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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도가니> 중에서...

김덕중이 강추한 <다음> 연재소설, <도가니>를 읽었다.

근무중에 찔끔찔끔 읽으니 3일 동안 어찌어찌하여 지금까지 연재된 것을 다 읽었다.

 

진실이 교만하다고?

그래, 진실은 사실 너무 철없이 교만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을때가 있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서 간사가 끝까지 진실의 교만함에 의지해 거짓의 겸손함을 물리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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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사건의 충격이 가라앉을 무렵, 영광제일교회의 젊은 목사가 말한 논리 역시 많은 힘을 얻어 퍼져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상식적이었고 보통사람의 사고에 잘 맞는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사건이 자신의 도시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부끄럽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했ㅆ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고치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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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숨쉬길 바라며 쓴 서평 - <<이윤에 굶주린 자들>>

1.

 

 

얼마 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워낭소리>를 봤다. 워낙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서 거의 완벽한 스포일링을 당하고 간 상태였지만, 영화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처럼 봉화의 아름다운 풍경들에 감탄하고, 할아버지와 소의 애틋한 사랑에 동감한 것은 아니다. 물론 소가 죽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슬픔에 잠겨 있는 장면에서 나 또한 눈시울을 적셨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 한켠을 붙들고 흔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등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다 늙어서 일만하는 소가 뭐가 부럽냐고? 그러나 내가 부러운 것은 소의 '살아생전'이 아니라 죽어서 '흙'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소는 죽고 산 언저리에 묻혔다. 그리고 그 위엔 풀이 자라났다. 그리고 수 십년이 지나면 소의 육체도 미생물들을 만나 변형되면서 풀이 되고, 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죽어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이산화탄소를 내뿜어대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육중한 도시에는 내가 흙이 되고 풀이 되고 꽃이 될 수 있는 조그만 땅 뙤기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저 먼 중동 땅에서 왔을 법한 석유 찌꺼기들만이 온 도시를 뒤덮고 오직 흙 한줌의 숨통조차도 조여매고 있다.

 

괜히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불교에선 전생과 내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죽어서 흙이 될 수 없고, 풀이나 꽃이 될 수 없는 이 도시중심적 사회에서도 전생과 내세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석가모니가 생각한 전생과 내세는 단순한 정신 또는 영혼의 순환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관념은 철저히 서양 근대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육체와 자연의 순환까지 포함하는 언어였을 것이다. 어차피 하얀 가루가 되어 조그마한 항아리 안에 담겨질 육체라면 내세도 기약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물론 어차피 벌써부터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2.

 

 

예전에 <<블루골드>>(모드 발로 & 토니 클라크 저, 개마고원, 2006)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 사유화의 문제를 다룬 꽤 두꺼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물 사유화를 추진하는 초국적 기업들을 '현대판 봉이 김선달' 정도로 표현하기에는 2%, 아니 20% 정도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선달은 대동강물은 멀쩡히 놔두고 양반댁에 물을 길어다 날라주는 짐꾼들에게 동전 몇 닢 받는 걸로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여 대동강 물을 4천냥을 받고 한양 상인에게 판 정도였지만, 21세기의 봉이 김선달들은 아예 육지에 있는 물을 고갈시켜서 그 희소성을 증대시키는 악질적인 방식을 택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육지에서 담수(淡水)를 보관할 토양을 없애버린다는 점이다. 도시화로 인해 농업을 위한 경작지는 점점 파헤쳐지고, 그 위에 곧게 뻗은 길과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그 위는 전부 시멘트와 석유 찌꺼기일 뿐인 아스팔트가 덮어버린다. 그리고 도시 생활에 적합한 하수도 시설이 갖춰진다. 그런데 예전엔 비가 오면 빗물을 토양이 잡아두어 지하로 흐르면 그 물이 저수지 등으로 흘러 사람들이 쓸 수 있었는데, 시멘트와 아스팔트는 빗물을 전부 하수도로 내다 버린다. 하수도로 흘러간 물은 대부분 강을 거쳐 바다로 직행한다. 이런 토양의 손실, 그리고 온갖 오염의 원인으로 인해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 있는 물의 사용도 온갖 댐 건설, 관개시설 정비를 통해 전적으로 공업적 시설을 비롯한 자본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된다. 그렇게 해 놓고 사람들이 몸을 씻고, 목을 축이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물은 비싼 값에 사서 쓰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봉이 김선달은 초국적 기업들로 집단화 되어 있으며, 좀 더 뻔뻔하고 노골적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 문제의 열쇠는 '흙'에 달려 있다.

 

 


3.

 

 

 

그리고 최근에 읽은 <<이윤에 굶주린 자들>>(프레드 맥도프 외, 울력, 2006)에서는 토양의 획득과 이용이 오로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agribusiness)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토양에 대해 자본의 논리가 들어서게 된 것은 세간의 이해와는 다르게 그리 최근의 현상만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인 엘런 우드의 '농업 자본주의의 발생'에서는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농업 문제를 논의의 바깥으로 밀어낸 기존의 인식에 대해 반성을 요구한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산업혁명의 신화에 반대해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상업'에서 찾으려 했다면, 오히려 그는 그 반대편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그는 노동을 통해 재산소유권이 형성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진 로크의 이론은 꼼꼼히 살펴보면 논점이 노동 자체가 아니라 생산적이면서 이윤을 낳는 토지 이용인 '토지 개량'이 소유권을 형성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토지를 개량하는 적극적인 지주(↔봉건적 지주)는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노동이 아닌, 자신의 토지와 다른 사람의 노동을 생산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소유권을 확립한다. 개량되지 않은 토지, 임대되지 않아서 이윤을 낳지 못하는 땅은 '황무지'였고, 이러한 토지를 전유하는 것은 개량하는 사람들의 권리이고, 심지어 의무이기도 했다. 영국에서의 토지 개량에 대한 이런 관점은 식민지 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도 토지 강탈을 정당화 했고, 이는 인클로저와 같은 토지 소유권의 재정립 가져왔다.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위해 의존해 왔던 공유적 관습적 토지 이용권이 소멸되는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량의 비농업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갖는 농업 부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의 산업 자본주의가 출현 할 수 있었을까? 영국의 농업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임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하는 무산대중이 존재했을까?

