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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으로 나를 돌아보다.

 

 

가끔 책을 읽고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대부분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깊이가 너무 깊고 울림이 커서 나의 앎의 그릇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경우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입장은 무엇이며, 동의할 수 있는 바와 그럴 수 없는 바에 대해 밝히면서 나름 쭈뼛거리며 '비판적 독해'를 펼쳐보이고 싶은데도 그럴 수 없는 책이 가끔 있다. 어제 다 읽게 된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이 그런 경우이다.

 

이 책에 관해서는 안타까운 점은 단지 이것 뿐만이 아니다. 간혹 책의 내용과 관련해서 더 궁금한 점이 있거나 하면 저자에게 메일이라도 보내서 물어보곤 하는데, 이 책은 저자가 이미 고인이 되신 관계로 그럴 수도 없다. 57년생. 우리 아버지가 50년생이신데, 동년배들에 비해서 결혼을 늦게 하신 것을 감안하면 저자를 정확히 내 아버지 뻘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 같은 분이 자신의 유년기에 동안, 자신어 어떻게 '남자'로 만들어졌는지를, 개인의 은밀한  속살까지 낱낱이 드러내보이면서 말한다는 것은 사실 독자로 하여금 좀 낯 뜨거우면서도 호기심 가는 대목이다. 난 그렇게 남의 과거 사생활을 엿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또 깊이 울었다.

 

이 책의 초반에서는 주로 저자 자신과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회고가 주를 이룬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외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개념을 수용하는 듯 하면서도 거꾸로 뒤집어 버린다. 외디푸스 컴플렉스에서는 어머니와 결혼하고자 하는 아들의 욕망은 아버지 살해에 대한 충동으로 이어지지만 결국엔 아버지의 법을 수용하고야 만다는 좌절을 표현한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드러내는 한국 가족에서는 오히려 아버지 살해를 이루지 않고도 아들의 어머니와 결혼하고자 하는 욕망은 실현된다. 실제 내 경험에만 비춰봐도 아버지-어머니 사이보다 나와 어머니 사이가 백배는 더 가깝다. 심지어 예전부터 아버지는 나와 같이 있을 때는 어머니와 직접으로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버릇처럼 나를 대변인 삼아서 자신의 말을 전달할 것을 요구했다. 셋이서 밥을 같이 먹고 있을 때 조차도. 저자의 말대로 그것이 마치 아버지다운 행동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 사생활 깊은 곳에 들어와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대부분의 일상과 하나로 묶여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저자의 말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나에게 확인시키려 할 때에만 나의 사생활에 등장했다. 학교 성적표가 나왔을 때, 용돈기입장을 썼는지를 확인 할 때(아버지는 용돈을 정기적으로 주는 것도 아니면서 항상 용돈 기입장을 써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바로 최근에 까지 내일모래면 서른이 다 되어가는 누나에게까지도!), 평일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는 것을 야단칠 때... 어쩌면 아버지는 그렇게 교도관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 이외에 나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던 것만 같다.

 

그런데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결국 '나'라는 주체 안에 아버지의 법이 관철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나아간다. 저자 자신이 회고하듯이 나 또한 집에 아버지만 혼자 계실 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경우 그 반대다.) 이는 아버지가 법과 질서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법과 질서는 역설적으로 내 안에 '진선미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계세제적 구조 속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 내에서 내가 따라야 할 가장 기본적인 롤 모델이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나는 아버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회 또는 국가와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경우와 나의 경우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저자는 아버지를 통해서 그 위의 또다른 아버지를 상정하여 '학교 선생님 - 파출소장 - 지역 군부대 소대장 - ... - 김종필 국무총리 - 박정희 대통령 - 존슨 미국대통령 - 우 탄트 UN사무총장'으로 나아갔다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우리 아버지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우울한 존재였다. 예전부터 아버지가 나에게 아버지로서 들려줬던 이야기는, 언제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는지에 관해서였다. 국민학교 때 3일을 굶어서 학교에서 시름시름 앓았는데 딱하게 여긴 선생님이 일찍 귀가시켰다는 얘기. 집안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를 5학년 1학기 까지 밖에 못다녔는데 학교에서 어찌어찌 졸업장은 만들어 줘서 국졸 학력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 기타 다른 이야기들도 이와 비슷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미제 포탄에서 나온 부속을 재떨이로 쓰는 아버지를 보고 상상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나에겐 아버지를 무작정 부정하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성격, 말투, 대인관계를 형성하게 된 모든 배경에 대해 하나하나 캐물어 나가야만 했다. 결국 나 또한 저자의 말대로 '동굴 속의 황제' 였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어쩌면 난 아버지를 그토록 부정했던 만큼 내 세계 안에서 황제가 되고 싶어했을 지도 모른다. 그다지 붙임성이 좋지도, 말주변이 좋지도 못했던 내가 학교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잘 보이려 노력하고 발표라도 하나 하라고 하면 기를 쓰고 손을 들어 댔던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저자의 경우와 전적으로 다른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난 가족을 건너뛰고 학교를 나의 직접적인 아버지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지금껏 내가 다른 욕심은 별로 없으면서도 허영심에 가득찬 지적 욕구로만 똘똘 뭉쳐있는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그렇게 동굴 속에 철저히 갇힌 나는 대인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면 항상 나의 동굴을 이렇게 왜소하게 만든 가족을 원망했다. 그럴 수록 난 더 깊은 동굴을 파댔다. 아...

 

 

* * *

 

얼마 전에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보면서 그처럼 내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학 적인 해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은 알튀세르의 그것보다 내 지금 욕망에 더 적합한 정신분석학적인 해부의 모형을 제시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만큼 그의 책은 사람을 더 울렁거리게 만드는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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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발췌

 

 

순수한 사랑이 자신이 도달해야 할 성스러운 성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음담패설적 성 관념은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를 필요로 하는 동굴 속 황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성은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여성은 '성녀 아니면 창녀'의 양극적인 이미지로만 나타난다더니, 나야말로 그런 성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 같은 성 관념은 음란서적을 탐독하고 못된 그림책을 본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 뿌리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자 또는 남자로 행동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코 서로 성적 표현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일을 하고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는 사라밍란 의미에서 부부유별의 성적 표현은 많았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며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기뻐하는 성적 표현은 하지 않았다. 두 분은 하나의 사랑이 시작되고 유지, 발전되어 기쁨을 얻기까지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햇빛과 영양이 필요한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남녀로서 상호작용하기보다는 각자에게 주어진 길, 여자의 길과 남자의 길을 분담해서 걸었다.
지금도 두 사람은 그렇게 다툰다. 특히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당신은 왜 나를 좀 더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항의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당신은 여자가 그게 뭐냐?"라거나 "니 아버지는 그게 틀렸다."라고 비난한다. 마치 선생님이나 목사님이 말하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남녀로 맺어진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것보다 더 숭고한 목적이 있다는 듯이 살아왔다.
한마디로 우리 집은 성의 무풍지대였다. 우리 국토의 허리를 가로질러 남북한의 대결을 피하기 위한 비무장지대(DMZ)가 있듯이, 우리 집은 마치 그곳에 성적 접촉을 하면 안된다는 '성의 비무장지대(DSZ)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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