리라. 손님들은 모두 캐주얼한 느낌을 주는 정장을 하고 한쪽 팔을 탁자에 의지한채 머리를 괴고 음악에 몰두하며, 이순간 자신이 인류가 만든 문명의 최고 정점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들에게 주어진 한뼘의 자유를 침해하는 낯선 술꾼-취한 그는 거기가 선술집인줄 알고 있었다-의 고성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 주인은 포르테 부분을 진행하는 음악의 볼룸을 최대로 키우는 것으로 응징했던 것일수도 있다. 얼마나 문명적인, 고상한 응징인가? 술꾼이 빚어내는 거친 숨소리와 고함소리와는 판이하게 자신을 구별할 수 있을 그러한 태도.

 

이때 술꾼이 손을 들고 주인에게 말했다. 음악 소리를 좀 줄여 달라고. 주인이 음악을 낮추는 듯 볼륨에 손을 갖다 대었으나, 음악은 오히려 더 커진 듯 변함없는 웅장함을 만들어 냈다.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웅장함. 귀먹은 만년의 베토벤조차 두 손 들 수 밖에 없었을 위대한 사운드.

 

주인이 그 제스쳐를 취한 후 뭐라고 말을 했는지 술꾼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당시에도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이해했는지 알수 없으되, 주인의 말을 들은 술꾼은 곧,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그건 손님을 위해 있는 것이니, 손님이 원하는대로 해 주시오"

 

라고 말했다. 스스로 속물로 규정한 대상에 대해 자기가 응징할 권한이 있는 문화부 장관이라도 되는 줄로, 술꾼은 착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순간, 조르바를 닮은 주인이 또 뭐라고 했는지 술꾼은 여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 말을 제외하고. 즉,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나가 주세요."

 

그런데, 동시에 뒤쪽에서 어떤 또다른 고상한 손님들이 술꾼에게 말했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여성이었다.)

 

"우리는 볼룸 큰 게 좋은대요?"

 

그런데 그 말은 술꾼에게 이렇게 들렸다. 즉, "네가 뭔데 손님을 대표한다고 난리냐?"

 

술꾼은 그 순간 근엄한, '스나브'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자칭의 '역사적 사명'에 도취되어, 저 버르장머리 없는 주인장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주인 앞으로 나가 소리쳤다.

 

"이곳은 당신의 가게이기도 하지만, 손님의 가게이기도 한 겁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음악에 묻혔고, 주인은 "삼만원입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듯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숙인채 나가는 술꾼의 등 뒤에서 그 고상한 음악애호가들은 어떤 경멸을 마음 속으로 토로했을까. 문명대 야만, 과학과 자연, 현대와 전통, 세련된 것과 투박한 것, 고상한 것과 천박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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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1 21:39 2006/11/11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