 

자본주의적으로 개량된 농업은 이제 도시의 무산 대중에게 공급될 식량 생산이나 목양, 원예, 과일 등 고부가가치 농업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 중심에 농업생태체계의 신진대사를 교란시키는 단종경작(monoculture)이 자리잡고 있다. 존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는 독일의 토양화학자 리비히와 마르크스의 논의를 빌려와 단종경작이 중심이 된 영국의 집약적 농업이 농촌에서 도시로 식량과 섬유의 원거리 수송을 필연화하는 반면, 질소, 인 칼륨 등의 영양물질을 재생시키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주변부의 농촌은 토양의 영양분을 박탈당하고, 중심부의 도시는 쓰레기와 공해로 환경이 훼손된다. (거름이 되지 못해 길거리에 뿌려진 똥 때문에 하이힐이라는 뛰어난(!!) 패션 상품을 만들어낸 프랑스 파리를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농업은 또 한번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탈곡기, 수확기 트랙터 등의 기계가 발명되고, 질소비료, 살충제, 제초제 등 화학적 투입물이 대량 생산된 것을 배경으로 농업과 공업의 '수직적 통합'이 단행된다.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에서 수행하는 영농에서부터 생산물의 수송, 가공,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배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수직적 통합을 잘 설명해 준다.

 

"계약 영농의 본질을 잘 보여 주는 사례는 특히 계약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육계broilers(식육용으로 사육되는 닭)생산에서 볼 수 있다.(... ...)
육계 생산은 타이슨(혹은 유사한 다른 지방 기업들)과 4년 계약을 맺고 생산되는데, 이 계약에 따라 타이슨이 사육할 병아리, 사료, 그리고 수의학 서비스의 독점 공급자가 된다. 타이슨은 공급되는 병아리의 유형, 공급량과 공급 빈도의 유일한 결정자이다. 타이슨은 7주 후에 자신들이 정한 날짜와 시간에 다 자란 닭을 수집한다. 타이슨은 사육되는 닭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공급하고 닭을 싣고 갈 트럭을 제공한다. 농민은 노동, 사육장, 사육장이 세워지는 토지를 제공한다. 사육에 필요한 투입재와 사육 방식에 대한 엄밀한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생산자(농민)는 사료, 수의약품, 제초제, 농약, 살충제, 쥐약 등 회사에 의해 공급되거나 그 회사의 문건에 의해 승인된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물품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그에 서명해야 한다." 더구나 농민은 회사의 "육계 사육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집중 관리" 대상이 되어 타이슨의 "육계 관리 및 기술 자문관"의 직접 감독을 받게 된다."


- 167-8pp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토지는 농민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농민은 '토지 소유자'이다. 즉 요즘엔 옛날처럼 소작농이 없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지주인가? 그렇지도 않다. 지주치고는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너무 없다. 농업에 투입되는 비료 및 사료, 농약, 농기계, 생명공학 등의 대부분의 투입물를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며, 생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농의 출발점이 되는 종자에 대한 정보와 기술은 생명공학기술을 독점한 초국적 종자기업(몬산토, 노바티스, 듀퐁 등. 이들은 미국에서 제약회사 다음으로 높은 이윤율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다.)은 종자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끊임없이 강화하려 한다. 그래서 생명공학적으로 조작된 종자를 도입하는 농민은 작물에서 생산된 다음 세대의 종자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계약을 종자 생산자와 맺어야 한다. 이를 어기고 농민이 농사를 지어 얻은 종사를 다른 농민에게 팔거나, 다음해 농사를 짓기 위해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된 2세대 종자를 다시 파종하는 행위는 '해적질'로 매도된다. 그럼에도 영농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비용, 즉 자연재해, 병충해, 농민 건강 악화, 생태 파괴 등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농민이 부담해야 한다. 왜? 농민이 땅 소유자니까....

 

 


4.

 

내 주변에는 숨 쉬지 못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그냥 '땅'들만이 가득하다. 제작년까지 우리집이었던 곳의 뒷 마당에는 엄마가 상추, 고추, 고구마 등을 심어서 우리집 네 식구 먹을 거리는 해결했는데, 그나마 그 땅도 이제 아파트 만든다고 다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숨 쉬고 있는 땅이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에서 들여온 비료며 종자기술로 생을 연명하는 땅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그렇게 많은 땅의 숨통을 틀어 막아놓고는 그나마 숨쉬고 있는 좁은 농촌의 땅과 농민들을 무한히 착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착취한 결과가 엄청 풍요로운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생물종의 절반 가까이가 멸종해 가고 있다니 따지고 보면 먹는 우리가 먹는 것의 종류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오로지 비만과 당뇨병을 재촉하는 것들 위주로 말이다.

 

그런 모습들에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닭가슴살과 고구마만을 먹었다는, 얼마 전에 '스타킹'에 출연했던 몸짱의 얘기가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그 때 옆에서 강호동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 울린다. "그러다 죽어요!"

그렇다. 그러다 진짜 죽는다. 근데 죽어도 그 근육으로 단단했던 몸은 풀도 못되고, 꽃도 못된다. 그냥 흰 가루일 뿐이다. 뭐하는 짓이니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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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읽은 책 - 1

원래 한 달에 2-3편 정도의 서평을 쓰는게 나름 목표였는데, 이래저래 꼬이다 보니 계획이 헝클어졌다.

 

부족하지만 서평대신 요즘 읽는 책들에 대한 간단한 감상이나 적어볼란다.

 

 

 

백승욱, <<문화대혁명>> (살림, 2007)

 

원래는 큰 맘 먹고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를 읽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 방대한 분량과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사건들이 머리속에 질서있게 정리되질 않아서 하는 수 없이 1권의 3/4 정도만 읽고 포기하고, 아주 슬림하게 문화대혁명을 정리한 이 책을 읽었다.

 

사실 모리스 마이스너의 책에서 내가 읽은 부분에선 문화대혁명 관련한 내용이 아직 시작도 안되었지만, 그걸 읽고 백교수의 책을 읽으니 나름 이해도 빨리되고 도움도 꽤 됐다. <<문화대혁명>>은 2007년에 사서 읽어보다가 중국관련 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사건 전개가 잘 이해가 안됐었는데, 마이스너의 책을 통해 문화대혁명 전사(前史)를 훑어주고 나니 요 책도 흥미롭게 읽히더라. ㅎㅎㅎ

 

백교수가 다른 글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의 근대사는 일국의 역사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본주의 근대 역사의 뒤엉킨 모순을 가감없이 간직한 역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문화대혁명은 바로 그 정점에 서 있는 사건에 해당한다. 대중의 지식에 대한 권리와 통제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 외형상 당의 지도에 의해 시작되었음에도 대중의 운동은 당의 통제를 넘어서기 일쑤였고, 결국엔 그 운동이 당에 의해 무참하게 진압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은 이 운동은 결국 세상 사람들에겐 마오와 그 반대파가 권력을 잡기 위해 벌인 피의 난투극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중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급격하게 몰입하면서 대중들로 하여금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문화대혁명의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 내도록 하고 있단다.

 

뭐 그건 그렇고, 덤으로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에 대한 평도 간단히 덧붙이자면, 난 다른 건 둘째치고 마오가 소비에트의 길과는 다르게 농민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농업이 공업에 의해 예속하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점이 꽤 신선하게 다가오더라. 마오의 대중노선도 중요하지만, 그의 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곱씹어 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임승수 외,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시대의 창, 2006)

 

표지 사진에서 느껴지는 저 포스!! 성조기를 휘어잡고 석유방울을 튀기는 대갈장군(!!) 아저씨의 카리스마!! 그러나 나는 이런 찬양조의 표현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이 책을 읽고도 결국 차베스에 대한 호감을 높이지는 못했다. 처음엔 차베스에 대한 좌파적 비판자들이 하는 말들에 대해 좀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비판들이 나름 근거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표지 사진이 쪼끔해서 잘 안보이는데, (그리고 도서관에서 저 책을 빌려볼때도 유심히 보진 않았지만) 차베스가 붙잡고 있는 성조기 아래 쪽에 줄지어 서 있는 기구 모양의 물체는 석유 시추 장치이다. (일껄??)

 

책에서도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 바이지만, 차베스는 세계 최고의 석유 생산량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게 그렇게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 내에서 수행하고 있는 많은 복지 정책들도 사실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의 이윤에서 나온 것을 사회적으로 분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초국적 에너지기업들이 자행하는 자원약탈을 차단하고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이루기 위해서는 석유회사의 국유화가 필수적이겠지만, (사실 이러저러한 정황을 봤을 때, 국영석유회사의 국유화 말고 뭐 다른 대안이 있을까도 싶다. 여기에는 몰락한 현실 사회주의가 범했던 국유화론에 대한 비판이 끼어들만한 여지는 별로 없어보인다) 차베스의 전략이 국유화를 넘어서 더 높은 지향을 추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ALBA와 같은 대안적인 무역체제를 만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얼마간 사실상 천연자원을 무기로 미국에 대항하는 지역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했을 때, 차베스가 추구하는 대안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적인데, 그런 노력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기껏해야 OPEC의 다른 국가들을 추동해서 석유 가격을 적정하게 유지시키려는 것 정도?? 물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에 그친다면 자원 민족주의에 불과하지 않는가?

 

 

 

 

 

 

고미숙, <<이 영화를 보라>> (그린비, 2008)

 

그 동안 영화 평론하는 책을 보고 싶긴 했는데, 대부분의 것들이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안 유명한 거나 아니면,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SF영화를 대상으로 해서 싸이버 문화가 어쩌구 저쩌구, 미래 테크놀로지 사회가 어쩌구 저쩌구 요따구 지랄들을 해대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요책은 고런 답답함을 말끔하게 해결해 준 책이다.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대한민국 사람 중에 웬만한 사람이면 이 6편의 영화중에 2편 이상은 봤을 것이다. 나도 괴물과 라디오스타는 극장에서 봤고, 황산벌, 음란서생, 밀양은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봤으며(근데 음란서생은 재미없어서 중간이 그냥 꺼버렸다.) 서편제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줬다(그러나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이었던 나는 그 시간에 수학문제 풀고 있었다. ㅋㅋㅋㅋ).

 

이 책에서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압권은 괴물에 대한 분석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괴물을 단순하게 '반미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봤다. 한강에다가 포름알데히드를 대량 방사하는 미군놈을 나쁜놈, 거기에 꼭 달라 붙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니 감염되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송강호 잡기에 나선 한국 경찰. 내 눈에도 이 영화는 단순한 '진영론'으로만 분석되는 수준이었다. (단, 어떤 사람들처럼 가족애를 다시금 생각한다든지 뭐 그딴 말도 안되는 감상은 받지 않았다. 고미숙의 말처럼 이런 사람들을 보고 가족애를 느끼기에는 너무 콩가루 집안 아닌가?)

 

그러나 고미숙은 과감하게 여기에 '위생권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9.11테러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빈라덴 같은 극렬 테러범만 때려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시의 단순 무식한 사고방식는 괴물을 없애기 위해서는 괴물의 바이러스만 제거하면 된다는 위생관념에 그대로 복사되어 있다. 지저분한 것은 못참는다는 미군 장교의 뛰어난 위생관념은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게 했고, (한강은 넓고 넓으니까 괜찮다는 아주 '상식적인' 사고방식에 의해서!!) 그것은 괴물을 낳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매일매일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쓸려내려가는 똥은 재생되지 못하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내려가고, 우리의 '위생적인' 생활을 위해 쓰인 공업용수들은 온갖 중금속들을 함유한 채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생긴 문제에 대한 해결은 바이러스, 세균만 잡으면 된단다. 유오성인가? 한놈만 잡아서 패게??

 

이런식의 분석 방법을 최근 광우병 사태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시키는 저자의 사고의 폭에 그저 놀랄 뿐이다. 브라보~~!!

 

하나하나 다 얘기할라 치면 말만 길어질테고,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길.

 

근데 서편제, 음란서생, 라디오스타에 대한 분석에서는 좀 갸웃해지는 대목도 꽤 되더라. 요건 나중에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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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세대>>를 향한 소심한 반론

우석훈, 말의 덫에 빠졌다 (프레시안)

 

또 하나의 세대론? (진보넷 블로그)

 

88세대론 <조선> 독우물에 빠지다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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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이윤에 굶주린 자들 - 존 포스터 외

1장. 농업 자본주의의 발생

 

 

소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더욱 체계적으로 이론화되었는데, 그 중 로크의 [통치론 제II논고Second Treatise of Goverment]가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의 제5장에는 개량의 원리를 기초로 해서 소유 이론의 고전적 견해가 서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자연"권으로서의 소유권에 대하여 로크는 대지의 생산성을 높여서 이윤을 낳도록 개량하는 것을 신성한 명령으로 간주하고 있다. 노동이 재산권을 형성한다는 것이 로크의 소유 이론에 과한 전통적 해석이지만, 로크 논문의 소유권에 관한 장을 세밀하게 읽으면, 그의 논점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생산적 이면서 이윤을 낳는 토지 이용인 토지 개량이 소유권을 형성한다는 것이 명확하다. 토지를 개량하는 적극적인 지주는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노동이 아닌, 자신의 토지와 다른 사람의 노동을 생산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소유권을 확립한다. 개량되지 않은 토지,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지처럼) 임대되지 않아서 이윤을 낳지 못하는 땅은 "황무지"였고, 이러한 토지를 전유하는 것은 개량하는 사람들의 권리이고, 심지어 의무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개량에 대한 이러한 가치관 때문에 식민지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도 토지 강탈이 정당화되곤 했다. 이것이 인클로저라는 가장 유명한 소유권의 재정립을 가져왔다. 종종 인클로저는 예전의 공유지나 영국 농촌의 일정 지역을 특징지었던 "개방 경지"를 사유화하고 울타리 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인클로저는 (토지를 물리적으로 인클로저 하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위해 의존해 왔던 공유적 관습적 이용권의 소멸이라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55-6 pp

 


이러한 특유한 패턴이 가져온 장기적 결과는 분명하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화"된 경제로 발전해 간 것과 농업 자본주의 간의 연관성을 충분히 해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몇 가지 점은 자명하다. 대량의 비농업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갖는 농업 부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의 산업 자본주의는 출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농업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임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하는 무산대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토지를 강탈당한 비농업 노동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영국의 산업화 과정을 추진한 대중 소비 시장, 즉 식품이나 의복같이 값싼 일용품을 판매하는 시장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의 확대를 꾀하려는 새로운 동기 -- 영토 획득이라는 낡은 형태와는 다른 동기 -- 와 함께 부의 증대가 없었다면, 영국 제국주의는 산업 자본주의읭 원동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분명히 더욱 논쟁적인 이야기이지만), 영국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종류의 잔본주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국, 특히 산업화된 영국에서 비롯된 경쟁 압력으로 인해서 다른 나라들의 경제도 자본주의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 63-4pp

 

 

 

 

 

5장. 자본주의적 농업의 성숙

 

 

일반적으로 말해, 상업적 종자 회사들이 동종 교배 방식을 통해 투입재인 종자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제한된 것이었다. 첫째, 동종 교배 방식은 콩이나 밀 같은 중요한 작물이나 대가축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다. 둘째, 동종 교배 방식은 일반적으로 생산량의 증가에는 성공적이었지만, 특정 질병에 대한 저항성, 제초제에 대한 저항성, 유지 종자의 유지 함량 증가 같은 많은 중요한 특성들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특성들은 다른 육종 방법을 통해 도입되어야 했다. 셋째, 농업 경영상 중요한 작물들에 도입된다면 바람직할 것 같은 특성들이 있지만, 이러한 특성은 현재 경작되고 있는 작물과 교배되지 않는 작물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예는 콩과 식물처럼 뿌리를 질소 흡착 박테리아가 서식하기 좋도록 만들어서 공기 중에서 질소를 흡착할 수 있는 옥수수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였다. 이것이 성공했다면, 질소 비료 시장은 축소되고 질소 공급은 종자 기업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종자 기업이나 종자 기업의 파트너 혹은 소유주인 화학 기업에게 이윤을 제공할 만큼 농업 경영상 중요한 작목들을 변형하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바로 1970년대에 이르러 자본의 농업 침투가 명백한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농업 생산에서 새로운 형태의 중요한 기계 도입은 종말을 고하였는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연료비의 급격한 변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공급됨으로써 농업 노동자의 조직화가 지연되었기 때무닝었다. 비료와 살충제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해 대중의 인식이 점차 커지고, 살충제와 제초제 살포의 유해성으로부터 농장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OSHA(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규정이 만들어져서 이미 사용 중인 화학 물질 사용을억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화학 약품 사용을 억제했다. 더구나 비료와 살충제는 이미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어서, 농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적정한 수준 이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1975년 이후에는 비료 사용이 늘어나지 않았고, 1980년대 초반 이후에는 합성 살충제 사용도 증가하지 않았다. 투입재의 공급자와 산출물의 구입자들이 농업으로부터 더 많은 잉여를 전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 요인, 즉 1)농업 경영상 중요한 작묵들에 대해 근본적인 생물학적 변형을 가하는 것, 2) 변형된 특성을 보유한 생물체가 계속 자신들의 소유와 통제 하에 있도록 보장하는 것에 의해 경정 되었다. 더구나 투입재 생산 부문과 영ㅇ농 후의 생산 부문(구매, 가공, 유통)의 집중이 심화됨으로써 거의 독점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잉여의 전유는 더욱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생명 공학을 살펴보기로 하자.


- 159-160pp

 

 

 

 


동종 교배법을 통해 확보하였던 재산권의 보호는 몇 개의 유기체와 몇몇 농경적 특성에 한정된 것이었다. 생명 공학은 동종 교배법이 적용되지 않는 바로 그러한 사례들에 도입되어 왔다. 그렇다면 육종자는 결정적인 물질, 즉 유전자를 제공하면서 어떻게 더 많은 잉여를 전유할 수 있는가? 그 해법이 육종자의 손에 쥐어졌는데, 그것은 법적 무기와 생물학적 무기가 결합된 것이었다. 식물 종 보호법Plant Variety Protection Act과 뒤이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법적 무기가 육종자에게 제공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농산물의 원천을 정확하게 밝혀 주는 표준 DNA "지문fingerprint"을 사용함으로써 육종자의 권리가 보호된다. 생명공학적으로 조작된 종자를 고입하는 농민은 작물에서 생산된 다음 세대의 종자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계약을 종자 생산자와 맺는 것이 이제는 표준이다. 농민은 농사를 지어 얻은 종자를 다른 농민에게 파는 것 "brown bagging"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더욱더 혁명적인 것으로서, 다음 해 농사를 짓기 위해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2세대의 종자를 다시 파종하는 것도 금지된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댖두 종자를 구매하는 모든 농민들 혹은 유지 함량이 낮은 "담백한" 감자 칩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몬산토의 특별 품종 씨감자를 구매하는 모든 농민들은 같은 품종을 계속 생산하려면 계약 조건에 따라 다음 해에 다시 몬산토에 가야 한다. 몬산토가 그러한 계약을 강행할 수 있는 것은 작물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작물 확인은 식물 한 포기 혹은 종자 한 알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유전자 조작 품종의 DNA가 유전 공학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주입된 독특한 유전자 배열을 가지기 때문이다.


- 162-3 pp

 

 

 

 


계약 영농의 본질을 잘 보여 주는 사례는 특히 계약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육계broilers(식육용으로 사육되는 닭)생산에서 볼 수 있다.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에 닭고기를 공급하는 주 공급자는 사우스캐놀라이나 주의 타이슨 팜즈이다. 타이슨 닭고기는 타이슨 "농장"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100에이커 정도의 농지를 소유하고 연간 평균 25만 마리의 닭을 생산하는 소규모 농민들에 의해 생산되는데, 이들의 연간 총소득은 약 6만 5천 달러이며 순소득은 1만 2천 달러 정도이다.
육계 생산은 타이슨(혹은 유사한 다른 지방 기업들)과 4년 계약을 맺고 생산되는데, 이 계약에 따라 타이슨이 사육할 병아리, 사료, 그리고 수의학 서비스의 독점 공급자가 된다. 타이슨은 공급되는 병아리의 유형, 공급량과 공급 빈도의 유일한 결정자이다. 타이슨은 7주 후에 자신들이 정한 날짜와 시간에 다 자란 닭을 수집한다. 타이슨은 사육되는 닭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공급하고 닭을 싣고 갈 트럭을 제공한다. 농민은 노동, 사육장, 사육장이 세워지는 토지를 제공한다. 사육에 필요한 투입재와 사육 방식에 대한 엄밀한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생산자(농민)는 사료, 수의약품, 제초제, 농약, 살충제, 쥐약 등 회사에 의해 공급되거나 그 회사의 문건에 의해 승인된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물품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그에 서명해야 한다." 더구나 농민은 회사의 "육계 사육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집중 관리" 대상이 되어 타이슨의 "육계 관리 및 기술 자문관"의 직접 감독을 받게 된다.

- 167-8 pp

 

 

 

 

 

 

6장. 세계의 식량정치

 

 

 

미국의 농산복합체는 농업 부문에서 특히 심각했던 1930년대의 대공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양차 대전 사이에 실시된 농업 관련 조정 장치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1935년의 농업 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 개정으로 국내 가격을 세계 시장 가격보다도 높게 설정하는 미국 농무부의 가격 지지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 농무장관은 농산물 수입을 금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신중상주의적인 수입 관리 정책은 결국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농산물 수출 계획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농가 보호로 생산 과잉을 가져왔고, 미국 정부는 이 영어 농산물을 공법 480호(농산물무역개발원조법으로서 1954년 7월에 제정)에 의거해서 원조 물자로 해외에 처분했다. 처음에는 무상 원조로 시작해 나중에는 상업에 기초한 가격으로 유통시킨 이러한 식품 체계 속에서 카길이나 콘티넨탈 같은 거대 곡물상들은 부를 축적했다. 이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가족 농장이 생산한 곡물을 거래했고, 식량 원조 계획이라는 보조금을 받는 수출을 통해 매혹적인 시장을 획득해 갔다.
값싼 농산물에 더해서, 미국의 농업 관련 기업의 기술 수출도 해외 원조 계획 기관을 통하여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마셜플랜Marshall Plan과 제3세계의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이 포함되었다. 이 두계획은 유럽과 일본, 멕시코에 이르는 지역에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미국식 농업을 모방한 근대적인 농업 부문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4개의 현지 기업이 미국의 (랄스톤 류리나와 카길을 포함하는) 농업 관련 기업과 합작 기업을 설립하여 한국의 식품 체계에 전문 기술과 마케팅 지식을 도입했다. 1970년의 PL480호 연차 보고서에는 이들 기업이 대응 자금을 획득하여 "근대적인 가축용 배합 사료 공장과 가축 및 가금 생산 싯설, 육류 가공 공장의 건설이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설을 완전히 가동학 ㅔ되면, 사료 곡물과 기타 사료용 원료 시장이 실질적으로 확대될 것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2년 후에 발간된 연차 보고서에는 "이들 기업은 미국에서 개발된 기술의 한국 내 도입을 촉진하고, 미국산 옥수수, 대두박, 종축 및 기타 농자재/농기구의 대 한국 수출 급증을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

흥미롭게도 1970년대 초에 미국 정부는 미국이라는 제국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특히, 베트남 전쟁에 의해 발생한 비용)의 상승으로 발생한 국제 수지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서 농산물 수출이라는 "식량 무기green power" 전략을 채택했다. 1970년대까지 미국의 농업 정책은 국내 농업 부문의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졌기 대문에 수출과 식량 원조는 자국의 잉여 농산물 관리의 부산물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1973년 농업법'을 통하여 생산 제한을 해제하고, 상업에 기초한 수출을 장려함으로써 잉여 농산물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대한 미국 농업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1970년대 초부터 미국 농업은 수출 지향적으로 되어, 수출 시장을 겨냥한 값싼 기본 농산물(밀, 옥수수 및 대두)이 전체 경지의 1/3이상에서 재배되었다. 식량 무기 전략은 세계의 가족농업경영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수출 지향 생산을 강화하여 해외 시장 그중에서도 특히 제3세계의 중소득 국가, 중국, 구소련, 동구 등으 ㅣ대외 식량 의존도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농업 정책을 모방하여 미국과 마찬가리조 과잉 생산문제를 야기했던 서우럽도 유력한 곡물 수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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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싸이코패스인가?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중의 하나이다. 원인은 뇌의 전두엽의 이상이 오는것 때문으로 알려져있으며 이 증상을 앓고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 위키백과

 

 

사람들이 하도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 하길래 뭔가 해서 한번 찾아봤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난 요즘 스스로 사회성(=사교성)이 부족하고, 성격이 많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그럼 나도 사이코패스? 헉, 근데 정말 경악스러운 것은 그런 장애가 뇌의 장애 때문이라고?? 뇌의 심각한 장애 때문에 강호순이가 그렇게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의 공상과학영화 스러운 이야기를 언론들이 그렇게 목이 찢어져라 하고 있었던 거라니... 헐~

 

뇌 심리학의 전문가들께서 지껄이신 소리라서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 무례한 짓거리인줄은 아나 한마디만 하자. 옛날에 뇌에 도파민의 과도 분비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인 과잉행동장애(ADHD)를 겪고 있는 한 어린이가 어린 동생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집어던져서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과잉행동장애, 미국의 수영 영웅 펠프스도 어릴적에 겪었던 질환이다. 그럼 어릴적 펠프스도 살인자로서의 잠재력이 농후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제 만난 친구가 전해 준 이야기는 더욱 입이 벌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중앙일보의 싸이코패스 '신드롬' 만들기 놀이에 놀아나신 그 친구 아버지는 약간만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모두 싸이코패스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단다. "과속하는 놈들은 다 싸이코패스야!" 뭐 요런 식으로...

 

바야흐로 불안과 공포의 시대다. 경제위기가 목을 서서히 졸라오니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악마 때려잡기에 나서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지 않는가? 살인 충동을 느끼는 특별한 뇌 구조를 가진 인간만 세상에서 제거하면 된다는 식의 참주선동은 (게다가 보너스로 그의 가족들도 낯짝 못 들고 다니게 해야 한다는!!!) 대공황 이후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유태인들에게 돌리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파시즘의 얼굴과 다를게 뭔가? 이런식의 집단 심리 구조는 조만간 강호순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서 집단 매도하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옛날에 그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에서처럼 눈동자를 감식해서 잠재적 범죄자를 식별하고 미리 잡아 가두는 법도 서서히 등장하겠지... 허허허...

 

그래 다 좋다. 그렇게 할 테면 해 봐라. 근데 하나 제안한다. 일단 80년 광주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살을 지시했던 전두환의 뇌 구조부터 검사해 보자. 그리고 얼마전 용산 참사를 불러온 살인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서울시경 간부들의 뇌구조, 그리고 이명박의 뇌구조부터 검사하자. 그들에게서도 사이코패스 증상이 나오면.... 그땐 암말 않고 인정하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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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 모리스 마이스너

20세기 중반까지 중국 농촌지역에 전(前)자본주의적 사회경제관계와 신사층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근대중국사의 흐름 속에서 부르주아 혁명운동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의 농촌지역에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번성할수 있느 조건을 만들어내는 역사적 임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유재산 폐지를 목표로 하던 공산당에게 주어졌다. 물론 이런 역사적 역설이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부르주아 정당들의 실패로 농촌의 부르주아 혁명은 볼셰비키가 주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소련역사의 첫 10년은 자본주의적 농민의 등장과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에서 농촌의 부르주아 경제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으며, 농촌의 부르주아 혁명을 완수했던 바로 그 정권이 다시 부르주아 소유권을 파괴하는 역할을 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갖는 아이러니의 하나는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부르주아 혁명운동의 좌절이 오히려 사회주의에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부르주아 혁명이 이전에,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이 권좌에 오를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조성되기 전에 성공했다면, 두 나라의 농민은 자신의 작은 자작농지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보수세력이 되어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1789년 혁명에서 보여주었던 프랑스 농민의 급진주의는 이후 한 세기 이상 정치적 보수주의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보나파르트 왕조는 농민왕조다"라는 냉소적인 논평을 했다. 이에 반해 토지혁명이 늦어져 사회주의 혁명과정과 동시에 또는 그 일환으로서 이루어진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러시아의 경우, 새로 탄생한 농민 소지주는 스탈린 정권의 집단화에 저항할 만큼 강한 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중국혁명의 경우 그 정치적 이득은 훨씬 컸다. 러시아의 볼셰비키와 달리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으며 농촌사회 깊숙이 조직적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집단화과정에서 중국농민의 저항은 아주 미미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인 사회개조를 적극 지지했다. 중국에서 농업의 사회주의화는 소련과 현저히 다르게 진행되어갔고 그 사회적/정치적 결과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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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호모 쿵푸스 中 - 고미숙

짧은 미국 생활동안 내가 목격한 건 미국에는 '수많은 영어들'이 있다는 것이다. 히스패닉 영어, 아시아식 영어, 아프리카식 영어 등등. 이를테면 미국에는 전 세계 인종의 수만큼이나 많은 영어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영어는 미국이라는 제국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제국식 삶을 고스란히 복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엔 영어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태도가 존재한다. 하나는 네이티브(native)에 대한 맹목적 동경, 다른 하나는 적대적 거부감. 이 두가지는 겉보기에 달라보이지만 영어를 제국의 언어로 묶어놓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이제는 이 둘 사이에서 아니 그 둘을 벗어나 영어를 탈제국화하는 운동을 시도해야 할 때다. 솔직히 말해, 영어 보더 더 간단 명료한 언어체계가 어디 있는가. 그걸 인정한다면, 영어를 오히려 국경과 인종을 넘어 전지구적 연대를 모색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대체 왜 이런 가능성에 대한 영어책 혹은 영어 공부법은 없는 것인가? 오직 토익점수를 올리는 것, 네이티브처럼 발음하기, 미국인과 대화하기 위한 각종 표현들 익히기 등등이 전부다. 심지어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한 혀 수술을 한다는 괴소문까지 나돌기도 했으니, 미쳐도 한참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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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 권현정 외

성욕의 문제, 특히 여성 히스테리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이 형성되고 발전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여성적 동일성과 성욕의 관련성이라는 가정 하에서 여성성을 규명하기 위해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이는 무성적 존재였던 여성을 성욕을 가진 존재로 구성하는 데서 중요한 질문이었다.

프로이트에 와서 여성성의 문제는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정신분석학의 영역으로 이전되었다. 프로이트에게 리비도는 이전 시기 정치철학의 코나투스와 동일한 지위를 갖는 기념으로 개인성 특히 성적 동일성의 형성을 설명하는 열쇠였다. 따라서 여성 성욕의 특성을 밝히는 것이 여성성을 밝히는 데서 핵심적 문제였다.

프로이트는 유아의 리비도를 남성적인 것으로 가정하고 남성적 리비도를 중심으로 여성성을 설명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의 욕망은 페니스의 결여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페니스 선망을 거쳐 외디푸스 콤플렉스로 이어지는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다. 여성은 자신의 성감대를 작은 페니스인 클리토리스에서 바기나로 이동시켜야 하며 이 과정은 페니스 선망을 페니스 삽입에 의해 남자아이를 갖고자 하는 열망으로 변경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151-2 pp

 

 

 

 

2차 성혁명을 향한 새로운 성관념의 출현은 이미 킨제이 보고서에서 시작되었다. 킨제이는 1948년 남성의성욕에 대한 연구를, 1953년에는 여성을 대상으로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성은 오르가즘을 추구하는 하나의 게임으로 묘사되었고 '만족'이라는 모호한 용어 대신 '오르가즘'이라는 단어가 선택되었다.

킨제이에 의하면 오르가즘을 목표로 한 성은 반드시 사랑이나 이성애적 매력이나 심지어 인간적 상호작용마저도 포함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킨제이의 연구는 오르가즘의 횟수에 관한 한 동성애, 자위, 심지어 수간까지를 포함하여 이전 시대에는 일탈로 여겨졌던 다양한 성행위를 포함했다.

킨제이 보고서의 충격은 성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낳았다 .그것은 첫째, 성의 목적이 임신보다는 오르가즘의 추구에 있다면, 정상에서 벗어난 다양한 성적 일탈이라는 기존의 판단에 대한 도덕적 상대주의가 능하다는 점이었다. 둘째, 킨제이 보고서는 오르가즘의 추구가 목적인 한 성에 관해서 남녀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발전시켰다. 즉 오르가즘에 관한 한 남녀간의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킨제이의 연구는 물리적 반응으로 환원된 오르가즘은 인간적 감정과 무관하며 따라서 남녀간의 성관계는 출산은 물론 사랑 및 결혼과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하지만 50년대의 성과학은 불감증의 치료를 위해서 여전히 남성의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페니스가 바기나 안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있었고 이에 대한 실패를 표현하는 단어가 '조루'였다. 여전히 남성이 성관계에서 주도적인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으며 여성의 지나친 활동성은 문제로 인식되었다. 2차 성혁명의 초기에 여성들에게 더 많은 성욕의 가능성이 열렸다고 해도 여성의 성적 경험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았다. 주부든 독신여성이든 바기나 오르가즘은 여성성의 증거로 이해되었으며, 성교를 중심으로 하는 성욕에 대한 관념은 변경되지 않았다.

 

- 153-4 pp

 

 

 

 

 

금진주의 페미니즘은 성혁명의 대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쾌락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한 방어적 투쟁을 벌였다. 실제로 성혁명의 기간에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혁명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가졌다.

1963년경 절음 여성들은 성혁명의 시대에 살면서 '예스'라고 말하라는 압력이 갑자기 '노'라고 말해야 하는 이전의 무를 대체하면서  혼란을 느꼈다. 젊은 여성들은 새로운 자유를 향유해야 하는지 성적 착취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햇다.

 

- 165 p

 

 

 

 

 

낙태의 권리를 처음으로 제기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분파는 레드스타킹스로 이들은 낙태투쟁을 통해 자신의 재생산 능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자기 삶의 향을 통제할 수있는 여성의 자유를 확보하려고 했다. 이들은 임신을 성 경험의 대가나 벌이 아닌 성적 권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3년 대법원은 미국 전역에 걸쳐 낙태를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로우 대 웨이드' 사건으로 알려진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미국인의 사생활 권리(헌법 14조)에는 여성이 아이를 낳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논리에 근거해 정부가 낙태 문제에개입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승인했다기보다 시민의 사생활의 권리에 대한 승인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낙태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에서 개인의 선택권의 문제로 변화했다 그 결과 두 개인의 권리, 즉 어머니의 권리와 태아의 권리가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계기로 낙태권의 문제가 개인의 선택권으로 옮겨가면서 논쟁은 이른바 '생명존중'을 주장하는 신보수주의와 '선택존중'을 주장하는 페미니즘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변형되었다. 신보수주의가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한 반면에 페미니즘은 낙태를 개인의 선택권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한편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낙태 찬성 캠페인을 재생산에 대한 권리로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많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건강하고 보편적인 낙태 요구는 흑인 여성들의 삶의 맥락에서 볼 때 훨씬 복잡한 문제였다.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개입이 있은 뒤에야 낙태와 피임 문제에 관한 페미니즘 캠페인은 비로소 적절한 상담없이 강제로 낙태나 단산을 당하지 않으려는 흑인 여성들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즉 '낙태를 할 권리'라는 협소한 정의는 임신과 출산 여부를 여성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라는 의미를 가진 '재생산의 권리'로 다시 정의 되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낙태 문제를 이론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특히 고든은 출산통제 운동사를 통해서 자발적인 재생산 권리와 비자발적인 재생산 선택을 분리시켰고 낙태를 자발적인 권리로, 불임시술은 비자발적인 선택으로 분류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낙태의 권리를 여성의 육체에 대한 통제라는 관념 속에서 조명할 수 있게 했다. 즉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에 유비되는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통제라는 차원에서 출산통제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발전은 이전 시대에 '자발적 모성'을 제기했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통을 잇는 것이기도 했다.

 

- 168-170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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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이현상 평전 - 안재성

(1930년대 경성 트로이카가 주도한 연쇄파업과 관련하여...)

 

이틀 후인 9월 21일에는 서울에서도 가장 큰 공장의 하나로 알려진 동대문 종연방직과 용산공작소 영등포 고ㅇ장에서 동시에 파업이 터졌다. 둘 다 이현상의 직접적인 지도 아래 감행된 파업이었다. 종연방직에는 경성트로이카 조직원으로서 영등포 방면 공장에서 활동하던 이병기의 조카 이병의와 유해길이 취업해 있었다. 가회동 집에서 이재유와 회합한 이현상은 임금인상, 처우개선 등의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이끌기로 합의를 본 후 이효정, 이순금, 이종희 등과 함께 투입되었다. 이현상은 별도로 조선일보 배달원 정칠성과 변홍대를 신설동 하천가 야산 등지에서 만나 최대한 많은 노동자를 참가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종연방직 파업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일으켰다. 참가 인원이 오백 명으로 지금까지의 파업 규모 중에 가장 컸다. 이에 경찰이 이영자 등 다섯 명의 여성 노동자를 검거하자 흥분한 오십육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경찰서로 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일제 치하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경찰서 진입을 감행한 것이다.

파업이 사흘째 이어지자 회사측은 직공 모집 공고를 붙이고 다음 날 출근하지 않는 노동자는 모두 해고한다면서 신문기자들에게 구십 퍼센트 이상이 출근하리라 장담했다. 그러나 작업에 들어가는 노동자는 없었다. 이에 회사 측은 더욱 교묘한 술수를 썼다. 남성 노동자들에게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었으니 여성 노동자들을 출근하게 하라고 시킨 것이다. 이를 믿은 남성 노동자들의 설득으로 여성 노동자들도 모두 출근했다. 하지만 일단 노동자들을 축근시킨 회사 측은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한 적 없으며, 남성 노동자들이 멋대로 말한 것이라고 발뺌했다. 이 과정에서 남녀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바람에 파업은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이현상은 요구조항 속에 남자들의 임금도 올려줄 것을 넣도록 하는 등 파업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애썼지만 재파업에 돌입하지는 못했다. 요구조건의 쟁취에는  실패하지만 종연방직 파업은 연일 언론에 실리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 111-2pp

 

 

 

 

감옥살이는 늘 힘들었지만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음식의 질은 더욱 떨어졌고, 사상통제도 심해졌다. 이현상은 정치범들을 조직해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싸움을 그치지 않아 서대문형무소에서 함흥형무소로, 다시 대전형무소로 강제 이감되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체포된 지 사 년 칠 개월 만에 석방될 때 감옥에서 싣고 나온 책이 손수레로 석 대나 되었다.

 

- 119p

 

 

 

 

(1945년 11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회장에서 김태준이 한 축사)

 

"여러 동무들을 등지고 연안에 갔다가 이제 대하니 오히려 면목이 없습니다.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농민의 대표 여러분! 우리의 해방은 아직도 어렵습니다. 잠깐 연안 독립동맹의 현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팔로군하에서는 남녀노소가 노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먹을 것을 농사짓습니다. 모택동 동지도 하루에 몇 시간씩은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도 연안에서 조선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여러분은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호언장담에 속지 말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공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누구의 밥을 먹고 누구의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정치운동을 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이완용이나 김옥균도 주관적으로는 조선을 구하기 위하여 일본과 결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물론 우리가 사상운동이 아닌 이상, 정치운동에는 신축성을 가져야 합니다. 팔로군의 십 개조 정책을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과거의 경솔한 공산주의를 버리고 진실한 신민주주의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적당한 노선을 세우고 옳게 걸아 나갑시다. 우리는 자기비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팔로군에는 정풍운동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비판을 할 줄 알면 오늘과 같은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민족을 위해 싸웠다느니, 네가 그랬느니 하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삼일운동도 결코  삼십삼 인의 지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중운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으로부터 세워진 과거 혁명의 결정인 인민공화국을 절대로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근 성공적으로 나가는 연안에도 민족단체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태도는 겸손합니다. 조선의 인민을 위한 일을 하려면 그러한 태도라야 할 것입니다. 혁명가는  마당히 대언장담하지 말고 자기비판을 합시다.

 

- 177-8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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